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한계비용 제로 시대’, 대비하고 있나요?
안중우 성신여대 청정융합과학과 교수
‘한계비용[1] 제로(0)의 시대’. 현대 제조업을 묘사하는 일명 ‘인더스트리(industry) 4.0’을 대변하는 화두입니다. △‘제품’ 소유에서 ‘서비스’ 소유로의 변화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의 발달 △센서의 다양화∙저가(低價)화 △빅데이터(big data) 접근 장벽 완화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제조업의 한계 비용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요즘은 여기에 ‘에너지 한계비용’까지 내려가고 있죠.
짜장면 곱빼기 가격이 생각보다 싼 이유
짜장면 한 그릇의 가격을 5000원이라고 하면 (그 양이 1.5배쯤 되는) 곱빼기는 7000원에서 8000원 사이여야 할 것 같은데 실제 판매 가격은 6000원가량입니다. ‘보통’과 ‘곱빼기’를 비교했을 때 가격 구성 요인 중 재료비와 에너지, 인건비(인센티브∙보너스 등)가 차지하는 비중은 증가합니다. 반면 임대료나 고정 임금, (남기면 버려야 하는) 식자재 등엔 추가 비용이 들지 않죠. 이 때문에 실제 곱빼기 한 그릇의 가격은 보통 한 그릇보다 1000원 정도만 올라갑니다. 이를 ‘한계비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에너지 가격이 낮아지면 밀가루 같은 원자재 가격도 내려갑니다. 인건비도 낮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통비나 기타 생활비가 덜 들기 때문입니다. 과거 ‘고정비용’으로 여겨졌던 비용의 변동성이 커지는 덕분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짜장면을 예로 들었을 뿐, ‘대량 생산을 통한 원가 하락’이 주를 이뤘던 ‘인더스트리 3.0’과 달리 ‘인더스트리 4.0 시대’에선 원가, 즉 판매가 자체가 하락하게 될 전망입니다.
실제로 현대인은 이메일이나 음성 통화, 문자 메시지, 음악 감상 등 여러 분야에서 ‘한계비용 제로(0)’를 즐기고 있습니다. 이때 정액제란 대부분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난 후엔 아무리 추가로 사용해도 더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걸 말합니다.
현재 신재생에너지 가격은 화석연료나 원자력을 이용한 기존 에너지 가격보다 비쌉니다. 하지만 화석연료가 고갈되면 신재생에너지가 각광 받겠죠. 더욱이 태양광∙풍력∙조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초기 시설비만 들이면 더 이상 에너지원에 소요되는 비용이 필요 없어지면서 에너지를 점점 낮은 가격에 쓸 수 있게 됩니다.
중국음식점에서 하루 100그릇의 짜장면을 팔다 열 그릇을 더 팔게 될 때의 추가 비용과 아이돌 가수의 음반(혹은 음원)을 1만 장 팔다가 1만1000장 팔 때의 추가 비용은 논의의 차원이 다릅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경우 이미 한계 비용이 0에 수렴하고 있습니다. 영화 산업도 마찬가집니다. 국내에서 제작한 영화를 해외에 수출한다고 해서 비용이 얼마나 더 추가될까요? 기껏 해야 파일 복제비와 운송료 정도가 발생할 겁니다. 전체 영화 제작비를 따지면 극히 일부분이죠. 물론 이를 자동차 산업 같은 제조업과 단순히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앞으론 제조업에서의 한계비용도 점차 내려갈 겁니다. 상품 제조 시 사용되는 에너지 원가가 낮아질 테니까요.
우마차는 왜 그렇게 맥없이 사라졌을까?
무인자동차 시대엔 운전자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사라집니다. 교통사고가 현저히 줄어드니 보험료도 낮아지겠죠. 자동차가 굴러가는 데 휘발유 대신 전기가 사용된다면, 그리고 그 전기가 신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다면, 여기에 카셰어링(car sharing)까지 추가된다면 운송 수단 비용은 더 낮아질 겁니다.
