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 같았던 영화 ‘라이프’

201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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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삼성전자 커뮤니케이터 S입니다.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지난 주말, 모처럼 심야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안톤 코르빈 감독의 ‘라이프(Life)’. 스물넷에 요절한 미국 배우 제임스 딘의 일생 중 2주를 다룬 작품입니다.

1955년, 제임스 딘(데인 드한 분)은 ‘에덴의 동쪽(East of eden)’ 촬영을 끝내고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에 캐스팅되지만 계속해서 시대와 불화합니다. 식물도감 속 꽃 사진이 유독 아름다운 건 그 꽃이 가장 탐스럽게, 예쁘게 핀 ‘절정의 순간’을 포착한 덕분이라고 하죠. 극중 딘이 뉴욕과 매리언(Marion, 미국 인디애나주 소재 도시)에서 보낸 2주는 그의 24년 생애 중 너무 이르거나 늦은 절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홍보단상1▲영화 ‘라이프’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불안해서 더 아름다웠던 영혼’ 제임스 딘과의 조우

4년 전쯤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한 달여간 지낸 적이 있습니다. 매리언은 아니었고 블루밍턴(Bloomington)이란 도시에서였죠. 하루는 새벽부터 하늘이 어둡게 가라앉더니 먹빛 테를 두른 구름이 몰려왔습니다. 그날 아침, 급한 일이 있어 차를 타고 오른 고속도로는 이미 밀물 같은 안개로 자욱했습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 싸늘한 새벽 공기엔 쓸쓸한 물 내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문득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아침, 고속도로를 가득 채웠던 안개가 다시 온몸을 휘감는 듯했죠.

영화는 딱히 줄거리라고 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제자리를 맴도는 팽이처럼 계속 한 방향으로 파고 들어가 끝내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느릿느릿 흐르는 영상 속 딘은 더없이 고요합니다. 하지만 관객은 느낄 수 있죠. 거칠게 떨리는, 불안한 그의 영혼을요. 그 모습은 딘의 마지막을 함께한 스포츠카의 엔진을 닮았습니다. 단단해 보이는 현재의 지표면에 균열이 생길 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영혼을 잠식해올’ 때 그는 자꾸만 과거로 시선을 돌립니다. 마치 그곳이 자신의 유일한 피난처라는 듯.

홍보단상2▲영화 ‘라이프’ 속 제임스 딘(사진 왼쪽, 데인 드한)과 데니스 스톡(로버트 패틴슨)의 모습. (출처: 네이버 영화/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썼더군요. “‘라이프’를 끝까지 다 보아내고 나면 일거에 썰물이 되어 퇴각하는 허다한 잔물결들의 잔상과 이명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스크린 전체가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며 일렁이는 호수’인 듯 느껴졌습니다. ‘햇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하는 우리말 ‘윤슬’[1]도 떠올랐습니다.

[1]햇빛이나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하는 순우리말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라”

홍보단상3▲영화 ‘라이프’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 탐정 놀이를 즐겨 했습니다. 당시 가장 자주 했던 탐정 흉내는 ‘레몬즙으로 글씨 쓰기’였습니다. 흰 종이 위에 레몬즙으로 글씨를 쓰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죠. 하지만 그 종이를 촛불 위에 대고 있으면 어느새 갈색으로 변한 글씨가 떠오릅니다. 영화 ‘라이프’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예전 기억을 되새겨줬다는 점에서 제겐 레몬즙 글씨 같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극중 제임스 딘은 졸업 연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뭐가 중요한지 다른 사람은 몰라요. (그건 오직) 여러분 자신만 알죠.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삶을 사세요.” 이 말은 그가 남긴 명언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라”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짧지만 치열했던 그의 생애, 그중 2주를 엿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깊은 여운이 남았던 영화 ‘라이프’, 여러분께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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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앞서 영화의 인상이 윤슬을 떠올린다고 말씀 드렸죠. 그 김에 동명(同名) 뮤지션 윤슬의 노래도 한 곡 권해드립니다(지금 보니 노랫말이 제임스 딘과 퍽 어울리는 것도 같습니다).

“이제 그 먼 길/어두운 일 내 손을 잡고 걸어가/놓지 않을게요/혼자가 아닌/그대 곁에 나 내 곁에 있는 그대로/꽃이 피네/내게는 없을 아름다움일 줄 알았던/날이 오네”(‘꽃을 이루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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