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시대’ 도래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
요즘 4차 산업혁명에 ‘목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은 4차 산업혁명만이 인간 미래의 먹거리고 4차 산업혁명기에 접어들면 모든 인간이 전지전능한 경지에 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얘기한다. 그때쯤이면 로봇이 육체노동은 물론, 정신적 사고까지 대신해주고 가상현실이 일상화돼 지금껏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일들을 전부 가능케 해줄 거라 상상한다. “2025년 미국 자동차 인구 10%가 자율주행 자동차를 이용하면 차 안에서 팔릴 디지털 콘텐츠 규모는 50억 유로에 이를 것”과 같은 전망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다른 한편에선 4차 산업혁명을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로봇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며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급기야 인간을 지배하는 상상에 몸서리친다. “2030년이면 약 20억 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 따위의 예언을 너도나도 인용하며 대화의 주제로 올린다.
어느 쪽 주장이 타당한지 살피려면 우선 4차 산업혁명의 도래 시점을 가늠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로봇과 인공지능, 자율주행, 가상현실 등의 기술이 언제쯤 일상에서 구현될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단 얘기다. 사실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총론’은 이제껏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젠 실제 행동이 수반되는 ‘각론’이 등장해야 할 시기다.
4차 산업혁명, 그 핵심엔 데이터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서비스 중 가상(증강)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용하기 불편한 도구와 화면의 지연·끊김 현상, 어지럼증 유발이나 감각 간 부조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탓이다. (완전한 의미에서의) 자율주행 자동차 역시 완성 단계로 나아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언뜻 떠올려도 △2000여 개 센서 간 원활한 데이터 교환 △정밀한 위치측정시스템(GPS) △정확한 위치 네트워크 데이터 등 필요한 게 한둘이 아니다. 단 1㎝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정밀 지도와 필요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원활하게 수신할 수 있는 통신 체계도 필수다. 1만 회 정상적으로 작동하다가도 한 번 실수하는 시스템이라면 자율주행에 쓰일 수 없기 때문이다.
원격 수술에서 네트워크 지연은 치명상이며 드론 비행 시 데이터가 끊기면 곧장 추락으로 이어진다. 데이터 부족으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홀로그램은 한낱 엔터테인먼트에서나 쓸모 있는 불빛놀이에 불과하다. 로봇에 단순 명령 이해 기능 외에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알아차리는) 맥락 이해 기능까지 더하는 문제는 여간 복잡하지 않다. 일부 과학자는 기기와 무관하게 적용 가능한 에너지 문제, 혹은 수 조 개 센서와 연계되는 보안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문제는 도처에, 처음부터 끝까지 산적해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마냥 신기하고 새로운 신기루나 무지개 같은 존재만은 아니란 얘기다.
단 하나, 분명한 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에 데이터가 존재한단 사실이다. 다양하고 용량이 크며 속도와 신뢰를 겸비한 데이터는 인공지능의 ‘밥’이자 자동화 서비스 구현의 최소 조건이다. 너도나도 네트워크 속도 개선과 1000배 빠른 컴퓨터 제작에 나서고 미더운 데이터 구축에 효과적인 반응을 내놓는 건 그 때문이다. 5G와 퀀텀 컴퓨팅은 각각 이 같은 노력의 외부적·내부적 성과인 셈이다. 전문가들이 블록체인 등의 기술을 도입, 데이터 위·변조를 방지하려 노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100배 빠른 통신’ 5G, 1년 후면 상용화
국제전기통신연합(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 ITU)은 당초 2020년이었던 5G 기술 상용화 시점을 2019년으로 1년 앞당겼다. (이와 별도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중엔 5G 시범 서비스가 선보일 예정이다.) 약 1년 후면 전 세계 대부분의 이동통신사가 지금보다 100배 이상 빠른 속도의 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거란 얘기다. 3G 기술을 기준으로 했을 때 영화 한 편 다운로드하는 데 7분이 걸렸다면 5G 시대엔 이 시간이 1초로 줄어든다.
사실 영화 한 편 내려 받는 데 10분이 걸리느냐 1초가 걸리느냐 하는 건 지엽적 문제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새롭게 적용되는 기술이나 서비스가 속도(혹은 지연)에 얼마나 민감한가 하는 것이다. 한 예로 올해 월드모바일콩그레스(MWC)에서 스웨덴 통신장비 제조 기업 에릭슨(Ericsson)이 선보인 원격 수술 시연은 5G 네트워크 환경에서 이뤄져 일약 주목 받았다. 역시 올해 중국 MWC에 등장한 중국 현지 기업의 무인자동차 원격제어 기술은 밀리세컨드(㎳, 1000분의 1초) 단위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시간 지연에 엄격했다.
