[투모로우 에세이] 통영·평창 넘어서는 ‘음악 페스티벌 도시’, 나올까?

2015/11/26 by 박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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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 에세이 통영·평창 넘어서는 '음악 페스티벌 도시', 나올까? 여러분의 취향에 '맛'과 '멋'을 더해줄 에세이스트 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매주 목·금요일 투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박제성 음악평론가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이란 단어는 단순히 ‘음악을 감상한다’는 개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개최 장소를 채울 수 있는 청중이 필요하고, 음악을 연주할 단체와 사람들이 존재해야 한다. 무대를 제작∙홍보∙기획하는 스태프의 활약과 공연 장소, 교통∙숙박 등의 ‘관광 인프라’도 빼놓을 수 없다. 한마디로 개최지 거주자와 관광객 모두가 휴식과 관광을 즐기며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음악 페스티벌 개최 도시는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수입을 올리며 홍보 효과도 거둔다. 행사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음악 페스티벌 개최 자체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어엿한 관광산업’인 셈이다. 당연히 기업 협찬은 물론, 도시와 국가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음악 페스티벌은 개최지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동상 사진입니다.

음악 페스티벌은 1회성 공연과 여러 면에서 차별화된다. 무엇보다 충분한 예산과 심도 있는 기획을 바탕으로 도시와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기능한다. 게다가 오늘날 음악 페스티벌은 개최 국가(나 도시)의 특수성이나 대중성보다 세계적 보편성과 전문성을 추구하는 만큼 음악적 완성도나 평가 측면에서 다른 국가(도시)와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꾸준한 투자와 예술적 노력, 그 지역만의 관광 기반 산업이 세계적으로 인정 받게 된다면 그 페스티벌 개최지는 세계적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얻고 경제적 발전도 이루게 된다. 결국 음악 페스티벌은 문화와 자연이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물 앞에서 유리에 둘러쌓인 구조물의 사진입니다.

음악 페스티벌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도시형 페스티벌’이고 다른 하나는 ‘전원형 페스티벌’이다. 도시형 페스티벌은 관광 환경과 문화적 기반이 잘 갖춰진 대도시에서 개최되는 게 일반적이다. 주로 미술관과 박물관, 기타 랜드마크 등을 하나의 중심 축으로 삼고 여기에 유명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에서의 공연이 더해지며 구성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오스트리아) △런던 BBC 프롬스(영국)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베를린 필하모니 페스티벌(이상 독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백야 페스티벌(러시아) △프라하 봄 페스티벌(체코) △에네스쿠 페스티벌(루마니아)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이탈리아) 등이 대표적이다.

산과 넓은 강 그리고 작은 집들이 모여있는 휴양지 느낌의 마을 사진입니다.

전원형 페스티벌은 자연으로 둘러싸인 소도시를 중심으로 새로운 공연장을 만들어 관람객이 음악과 자연을 함께 즐기도록 하는 ‘휴양형 콘셉트’를 표방한다. △세이지 오자와 마츠모토 페스티벌 △벳푸 페스티벌(이상 일본) △루가노 페스티벌 △루체른 페스티벌 △베르비에 페스티벌(이상 스위스) △액상 프로방스 페스티벌(프랑스) △탱글우드 페스티벌(미국) △에딘버러 페스티벌 △글라인드 본 페스티벌(영국) △그라페네크 페스티벌 △브레겐츠 페스티벌(이상 오스트리아) △메라노 페스티벌 △스페리스테리오 오페라 페스티벌(이상 이탈리아) 등이 손꼽히는 전원형 페스티벌이다. 특히 루체른∙베르비에∙브레겐츠 페스티벌은 하나같이 천혜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도시에서 펼쳐져 전 세계 관광객이 집중적으로 모이는 대표적 ‘메이저 페스티벌’이다.

 

국내 시장? ‘도시형’은 고전, ‘전원형’은 기대

사실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세계 각국은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수많은 음악 페스티벌을 기획 중이다. 음악 페스티벌을 자국의 대표적 관광 상품이자 국가적 경쟁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페스티벌의 완성도를 ‘월드 클래스’급으로 높이기 위한 이들의 투자는 다양하다. 개성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역량 있는 연주자를 섭외하며 실내외 무대의 완성도를 높이는 건 기본. 개최지 소재 호텔과 공항∙철도, 레저 시설 같은 관광 자원을 확충하려는 시도도 여기에 포함된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진입니다.

