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과 투자, 기술 융합… 최고 자리에서 ‘그 다음’을 생각하다
2017년 7월. 삼성전자는 의심할 여지 없는 ‘기술 분야 글로벌 선두 주자’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 간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고 후발 주자들은 신기술로 무장,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민다. 삼성전자가 지금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미래 대비에 나서는 이유다. 실리콘밸리는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실리콘밸리에서 업무를 진행해왔다. 특히 2012년부턴 실리콘밸리 내 영업 활동을 강화하고 다른 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또 거시적 차원에서 삼성전자 내부 조직과 활동을 개혁하고 △인공지능(AI) △헬스케어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클라우드 컴퓨팅 등 차세대 유망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업계 최고 전문가 영입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실리콘밸리에서의 활동 범위를 확장하겠다”고 결정한 이후부터 지금껏 삼성전자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을까? 실리콘밸리 전역에 분포한 삼성전자 조직을 살펴본 1편, 그중에서도 ‘열린 혁신’의 구심점으로 꼽히는 삼성전략혁신센터(이하 ‘SSIC’)와 삼성넥스트를 소개한 2편에 이은 마지막 이야기는 협력과 투자, 기술 융합으로 요약되는 열린 혁신 정신의 구체적 면면에 관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단순 제조 업체를 넘어 종합 기술 기업으로 성장해갈 것”이란 야코포 렌지(Jacopo Lenzi) 삼성넥스트 전무의 선언[1]처럼 실리콘밸리를 무대로 뛰는 삼성전자는 기존 삼성전자와 사뭇 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의 삼성전자가 철저한 시장 분석을 거친 후 신기술을 발표해왔다면, 실리콘밸리에서의 삼성전자는 보다 도전적으로 미래를 선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열린 혁신(open innovation)’을 추구하고 있는 것.
물론 이런 변화는 종종 시행착오를 수반한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 활약 중인 삼성전자 경영진(이하 ‘삼성전자 경영진’)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얻게 되는 경험이 삼성전자의 업계 선두 유지를 도울 것”이며 “실패에서 얻는 교훈이야말로 신규 사업 분야에서 삼성전자가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라 믿고 있다. 크리스 번(Chris Byrne) 삼성전략혁신센터(SSIC) 지적재산권 전략 부문 부사장은 기업 혁신에 대해 “회사가 불안정할 때 시도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때 감행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삼성전자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기에 마침맞은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리콘밸리 속 삼성전자의 미래 향방은 어떨까? 이 질문의 답 역시 삼성전자 경영진의 목소리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의 주제도 바로 그것이다.
전략 하나, 혁신을 위해서라면 ‘하이 리스크’도 감수한다
삼성전자 경영진이 혁신을 준비하는 지름길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출처를 삼성전자 내부로 국한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관련, 프랜시스 호(Francis Ho) SSIC 디지털헬스 부문 부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앞으론 얼마나 훌륭한 파트너와 손잡느냐, 하는 문제가 승부를 가를 겁니다. 혼자서 모든 걸 이룰 수 있던 시대는 지났죠.”
새로운 기회 창출을 목표로 누군가와의 협업을 추진하기 전, 삼성전자 경영진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대전제 아래 최신 트렌드부터 꼼꼼히 살핀다. 그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클라우드·인공지능(AI)·스마트헬스 따위는, 어쩌면 현재 삼성전자가 주력하는 분야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기술이 삼성전자의 미래 성장 동력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이처럼 실리콘밸리 속 삼성전자는 ‘현재’보다 ‘미래’를 고민하며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새로운 관점과 전략으로 업계를 주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번 부사장은 “업무를 진행할 때 어떻게 하면 삼성전자 전체가 실리콘밸리 시스템에 최적화될 수 있는지, 또 스타트업처럼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SSIC·삼성넥스트 내 투자 조직인 삼성캐털리스트펀드(SCF)와 삼성넥스트벤처(Samsung NEXT Venture) 역시 향후 꾸준히 협업할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한 예로 SCF 구성원은 업무 시간의 절반을 스타트업과의 회의로, 나머지 절반을 사내 다른 부서와의 협업으로 각각 보낸다. 이 같은 도전 정신은 브렌든 김(Brendon Kim) 삼성넥스트벤처 매니징 디렉터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담하다는 건 확고한 신념과 비전을 갖고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할 줄 아는 걸 의미합니다.”
SCF는 또한 삼성전자 임직원이 틀에 박힌 방식으로 사업을 바라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샹카르 찬드란(Shankar Chandran) SCF 부사장에 따르면 여느 전문 투자회사와 달리 SCF는 ‘시간’이 넉넉지 않다. “전문 투자회사는 대개 1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첫 5년간 투자한 후 나머지 5년간 투자 금액을 회수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만큼의 여유가 없어요. 그래서 더더욱 기간에 관계 없이 ‘혁신적이면서도 타당해 보이는’ 기술을 잘 택해 투자해야 하죠.”
