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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임직원 5인의 고백 “우리 가족 얘기,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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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존재만으로도 힘과 위안이 되지만 한마디 말로 남보다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하는 관계. 가족(家族)이란 말엔 사전적 정의(‘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삼성전자 사내 커뮤니케이션 채널 삼성전자 라이브(LiVE)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가족’을 주제로 수기 공모전을 개최한 건 삼성전자 임직원이 마음속에 품고 있을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삼성전자 뉴스룸은 그중 다섯 개의 사연을 선정, 일러스트와 함께 재구성했다.

이은선(삼성전자 DS부문 테스트앤드패키지센터)씨의 사연<작게> “왜 혼자 와? 친구 데려온다며…” 아홉 살, 난생처음 받은 생일상

꼭 20년 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TV 드라마가 있다. 1998년 방영돼 어머니와 6남매 간 따뜻한 가족애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육남매’(MBC)다. 그때도, 요즘도 6남매는 흔치 않다. 하지만 이은선(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테스트앤드패키지센터)씨네 형제에 비하면 6남매는 단출한 편이다. 몇 명이냐고?

1년에 단 하루, 생일 때만이라도 주인공이고 싶었던 은선씨. 하지만 여덟이나 되는 형제로 늘 북적대는 집에서 생일파티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부모님 입장에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아이가 하나든 여덟이든. 다만 그 모두를 한 번에 끌어안지 못했을 뿐이다. 아홉 살 생일, 은선씨는 누구보다 행복한 생일상을 받았다. 그리고 훌쩍 철이 들었다.

▲이은선(왼쪽 사진 맨 오른쪽)씨와 6남매. “모이기 어렵고 사진 찍긴 더더욱 어려워” 8남매가 다 나온 사진은 별로 없다. 오른쪽 사진은 부모님과 함께 포즈를 취한 은선씨

신희동(삼성전자 DS부문 시스템LSI사업부)씨의 사연<작게> “3년 내내 저게 그리 눈에 띄더라” 어머니의 3만 원짜리 화장대

엄마는 언제부터 엄마였을까? 자식 일이라면 만사 제치고 앞장서는 어머니를 보며 자식은 종종 착각한다. ‘우리 엄마는 처음부터 우리 엄마로 태어났을 거야!’ 하지만 천만의 말씀. 세상 모든 엄마는 누군가의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자다. 그저 엄마가 되며 자식을 위해 본인이 원하는 걸 하나둘 내려놨을 뿐이다, 신희동(삼성전자 DS부문 시스템LSI사업부)씨의 어머니가 그랬듯.

무릎이 시큰거리고 체력이 달려도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고된 일을 계속했던 희동씨 어머니. ‘3만 원짜리 화장대’는 희동씨가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맘속에 새긴 계기가 됐다. 희동씨는 어느덧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지만 어머니의 내리사랑은 마를 줄 모른다. “시골로 내려가신 후에도 일을 손에서 안 놓으세요. ‘손주들 용돈 챙겨줘야 한다’시며….”

▲신희동씨를 울렸던 어머니의 ‘3만 원짜리 화장대’는 세월이 지나 폐기 처분됐지만 희동씨 어머니가 화장대와 함께 구입했던 ‘성(聖)요셉’ 상은 10년 넘게 자릴 지키고 있다

박태찬(삼성전자 DS부문 LED기술센터)씨의 사연<작게> “네 맘 몰라줘 미안,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딸에게 건넨 사과

박태찬(삼성전자 DS부문 LED기술센터)씨는 누구보다 사랑하는 반쪽을 만났다. 그리고 자신과 아내를 반씩 똑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는 세상을 다 가진 듯했고 좋은 부모가 되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미처 몰랐다, 아이를 위한다며 던진 말 한마디가 되레 아이에게 커다란 짐을 안겼단 사실을.

유독 자신을 닮아 더 맘이 쓰였던, 그래서 더 잘되길 바라며 짐짓 엄하게 대했던 큰딸의 고백 앞에서 태찬씨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 자신도 아빠가 처음이듯 소은이 역시 맏이 노릇은 처음이란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누구나 처음은 서툰 법이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부터 이해해가면 되니까, 사랑을 담은 진심은 노력하면 언젠가 꼭 전해지니까.

▲박태찬씨 부부는 3남매를 키우며 비로소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유종(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제조기술센터)씨의 사연<작게> “사랑스런 봄아, 네가 온 후 우리 가족에게 좋은 일만 생기는구나”

이유종(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제조기술센터)씨는 자신의 아내를 ‘햇님’이란 애칭으로 부른다. 신산(辛酸)한 삶에 지쳐 더 이상의 행복은 없는 듯 여겨질 때 문득 나타나 따뜻한 햇살처럼 자신에게 스며든, 소중한 사람이란 뜻에서다. 그리고 5년 후 두 사람에게 소중한 선물 하나가 찾아왔다. 부부는 그 선물에 ‘봄’이란 이름을 붙였다.

