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S3] 페블 블루 커버 전량 폐기, 우리는 위기를 떠안았다! Part 1
지난 7월, 삼성전자 구미 스마트시티, 그 곳에서는 수십만 개의 갤럭시S3의 페블블루 배터리 커버가 숙연한 표정의 수십명의 무선사업부 글로벌제조센터 임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폐기되었습니다.
흡사 지난 1995년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불량제품 화형식’을 떠오르게 했지만, 이번 폐기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제품에는 문제가 없고, 실제로 사용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출시를 앞둔 이 커버가 모두 폐기되어야 했던 것일까요?
비행기 출발 4시간 전, 전량 회수를 결정하다
“페블 블루 모델, 전량 회수입니다. ULD(항공기 적재 직전의 마무리 포장) 중단하세요.”
“네? 4시간 후면 비행기가 출발하는데요? 이미 반입되었습니다.”
삼성 모바일 언팩에서 약속한 글로벌 공식 출시일(5월 29일)을 두 주 앞둔 2012년 5월 17일 저녁 7시. 인천공항 내 삼성전자 물류센터에 로지텍 해외물류의 황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티켓팅까지 마치고 센터에 금지옥엽처럼 모셔둔 갤럭시S3 페블 블루 모델의 초도 물량이 전량회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럽 4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하는 일만 남은 시점에서, 삼성전자의 회수 결정은 물류센터와 인천공항 물류단지를 발칵 뒤집고도 남은 초유의 사태였습니다. 원인은 페블 블루 초도 물량의 배터리 커버. 페블 블루의 대량 양산 과정에서 갤럭시S3의 디자인 컨셉이 배터리 커버에 완벽히 재현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고객과의 약속, 그들에겐 아픔을 곱씹을 시간이 없었다
다급해진 것은 삼성전자 물류센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고객들과 약속한 날짜에 갤럭시S3를 전해야하는 전략마케팅실도 다급해지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블랙 컬러 선호도가 높은 보수적인 유럽 고객들도 갤럭시S3의 페블 블루와 마블 화이트 컬러를 보며 “WOW!”를 연발하며, 출시일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페블 블루 배터리 커버의 헤어라인이 균질해 보이지 않고 광택감이 부족하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전격적인 재검토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건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갤럭시S3는 고객과의 약속인 동시에 삼성전자 구성원들 간의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갤럭시S와 갤럭시SⅡ로 글로벌 5,000만대 이상 판매를 달성한 삼성전자는 갤럭시S3를 준비하며 ‘완벽한 새로움’을 추구했습니다. 치열한 스마트폰 경쟁 가운데 기술의 진화에 무뎌진 고객들을 감안한다면, 모든 것은 새로워져야만 했던 것이지요.
기존 제품에 연속성을 두고 개선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틀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 바로 이것이 비밀리에 조직된 갤럭시S3 TF의 상품기획, 디자인, 기구개발 담당자들이 수개월 동안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인간을 가장 이해하고 배려하는 스마트폰’을 고민한 이유였습니다.
페블 블루는 인간이 꿈꾸는 이상이 자연을 향한다는 데서 착안한, 갤럭시S3의 대표 컬러였습니다. 2005년 세계 시장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블루블랙폰의 블루블랙이 석양 진 밤하늘을 표현했다면, 페블 블루는 자연의 푸른색, 그것도 아침, 점심, 저녁 모두의 색깔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강가의 조약돌이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색깔로 반짝이듯, 다양한 푸른색을 선보일 수 있는 페블 블루! 배터리 커버 전체에 새겨진 금속감의 헤어라인(가는 실선)은 이렇게 여러 색을 연출할 장치였습니다.
헤어라인은 곡선형 마감 처리와 함께 바람, 물, 빛 등 자연의 움직임과 흐름을 극대화하여 표현할 수 있는, 갤럭시S3 디자인 품질의 핵심 요소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스마트폰에 직접 ‘구현’해낸 기구개발팀과 제품기술팀에게 페블 블루 회수 결정은 출가시킨 자식을 돌려 받는 듯한, 매우 아픈 소식이었지만 그 아픔을 곱씹을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다시 원점에서 시작, 처음 정한 목표대로 가자
회수 조치가 취해지고 바로 1시간 뒤, 기구개발팀은 제품기술팀이 있는 구미사업장으로 곧장 내려갔습니다. 늘 한 몸처럼 일해온 두 팀이었지만, 그날 회동의 무게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페블 블루의 레시피를 완전히 뒤엎느냐, 현 상황에서 개선책을 찾느냐부터 기로에 서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다른 방법을 찾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이제 와서 생산 일정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더 나은 레시피를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레시피도 양산성을 확보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 아닙니까?”