프랜시스 호 부사장의 설명 역시 열린 혁신의 본질 이해를 돕는다. “자산 2000억 달러(USD) 규모 기업에 투자하는 상황을 가정해볼까요? 삼성전자라면 그런 경우 항상 차선책을 마련합니다. 하지만 진짜 혁신을 위해선 때로 대담한 결단이 필요해요. 그러려면 기존 체계를 완전히 바꿔야 할 필요가 있죠. 우린 삼성전자 내부 임직원에게도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전략 둘, 기술에 기술 더해 새로운 기술로 탈바꿈시키다
실리콘밸리 내 삼성전자 경영진의 관심은 상당 부분 ‘기술 간 융합’에 쏠려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다양한 기술 간 경계를 허물고 상호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 거기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방법을 찾고 있다. 대표적 예가 인공지능(AI)이다. 기술 자체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지만 실리콘밸리를 비롯, 글로벌 시장의 선두를 달리는 사람들에게 AI는 더없이 강력한 화두다. 렌지 전무 역시 “삼성전자가 보유한 AI 관련 기술력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머지않아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AI의 추론·기획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향후 AI 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여긴다. 삼성전자가 다양한 기술을 통합, 발전시켜 이 시장을 주도하려는 건 그 때문이다. 사실 ‘인간과 기계 간 상호작용’에 관한 한 삼성전자는 경험이 꽤 풍부한 편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고객지향적 제품을 이미 다양하게 개발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AI 기술을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까?’란 질문에 대해 삼성전자는 그 어떤 기업보다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요즘 삼성전자는 AI 기술이 휴대전화를 넘어 가상현실(VR) 형태로 사람들의 일상에 보다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 인텔리전스이노베이션랩(Intelligence Innovation Lab)을 이끌고 있는 닉 카시마티스(Nick Cassimatis) 부사장은 “아직은 삼성전자의 AI 부문 진출 소식이 대외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분야에서도 곧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SRA의 관심사는 비단 AI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세상 만사가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현대 사회에 최적화된 사용자 인터페이스(UI) 같은 주제는 헨리 홀츠먼(Henry Holtzman) SRA 융합 부문 부사장이 이끄는 팀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다. “수많은 정보가 정리되지 않은 채 흘러 다니고 기기별로 각기 다른 UI가 제공되는 현실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대 간 정보 소비 방식 차도 크죠. 미국만 해도 젊은 세대는 스냅챗(Snap Chat)을, 나이 든 세대는 넷플릭스(Netflix)를 주로 쓰니까요. 삼성전자는 기술 통합을 통해 이런 세대 차를 좁히고 사용자 중심 콘텐츠와 UI를 만들기 위해 여러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헨리 홀츠먼 SRA 부사장)
상복 많은 패밀리허브, ‘실리콘밸리식(式) 혁신’의 결과물
다양한 협력 관계 구축과 기술 융합의 궁극적 목표는 삼성전자 전 조직이 열린 혁신이란 새 운영 체제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찬드란 부사장 역시 “삼성전자 내 모든 부서가 열린 혁신의 장기적 파급 효과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게 우리 목표”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내 부서 간 협업은 단지 특정 기간 내 업무 성과만 고려한 형태가 아니라 인류 삶 전체를 바꾸기 위한 장기적 관점에서 이뤄진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이 목표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알아보는 방법 중 최선은 삼성전자가 진행해온 열린 혁신의 결과를 실제로 확인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홀츠먼 부사장이 예로 든 사례는 패밀리허브 냉장고였다. “당시 SRA는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추억과 정보를 어떻게 공유하는지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팀원들이 여러 가정을 방문, 관찰했고 대다수 가정에서 달력·사진·쪽지 따위를 냉장고에 붙이는 광경을 목격했죠. 가족(family)의 일상, 그 중심(hub)에 냉장고가 있단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이었습니다.”
SRA은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점착 메모지나 테이프로 붙인 사진 같은) 아날로그 정보를 디지털로 바꿔 보여줄 수 있는’ 제품 구상에 돌입했다. 달력과 스티커 메모, 음성 인식과 카메라 기능을 탑재한 패밀리허브의 탄생 배경이다(패밀리허브는 출시 직후 혁신성을 인정 받아 국내외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홀츠먼 부사장은 패밀리허브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일명 ‘어드밴스드 콘셉팅(advanced concepting)’으로 설명한다. “어드밴스드 콘셉팅이란 하나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3년에 걸쳐 콘셉트를 찾아가는 과정을 일컫습니다. 구상된 아이디어가 곧장 제품 개발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공신력 있는 에이전시로 구성된 혁신 체계 안에서 한 차례 더 정교해지는 겁니다. 이 과정이 곧 삼성전자의 ‘실리콘밸리식(式) 열린 혁신’의 핵심인 셈이죠.”
삼성전자, ‘지난 50년’보다 ‘5년 후 모습’이 더 기대된다면
오늘날 제조 업계의 기술 혁신은 역사상 전례가 없던 속도로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일찌감치 실리콘밸리에 터를 잡은 삼성전자는 열린 혁신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그 변화에 대처하고 있다. 아니, 단순 대응을 넘어 ‘업계 선구자’로서 현대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야코포 렌지 삼성넥스트 전무의 설명처럼 “끊임없이 미래를 대비하며 전 세계 혁신의 선구자들과 협업할 기회를 찾은“ 덕분에 오늘날과 같은 영향력을 지닐 수 있게 됐다.
“세상은, 지난 50년간의 변화보다 향후 5년간 일어날 변화로 인해 더 크게 바뀔 겁니다. 혁신은 어떤 분야에서든 일어날 수 있죠. 지리적 장벽은 더 이상 뛰어난 인재와 아이디어를 가로막지 못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를’ 혁신에 대비, 언제나 열린 마음가짐을 갖는 자세입니다.”(크리스 번 SSIC 부사장)
기존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체계를 수용하려는 열린 혁신의 정신은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시각에도 실리콘밸리 내 삼성전자의 전 조직을 관통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 50년’보다 ‘5년 후 삼성전자’가 더 기대된다면 그 덕분일 것이다.
[1] 삼성전자 뉴스룸 2017년 7월 25일자 기사(‘열린 혁신’의 중심, 삼성전략혁신센터와 삼성넥스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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