흔히들 “화석에너지가 고갈되면 신재생에너지가 사용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청동기 시대가 가고 철기 시대가 온 건 청동기 재료가 고갈된 이후의 일이 아닙니다. 청동기보다 훨씬 철기를 청동기보다 싸게, 잘 만들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신재생에너지의 효율이 높아지고 가격이 낮아져 화석에너지와의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 화석연료는 청동기 시대를 마감하고 철기 시대가 열렸듯 그 자리를 신재생에너지에 내어주게 될 겁니다. 그때쯤이면 화석에너지는 플라스틱 원료로만 쓰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소나 말이 끌던 우마차가 사라지기 시작한 건 20세기 초반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선 1970년대 초반 ‘삼륜용달차’가 생겨나면서부터일 겁니다. 당시 우마차를 운전(?)하시던 분은 사실 엄청난 기술자들이었습니다. 소나 말의 눈만 보고도 컨디션을 짐작하고 어디가 안 좋은지, 몇 ㎞나 운행할 수 있을지, 얼마나 쉬어야 오래 일할 수 있을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했으니까요. 말 발바닥에 편자도 박을 줄 알아야 했겠죠. 춥거나 더울 때 소와 말의 잠자리도 마련해줘야 하고 먹이도 만들어 먹여야 했을 겁니다.
우마차 기사가 살던 시대엔 오늘날처럼 서비스업이 발달하지 않았을 테니 그들은 사실상 우마차 운전에 필요한 거의 모든 걸 스스로 해내야 하는 ‘만능 기술자’ 노릇을 해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동차가 보편적 교통 수단으로 등장했습니다. 우마차 기사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아보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겠죠. 소나 말의 귀에 대고 파이팅도 외쳐보고 보약(?)도 먹여봤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우마차는 자동차에 밀려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실패에서 배우거나, 이종(異種)끼리 합치거나
어쩌면 인더스트리 3.0과 인더스트리 4.0의 차이도 여기에 비유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인더스트리 3.0에선 제조∙서비스 부문 할 것 없이 ‘분업을 통한 대량 생산’ 체계를 통해 대량 생산이 가능했습니다. 이로 인해 생산성이 향상됐고 자동화 시스템이 갖춰지며 인건비가 절감됐죠. 인간의 실수(human error)에 의한 불량률도 대폭 개선됐고요. 반면, 이젠 추가로 뭘 더 생산해도 더 이상 비용이 추가되지 않는 ‘한계비용 제로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소나 말의 귀에 아무리 파이팅을 외쳐봐도 소용 없는 시대가 말이죠. 그리고 그 속도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기대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오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린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역사는 대개 한국과학기술원(KIST)의 역사와 궤를 같이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역점을 둬야 할 일 중엔 연구∙개발도 있겠지만 좀 다른 것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S&R(Search & Reapply)이나 C&D(Connect & Development) 같은 건 어떨까요?
S&R은 ‘과거 해본 것들 중 실패한 걸 찾아내 다시 한 번 시도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실패했던 이유는 다양할 겁니다. 한계비용이 높아서, ICT가 받쳐주질 못해서, 센서가 없거나 센서 가격이 비싸서, 빅데이터 수집이 불가능해서, 소비자가 원치 않아서, 이도 저도 아니면 소비자가 몰라서…. 하지만 오늘날 환경은 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과거 실패 이후 태어난 것들을 다시 한 번 접목해보자는 겁니다. 다소 진부한 사례이긴 하지만 순간접착제나 접착식 메모지 ‘포스트잇(Post-it)’의 탄생기가 그렇지 않나요?
C&D도 마찬가집니다. 기존 시스템에 ICT를 추가해 새로운 제품이나 시스템을 만드는 겁니다. 흔히 ‘융합’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이죠. 실제로 그 조짐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소비자는 전자제품 실물이 전시된 양품점을 찾아 제품을 둘러본 후 정작 실제 구매는 온라인상에서 진행합니다. TV 홈쇼핑 업체는 방송을 통해 노출시킨 물건을 실제로 접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죠. 그뿐인가요. 요즘 유통업체는 대부분 온∙오프라인 시장에서 동시에 활약 중입니다.
실제로 지마켓(Gmarket)의 사업 모델은 벼룩시장(flea market) 개념을 ICT와 결합한 형태입니다. 하이패스는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의 좋은 사례죠. 센서도, 그와 교신할 수 있는 기술도 전에 없던 게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은행 고객 대기용 번호표는 또 어떤가요?
아마존과 도미노피자는 드론(drone)으로 30분 이내에 제품을 배달하려고 한답니다. 배달 하면 또 한국입니다. 이미 반 세기 전부터 ‘배달 문화’가 존재했으니 한국인의 DNA엔 이미 상당량의 노하우가 축적돼 있을 겁니다. 이를 정리해 전 세계 배달 시장에 나갈 방법은 없을까요? ‘서치’해서 ‘리어플라이’하면 안 될까요? ‘커넥트’해서 ‘디벨롭먼트’하면 안 될까요? KIST 같은 R&D 전문 기관에 S&R센터나 C&D센터가 들어설 순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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