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 S, 카자흐스탄 초원서 말·양과 씨름하고 ‘쇼칸’ 되기까지

201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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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프로듀서 S, 카자흐스탄 초원서 말, 양과 씨름하고 '쇼칸' 되기까지 / 삼성전자 기업 영상 'looking for lost livestock' 제작 후기 / 스페셜 리포트는 풍부한 취재 노하우와 기사 작성 능력을 겸비한 뉴스룸 전문 작가 필진과 함께하는 기획 콘텐츠입니다. 최신 업계 동향과 IT 트렌드 분석, 각계 전문가 인터뷰 등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주 1회 뉴스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 이 글은 실제 영상 제작에 참여했던 스태프와의 인터뷰 내용을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한 결과물입니다
∙ 본문에 삽입된 사진은 전부 갤럭시 S9로 촬영됐습니다

“어떡하죠? 지금 옐다르가 자기 말(馬)이 사라졌다고 정신이 없는데….”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지 사흘째. 별 탈 없이 이어지던 촬영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이번 영상의 사실상 주인공인 19세 목동(牧童) 옐다르가 ‘멘붕(멘탈 붕괴)’에 빠져버렸기 때문. 간밤에 방목해둔 말들이 돌아오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목축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에게 말은 곧 재산이었다. 당연하게도 소년은 만사 제쳐두고 사라진 말을 찾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말은 천천히 찾고 일단 촬영부터 하자”는 말(言)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고심 끝에 결국 결단을 내렸다. “안 되겠다. 촬영이고 뭐고, 다 같이 말부터 찾자!”

카자흐스탄 믕즐크 지역

▲아무리 둘러봐도 끝없는 초원과 산악지대가 전부인 카자흐스탄 믕즐크 지역

믕즐크 지역 초원의 흔한 풍경

▲믕즐크 지역 주민은 여느 카자흐스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목축업에 종사한다. 주된 대상은 카자흐스탄인의 주식(主食)이기도 한 말과 양. 드넓은 초원에 동물들을 풀어 키우기 때문에 풀을 뜯는 말 떼나 양 떼를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촬영 직전 사라진 말 떼… “일단 녀석들부터 찾자”

여긴 카자흐스탄 믕즐크(Mynjylyk) 지역. 카자흐스탄 남동부 중심 도시 알마티에서 서쪽으로 여덟 시간가량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산악지대다. 우리 팀이 이곳을 찾은 건 ‘특별한 프로젝트’를 동행 취재하기 위해서다. 삼성투모로우솔루션<아래 박스 참조>에서 만난 두 팀이 현지 조사를 위해 이곳에 모였고, 우린 그 과정을 영상에 담아내기로 한 것.

삼성 투모로우 솔루션(Samsung Tomorrow Solutions)  사회 속 불편 요소를 찾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삼성전자의 대표적 사회공헌 공모전으로 2013년 시작됐다. △교육 △건강·의료 △환경·안전 △지역사회 등 4개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모집하며 나이나 소속에 제한 없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결선 진출 팀엔 삼성전자 임직원과 각 분야 전문가의 멘토링 기회가 주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최종 심사를 거쳐 11월 중 수상자가 결정된다. 수상 팀 중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이 기대되는 솔루션엔 사회 적용과 확산을 위해 추가 금액이 지원되기도 한다.

