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WCS 2017서 중국 IT 산업의 미래를 보다
‘势在人为, The Human Element’. 올해로 6년째에 접어든 MWCS(Mobile World Congress Shanghai) 2017의 공식 슬로건이었다. ‘势在人为’는 ‘세(勢)는 사람이 만들기(爲)에 달려있다’는 뜻. 해석하면 ‘모든 혁신적 기술은 인(간)적 요소와 결합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정도가 되겠다. 지난해 MWCS의 슬로건이었던 ‘모바일이 곧 나(移我所想, Mobile is Me)’ 못지않게 깊이 있고 탁월한 주제다.
105개국서 2000여 개 기업 참여… 중국 기업 약진 괄목할 만
올해 MWCS엔 105개국에서 2000여 개 기업이 참가했다. 행사장을 찾은 인원은 7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수많은 전시 부스 중 눈에 띄었던 건 5G·로봇·인공지능·가상현실(VR)·증강현실(AR)·사물인터넷·무인점포 등. 하나같이 최근 논의가 활발한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였다.
중국에서 열린 행사인 만큼 자국 이동통신 3사(차이나모바일·차이나유니콤·차이나텔레콤)를 비롯, 화웨이·ZTE·레노버 등 중국 기업이 많았다. 하지만 △퀄컴·페이팔(이상 미국) △삼성전자·KT(이상 한국) △토요타(일본) 등 글로벌 기업도 적지 않았다. △에릭슨(스웨덴) △노키아(핀란드) △폭스바겐(독일) 등 유럽 기업 역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MWCS 행사장 방문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올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했다. 우선 중국 기업의 약진이다. 실제로 올해 MWCS에서 중국 기업들이 마련한 부스는 지난해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세련돼진 느낌이었다. 중견 기업과 스타트업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과거 유사 행사들이 대기업 중심으로 치러지던 걸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스타트업 등용문’ 4YFN 부스 등 ‘MWC 닮은꼴’ 프로그램 인기
전시관 중 유난히 인상적이었던 건 체험관(E1·E2), 그리고 산업관(W1~W5)이었다. 체험관은 그 명칭에 걸맞게 VR·AR·로봇·드론 등 ‘만지고 조작하는’ 경험에 특화된 공간이었다. 특이하게도 이곳에서 만난 방문객 중에선 어린이가 많은 편이었다. MWCS 운영진이 올해 최초로 시도한 ‘유스 모바일 페스티벌(Youth Mobile Festival)’, 일명 ‘요모 페스티벌’ 역시 높아진 어린이 방문객의 존재감을 입증하는 행사였다. 이 축제에 참가한 1만5000여 명의 어린이는 어른 멘토의 도움을 받아 로봇과 웨어러블 기기, 모바일 게임 등을 척척 만들어냈다. 각자 맡은 작업에 몰두하는 아이들의 신나 하는 표정과 뜨거운 눈빛에서 중국의 밝은 미래가 언뜻 비치는 듯했다.
▲MWCS 2017의 부대 행사 중 하나였던 ‘요모 페스티벌’ 현장 풍경. 행사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로봇 손 제작 해커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4YFN(4 Years From Now)’ 부스 운영도 눈길을 끌었다. 4YFN은 MWC(Mobile World Congress) 좀 안다, 하는 이에겐 이미 친숙한 프로그램이다. 젊은 스타트업 주도로 운영되는, 올해로 벌써 4년째 운영 중인 부스를 가리키는 용어이기 때문.
지난해 중국 스타트업을 제외하면 참여 국가가 그리 많지 않았던 MWCS 4YFN 부스는 1년 만에 규모와 아이디어가 한층 풍부해졌다. ‘스타트업 간 연결(Connecting Startup)’을 표방한 올해 부스엔 중국뿐 아니라 한국·영국·타이완·홍콩·스페인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스타트업이 총출동, △교육 △게임 △음악(코딩) △모션 캡처 △웨어러블 △로봇 △얼굴(음성) 인식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였다.