5G 기술의 완성도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한층 더 높아질 전망이다. 그 즈음이면 원격 업무와 가상현실 체험이 지금보다 훨씬 널리 보급될 것이다. 누구나 원격 진료 혜택을 누리고 3차원 사진을 감상하며 빅데이터 기반 자동화 서비스를 제공 받게 된다. 개별 기술과 서비스 못지않게 이들이 융합된 형태, 즉 스마트 시티나 스마트 팩토리도 흔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은 5G 기술이지만 끝은 4차 산업혁명의 산출물일 수 있단 얘기다.
5G와 인공지능, 블록체인 간 ‘삼각관계’
5G 기술은 인공지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데이터를 주식(主食)으로 삼아 작동된다. 작게는 인공지능 스피커와 가전에서부터 로봇과 자동차, 디지털 트윈[1], 크게는 인공지능 도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기술이 만개하는 시기를 2025년으로 점치는데 이는 상당히 일리가 있다. 실제로 인공지능 관련 기술들은 최근 하이프 사이클[2]에서 하나같이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에선 센서, 그리고 센서에 탑재되는 데이터가 중요하다. 2025년 사람들의 일상을 채울 센서 개수(추정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1조 개였지만 최근 10조 개로 늘었다. 그만큼 인공지능의 특이점이 도래하는 시점도 빨라진 셈이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y Forum, WEF)에 따르면 인공지능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도 급부상할 전망이다. 어찌 보면 블록체인은 5G에 의해 빨라지고 많아진 데이터,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성장하는 인공지능에 신뢰를 불어넣기 위한 수순일 수 있다. 물론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과 사고를 능가하는지 여부에 관한 논의는 이 시점에서 적절치 않다. 그 문제를 논할 만큼 충분한 기술이 확보되지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위 도표는 WEF 자료를 참조, 5G·인공지능 기반 기술 활성화에 따라 새롭게 대두될 기술 현상들을 나열한 것이다. 대부분 ‘초(超)연결’과 ‘초(超)지능’이 전제돼야 할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다. 도표에 언급된 시점을 기준으로 인공지능은 인간과 보다 긴밀하게 연계돼 한층 효율적 서비스를 구현할 전망이다. 당연히 상당한 수준의 정신적 사고 기능도 갖추게 될 것이다.
10년 내 ‘스마트폰 혁명’ 버금가는 변화
5G 시대의 기술 발전은 과거의 그것에 비해 폭이나 양, 방향과 크기 모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모든 기술은 전방위적으로 융합되고 혁명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말하자면 4차 산업혁명의 시발점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5G 기술을 둘러싼 세계 각국 기업 간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완성된 결과물의 수준 또한 탁월하다. 이미 하늘에선 드론이 날고 땅에선 인공지능이 탑재된 자율주행 자동차가 질주한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는 “실리콘밸리에서 자율주행 자동차를 만들지 않는 기업은 우리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로봇 시장에서도 인간의 심신을 모두 대치(代置)할 수 있는 수준의 제품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인공지능에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 기술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컴퓨터 데이터 스토리지 전문 기업 델EMC(DELL EMC)에 따르면 2013년 4.4조 기가바이트(GB) 수준이었던 연간 신규 생성 데이터는 2020년 44조 기가바이트로 10배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실은 이 또한 정확한 예측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물인터넷 적용 영역이 확장되고 센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데이터는 더 큰 규모로 증가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5G 시대의 출현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2007년을 전후해 별안간 등장한 터치스크린 기반 스마트폰이 이후 10년간 현대인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처럼 요즘 출시되는 음성인식 기반 인공지능 스피커는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을 인터넷 인구로 빠르게 편입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운 UI(User Interface)나 UX(User eXperience)까지 더해진다면 또 한 번의 혁신적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요즘, 5G 관련 기술과 서비스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 있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원고에 삽입된 사진은 필자의 페이스북에서 발췌, 인용됐습니다(일부 제외)
[1]digital twin. 물리적 사물과 컴퓨터에 동일하게 표현되는 가상 모델. 미국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이 만든 개념이다
[2]Hype Cycle. 특정 기술의 성숙도를 표현하기 위한 시각적 도구. 미국 정보기술 연구·자문 기업 가트너(Gartner)가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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