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과학 선생님… 11년간 이어진 야학 봉사활동

201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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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저녁 7시가 다가오자 강동야학 동녘반(고등교실 이름)에 학생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모두 나이 지긋한 어머님들이다. 선생님이 들어오자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한 눈빛이 된다. 동녘반 과학 선생님은 김기훈(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 소속) 씨다.

▲ 저녁 7시가 되면 야학 간판에 불이 환하게 켜지고 학교로 들어가는 지하 문이 열린다.

▲ 저녁 7시가 되면 야학 간판에 불이 환하게 켜지고 학교로 들어가는 지하 문이 열린다.

▲ 동녘반 수업 시간, 학생들의 엄청난 집중력은 뒷모습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 동녘반 수업 시간, 학생들의 엄청난 집중력은 뒷모습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자, 지난 시간에 배운 것부터 다시 한번 보고 시작할까요?”

“네~”

고등학생처럼 해맑은 어머님들과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다 보면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과학 수업을 들으며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칠세라 열심히 수업 내용을 받아 적는다. 대학원 시절 의미 있는 삶을 고민하다 시작한 야학 수업이 어느새 11년째가 되었고, 김기훈 씨는 이제 야학 선생님 중 최고참 선생님이 됐다. 매년 적게는 4~5명에서 많게는 10명씩. 그가 가르쳐 졸업시킨 학생들이 벌써 80명이 넘는다.

“아니 대체 수요일마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김기훈 씨의 수업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 30분까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늦거나, 급하게 수업을 취소한 적이 없다고 한다. 회사를 다니며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근무지인 삼성전자 화성 사업장에서 강동야학까지 이동 시간이 길게는 두 시간. 수업뿐만 아니라 수업 준비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든다.

▲ 강동야학 동녘반 수업 시간, 직접 제작한 교재로 수업 중이다.

▲ 강동야학 동녘반 수업 시간, 직접 제작한 교재로 수업 중이다.

▲ 한 분 한 분 세심하게 가르쳐 드리고 있는 기훈 씨

▲ 한 분 한 분 세심하게 가르쳐 드리고 있는 기훈 씨

“일을 하다 보면 갑자기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경우들도 있고, 회식도 생기고… 그런데 매주 수요일만 되면 제가 일이 있다고 사라지니까, 나중에는 친한 동료들이 ‘수요일마다 대체 뭐 하는 거냐’고 묻더라고요(웃음).”

처음엔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싶어서 ‘사정이 있다’라고 에둘러 말하며 수요일을 사수했다. 하지만 매주 수요일마다 일찌감치 사라지는 경우가 거듭되니 결국 친한 동료들과 상사에게는 야학 봉사활동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부서원들이 ‘멋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진심이 느껴졌죠. 여러모로 제 활동을 많이 배려해주시고, 응원해 주셨어요. 감사하죠. 다른 선생님들은 직장 들어가고 나서 배려받지 못하거나 너무 바빠서 그만두시는 경우도 많거든요.”

나를 다시 선생님으로 살게 한 눈물의 졸업식

김기훈 씨에게도 6개월, 야학에 나오지 못했던 기간이 있었다. 박사 논문 준비로 시간에 쫓겼던 김기훈 씨는 잠시 야학 수업을 쉬게 되었다고. 야학에 대한 기억이 흐려질 때쯤 기훈 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같이 야학 선생님으로 활동하던 동생이었다. ‘형. 우리 졸업식 해요. 형도 당연히 와야죠!’ 반가운 얼굴들을 보러 달려간 졸업식 날, 기훈 씨는 그때 들었던 졸업생의 이야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 이게 내가 야학을 했던 이유지...

“‘너는 동생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잖니’라는 부모님 말씀에 저는 원하던 공부를 더 하지 못했어요. 결국 다 늙어서 강동야학에 왔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에 고민했어요. 하지만 저를 가르쳐준 선생님들과 동기들 덕분에 내 나이 60에 초등학교 졸업장을 땄어요. 아이들과 남편이 나를 참 자랑스러워해요. 이제 글도 읽을 수 있게 됐어요.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눈물을 훔치며 주름 가득한 손으로 붙잡은 졸업장과,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보며 웃는 가족들의 모습이 기훈 씨에게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 이게 내가 야학을 했던 이유지!’라는 생각이 들자 기훈 씨는 옆에 있던 동료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당장 돌아갈게. 시간표에 과학 수업 올려줘라.”

그렇게 다시 강동야학에 돌아온 ‘김기훈 선생님’으로서의 시간은 11년 동안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삶의 일부가 됐다.

늦깎이 배움의 길… 공부가 행복한 어머님들 보며 11년 버텨

강동야학에서는 각 과정을 1년 안에 수료한다는 가정하에 한글을 아예 모르는 학생이 입학하면 한글반부터 고등반까지 총 4년 동안 수업을 듣게 된다.

▲ 기훈 씨의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어머님들

▲ 기훈 씨의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어머님들

고등반인 동녘반의 어머님들은 태어나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화학 용어, 물리 공식도 수많은 반복을 거듭하며 배워내고야 만다. ‘너는 맏딸이니까’, ‘집에 일손이 모자라니까’, ‘여자애가 무슨 공부를 한다고’… 각자의 아픈 사연은 공부를 향한 동기가 됐다. 목표가 분명하니 어머님들은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하고도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야학에 나올 수 있었다. 이는 기훈 씨가 오랜 시간 이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곤지암에서 강동까지 6년째 오시는 어머님이 계세요. 일흔이 넘으신 야학 최고령 학생이신데, 갑상선도 안 좋고 당뇨까지 있는데도 늘 버스 타고 그 멀리서 야학에 오세요. 그렇게 성실히 배우러 오시는 모습을 보면 제가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죠.”

“얼마 전 수업 시간에 별자리에 대해 알려드렸더니, 다음 수업에 한 어머님이 너무 행복한 얼굴로, 별자리 이야기를 손자한테 해줬더니 ‘우와 할머니 대단하다!’고 해서 너무 좋으셨다고 해요. 가족들의 응원과 인정이 공부하는 어머니들에게는 물론 저와 선생님들에게도 동기 부여가 돼요.”

한편, 삼성전자는 사회공헌 비전 ‘함께가요 미래로! Enabling People’의 취지에 맞춰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우리 사회 이웃들과 상생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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