“그래도 우리가 내놓은 안이 페블 블루의 추구하는 바를 구현하지 못한다면,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볼 필요는 있어요.”
엔지니어들의 답답한 마음도 일리는 있었습니다. 그 동안 수개월 간의 연구개발 과정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고, 기구개발팀과 제품기술팀은 금형, 도장, 사출, CMF 레시피(품목)를 결정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머리카락 굵기의 1/10 수준인 헤어라인도 레이저 광선, 화학 부식, 공작 기계 등으로 표현해 본 끝에, 사람 손끝으로 직접 긋는 것이 가장 좋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금속 물질을 배터리 표면에 직접 코팅하는 증착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증착은 페블 블루의 컬러감을 보존하고 각각의 헤어라인이 빛에 따라 은색을 띠게 해 금속감을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치열한 논의 끝에 그들이 내린 결론은 ‘페블 블루 모델이 처음 정한 목표대로 가자’였습니다. 목표는 갤럭시S3의 정체성이며 고객과 한 약속이었습니다. 그것이 흔들린다면 더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문화적 발전을 상징하며 오가닉한 느낌을 표현한 마블 화이트 컬러 역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았지만 다행히 마블 화이트 모델은 시장의 수급을 조절하며, 개발 시간을 3일 정도 확보해 줄 여력이 있었습니다. 이에 기구개발팀과 제품기술팀은 완전히 새로운 레시피, 기존 안을 개선한 레시피 등 몇 가지를 선정해 동시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5시에 나온 첫 시제품에 그들은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본적 개선.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뿐이었다’는 소극적 마음가짐을 완벽히 뚫고 나가는 혁신. 그들에게는 생각의 혁명이 필요했습니다.
계속된 실패, 고려청자도 이런 마음으로 구웠겠지?
5월 18일. 그들은 마블 화이트 모델에 들어가는 ‘나노 세라믹 코팅 방식’을 페블 블루 모델에도 적용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자연처럼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느낌을 구현해주는 ‘나노 세라믹 코팅’은 일반 코팅의 1.5배 이상 광택감을 내 배터리 커버에 헤어라인이 없는 마블 화이트 모델에 적격인 고급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헤어라인을 강조하는 페블 블루 모델에 ‘나노 세라믹 코팅’을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증착’과 ‘나노 세라믹 코팅 방식’을 함께한다면, 그 사이에 증착층을 보호하고 푸른 컬러를 입히는 코팅, 즉 도장 공정이 더 들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공정이 많아지면서 장비 투자 역시 많아지고, 부품의 잦은 이동은 생산성, 수율 문제로 이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나노 세라믹 코팅’장비는 국내에서 그리 많지 않은 고급 장비였기에, 페블 블루 폰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것. 그러나 그들은 처음으로 돌아가, 페블 블루에 나노 세라믹 코팅을 적용할 수 없었던 원인을 제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금속감은 증착 공정에서, 푸른 컬러는 도장 공정에서 각각 구현하던 것을 Microsilver Blue를 통해 도장 공정에서 한꺼번에 구현하는 것은 열정과 끈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들은 삼일 밤낮, 수십 차례에 걸쳐 Microsilver Blue 도료의 컬러 비율을 조율(튜닝)해 나갔습니다. 누군가는 이때를 되돌아보며 고려청자를 굽는 심정이었다고까지 표현했을 정도입니다.
어떤 샘플은 컬러가 달라서, 어떤 샘플은 헤어라인이 묻혀서, 어떤 샘플은 광택이 살지 않아서, 그리고 또 어떤 샘플은 모든 조건의 품질은 만족했지만 독특하고 오묘한 느낌이 살지 않아서. 버려질 이유는 너무도 많았습니다. 페블 블루 외관의 목표를 가장 잘 아는 디자이너까지 내려와 ‘진품 여부’를 놓고 깐깐한 검증을 계속해가며 하루 2~3개 마련된 시제품이 매일 최고경영진에게 보고되었음에도, 20일 오전까지 최종 결재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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