MWC(S)에서 놀라운 속도로 약진 중인 4YFN는 어느덧 ‘글로벌 스타트업의 등용문’이 된 MWC의 위상 변화를 실감케 한다. 4YFN 부스를 개설한 스타트업은 다른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기획하는 한편, 행사장을 찾은 글로벌 대기업 담당 임직원이나 벤처 캐피탈 담당자를 만나 투자를 논의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올해 MWCS의 관련 통계는 아직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지만 올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MWC 2017 4YFN 부스엔 일반 관람객 1만2500여 명, 벤처 캐피탈 관계자 5200여 명이 각각 방문해 다방면에서 협업이 이뤄졌다.
‘대세 기술’ 5G 시연 활발… ‘바이브 생태계’ 구현한 HTC도 주목
올해 MWCS에서 기술적으로나 사업적으로 확연한 ‘쏠림’ 현상이 나타난 분야를 꼽자면 단연 5G를 들 수 있다. △모바일 인터넷 △스마트 시티 △커넥티드카 △로봇 △사물인터넷 △방송 △VR·AR 할 것 없이 5G 적용을 외쳤기 때문. 5G의 상업적 수행기를 2020년 전후로 내다본 것까지 대동소이했다.
차이나모바일은 30㎞ 밖 자동차 원격 조종 시범과 5G용 드론 중재기를, ZTE는 작동 시간 지연이 없는 로봇을 각각 선보였다. KT는 5G 환경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 VR 영상을 내놓았으며 화웨이는 5G에서 적용 가능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시연했다. 이들이 앞다퉈 제안한 5G 기기와 서비스는 흡사 한 무리의 맹신도를 거느린 사이비 종교를 연상시켰다.
▲올해 MWCS 전시장에선 유독 5G 관련 제품과 서비스가 눈에 많이 띄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5G 로봇과 VR, 드론 중재기와 스마트 가로등, 원격 주행 자동차가 전시된 모습
일명 ‘HTC 바이브(VIVE) 생태계’가 점차 확고해지는 것 역시 올해 MWCS에서 발견된 조짐 중 하나다. 다만 이때 바이브는 단순히 HTC가 출시한 VR HMD(Head Mounted Display)를 뜻하지 않는다. 실제로 HMD의 성능은 날로 좋아지는 반면, 기기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HTC는 자사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Software Development Kit, SDK)를 서드파티(3rd party)들이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정선(精選), 제공해왔는데 그 효과가 이제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올해 MWCS 행사장에서 접할 수 있었던 VR 게임과 서비스는 대부분 바이브를 기반으로 제공됐다. 이는 비단 MWCS뿐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유사 전시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향후 VR 시장 전체 생태계를 거머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업이 현재로선 HTC란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애플 앱스토어가 500개 애플리케이션에서 출발했단 사실을 떠올려보라!). 일부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MWCS 전시품 시연에 바이브를 활용하는 사례도 눈에 띄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VR 기기 발전이 향후 전자 관련 전시 형태까지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스플레이 지문 인식, 음성 인식 로봇 등 ‘中 기술 최전선’ 눈길
올해 MWCS엔 이 밖에도 중국 IT 기술의 최전선을 체감할 수 있는 볼거리가 많았다. △휴대전화 제조 기업 비보(vivo)의 디스플레이 지문 인식 △적은 구축 비용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한 중국판 무인 점포 시스템 △대부분의 기업이 앞다퉈 선보인 음성 인식 기반 로봇 등이 대표적 예. 또 하나, (비단 중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겠지만) 중국 기업들의 클라우드 사랑은 지독할 정도였다. 특히 화웨이는 자사의 네트워크·장비·단말·서비스 일체의 트래픽을 클라우드에 올리려는 전략을 수 년째 이어왔다. MWCS 전시 부스의 모든 장식을 구름(cloud) 형태로 만들어놨으니 말 다 했다. 하긴, 본격화한 5G 시대와 4차 산업혁명기에 데이터를 중시하고 인공지능의 기반을 다지는 측면에서 이 같은 ‘클라우드 중심 전략’은 제대로 된 방향이란 생각이다.