음악의 질을 결정 짓는 음향 수준 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콘서트홀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페스티벌은 큰 문제가 없지만 야외 무대에서 공연이 진행될 경우, 실내 공연에서와 동일한 효과를 내기 위해 전 세계 음향 엔지니어가 총동원돼 저마다의 솔루션을 제공한다. 특히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전 세계 야외 공연 음향의 기준’으로 일컬어질 만큼 음향 부문에서 막대한 규모의 초기 투자와 유지 보수 작업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내수 규모가 작아 관광 산업이 특히 중요한 국가 중 한 곳이다. ‘한국 대표 음악 페스티벌’ 유치가 절실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이나 부산처럼 관광 자원과 기반이 비교적 풍부한 대도시에도 이렇다 할 도시형 음악 페스티벌이 없다시피 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서울엔 ‘스프링 실내악 페스티벌’과 ‘서울국제음악제’, 부산엔 ‘실내악 페스티벌’이 각각 운영된다. 하지만 이들 페스티벌은 예술적, 흥행적 파급력이 부족한 데다 그 규모와 출연진의 면면 또한 별 경쟁력이 없다.

큰 공연장의 사진입니다.

도시형 페스티벌이 성공을 거두려면 오페라와 대규모 오케스트라, 스타 연주자의 리사이틀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현실은 이와 한참 거리가 멀다. 서울의 경우, 예술의전당 외엔 클래식 음악을 전문으로 개최할 만한 전용 홀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예술의전당은 대관 위주로 운영되는 국영 공연장인 만큼 단일 페스티벌을 위해 장기간 대관하는 구조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구 오페라하우스 정도가 매년 10월 오페라 페스티벌을 열면서 나름 선전하고 있지만 지원 규모가 너무 미약해 성장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렵다.

그나마 전원형 페스티벌 쪽은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경남 통영에서 개최되는 통영국제음악제와 강원 평창에서 개최되는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상당한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는 통영국제음악당은 흔치 않은 음악 전용 콘서트홀을 갖추고 있는 데다 세계적 명성을 갖춘 음악감독도 보유하고 있다. 선진적 시스템과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으로 치자면 가히 국내 최고 수준으로 내세울 만하다. 통영의 경우,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인 만큼 관광 자원도 비교적 풍부해 기대를 모은다. 다만 숙박과 식사, 교통 등 국내외 관광객을 만족스럽게 수용할 만한 기반이 아직 부족한 건 흠이다.

여러 명이 악보를 보며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대관령국제음악제도 10년여간 발전을 거듭해왔다. 20일 넘게 펼쳐지는 이 축제는 뮤직 텐트와 클래식 음악 전용 홀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상연 음악은 실내악,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편성된 성악이 주를 이룬다. 평창 역시 빼어난 자연 환경과 수준급 관광 기반을 갖추고 있어 향후 보다 큰 규모의 프로그램이 갖춰진다면 대관령국제음악제는 통영국제음악제와 더불어 아시아 최고 수준의 음악 페스티벌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음악 페스티벌 운영은 문화 정체성 확립 문제

음악 페스티벌이 1회성 공연에 그치지 않고 지역 발전과 국가적 문화 성취에 이르려면 뜻 있는 기업과 국가 기관의 투자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전용 홀 건립이나 그에 걸맞은 재단 후원, 전문 인력 영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험 많은 음악 감독과 아티스트 확보에 쏟는 노력, 개최지의 관광 기반 마련, 국내외 기업과 여행객을 상대로 한 홍보 노력 등도 수반돼야 한다. 괜찮은 음악 페스티벌을 운영하려는 노력은 상하수도를 깔고 길을 내는 것과는 질적∙양적으로 전혀 다른 국가 경쟁력 확보와 문화적 정체성 확립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박제성

음악평론가 (삼성전자 에세이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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