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한국에 보다 많은 ‘박태환수영장’을 허하라
최준서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그를 처음 만났던 곳은 지금 필자의 연구실이 위치한 체육관. 18년 전 이야기다. 그리고 강산이 두 번쯤 바뀔 무렵인 지난주, 같은 캠퍼스 안의 대형 강당에서 그와 재회했다. 그 긴 세월 동안 그도 나도 참 많은 일을 겪었고, 결국 같은 자리로 되돌아왔다.
모 다국적기업의 브랜드 매니저로 일할 당시 필자는 그를 광고모델로 기용하려고 그의 에이전트와 미국 LA에서 1차 회의를 하고, 그해 시즌이 끝나 귀국한 그를 만나기 위해 그의 모교를 찾았었다. 그의 모교는 다름 아닌 필자의 현재 직장이다.
지난주 그가 강연을 하기 위해 참으로 오랜만에 모교를 다시 찾았을 때, 나는 그의 대학시절 유니폼을 선사했다. 그의 모교에 몸 담고 있는 교수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자 예우라고 생각했다.
▲지난 10월 29일, 한양대에서 강연 중인 박찬호 선수 (사진 출처 : 최준서 교수 촬영/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예우. 은퇴를 앞둔 또는 최근에 은퇴한 스포츠 스타에게 팬들이 할 수 있는 예우는 과연 무엇일까? 요즘 프로야구 선수들의 성대한 은퇴식 또는 영구결번 행사가 간혹 열리지만, 사실 예우의 본질은 그들을 우리의 위대한 스포츠 ‘유산(遺産)’으로 생각하는 관점의 변화다.
‘앞 세대가 물려준 사물이나 문화’를 유산이라고 정의한다면 박찬호, 그는 우리 스포츠 역사가 배출한 최고의 유산이 맞다. 그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길, ‘전례가 없었던 일’을 선택한 그의 인생 역경을 통해 지금의 류현진과 제2, 제3의 메이저리거가 꿈을 키우고 있으리라.
그런 그를 나의 직장이자 그의 모교는 그동안 제대로 예우해 주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더 늦기 전에 그를 후배들 앞에 불러 가장 뜨거운 박수를 쳐줬어야 했다.
양적성장 외에 우리가 또 한 가지 배워야 할 ‘야구문화’
며칠 전 막을 내린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시즌 말미의 가장 큰 화두는 뉴욕 양키스 한 팀에서만 20년 동안 선수생활을 하다가 은퇴를 앞둔 데릭 지터(Derek Jeter) 선수를 ‘떠나 보내는 법’에 대한 것이었다.
현역시절 내내 지터 선수와 불꽃 튀는 라이벌 전쟁을 치렀던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은 그의 마지막 경기에서 호스트(host)로서 ‘레드카펫’ 그 이상을 준비했다.
마치 역사의 현장 속에 뛰어드는 기분이 들 정도로 다양한 스토리와 생생한 현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보스턴의 홈구장 펜웨이 파크(Fenway Park). 그곳의 명물인 좌측 외야 담장 ‘그린몬스터(Green Monster)’에 설치돼 있는 스코어보드의 일부를 떼어내 백넘버 2번의 지터를 상징하는 ‘RE2PECT(존경)’ 구호를 장식하고, 레드삭스 구단 선수들의 서명과 함께 전달했다. 역사, 정통성, 창의성이 모두 함축된 최고의 선물이었다.
▲지난 9월에 발행된 미국의 유명 스포치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데릭 지터 SI 헌정판 (사진 출처 : 최준서 교수 촬영/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필자가 2주 전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구입한 미국의 저명한 스포츠잡지는 아예 데릭 지터 헌정판을 찍어내기도 했다. 아울러, 오랜 세월 지터의 후원사로 관계를 유지해 왔던 나이키사와 게토레이사는 그를 위한 헌정광고를 제작해 방송했고, 그 동영상은 유튜브를 타고 세계 각지의 1000만 명에 가까운 야구팬에게 전달됐다.
우리의 상식으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문화일 수 있다. 개인의 은퇴 하나에 미국 전역이 들썩이는 현상이라….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걸림돌은 언어나 음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개인주의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정서와 문화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지터에게 보낸 박수는 단순한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가 추구했던 야구–개인보다는 구단, 구단보다 야구를 먼저 여기는 열정, 구단에 대한 충성심, 승리를 위한 희생과 허슬 플레이, 팬들을 위한 자기관리, 연고 도시에 대한 자부심, 후원인들에 대한 프로의식…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경의와 아쉬움을 대신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20년 이상 미국이란 나라에서 공부하고 생활했지만 소위, ‘동양적인 미덕’의 대부분은 그 나라에서도 인정하더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스포츠의 매력이 동서고금을 초월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개인주의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정서와 문화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건국 이래 역사가 300년도 채 안 되는 미국이란 나라는, 그들의 유산과 문화는 지독하리만큼 잘 지키고 보존하는 재주를 가졌다. 스포츠 유산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의 종목별 ‘명예의 전당’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근사하게 건립돼 있다. 마치 역사의 현장 속에 뛰어드는 기분이 들 정도로 다양한 스토리와 생생한 현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 했던가? 야구 하나만으로 우리는 아직 그들에게 질 게 너무 많다.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스포츠 유산’도 물려줘야
필자의 집 앞 창문 사이로 ‘장문로’라는 길이 보인다. 대체 무슨 뜻이 담겨있는 길인지, 무슨 뜻을 담으려 했는지도 모르는 그런 동네길 이름이다. 나는 더 많은 대구의 ‘김광석 거리’, 수원의 ‘박지성 길’이 생겨나길 원한다. 신촌의 서강대 앞 어느 공간은 ‘신해철 광장’으로 명명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들의 이름을 보면서 후손들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간접적인 체험을 할 수 있게 하자는 목적도 존재한다.
‘박태환 수영장’, ‘김진호 양궁장’처럼 전국 전역에 개인의 이름을 딴 더 많은 시설물이 자리잡길 소망한다. 이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회 각 분야 개인의 얼을 되새겨 예우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그들의 이름을 보면서 후손들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간접적인 체험을 할 수 있게 하자는 목적도 존재한다.
제 아무리 현역 시절 ‘슈퍼스타’ 대접을 받던 선수들도 은퇴를 앞두면 두려움이 엄습하기 마련이다.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학습권 문제와 밀접히 관계된 이유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팬들로부터 잊힌다는 사실일 것이다.
청춘을 그라운드에 쏟아 부으며 팬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그들의 아름다워야 할 석양이 그렇지 못함은 분명 불행이다. 더 늦기 전에, 더 후회하기 전에 우리도 우리 것은 지키고 아끼고 대접해줘야 스포츠 산업의 한 단계 성장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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