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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R은 여전히 건재하다, 아니 더 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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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CSR은 여전히 건재하다, 아니 더 강해지고 있다”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이하 CSR)은 21세기 기업들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이는 현대의 기업이 단지 경제적인 견인차 역할을 넘어, 사회 전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중심축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에서 출발한다. 그 때문에 현장의 요구 못지않게 CSR 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각 기업들이 얼마나 CSR에 최선을 다하는지를 평가하는 등급 시스템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내용을 보면 평가 기준도 애매하고, CSR을 잘 지키기 위해 필요한 기업의 역할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에 삼성전자 뉴스룸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사회적 담론을 정리하고, 향후 어떤 전략이 가능한지 짚어보고자 한다

 

CSR에서도 어김없이… ‘규정’의 함정

당신이 개 한 마리를 갖고 있다 칩시다. 그런데 회계장부엔 오리를 갖고 있는 걸로 해야 해요. 다행히 오리의 구성 요소가 뭔지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있어요. ‘노란 다리, 흰 털, 주황색 부리’. 당신은 개를 데려와서 발은 노랗게, 털은 희게 칠하고, 주둥이에 주황색 플라스틱 부리를 붙입니다. 그러곤 회계 감사 담당자에게 주장하는 거죠. “이거 오리예요. 오리 맞잖아요!” 그럼 감사 담당자는 대답합니다. “네, 규정에 따라 이건 오리군요.” 		베서니 맥린, 피터 엘킨드의 저서 《엔론 스캔들》 중에서

위 단락은 2001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엔론 사태’를 소재로 한 소설 중 일부다. 미국 에너지 물류 기업 엔론(Enron Corporation)은 미국 시사 주간지 포춘(Fortune)이 선정하는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 6년 연속 꼽히는 등 주목 받았지만 실제론 부실한 재정 상태를 지속적 회계 부정으로 은폐해오다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앞서 인용한 문구는 (기업 재정 상태를 점검하는) 회계 감사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촌철살인(寸鐵殺人) 비유’로 유명하다.

사실 이런 문제가 비단 기업 회계 감사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한 가지 일에 여럿이 관련됐을 때 이해당사자들은 그 나름의 질서를 지키고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규정을 만든다. 하지만 규정은 시간이 흐르고 일의 규모가 커지면서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을 속속 드러낸다. 결국 형식적 규정은 껍데기만 남고 실제론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규정을 편리하게 빠져나가는 경우가 늘어난다. 사람들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고 규정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틀을 만든다.

엔론 사태 / 주가 하락

 “모든 일엔 모순이 내재돼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대립이 생겨난다. 인간은 끊임없이 그 모순과 대립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존재다.” 19세기 독일 관념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이 남긴 이 말은 규정이 지닌 역설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헤겔은 역사를 △질서 형성 △모순 심화 △해결 노력 △(그에 따른) 변화 등이 이어지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이하 ‘CSR’)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회차에서 CSR이 역사를 거치며 어떻게 성숙돼왔는지 살폈다. ‘기업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 중 하나인 만큼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도 기업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 누구나 인정하게 됐다. 또한 대부분의 기업이 그 점을 받아들여 책임을 다하려 노력하게 됐다. 결국 문제는 어떻게 하면 기업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성과를 일반인이 알 수 있게 하는 방법엔 뭐가 있는지 하는 것이다.

매스미디어, CSR 논의에 불 붙이다

공장 이미지

이전 회차에서도 언급했듯 1950년대 미국 경제학자 하워드 보웬(Howard Bowen, 1908~1989)이 이론화했던 CSR의 개념은 미국을 중심으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하지만 초기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CSR 개념이 대중에게 익숙해진 계기는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이었다.

첫 번째 파문의 주자는 미국 출신으로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활동하던 노동운동가 제프 밸린저(Jeff Ballinger)였다. 그는 1988년 인도네시아 나이키(NIKE) 공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급료 관련 실태 보고서를 매스미디어에 폭로했다.

공장에서 착취당하는 아이들

그의 노력이 처음부터 눈에 띈 건 아니었다. 하지만 1992년 당시 미국 방송사 ABC 아침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케이시 리 지포드(Kathy Lee Gifford)가 생방송 진행 중 이 일을 언급하며 상황은 급물살을 탔다. 이 자리에서 지포드는 “내 옷이 아동 노동 착취의 결과물이란 비난을 들었다”고 울먹였다. “세상의 아이들을 돕기 위해 그렇게 노력해왔는데, 저도 모르는 새 아이들을 착취하고 있었다니요!” (실제로 그녀가 입은 브랜드의 의상은 온두라스에서 13세 소녀들이 저임금으로 장시간 일해 만들어진 것이었단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사실 ‘나이키’란 회사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만 이미 몇 번인가 매스컴을 탔던 나이키 보고서들이 ‘역주행’으로 엮이며 나이키는 물론, 여러 의류 제조 업체들의 노동 사용 관행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비판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 문제는 미국 대학가 학생운동의 핵심 주제로 채택되며 대중적 인지도를 점차 높여갔다.

농구 골대와 농구공

이후 미국 사회에선 CSR이 한 차원 다르게 강조되며 “(소비자인) 일반 시민이 기업의 제품 생산 과정을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의식이 고조됐다. 당시 나이키 운동화 모델이었던 유명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은 기자들에게 이 문제에 관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제가 나이키를 홍보하는 건 그 제품의 품질을 믿기 때문이에요. 생산 과정에서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이 알아서 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런 그의 대답은 두고두고 비난의 대상이 됐다.

‘기업이 생산 과정에서 윤리의식과 사회적 책임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이키 보고서 사태는 이 같은 문제 의식을 태동시켰다.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CSR 평가 기관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도 그 즈음이었다.

