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 힐링을, 디지털 기기에 쉼표를… 세계 각국에 부는 ‘디지털 디톡스’ 열풍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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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탈리아 움브리아주(州) 파라노(Parrano). 로마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반쯤 달리면 나오는, 나지막한 산지 지형의 작은 마을이다. 인근에 다른 건물이나 시설이 전혀 보이지 않는, 푸른 초원 외딴 언덕 위. 고풍스러운 2층 저택 하나가 서있다. 잿빛 화강암을 납작하게 깎아 붙인 외벽, 푸른 잔디 사이 좁은 공간에 똑같은 돌을 깔아 만든 오솔길…. 어느 모로 보나 중세 사원을 연상시키는 건물이다. 오후 8시가 되자 멀리서 징 소리가 울린다. 2층 작은 방들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나와 1층 식당에 모인다. 대체로 젊은 편인 이들은 세계 각지에서 모인 ‘나홀로’ 여행자다. 식당엔 낡은 나무 식탁이 두 줄로 길게 자리 잡았다. 그 위엔 밀랍으로 만든 촛대와 소박하지만 세련된 식기가 놓여있다. 이들에게 제공되는 식사는 모두 근처 농가에서 수확한 유기농 재료로 만들어진 것들. 여행자들은 각자 적당한 자릴 잡고 앉아 주변 사람과 눈인사를 나눈 후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자기 앞 음식에 집중한다.

#2
미국 알래스카주(州) 데날리국립공원(Denali National Park and Preserve). 데날리산 정상에서 약 10마일 아래쪽 설원 한가운데 외딴 암석 봉우리가 솟아있다. 1950년대, 알래스카 설산세계를 외부에 알렸던 등반가 돈 셸던은 가족과 함께 이 봉우리 정상에 아담한 목조 주택을 지었다. 외진 지역, 헬리콥터와 경비행기로만 접근할 수 있는 주택이었다. 셸던의 자녀들은 이곳을 고급 숙소로 고쳐 개방했다. 대상은 ‘문명을 피해 자연 속에서 조용한 날을 보내고 싶은 여행자’였다. 이 6각형 목조건물에선 사방 수십 킬로미터 면적으로 펼쳐진 만년설과 반짝이는 빙하의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 동절기엔 하늘 가득 펼쳐지는 오로라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눈길 닿는 곳 어디에도 사람은커녕 동식물 하나 안 보인다. 숙박객에게 필요한 물품, 이를테면 △난방용 장작 △깨끗한 침구 △가까운 강에서 잡히는 연어 △인근 항구에서 직송해오는 킹크랩 따위가 하루에도 수 차례씩 전용 케이블카로 공급된다.

#3
프티상뱅상(Petit St. Vincent). 카리브해 섬 중에서도 외곽에 있어 접근성이 나쁜데다 잘 알려지지 않아 보석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건물이라고 해야 섬 전체를 통틀어 해안가 언덕 위 드문드문 서있는 방갈로 22개가 고작이다. 거기선 태곳적 바다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해풍과 해수에 강한 풀밭 사이로 좁게 난 두 줄기의 오솔길엔 작고 하얀 자갈이 덮여있다. 양쪽으로 늘어선 야자수는 길에 그림자를 드리워 방문객에게 ‘바닷바람과 함께하는 산책’ 기회를 선사한다. 게스트하우스이기도 한 방갈로 운영진은 투숙객에게 섬 인근에서 잡히는 물고기와 텃밭에서 기른 작물로 만든 식사를 포함,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뿐 아니다. 이곳에 묵는 사람들은 장-미셸 쿠스토 캐리비언 다이빙센터(Jean-Michel Cousteau Caribbean diving center)의 도움을 받아 스노클링·다이빙·카약·요트 등을 즐길 수 있다. 장-미셸 쿠스토는 ‘다이빙의 아버지’로 알려진 프랑스 해양 탐사가. 그가 캐리비언의 수천 개 섬 중 프티상뱅상에 자신의 이름을 딴 다이빙센터를 건립했단 사실은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해양 레저 활동의 수준을 가늠케 한다.

