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이 선동열 방어율인데, 취업을…??

201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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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미의 올드다이어리 - 삼성전자 발자취 [블루미의 올드다이어리]는 삼성전자의 역사를 흥미롭게 구성한 이야기 입니다. 생생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위해 전,현직 임직원분들과 파트너분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여 만든 연재물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역격을 딛고 세계시장에서 성공하기까지의 열정과 땀의 기록을 담아냈습니다.

“컴퓨터 천재들, 특히 소프트웨어 인재를 뽑아 오세요.”




컴퓨터 부문 인사팀에 비상이 걸렸다. 1991년 러시아를 방문 중이던 이건희 회장이 직접 국제전화로 지시를 내린 것이다. 1987년 반도체 사업에서 첫 흑자를 낸 후 기뻐할 겨를도 없이 사업구상에 전념했던 이건희 회장은 컴퓨터사업에 관심이 컸다.


반도체는 부품이지만 완성품은 컴퓨터 입니다. 컴퓨터 천재들...특히 소프트웨어 인재가 필요해요!, 해외인력을 발굴할까요?, 우리회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낮아요

‘반도체는 부품이지만 완성품은 컴퓨터’라는 것을 늘 강조했다.

컴퓨터 천재를 뽑으라고 지시한 이유도 일본과 한국이 반도체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그 반도체를 이용해서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미국기업들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삼성전자 컴퓨터 사업은 1981년 첫 발을 내딛었지만 10여 년이 지나도록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인사팀 김성재 이사는 곧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안주완 부장, 최창수 부장, 안승준 부장 등이 참석했다.



“컴퓨터 천재라…. 해외 인력들을 발굴해볼까요?”

“제가 유학시절에 본 친구들은 미국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고 있어요. 데려오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아요. 우리 회사는 물론이고.”

“특히 우리 회사가 컴퓨터에서는 국내 4위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으니 아이디어를 내봅시다.”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거듭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때 인사팀의 안테나에 유니코사(UNICOSA : 전국대학컴퓨터서클연합)라는 한 줄기 빛이 걸렸다.

유니코사는 1974년에 고려대 등 7개 대학 컴퓨터 동아리가 조직한 연합회였다.

대학시절에 유니코사 회장을 지낸 송길섭 사원이 컴퓨터사업 부문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니코사(UNICOSA)라고 전국대학 컴퓨터서클연합이 있어요. 프로그램 잘짜고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다룰줄 아는 친구들이 학교마다 2~3명은 있다니까요., 우리요? 스터디할 공간만 주어진다면야..., 회사소속이라든지 강압적인 분위기는 싫어요.


유니코사에는 전산학과에서 컴퓨터프로그램을 전공하는 학생들, 그리고 전공과 상관없이 그저 컴퓨터가 좋아서 가입한 학생들도 많았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만드는 ‘천재’ 후배들을 여럿 봐왔던 터라 송길섭 사원은 후배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1987년도 유니코사 회장을 역임하고, 군 제대를 며칠 앞둔 배인식 씨를 비롯해 대학생 5~6명이 송길섭 사원의 연락을 받고 모였다. 삼성전자가 컴퓨터 잘하는 인재들을 뽑고 싶어 한다는 송길섭 사원의 말에 학생들은 아이디어를 쏟아 냈다.

“프로그램 잘 짜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룰 줄 아는 친구들이 각 대학에 2~3명씩은 있어요.”

“전산과에서도 퍼스널 컴퓨팅(Personal Computing)은 안 가르쳐 주잖아요.”

“그렇지. 우리 멤버들 실력은 알아주지.”

“그 동안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어요. 우리가 각 대학에 흩어져 있으니까 모여서 작업하는 데 한계가 있잖아요. 스터디 할 수 있는 공간만 지원해줘도 좋을 것 같아요.”

실제로 유니코사 회원들은 몇몇 기업에 활동 공간을 마련해 달라는 제안을 해 봤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회사에 소속되거나 강압적인 분위기라면 회원들이 안 나오려고 할 거예요.”

유니코사 회원들의 자유분방한 성향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들은 일찌감치 선을 긋는 말을 잊지 않았다.

유니코사라는 연합회에 대해 조사한 삼성전자 역시 그 부분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자유분방한 대학생들!’



천재적 재능을 지닌 자유분방한 대학생들이라...,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멤버십'이라는 새울타리를 만들면 될것같아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하고싶은 공부하고 실력을 키우고 서로 공유하는...
그들을 위해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멤버십’이라는 새로운 울타리가 만들어졌다.

회사 내에서는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바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인재를 뽑지 않고 실력을 검증하기 힘든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뭘 하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였다. 당장 실무에 투입할 수 없다는 점은 맞는 말이었지만 멤버십 1기 지원서 136장을 본 뒤에는 그들의 실력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란이 없었다.