CSR 평가, ‘솔루션’과 ‘옥상옥’ 사이

설문지 체크하는 남자

CSR 평가(CSR rating)는 기업 회계 감사와 비슷한 패러다임으로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다. 기업이 사회적으로 신뢰 받을 만한 외부 전문 기관에 “우리 행동이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것이었는지 여부를 평가해 달라”고 의뢰하는 게 골자. 차이점이 있다면 회계 감사는 기업이 특정 기관에 의뢰해 1대 1로 진행되는 데 반해, CSR 평가는 평가 기관이 다수 기업에 설문지를 보내고 기업이 그에 응해 답을 작성한 후 회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단 것이다. 결국 CSR 평가 순위란 평가 기관이 여러 기업에서 온 응답 결과를 취합해 매긴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런 방식으로 내려진 CSR 순위가 얼마나 믿을 만할까? 누구도 시원하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CSR 평가는 처음 도입되던 1990년대 후반부터 줄곧 여기저기서 비판 받아왔다.

체크 완료된 설문 결과를 보는 남자

가장 큰 문제는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평가 기관이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 CSR 평가 기관이 몇 개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2006년 독일 기반 다국적 미디어 베르텔즈만(Bertelsmann)이 발표한 보고서(이하 ‘베르텔즈만 보고서’)에 따르면 “공신력 있는” 기관 수만 100개가 넘는다. 물론 여기 포함되지 않은 기관도 부지기수일 테고, 그중 상당수는 이름만 그럴듯하고 실체는 없는 곳일 공산이 크다.

한 예로 나이키 사태 이후 불과 이삼 년 동안 미국에서만 ‘공정노동협회’ ‘책임의류생산자협회’ ‘깨끗한옷캠페인’ 등 10개 이상의 의류 관련 CSR 평가 기관이 등장했다. 여기에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이나 ‘워킹 마더(Working Mother)’ 등 기성 미디어가 진행하는 조사∙평가까지 더해지면서 당시 미국의 웬만한 의류 생산 기업은 1주일이 멀다 하고 설문지 세례에 시달렸다. 응답률은 자연히 떨어졌고 2000년대 초 급기야 20% 이하까지 곤두박질쳤다. 응답 기업의 설문지만 모아 순위를 매기는 평가 방식에서 저조한 응답률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라고 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평가 방법을 둘러싼 문제점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단적인 예로 국제연합(UN)이 설립한 CSR 평가 기구 ‘글로벌 컴팩트(Global Compact)’는 설문조사 절차마저 생략한 채 기업이 자체적으로 작성, 제출한 보고서만 받아 평가 기초 자료로 삼는 사실이 알려져 빈축을 샀다. 이 밖에도 △조사∙발표 과정의 투명성 논란 △기업 문화를 동일 잣대로 비교하는 데 따르는 부작용 등 CSR 평가를 둘러싼 논란은 지금 이 시각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CSR 성장, 열쇠 쥔 건 기업 아닌 소비자

“(CSR 평가는) 여전히 건재하다, 아니 더 강해지고 있다”

전 세계 CSR 평가 기관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후 작성된 베르텔즈만 보고서의 첫 문장은 이렇다. 수없이 불거지는 문제점에도 아랑곳없이 날로 확장되는 CSR 평가 사업에 대한 이 보고서의 입장은 대체 뭘까?

청바지 fair traid

베르텔즈만 보고서에 따르면 CSR 평가 사업이 승승장구 중인 이유는 명백하다.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이다. 쇼핑 도중 무심코 집어 든 청바지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님생산협회가 아동 노동 착취 전혀 없이, 못 쓰게 된 자원을 재활용해 만든 제품”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으면 설사 돈을 좀 더 주고서라도 사고 보는 게 ‘밀레니얼 세대’로 대표되는 요즘 젊은이들의 소비 심리다.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심리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1월 31일자 스페셜 리포트 “’미래 기업 운영의 뇌관’ 밀레니얼 세대 공략법”을 참조할 것)

CSR에 대해 “한물갔다” “실패로 끝난 프로젝트다” 같은 평가 절하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도 CSR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기업별 CSR 성과를 평가하는 웹사이트가 계속 늘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소비자 의식 수준은 급기야 기업 활동과 관련, “지금보다 훨씬 제대로 된 평가가 나와야 한다”는 압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장의 관심도 지대하다. 데이비드 르빈(David Levine)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경영학부 교수에 따르면 2006년 현재 CSR 평가 관련 연간 투자 규모는 약 2조2000억 달러(약 2386조 원)에 이른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여성

지난 회차에서 살펴본 것처럼 “CSR 자체를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의 일부로 만들어야 한다”는 마이클 포터(Michael E. Porter)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부 교수의 주장은 이 같은 소비 문화의 방향성과도 부합한다. 실제로 최근 온라인에선 공신력 있는 CSR 평가 기관 관련 정보를 모아놓고 그 평가 방법을 투명하게 공개, 각 기업이 이를 비교하며 이용하도록 하는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기업은 그 사회적 힘에 걸맞게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CSR의 명제는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제기되는 질문은 이것일 테다. “어떻게 하면 책임을 다할 수 있으며, 그 정도는 무슨 수로 파악할 것인가?” 물론 이 단계에서 세계 각국(의 기업과 소비자)은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비관할 건 없다. 일찍이 독일 문호 괴테(Johann W. Goethe, 1749~1832)가 서사시 ‘파우스트’에서 천명한 것처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현대 인류는 ‘기업과 소비자 간 관계’의 측면에서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다음 회차에선 그 과정에서의 노력이 특히 빛나는 사례를 조명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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