어린 시절 제게 결혼은 ‘두려움’의 다른 말이었습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자주 다투시던 부모님 모습을 보며 슬퍼했던 기억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회사에 입사하던 해 부모님께서 차례로 세상을 떠나시며 결혼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습니다. 가정을 잘 꾸려나갈 수 있으리란 확신이 부족했거든요. 그러다 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꽉 닫힌 제 맘의 문을 두드리고 결혼을, 가정을 꿈꾸게 하는 여자였습니다. 가정을 이룬 후 부모의 존재도, 가족의 온기도 잊고 살던 제게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새로운 부모님이 돼주셨습니다. 하루하루 행복했습니다. 단 하나, 간절히 바라던 아이가 찾아와주지 않는 것만 빼면요. 결혼 5년째, 기적처럼 아내가 임신했습니다. 제게 찾아온 두 번째 행복이었죠. 지난해 4월 10일, 좋은 계절 봄에 찾아온 천사에게 우리 부부는 ‘봄’이란 이름을 선물했습니다. 봄이를 처음 안았던 순간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겁니다. 봄이를 만난 후 우리 가족에겐 좋은 일만 생깁니다. 자연스레 봄이의 애칭은 ‘복덩이’가 됐죠. 전 여전히 봄이가 왜 우는지 몰라 답답해하는 ‘초보 아빠’지만 앞으로 봄이와 함께할 날을 그리며 매일 다짐합니다. 봄이가 세상을 비추는 멋진 별로 클 수 있도록 늘 사랑하고 응원할 거라고요.

꽉 닫혔던 유종씨의 맘을 열어준 건 다름아닌 사랑이었다. 사려 깊고 다정한 아내는 그에게 사랑의 소중함을, 그리고 가족이 주는 따스함을 알려줬다. “한동안 부모님을 원망(怨望)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원망이 원망(遠望, 먼 앞날의 희망)으로 바뀌었네요.” 유종씨의 말처럼 앞으론 그의 가족에게 매일매일 행복과 희망만 가득하길!

▲늘 혼자라 여기며 살았던 이유종씨는 아내를 만나 가족의 가치를 알게 됐다. 그리고 결혼 5년 만에 ‘귀한 선물’ 봄이를 만났다

이기영(삼성전자 무선사업부 UX혁신팀)씨의 사연<작게> 서럽기만 했던 아빠의 첫 꾸중… “그 맘,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그 입장이 돼봐야 아는 게 있다. 부모 맘이 그렇다. 자식이기만 할 땐 도무지 모르겠던 아버지의 희생과 어머니의 헌신이 부모 된 후엔 보인다. 눈물 쏙 빼는 꾸짖음 뒤에 숨은 사랑도 마찬가지. 그러면서 진정한 어른이 돼간다. 하지만 ‘단지 자식이란 이유로 받기만 한’ 사랑을 되돌려드릴 때까지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기영(삼성전자 무선사업부 UX혁신팀)씨의 사연처럼.

아버지는 정말 다정한 분이셨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늘 하굣길에 절 데리러 오거나 함께 산책하며 저와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셨죠. 크게 혼나본 기억도 없습니다. 엄마에게 꾸중을 들었을 때에도 아버지는 나직이 말씀하시곤 했죠. “기영아, 동네 한 바퀴 돌까?” 산책 도중 아버지는 이런저런 얘길 들려주셨어요. 주인공은 늘 절 똑 닮은 어린 아빠였죠. 아버지와 산책하고 나면 희한하게 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못을 뉘우칠 수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 집을 떠나 자취할 땐 따뜻한 편지를 보내주시기도 했죠. 아버지가 제게 처음으로 화를 내신 날이 기억납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목욕탕에서 어지럼증 때문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이 있었거든요. 병원에 다녀온 후 아버지는 절 앉혀놓고 버럭 화를 내셨습니다. “평소 건강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엄마아빠가 언제까지 챙겨주고 잔소리를 해야 해!” 생전 처음 보는 아버지 모습에 전 덜컥 서러운 맘이 들었습니다. 지금 제 곁엔 아버지가 안 계십니다. 그리고 전 부모가 됐죠. 엄마가 되고 보니 그날 아버지가 왜 그렇게 화를 내셨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이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셨던 거죠. 오늘은 어쩐지 예전처럼 아버지 손 꼭 잡고 산책하며 이런저런 얘길 나누고 싶네요. 아버지가 무척 보고 싶은 하루입니다.

기영씨는 이제 안다. 그 시절 아버지의 걱정은 단 하나, 입 짧은 딸이 혹 건강을 상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단 사실을. 사랑하는 가족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아픔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곤 떠난 이가 자신에게 베푼 사랑을 잊지 않는 것뿐일 터.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기영씨는 오늘도 아버지와의 산책을, 애정 어린 꾸중을 되새긴다.

▲이기영씨 자매와 아버지의 단란했던 한때. 기영씨는 “늘 날 ‘우리 큰딸’ 하고 불러주시던 아버지의 목소리와 인자한 미소, 따뜻한 품이 너무 그립다”고 말했다

▲이기영씨 자매와 아버지의 단란했던 한때. 기영씨는 “늘 날 ‘우리 큰딸’ 하고 불러주시던 아버지의 목소리와 인자한 미소, 따뜻한 품이 너무 그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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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너무슬퍼요 댓글:

    와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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