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 공룡’들의 가상현실 사업 전략
지난 칼럼에서 복잡한 그래픽으로 소개했던 가상현실 산업 생태계는 아래와 같이 세 범주로 다시 구분될 수 있다.
‘콘텐츠’ ‘네트워크 플랫폼’ 부문, 절대 강자 없이 각축 중
가상현실 산업 생태계도 다른 IT 산업군과 마찬가지로 하드웨어 부문과 소프트웨어(콘텐츠 포함) 부문, 그리고 네트워크 플랫폼 부문으로 구분된다. 네트워크 플랫폼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을 활용, 다양한 형태의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유통하고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분야별 세부 내용은 지난 회차 칼럼을 참고할 것>. 개별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도 저마다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지만 굳이 ‘플랫폼’으로 명명하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저작도구(tools) 중심의 소프트웨어 기술 플랫폼은 이미 유니티나 언리얼[1] 등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게임 산업에서 입증된 그들의 업무 방식으로 미뤄볼 때 가상현실 산업 전체 생태계를 좌우할 만큼 플랫폼 비즈니스를 공격적으로 확장하진 않을 전망이다. 또한 애플·페이스북 등 독자적 네트워크 플랫폼을 구축하는 거대 기업이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는 가상현실에 최적화된 저작도구라기보다 자신의 플랫폼과 기존 개발 키트의 호환용 플러그인에 가깝다.
한편, 최근 특히 경쟁이 치열한 HMD(Head Mount Display) 기반 하드웨어 플랫폼 장악전에선 삼성전자를 필두로 페이스북(오큘러스·Oculus)과 HTC(바이브·Vive)가 당분간 3파전을 벌일 예정이다. 물론 몇몇 중국 업체의 저가 제품도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지만 하드웨어 플랫폼을 장악한다 해서 그게 곧 가상현실 전체 플랫폼에서의 승리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스마트폰 전쟁에서 목격했듯 이 싸움에서 단순한 하드웨어 플랫폼 승자는 ‘상처뿐인 영광’의 주인공일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가상현실 분야에서 하드웨어 경쟁을 흥미롭게 관전 중인 구글을 비롯, ‘와신상담(臥薪嘗膽) 모드’의 마이크로소프트와 플레이스테이션VR(PSVR)의 선전(善戰)으로 주머니가 두툼해진 소니와의 결전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아직 절대적 승자가 나타나지 않은 분야는 콘텐츠(앱)와 네트워크 플랫폼 등 두 가지다. 콘텐츠 부문은 스타트업을 비롯한 국내외 중소 가상현실 업체가 크게 약진하고 있는 동시에 게임·국방·교육·의료 등 다방면으로 확산 중인 분야이기도 하다(이와 관련된 논의는 다음 번 칼럼에서 자세히 다룰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게임을 제외한 국내 콘텐츠 업체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 IT 부문 대기업과의 협업과 정책적 지원이 절실한 분야이기도 하다.
향후 가상현실 플랫폼 시장의 승자는 네트워크 플랫폼을 장악하는 업체가 될 것이다. 삼성전자나 페이스북이 관련 하드웨어 선점에 앞다퉈 나선 것 역시 그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윈도우 10 기반의 ‘삼성 HMD 오디세이’를 출시한 건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주요 기업, 플랫폼 시장 선점 위해 ‘적과의 동침’도 불사
앞서 살펴본 것처럼 주요 글로벌 기업의 가상현실 산업 전략은 ‘네트워크 플랫폼 장악’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한 전술은 일명 ‘투트랙(two-track)’이다. ‘내 편 만들기’가 하나, ‘적과의 동침’이 다른 하나다. 전자는 가상현실 전문 기업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인수, 합병을 의미한다. 아래 도표는 (비록 2016년도 상반기까지밖에 정리돼있지 않지만) 이 작업이 꽤 활발히 진행돼왔단 걸 보여준다(지난해에도 삼성전자가 일본 HMD 전문 기업 FOVE에 투자를 결정, 눈길을 끌었다).
