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나눔·지속가능경영… CSR이 걸어온 길
도덕적 ‘분배’에서 제도적 ‘나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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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500년, 히브리인들은 십일조 세금 제도를 실시해 소득이 많은 사람이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자원을 나누는 ‘소득의 재분배’를 실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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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년경, 로마제국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빈곤층에게 경제적 지원을 풍족하게 제공, 그 혜택을 받은 사람이 2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3
1600년대 후반, 청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 한족(漢族) 상인들은 중국의 주변부로 상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주는 ‘자선(慈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오시(好施)’라고 불리던 이 자선 활동은 명나라 시대까지 사대부들의 미덕이었지만, 이 시기부턴 한족 상인들이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벌이는 일이 됐다.
#4
19세기 후반, 앤드류 카네기(1835~1919)는 철강산업으로 미국 역사상 최고의 부호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중년 이후 박애주의에 몰두해 미국 전역에 2811개 도서관을 기증하는 등 사회 공헌을 위한 다양한 기부로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사용했다.
많이 가진 사람이 자기가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과 나누는 것은 문명의 시작과 더불어 권장돼온 일이다. 힌두교 경전인 베다와 수트라, 그리고 기독교 성경과 불교 경전에서도 고리대금업을 경계하고, 자신의 재산을 나누는 일을 장려하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들어 있다.
수천 년간 이어진 이 ‘전통’은 자원을 ‘나누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한 사회가 만들어 내는 자원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 쪽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는 제로섬(Zero-sum) 게임’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즉,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제로인 사회라면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은 부족한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챙길 ‘가능성’을 빼앗은 셈이므로, 그들에게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암묵적 합의를 한 것이다.
유럽 중심이었던 경제활동 무대가 전 세계로 확장되기 시작했던 17세기 중엽, 이 ‘암묵적 합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면 누구라도 새로운 부(富)를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갔기 때문. 하지만 새로운 기회의 그늘에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있었다. 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그 즈음부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는 도덕적인 행위가 ‘제도’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1600년대 초 영국 의회는 ‘자선행위법’을 제정했고, 유럽과 신대륙에서 자선행위를 전문으로 하는 단체와 기관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 역시 성공적인 사업 경영을 통해 자원을 많이 갖게 된 이들이 그 중 일부를 나눠준다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즉, 당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경제 개발 자체가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기업이 책임감을 느끼고, 스스로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수준까진 이르지 못했던 것.
나눔을 넘어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해마다 1월 말이면 스위스의 작은 도시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일명’ 다보스 포럼’이 열린다. 이 포럼 참석자들은 ‘다보스 맨’이란 별칭으로 불리며 세계적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다.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기업가와 정치인, 학자, 기타 사회 지도자들이 모여 산업적 현안을 의논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이 기간 동안 다보스엔 앞서 소개한 데이빗 코튼처럼 사회적 문제 의식을 공유하는 활동가들도 모여든다. 이들은 세계경제포럼 회의장을 중심으로 도시 곳곳에서 노상 연설과 시위, 퍼포먼스를 벌인다. 전 세계 매스컴의 관심이 집중되는 기간을 노려 현행 경제활동 방식의 문제점을 전 세계에 알리는 한편, 각국의 주요 정책결정권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오늘날 경제 활동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까? 이들의 다양한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긴 어렵지만, 최근 화두를 짚어볼 순 있다. 대규모 경제 활동이 야기하는 불평등과 불공정 문제는 기업이 등장한 이래 어느 시대에서나 공히 제기돼온 문제다. 때문에 최근 이들의 주요 관심 분야는 바로 ‘지속가능성’ 여부다. 현재의 경제활동 방식은 지속적인 환경 오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구에서 계속해서 잘 살기 어렵게 된다는 것.
그럼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경제 활동은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의미할까? 사실 이는 전 세계 경제인들이 1980년대부터 고민해온 문제였다. 1986년, 당시 노르웨이 환경부장관이던 그로 할렘 브룬틀란트(Gro Harlem Brundtland)가 중심이 돼 만든 보고서 ‘우리 공동의 미래’는 지속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은 인류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해 많은 사회생물학자들은 인간을 ‘자신의 성공적 삶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자신의 후손이 번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 즉, 현재 아무리 풍족한 삶을 살아도 그 성공이 다음 세대의 가능성을 훼손한다면 현재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뜻이다.
20세기 말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이 문제의식은 수천 년에 이르는 인류 역사상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던 경제인들의 활동과 나눔의 프레임을 흔들고 있다. 경제적 자원 중 큰 몫을 차지하고 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넘어서, 이제 그 몫을 만들어내는 방법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21세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지는 방법
‘CSR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 경제학자 하워드 보웬은 자신의 저서 ’사업가의 사회적 책임’에서 “오늘날 회사는 사회적 권력의 중심이며, 회사의 행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그런 만큼 기업 경영인은 사회 전체에 대해 근본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단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극지방 빙하가 녹고, 무분별한 개발로 하루 아침에 숲 하나가 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지구 환경 문제에서 기업은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선 기업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압박의 목소리도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때론 이런 압박의 목소리가 기업 입장에서 억울하게 적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계 생수 업계 선두 기업인 네슬레는 주요 환경 자원 중 하나인 수자원 생태계를 훼손하는 기업으로 종종 공격 받는다. 하지만 네슬레가 판매하는 전체 생수량은 세계 민물 자원의 0.0008%에 불과하다. 세계 민물 총량의 70%가 농업 용수로 사용되지만, 사람들은 당장 개선하기 어려운 농업 용수 사용보다 쉽게 눈에 띄는 세계적 대기업을 표적으로 삼는다. 이는 현대인의 삶에 미치는 ‘기업’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증거인 동시에,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 풍조는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뀌어왔다. 그 변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포드자동차’다. 1919년 포드자동차 창업주 헨리 포드(Henry Ford)는 자동차 가격을 낮추고 판매 수익금으로 공장을 확장했다. 그는 “기업은 사회에 봉사하는 존재”란 생각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자동차의 편리함을 제공하려 했다. 그러자 주주들은 자신의 배당금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시건주(州) 대법원은 주주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80년이 지난 1999년, 창업주 헨리 포드의 손자이자 당시 포드 자동차 대표였던 윌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William Clay Ford Jr.)가 자신의 할아버지와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때, 이 결정은 주주를 포함해 각계각층의 환영을 받았다.
요즘 기업은 “단순한 ‘구색용 CSR’을 넘어 CSR의 전략적 실천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CSR을 연구하는 대표적 이론가 마이클 E. 포터(Michael E. Porter)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부 교수는 CSR의 4대 기준으로 △도덕적 의무 △지속가능성 △사업적합성 △평판을 각각 제안했다. 그는 “기업이 이 네 기준을 잘 지킨다면 CSR은 단순히 긍정적 기업 이미지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 회사 경영의 전략적 견인차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적 자원의 재분배에 기반한 ‘나눔’에서 시작된 CSR은 이제 하나의 경영 전략으로서도 그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CSR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짚어봄으로써 앞으로의 방향성 역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선 현재 진행중인 CSR 관련 논의와 기업별 실천 방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결과 변하게 될 21세기 기업 문화의 방향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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