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아직 가슴(?)이 없다
2003년 설을 앞둔 어느 날 오후, 최용원 수석을 비롯한 생산기술연구소 로봇팀은 김동일 상무에게서 또 다시 긴급호출을 받았다. 이날 하루만 벌써 세 번째 소집되는 회의였다.
5세대 때 가로·세로 1미터 남짓(1100×1250mm)이었던 유리 기판의 크기는 7세대에서는 2미터 전후(1870×2200mm)로 커졌다. 면적으로는 3배가 커진 셈이다.
삼성전자가 7세대 LCD라인을 세계 최초로 가동한다는 것은 로봇팀에게는 그 생산라인에 투입할 로봇을 앞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무렵 연구원들은 다음 세대 로봇에 관한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선진업체와 기술 격차를 많이 좁히기는 했으나 로봇의 핵심 분야를 여전히 일본에서 수입하는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초대형 LCD패널과 접촉면적을 더 줄이면서도 신속하고 반복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동역학제어 기술을 실현시키지 못한다면 모든 시도가 허사인 것을 연구원들은 잘 알고 있었다.
한 연구원이 다소 엉뚱하게 들리는 아이디어를 꺼냈다.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는 말투가 조금 어눌한 듯했지만 묘하게 사람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얼마나,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집중되었다. 당시 LCD 생산라인에서 활약하는 로봇이 한 번 오르내리는 Z축 높이는 850mm인데, 7세대 환경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Z축 높이가 3.6m까지 올라가야 했다.
듣고 있던 김동일 상무가 로봇 골격을 간단하게 정리해둔다.
‘세상에 없던’ 로봇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두고 연구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 로봇 개념을 버린 전혀 다른 창의적 아이디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출발한 7세대 로봇팀은 구성원이 사내경력, 소속, 전공이 천차만별로 다양했다. 이들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로봇을 위해 갖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외부 특징은 3.6m 높이로 작업할 때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로봇 동작 영역의 양쪽에 기둥을 설치하는 ‘듀얼 포스트’ 형식을 취한 점이지만, 삼성전자의 로봇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핵심기술은 LCD원판글라스 진동을 최소화하는 ‘동역학제어기술’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조필주 책임연구원이 ‘T-얼라인 센서’를 고안해냈다. 로봇 관절에 글라스의 가장자리를 감지하는 센서를 부착해 로봇이 글라스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소음’ 문제만 해도 그랬다. 연구원들은 로봇을 시운전하면서 묘한 소리를 들었다.
팔이 아름다운 로봇, <T71>
인스톨 큐 사인이 떨어졌다.
“위험하니까 저만큼 물러나고, 속도를 5 정도 더 올려봐!”
이윽고 속도가 80을 넘고 90을 넘기면서 이 미녀의 숨소리가 자리를 잡고 차분해진다. 연구원들은 지난 6개월 동안 노심초사하며 다잡았던 마음이 인스톨 후 불과 몇 분 사이에 다 타버리는 것 같다.
마침내 오케이 판정이 내려졌다. 갈증 속에서 사막을 헤매던 유목민이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가웠다. 재만 남은 가슴에 단비가 내리는 듯하다.
LCD쪽 참관자가 처음부터 쭉 지켜보고 마지막에 툭 던진 무심한 한마디가 연구원들 정신을 현실로 돌려놨다. 삼성전자가 7세대 LCD 로봇 ‘T71’의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연구원들이 쏟은 땀에 대한 평가는 그 한마디로 족했다. 연구원들은 당장에 잠이 필요했다.
로봇 TF팀은 1989년 8월, 독자기술로 산업용 로봇의 핵심부품인 컨트롤러 개발에 성공하면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규모 스카라 로봇을 내놓았다. 그 기세를 몰아 2년 후인 1991년, 6축 수직다관절 로봇 개발에 성공하고, 이 로봇을 곧바로 삼성전자 수원공장 VCR데크 조립라인에 적용함으로써 100% 무인화에 성공하며 처음으로 완전자동화의 숙원을 풀었다.
로봇 개발은 일단 시동이 걸리자 연이어 굵직한 성과물을 쏟아냈다. 중량물 이동용 펠레타이징 로봇, 고속 다기능 실장 로봇, 아크 용접용 6축 다관절 로봇 등을 연이어 개발한 데 이어 반도체 중흥기가 도래하는 1993년에 8인치 웨이퍼에 사용되는 스피너용 로봇을 개발하여 제조라인에 투입했다.
하지만, 로봇 TF팀이 가야할 길은 멀었다. 물량에서는 선진업체를 따라잡았지만 신뢰성 평가에서는 외산 로봇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2004년 7세대 LCD분야에서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T71’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클린능력이 튜닝능력을 만나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7세대 로봇은 자체탑재한 기능 못지 않게 설계단계부터 생산라인 프로세스를 고려한 튜닝작업으로 주목을 끌었다. 이는 산업용 로봇이 생산라인과 밀접하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당연한 시도였다. 김동일 상무가 단언한 ‘모든 것’이란 바로 튜닝능력을 가리킨다.
“일본 로봇업체들은 그동안 각 공정의 프로세스 조건에 신경을 쓰지 않고 정형화된 로봇만 만들어 왔지요. 공장의 생산시스템을 최적화하는 로봇이 아니라 어떤 한정된 기능을 미리 부여한 일반 로봇을 개발해온 겁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로봇에 관한 기반기술과 함께 관련 분야의 조율능력을 모두 보유하고 있으므로 생산라인을 꾸밀 때 필요조건에 맞춰 로봇을 맞춤 제작할 수 있습니다.”
초대형 7세대 LCD라인에 투입되는 유리 기판은 면적이 5세대의 3배나 된다. 이를 다루는 7세대 로봇은 이전세대 로봇에 비해 몸집도 동작도 커졌으므로 먼지 발생율도 그 만큼 높아졌다. 이 변화는 기판에 ‘파티클(미세 먼지)’이 달라붙을 확률이 더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TV 패널에 파티클이 하나라도 붙으면 여지없이 불량이므로 이렇게 까다로운 클린 사양을 만족시키는 로봇이어야 한다는 점은 초대형 LCD로봇 개발에서 난제에 속한다.
당초 월평균 8만 매 생산을 목표로 잡았던 LCD라인의 생산성은 ‘T71’도입 후에 월평균 20만 매를 넘어서면서 생산개시 17개월 만에 1천만 매 생산 달성의 개가를 올렸다.
이렇듯 7세대 LCD 로봇이 대형 TV시장에서 ‘킬러앱’으로 등극하여 삼성전자가 40인치급 이상 LCD의 표준화를 선점하던 무렵, 한국을 방문한 각국 정상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또 다른 로봇이 있었다. 삼성전자와 KIST가 공동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마루2>다.
by 삼성전자 블로그 운영자 블루미
흥미진진한 로봇 이야기 어떠셨나요?
다음 번엔 로봇 2편이 찾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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