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박임만으로 의사소통? 할 수 있습니다(I can)!” 아주 특별한 안구마우스 ‘아이캔(eyeCan)’ 이야기
201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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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절 한 구절 가을비의 쓸쓸한 기운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 시엔 놀라운 비밀 하나가 숨겨져 있다. ‘눈(眼)으로 쓰여진’ 작품이란 사실이 그것.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열쇠는 삼성전자가 개발한 안구마우스 ‘아이캔(eyeCan)’이 쥐고 있다. 이 시를 쓴 조현수(가명)씨는 1세대 제품인 아이캔에 이어 현재는 2세대 제품 ‘아이캔플러스(eyeCan+)’를 사용하고 있다.
‘값비싼 안구마우스, 보급형으로 만들 순 없을까?’
신체 거동이 불편한 조씨는 안구마우스를 활용, 컴퓨터를 작동시킨다. 친구나 지인과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취미로 시도 쓰고 있다. 컴퓨터 게임이나 온라인 쇼핑, (영화나 동영상 같은) 콘텐츠 시청도 문제 없다. 안구마우스를 사용하기 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아이캔은 삼성전자가 수 년째 진행 중인 사회공헌 프로젝트다. 손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환자에게 눈동자의 움직임을 읽어 조작되는 안구마우스는 꼭 필요한 물건이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부담 없이 이용하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이에 삼성전자 임직원들은 보다 많은 사람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웹카메라와 안경테 등을 활용,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저가형 안구마우스 아이캔을 개발했다.
▲삼성전자 임직원이 개발한 저가형 안구마우스 아이캔 1세대 개념도<오른쪽 사진>와 실물
루게릭병 환자, 7년 만에 가족에게 편지를 쓰다
1세대 아이캔을 둘러싼 감동적 사례도 이어졌다. 특히 루게릭병 환자 이상호<가명>씨의 경험담은 공개되자마자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다. 이씨는 셋째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병을 얻었다. 이후 7년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 깜박임으로 ‘○’ ‘X’ 의사를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아이캔의 도움으로 7년 만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이씨는 조심스레 메모장을 열어 자신의 아이들에게 한 자 한 자 편지를 써내려갔다.
▲7년간 루게릭병으로 가족과 소통하지 못했던 이상호씨가 아이캔으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쓴 편지
이씨는 발병 직후 태어난 셋째 아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 점이 늘 맘에 걸렸다. 자식이 힘들 때 손 한 번 따뜻하게 잡아주지 못하고 변변한 위로 메시지조차 건네지 못했던 아버지의 진심이 모니터에 한 글자씩 새겨졌다. 그가 눈짓으로 한 글자씩 써내려갈 때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와 세 자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아이캔(1세대 제품)을 착용한 모습. 아이캔이 있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이도 컴퓨터로 편지를 쓰거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삼성전자는 아이캔 1세대의 성공에 고무돼 지난 2014년 1세대 제품의 사용성을 대폭 개선한 아이캔플러스를 개발했다. 2세대 제품은 PC 모니터에 부착하는 형태로 소프트웨어∙하드웨어 부문이 공통적으로 개선된 게 특징이다<아이캔플러스 관련 기사는 여기 참조>.
삼성전자는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센터와 손잡고 기증 대상자를 선발, 해당 환자들에게 아이캔플러스를 무료로 보급했다. 양성주<가명>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지난 2004년 뇌출혈로 투병 생활을 시작한 그 역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눈 깜박임만으로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캔플러스 덕분에 가족과 의사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아이캔플러스 실물 모습<왼쪽 사진>. 안경형으로 제작됐던 1세대 제품과 달리 모니터에 부착할 수 있는 형태로 설계됐다
그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전할 수 있게 돼 가족과의 대화가 이전보다 크게 늘었다”며 삼성전자에 고마워했다. “아이캔플러스를 사용하기 전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시피 했는데, 요즘은 인터넷도 검색하고 보고 싶은 뉴스도 챙겨볼 수 있습니다. 멀리 있는 아내나 아이들을 부를 때도 아이캔플러스가 무척 유용해요.” 양씨는 “나도 뭔가 스스로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에게 아이캔은 소통의 창이자 더없는 희망”
2016년 2월 현재 아이캔은 3세대 제품 개발에 한창이다. 삼성전자 측은 “환자의 사용 환경이나 장애 유형,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불편을 면밀히 고려해 보다 많은 이가 세상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도록 설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 몸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조금씩 굳어간다는 사실, 누구와도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겁나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아이캔 덕에 제게도 소통의 창구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 사실 자체가 제겐 더없이 큰 희망입니다.”
한 사용자가 삼성전자에 보내온 위 감사 메시지처럼 아이캔은 그저 단순한 환자용 보조 기구가 아니다. 사용자의 삶과 환경을 개선하는 건 물론, 사용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착하고 혁신적인’ 제품이다. 개발 중인 3세대 아이캔은 또 얼마나 놀라운 기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까?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환자가 손꼽아 그 등장을 기다리는 이유다.
투모로우 기획 ‘사회공헌을 말하다’ 이전 콘텐츠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