사실 중요한 건 디스플레이 지문 인식도, 무인점포나 음성 인식 로봇도 아니다. 한때 ‘패스트 팔로어[1]’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중국 IT 기업들이 어느새 독창적 기술과 영역을 확보해가고 있단 사실에 훨씬 주목해야 한다. 중국 기업은 더 이상 값싼 제품을 양산하고 모방을 일삼으며 남의 꽁무니만 쫓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고 새롭게 개발하며 자신만의 생태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레이쥔(雷軍) 샤오미 최고경영자(CEO)의 과거 발언처럼 중국은 통상적 모방의 단계, 즉 이미 성공한 롤모델을 따르고 이후 혁신성을 보이는 절차를 일찌감치 지나왔는지도 모른다. 물론 아쉬운 점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비보의 디스플레이 지문 인식은 속도가 느렸고, 전시 기간 내내 인파가 몰렸던 무인점포의 인기 비결은 무료로 물건을 가져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음성 인식 로봇은 (시끄러운 주변 환경 탓도 있었겠지만) 중국에서 만들어졌는데 중국어조차 제대로 못 알아 듣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확 달라진 중국 IT 기술의 현주소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 기술들. (왼쪽부터)디스플레이 지문 인식과 무인점포, 음성 인식 로봇
높아진 한국 기업 위상 체감… 삼성 ‘아이오셀’ 부스 특히 인상적
물론 주관적 판단이겠지만 올해 MWCS에서도 한국 기업의 활약은 대단했다. 한국어가 공식 컨퍼런스에서 중국어·영어와 함께 동시통역 언어로 선정된 것만 봐도 중국에서 한국 모바일 산업의 위상이 어느 정돈지 짐작할 수 있었다(“삼성전자보다 빨리 스크린 지문 인식 기술을 개발했다”며 자랑하는 비보의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KT가 선보인 5G 기반 콘텐츠에서부터 대구테크노파크 소재 스타트업이 들고 온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중국 기업의 것들보다 확실히 비교우위에 있단 생각이 들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S8(과 S8+)은 올해 ‘아시아 모바일 어워드’에서 ‘베스트 스마트폰’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 올해 MWCS에서 공개한 이미지센서 브랜드 ‘아이소셀(ISOCELL)’ 광고는 보안 솔루션 ‘녹스(KNOX)’나 결제 솔루션 ‘삼성페이’를 론칭할 때 드러났던 삼성전자의 기술 분야 자부심을 새삼 떠올리게 했다.
한국 기업 부스를 둘러보며 아쉬웠던 건 좀처럼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운영 방식이었다. 확실한 사전 예약과 예외 없이 진행되는 바이어 미팅, 그리고 계약 성사….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이스라엘 기업 부스와는 대조적 광경이었다. 내년 행사에선 한국 기업들도 이 같은 체계를 갖춰 부스를 운영할 수 있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삼성전자의 ‘기술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었던 ‘아이소셀’ 부스(왼쪽 사진). 사전 예약과 바이어 미팅, 계약 성사 등 모든 절차가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이스라엘 부스는 매해 부러운 시선을 보내게 되는 공간이다
“나도 얼마든지 마윈처럼 될 수 있다”는 중국 젊은이 패기 놀라워
올해로 6년째 MWC에 참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와 올해 MWCS 행사장을 찾은 건 최근 중국 모바일 시장과 기술 변화가 예사롭게 봐 넘기기 힘들 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5G와 사물인터넷, VR과 AR,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올해 MWCS에선 어느 누구도 스마트폰을 논하지 않았다(상하이 푸동국제공항에서부터 MWCS 전시장까지 이동하는 도중 스마트폰 광고는 단 한 개도 발견하지 못했을 정도다). 그 대신 기술 분야에서의 ‘차세대 먹거리’엔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IT 기술의 무게중심이 ‘모바일’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고 있단 사실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행사장을 돌아보던 중 중국 현지 기자와 간단히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MWCS 참관 소감을 묻는 그에게 “정말 놀라웠다”고 답했다. 하지만 중국이 보유한 넓은 시장이나 엄청난 자원, 가격 경쟁력 따위에 놀란 건 아니었다. 정작 날 놀라게 한 건 “나도 얼마든지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 같은 IT 거물이 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중국 젊은이들의 태도였다. 엄청난 사업 모델과 탁월한 기술,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건 꿈, 그리고 희망 아닐까? 올해 MWCS 행사장에서 만난 중국 젊은이들에게선 확실히 그게 엿보였다. 이번 출장에서 건져 올린, 가장 값진 성과였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원고에 삽입된 사진은 필자의 페이스북에서 발췌, 인용됐습니다(일부 제외)
[1] fast follower.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전략 또는 그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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