“과도한 SNS 몰입, 뇌 구조 바꾼다”

휴대폰 금지 마크

위 글은 온라인 여행 안내·예약 웹사이트 ‘패덤(Fathom)’이 선정한 ‘2018년 10대 오프더그리드(off-the-grid) 여행지’ 중 세 장소에 대한 설명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세 곳 모두 대단히 특권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드러지는 공통점은 TV·유선전화·스마트폰·인터넷을 일체 사용할 수 없단 사실이다.

오프더그리드의 원래 뜻은 ‘전기 시설 없이도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나 생활 방식’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보다 ‘인터넷 등 각종 커넥티비티(connectivity)와의 단절’이란 뜻에 좀 더 방점이 찍힌다. 이런 장소가 새삼 세계인의 이목을 끄는 이유는 뭘까? 그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가 닿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다.

디지털 디톡스. 전 세계 유수 정보통신기술(ICT) 전문 매체가 올 한 해 업계 주요 화두로 꼽은 개념이다. 디톡스는 ‘독성’을 뜻하는 영단어 ‘톡신(toxin)’이 어원이다. ‘해독하다’는 뜻의 영단어 ‘디톡시파이(detoxify)’를 줄여 쓴 형태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디지털 디톡스는 ‘디지털 기술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쌓인 체내 독성을 빼내는 일’ 정도로 해석된다.

허공에 떠 있는 사람의 뇌와 그 뇌를 바라보는 남성

디지털 디톡스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배경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최근 논의가 숨어있다. 실제로 미국 컴퓨터과학자 주디스 도나스(Judith Donath)[1]는 일찍이 “SNS에 과도하게 몰입하면 뇌 구조 자체가 바뀐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 뇌에선 ‘도파민(dopamine)’이란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성취감과 관련이 있다. 즉 이성과의 성(性)적 관계나 주변 사람들과의 사회 관계, 생계 관련 임무 등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일에 대해 뚜렷이 인지되는 자극을 받고 그에 성공적으로 대응하면 도파민이 분비된다.

2008년, 도나스는 뇌과학 실험을 통해 SNS에서 종종 쓰이는 (“띵”처럼 들리는) 알림음이 도파민 분비를 자극한단 사실을 확인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SNS의 힘이 아니라면 관계 유지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 이들이 전하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인간 뇌는 그걸 자신이 많은 공을 들여 성취한 성과라고 판단한 후 일종의 ‘보상’ 개념으로 도파민을 분비한단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쉽게, 그리고 자주 도파민이 분비되면 뇌는 “뭔가 이상하다”고 판단한다. 그 결과, 이번엔 도파민 수용체 개수를 줄여 도파민이 분비되더라도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게 만든다.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머리 그림 두 명의 머리 안에는 테트리스 블록이 들어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인간 뇌는 “웬만한 성취엔 보상기제를 발동하지 않는” 구조로 경색된다. 그렇게 바뀐 뇌 소유자는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아름다운 경치를 접할 때, 고마운 일을 겪었을 때에도 별 감흥이 없다. “비(非)사회적”이란 평가를 받기 쉬울 뿐 아니라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의 가치도 이해하지 못한다. 정신뿐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이상이 올 수 있다. 도파민 분비 이상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피로물질이나 체내에 유입되는 유해물질 해소를 막는다. 그 결과, 만성피로증후군 등으로 인해 더 심각한 신체 이상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이는 마약·알코올 등 중독성 물질에 자주 접했을 때나 도박 등 사행성 행동에 수 차례 노출됐을 때 발생하는 현상과 유사하다. SNS에 중독됐을 때의 부작용이 얼마나 엄청난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도나스는 TED 강연을 비롯, 다양한 방식으로 ‘균형 잡힌 디지털 라이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디지털 프리’ 체험, 심신 회복 효과

