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세이] 우리가 만난 인도_①인도에서 ‘열정’을 되찾다

201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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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요. 강산이 변하는 것도 지나친 채 앞만 보고 달려온 남녀가 있습니다. 그 시간이 어찌나 숨 가빴던지 신입사원으로 첫발을 떼던 기억조차 흐릿할 정도입니다. 누구나 다 하는 사회생활이라지만 또 누구에게나 그렇듯 이들에게도 매 순간이 녹록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가슴 한편에서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건가?’란 외침이 들려 올 때도 그저 앞으로 걷기만 했죠. 그런 이들이 배낭 하나 메고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지난 10년 숨 가쁘게 달려온 내 몸을 비행기에 실었습니다. 커다란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인도 아이들에게 바다를 선물하고 싶었던 ‘그 여자’

비행 시간만 9시간 반. 비행기가 곧 착륙한다는 승무원의 안내 방송에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는 김혜경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TP(Test&Package)센터 사원. 그에게 이번 인도행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올해 10년 근속 휴가를 이곳에서 보내게 됐거든요.

남들은 휴양지로 떠난다는데 굳이 인도를 고집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그는 콩고 아이 3명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 궁금해도 후원단체에서 보내주는 사진 한 장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해외봉사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선뜻 지원했고 올여름 콩고 아이들 대신 인도 아이들과 함께하게 됐습니다.

아름답다. 첫인상은 그랬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 오롯이 박힌 미소들.

“아름답다.”

인도 베이드푸라 마을에 첫발을 내디딘 김 사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그를 맞은 아이들의 환한 웃음은 인도에 대한 두려움마저 녹아내리게 만들었는데요. 그렇게 인도에서 첫날이 지나갔습니다

연필과 지우개를 들었습니다. 해맑은 아이들의 얼굴에 무엇을 더할 수 있을까요? 미소의 뒤편, 작은 어둠을 지울 수 있을까요?

인도에서 보내는 1주일, 김혜경 사원은 스리산트비노바공립학교(Shri Sant Vinoba Inter College)에서 벽화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벽화 봉사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그는 다소 긴장한 듯 보였는데요. 한 손엔 펜을, 나머지 한 손엔 지우개를 각각 쥔 그는 하얀 벽 위에 슥슥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벽에 무언가를 그리는 일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넘어서야 할 벽이 아니라 청량한 그늘을 내어주는 그런 벽이 되길 바라며...

“학교 벽면에 장난감, 동물, 그리고 우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면 좋겠어요. 예쁜 벽화가 생기면 등교가 즐거울 것 같아요.”

벽화를 그리던 김혜경 사원 주변에 아이들이 모여듭니다. 그리곤 저마다 상상하는 벽화 그림에 대한 얘길 꺼내는데요. 김혜경 사원은 쫑알쫑알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아이들의 요청에도 그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그렸다 지웠다 반복하길 수 차례, 벽 위에서 희미하게 무언가가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커다란 고래와 넘실대는 파도, 그리고 그 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평소 바다를 접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그는 바다를 선물해주기로 한 건데요.

넘실대는 파도, 고래와 불가사리... 바다를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푸른 물결 위에 아이들의 미소를 띄우고 싶었습니다.

온종일 섭씨 37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에 벽화를 완성하기까지 꼬박 나흘이 걸렸습니다.

완성된 벽화를 공개하던 날. 스리산트비노바공립학교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는데요. 마치 ‘세상엔 저렇게 생긴 동물도 있구나’ 하는 신기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듯했습니다. 김혜경 사원은 엄마 미소로 그들을 바라봤는데요. 어쩌면 인도 아이들의 환한 미소를 보며 가슴으로 낳은 콩고 아이들을 떠올렸는지도 모릅니다.

“이 벽화가 잠시나마 아이들의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길, 넓고 깊은 바다를 자유로이 헤엄치는 고래 같은 존재로 자라나길

한국에 돌아가서도 오래도록 기억될 인도의 아이들, 이 아이들도 벽화를 볼 때마다 김혜경 사원을 생각하겠죠?

 

뚝딱뚝딱,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싶었던 ‘그 남자’

고등학생 자녀를 둔 가장, 이정락 삼성전자 VD(영상디스플레이)부문 AV개발그룹 수석. 그 역시 30년 근속 휴가지로 인도를 택했습니다. 그것도 가족이 아닌 혼자, 정확히 말하면 해외봉사팀원들과 함께요. 중요한 시기에 있는 아이들과 아내를 두고 해외봉사를 간다는 게 가장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은 아닐지 고민했죠.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가족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저희 몫까지 최선을 다해 아이들에게 잘해주세요.”

100개의 책상 앞에서 큰 선물을 받은 듯 망치를 손에 쥡니다. 100명의 아이들을 벌써 다 품은 것 같습니다.

두 어깨에 아내와 아이들의 응원을 얹은 이정락 수석은 인도에서도 ‘아빠’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인도 봉사팀에선 든든한 맏형으로, 인도 아이들에겐 키다리 아저씨로 통했는데요. 그가 이번 인도 해외봉사에서 꼭 하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책걸상 수리해주기’.

“학교는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잖아요.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세상인 만큼 깨끗하고 밝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꿈을 잃지 않길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었을까요? 그는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책걸상 100개를 일일이 고쳐나갔습니다.

낡고 허름한, 툭하면 기우뚱거리고 여기저기 망가진 흔적이 정겨운 책상. 이 작은 공간에서 꿈을 키우던 시절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책상 하나를 보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하지만 현지에 제대로 도구가 갖춰져 있지 않아 작업은 지연됐습니다. 보수 작업에 필요한 일손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죠. 따가운 햇살 아래 책걸상과 씨름하는 이정락 수석을 본 마을 주민들은 하나둘 손을 보태기 시작했습니다.

페인트칠을 막 끝낸 책상 위에 제 미소가 비칩니다. 여기 앉을 아이들에게도 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현지 용접공이 부러진 책걸상에 용접을 해주면 구멍이나 흠 있는 부분을 메우고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이 계속됐습니다. 이마엔 송글송글 구슬땀이 맺히고 얼굴 곳곳에 페인트가 묻었는데도 그는 묵묵히 보수 작업을 이어갑니다.

“아이들이 여기저기 망가지고 부서진 책걸상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이젠 안전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돼 다행이에요.”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틈 없이 1주일이 지났습니다. 보수 작업을 마친 후에도 이정락 수석은 책걸상 보수 상태를 꼼꼼히 살폈는데요. 책상을 두드려보기도 하고 표면도 쓸어보며 “아이들이 이 색을 마음에 들어 하겠느냐”고 묻는 그의 모습에서 영락없는 아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남을 위한 희생’이 아닌 ‘나를 위한 여행’으로 꽉 채워진 1주일간의 인도 봉사. 두 남녀의 가슴 속에 꺼져가던 열정의 불씨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과 함께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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