이 칼럼에선 두 번째 트랙, 곧 적과의 동침 쪽을 좀 더 들여다보려 한다. 아래 표는 가상현실에 대한 주요 글로벌 기업의 행보와 글 앞부분에 소개했던 ‘범주별 가상현실 산업 생태계’ 도표를 정리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강력한 하드웨어 경쟁력을 바탕으로 구글·페이스북과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사업에서 일찌감치 확인한 것처럼 그들 또한 미래 시점으로 볼 땐 잠재적 경쟁자인 게 확실하다. 삼성전자가 가상현실 시장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자체 네트워크 플랫폼인 삼성VR닷컴(https://samsungvr.com)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국내 우수 콘텐츠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교육·헬스케어 등 특화된 시장을 선점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홀로렌즈(Hololens) 사업 실패로 가상(증강)현실 시장 재진입을 노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삼성전자를 파트너로 선택한 건 두 회사의 필요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의미에서 두 기업의 합작품인 HMD오디세이의 행보는 눈여겨볼 만하다.
이에 반해 페이스북과 구글은 다른 경쟁자에 비해 다소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페이스북은 이미 오큘러스라는 걸출한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자체 플랫폼에서 구동되는 각종 앱을 개발 중이다. 이 앱들 역시 사용자가 직접 관련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형태다. 관건은 일찍이 마크 저커버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주장한 “모든 게 개방되고 연결된 세상 만들기(make the world more open and connected)”의 구체적 실현 방안이다.
구글은 유튜브 등 기존 소유 채널을 통해 소리 없이 가상현실 네트워크 플랫폼을 장악한 경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막후 실력자’ 자리를 꿰찼듯 AR코어(AR core) 등 개발 저작도구를 제공하며 조금씩 세(勢)를 불리고 있다. 하드웨어 분야에서도 저가 제품(카드보드) 출시, 그리고 HTC와의 협력을 통해 중고가 제품 라인업까지 견고하게 구축했다(이와 별도로 자체 AR글래스도 제작 중이다).
애플의 가상현실 전략은 여전히 ‘애플다운 마이웨이’다. 포켓몬고의 인기에 힘입어 아이폰을 기반으로 하는 독자적 VR(AR) 생태계 구축을 시도하고 있는 것. 막강한 자체 네트워크 플랫폼(앱스토어)이 있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인터넷 방송 인수, 게임 엔진 무료 론칭… 아마존에 주목하라
가장 주목해야 할 기업은 역시 아마존이다. 2014년 8월 아마존이 게임 인터넷 방송 ‘트위치(Twich)’를 인수하고 2016년 초 크라이엔진을 기반으로 한 게임 엔진 ‘럼버야드(Lumberyard)’를 론칭(그것도 무료로!)했을 때만 해도 이를 가상현실과의 연결고리로 해석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아마존의 행보를 살펴보면 “역시 베조스[3] !”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상상해보시라. 이미 안방을 점령한 아마존 AI 플랫폼 ‘알렉사(Alexa)’ 기반 AI 스피커 ‘에코(Echo)’에 AR글래스가 결합되는 장면을! 알렉사가 사용자도 모르는 사용자 본인의 수요(need)를 읽고 그 결과를 글래스에 띄워준다면? 콘텐츠 저작 도구(럼버야드)는 이미 준비돼 있는 만큼 이를 형상화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실제로 내가 이 글을 작성하는 도중 올해 CES에 뷰직스<Vuzix>사가 알렉사 기반의 AR글래스를 공개했단 소식이 들려왔다. 벌써!)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1]유니티나 언리얼에 대한 설명은 지난 회차 칼럼 각주를 참조할 것
[2]IT 데이터 분석 기업
[3]제프 베조스(Jeffrey P. Bezos) 아마존 최고 경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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