깨진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사람의 손

인간이 기술을 개발하는 건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 속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을 찾기 위해서”다. 특정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돼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모색에 나선다. 디지털 디톡스도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과 밀접한 일상이 이어지며 ‘디지털 기기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인간’이 문제로 떠오르자, 그 해소법의 하나로 제안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디톡스 실천 요령 중 가장 확실한 건 전자파와 디지털 기기 없는 공간에서 지내는 것이다. 단, 그 자릴 채우는 건 인간에게 ‘원초적이면서도 진정한 기쁨을 주는’ 환경적 자극이어야 한다. 가장 확실한 건 자연의 힘이다. 손상되지 않은 자연을 벗 삼아 그것과 일체감을 느끼며 일상의 압박감을 잊고 지내면 몸도 마음도 회복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실제 사례도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힐링 정보 웹사이트 ‘건강과 웰빙 돌보기(Taking care of your health and well-being)’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5%는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지냈던 체험을 통해 심신이 회복됐고 자신감도 되찾았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소개한 세 장소는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기에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갖춘 공간이다. 문제는 희소가치 때문에 누구나 그런 장소를 이용할 수 없단 사실. 이 때문에 최근엔 접근성이 좋고 일상에서도 충분히 다가갈 수 있는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관심과 그를 위한 노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숲 속에 있는 여러 채의 텐트들

대표적 형태가 일명 ‘디지털 디톡스 캠프’다. 참가자는 휴가 도중 며칠간 일정 장소, 이를테면 숲 속 캠핑장에 한데 모여 시간을 보낸다. 보유하고 있던 디지털 기기 일체는 입소하자마자 주최 측에 맡기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행사는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스카우트 캠프에서처럼 처음 만나는 이들과 아무런 경계심 없이 자연에서 뛰노는 한편, 명상과 힐링 체험까지 더할 수 있는 게 특징. 최근엔 스웨덴·노르웨이·영국 등 유럽 국가에서도 이런 캠프가 늘고 있다. 다만 미국·캐나다 행사와 비교할 때 ‘놀이’보단 명상이나 영적 차원에서의 프로그램이 중시되는 특성을 보인다.

이런 캠프에선 공통적으로 지켜져야 할 수칙이 몇 가지 있다. 첫째, 기간 중 디지털 기기와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일단 캠프에 합류한 후엔 외부와의 연결 가능성이 완벽히 차단된다. (어떤 행사는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치러지기도 한다.) 둘째, 모든 참가자는 본명 대신 별명을 사용하며 직업이나 나이에 관한 질문은 삼가야 한다. 셋째, 사진 촬영 역시 금지된다. 망가진 자신의 모습이 인스타그램 등에 올려질 가능성 따위, 걱정할 필요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사무실서, 집에서… “따라 해보세요”

디지털 디톡스 개념은 최근 점점 더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온라인 공간을 조금만 뒤져보면 ‘가정(혹은 사무실)에서 디지털 디톡스 실천하는 법’ 같은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세부 사항은 조금씩 다르지만 몇 가지 원칙은 있다. 가능한 한 ‘플러그 뺀(unplugged)’ 상태를 유지하란 것, 뭐든 되도록 직접 접촉하고 체험하란 것, 그리고 할 수 있으면 자연 요소를 도입하란 것 등이 대표적이다.

아래는 당장 일상에서 실천해볼 수 있는 요령 위주로 정리한 것이다.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피로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아래 항목을 스크랩해뒀다 지금부터라도 작은 것부터 하나씩 ‘디톡스’ 해보면 어떨까?

[박스] 일상에서 간단히 따라 하는 디지털 디톡스 사무실에서 - 회의 할 때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갖고 들어가지 않기 - 짧더라도 자주 휴식하며 깊은 심호흡이나 명상하기 - 주말엔 컴퓨터 없이 지내기 가정에서 - 침실에 디지털 기기 갖고 들어가지 않기(불가피한 경우 아니라면 공유기 등 송출 장치 끄기) - 식사할 때엔 TV 끄고 디지털 기기는 무음으로 해 방에 두고 나오기 - 최대한 자주 환기하고 가까운 곳에 공기 정화 기능 있는 식물 두기


[1]미디어아트 전문가. 인간과 컴퓨터 간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해왔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내 전문가 커뮤니티 ‘소셜미디어그룹’ 창립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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