당시 소프트웨어 개발, 판매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인 소프트웨어 하우스 (Software House)에 속한 협력회사들의 제품 개발, 1980년대에 컴퓨터에서 한글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던 도깨비카드 개발, 당시 H전자가 채택하던 워드 프로그램 개발, 1990년대 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라고 불리던 프로그램들이 지원서마다 빼곡했다.

개발 주체는 기업이었지만 실제 개발 작업을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물론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했지만 136명의 지원자는 유니코사 회원 중 각 학교의 ‘물건’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하는 모니터 요원들이 자기 학교의 명예를 걸고 발굴해낸 컴퓨터 천재들이었다.

드디어 1991년 5월 5일 첫 면접이 진행되었다.

마치 산 속에 숨어 있던 무림의 고수들이 얼굴을 드러낸 것같았다. 지원자들은 서로의 실력에 감탄하며 앞으로의 활동에 부푼 꿈을 키우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면접 날짜를 잊어버리고 자다가 불려 나오기도 하고, 면접은 무슨 면접이냐며 운동복에 슬리퍼를 신고 나온 학생도 있었다. 집과 학교에서 ‘또라이’로 불리며 컴퓨터와 씨름하느라 강의시간을 놓치기 일쑤였던 그들이 삼성전자와 인연을 맺는 순간이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멤버십 회원들중 입사희망자들의 학점과 SSAT 성적이 너무..., 하지만 작업시간은 일반직원들보다 열배정도 빨라요., 흐음-컴퓨터실력과 면접결과도 정반대란 말이지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은 컴퓨터를 좀 다룬다는 대학생들 사이에 금방 입 소문을 타고 번져 나갔다.

소위 말하는 ‘모범생 인재’를 선호하는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전자가 학점이나 학교를 보지 않고 한 가지 재능만을 보고 회원을 뽑는 것 자체가 뉴스거리였다.

더군다나 멤버십 활동 시작 이후에도 갖가지 성과를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가끔 컴퓨터사업부에서 요청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삼성전자나 삼성종합기술원 소속 박사급 연구원들과 세미나, 미팅을 하기도 했지만 멤버십은 어디까지나 회원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서로 공유하며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자율 공간이었다. 회원 중에는 다른 대기업에 근무하다 소프트웨어 멤버십을 본 뒤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 멤버십에 선발되어 활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멤버십 1기들이 대학 졸업을 앞두었을 때 삼성전자 인사팀은 또 한 번 어수선해졌다.

대학 졸업을 앞둔 회원 중 삼성전자 입사를 희망하는 10여 명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학점과 삼성직무검사(SSAT)의 결과가 문제로 떠올랐다. 멤버십 회원들의 학점이 대부분 ‘선동렬 방어율’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영어성적은 말할 것도 없었다.

컴퓨터 천재라고 불리던 유니코사 선배들이 대학 졸업 후 서울의 용산이나 청계천 전자상가로 흩어져버린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 컴퓨터 인재에 대한 수요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대부분의 기업이 학점과 같은 일반적인 잣대로 신입사원을 뽑았기 때문이었다.

여러 번의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 본 결과 소프트웨어 멤버십 회원들의 실력은 이미 검증되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대졸 신입사원도 6개월 정도 재교육을 받은 후에야 실무에 투입되는 데 비해 멤버십 회원들은 그보다 2~3년 월등하게 실력이 앞서있었던 것이다. 작업 시간 역시 일반 직원들 보다 열 배는 빨랐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해. 천재급 인력을 모아놓는것도 중요하지만, 그중에서 더 뛰어난 인재를 뽑는것도 삼성전자가 할일이지!, 면접결과를 뒤집고-뛰어난 실력자들을 뽑았습니다.


인사팀에서 설득을 거듭한 끝에 멤버십 회원들이 학업성적과는 관계없이 면접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면접 결과를 발표하기 직전 또 다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결과를 발표하기 전 당시 멤버십 운영을 맡고 있던 송길섭 사원 등 운영진의 의견을 들어보니 컴퓨터 실력과 면접 결과가 정반대라는 것이었다.

“우리 세계에 흔히 말하는 계보가 있습니다. 실력이 뛰어날수록 증조할아버지, 다음은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증손자…, 이번 면접 결과는 증조할아버지가 떨어지고 증손자가 합격하는 격입니다.”

멤버십 회원들의 컴퓨터 실력은 어느 정도 평준화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천재급 인력을 모아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더 뛰어난 인재를 뽑는 것도 삼성전자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인사팀 안승준 부장은 면접관들을 다시 찾아다니며 상황을 설명하고 결과를 수정했다.

삼성전자에서 면접 결과를 뒤집은 첫 사례였다.




2편도 기대해 주세요.

by 삼성전자 블로그 운영자 블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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