‘라이브스톡’ 팀은 지난해 ‘코소로스’란 팀명으로 삼성투모로우솔루션 ‘아이디어’ 부문 대상을 받았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자란 이들로 구성된 팀답게 이들이 제안한 아이디어는 카자흐스탄 유목민의 고충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카자흐스탄 유목민 대다수는 방목해 키운 가축을 팔아 생계를 꾸린다. 앞서 한바탕 ‘말 분실 소동’을 일으킨 옐다르 역시 그중 한 명이다. 유목(遊牧). 자못 낭만적으로 들리기까지 하는 단어의 첫인상과 달리 실제 유목민의 삶은 낭만과 거리가 멀다. 일단 그들의 하루는 온통 가축에 매여있다. 초원에 풀어둔 가축을 불러모으고 마릿수를 일일이 확인한 후 상품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 관리하는 일 자체가 엄청난 육체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방목 과정에서 도난이나 분실, 늑대 습격 등으로 잃어버리는 가축이 많을뿐더러 그로 인한 손해도 막심하다. 일이 워낙 고되다 보니 일정 수준 이상 나이를 먹으면 더 이상 종사하기 어렵지만 목축업에 도전하는 젊은이는 날로 줄어드는 추세다. 가장 큰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비효율적 운영 방식. 이런저런 문제가 쌓이며 한때 카자흐스탄의 대표 산업이었던 목축업의 명맥은 눈에 띄게 끊기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라이브스톡 팀원들이 주목한 건 첨단 정보통신(IT) 기술이었다. 가축에 일종의 인식 기기를 부착, 통신 기술을 활용해 가축의 위치와 관련 정보를 가축 주인에게 알려주는 서비스를 고안한 것. 이 아이디어가 실제로 구현되면 유목민은 더 이상 사라진 가축을 찾으려 면적이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을 샅샅이 뒤지며 다니지 않아도 된다. 노동력과 시간이 획기적으로 절약되는 건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잠재적 경제 손실까지 줄일 수 있다.

카자흐스탄 유목민 가축 유실 방지를 위한 목걸이

▲라이브스톡 팀원들은 카자흐스탄 유목민의 가축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키우는 가축의 목에 GPS 송신기를 부착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이 기기엔 통신 기능이 탑재돼 가축 위치 등의 정보를 가축 주인의 스마트폰에 표시해준다. 그나저나 이역만리 카자흐스탄 초원에서 만난 파란색 ‘삼성(SAMSUNG)’ 글자가 어찌나 반갑던지!

하지만 아이디어를 당장 실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기기 크기가 너무 커 가축이 불편 없이 착용하기에 무리가 있는데다 내구성이 약해 물이나 먼지에 취약했던 것. 오래가지 못하는 배터리 수명도 문제였다. 설사 이 모든 제약을 극복한 기기가 갖춰진다 해도 카자흐스탄 초원의 열악한 통신 환경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라이브스톡 팀은 삼성전자에 SOS를 요청했고 얼마 후 ‘삼성전자 사내 벤처 양성소’ 크리에이티브랩(C-Lab) 소속 ‘아타(ATA)[1]’ 팀이 지원 사격에 나섰다. 아타 팀원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가축에 부착되는 기기 크기를 줄이고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리는 것, 원활한 통신이 가능한 환경을 구축하는 것 등이었다. ‘IT 환경에서 소외된 카자흐스탄 유목민의 삶에 편리를 더하자!’ 하나의 목표 아래 두 팀이 의기투합하는 순간이었다.

라이브스톡팀

▲두 번째 현지 조사에 나선 라이브스톡 팀과 달리 아타 팀이 현장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카자흐스탄 유목민의 현실에 정통한 라이브스톡 팀의 아이디어는 삼성전자 임직원들로 구성된 아타 팀의 기술력을 만나 어떤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까?

촬영 중인 카자흐스탄 소년 옐다르

▲이번 영상의 주인공인 ‘열아홉 목동’ 옐다르(사진 맨 왼쪽)는 촬영 내내 다정다감하고 친절했지만 간밤에 방목해둔 말들이 돌아오지 않자 금세 평정심을 잃고 우왕좌왕했다. 결국 촬영 스태프 전원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한동안 ‘옐다르 말 찾기’에 나서야 했다

꼬박 이틀 만에 먹구름 뚫고 건진 일출… ‘됐다!’

우리 일행이 알마티에 도착한 건 어젯밤 10시. 일찌감치 내려앉은 어둠으로 촬영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믕즐크로 이동한 터였다. 이동 경로는 대부분 편도 1차선 산길. 그나마도 너무 좁아 툭하면 차 바퀴가 길 옆으로 빠졌다. 믕즐크에 도착한 건 오후 여섯 시. ‘1000마리의 말’이란 어원 때문일까, 온통 초원과 산인 믕즐크 일대 곳곳에서 어렵잖게 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민 대부분이 말을 방목, 사육하며 산다”는 현지 스태프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믕즐크의 날씨는 세 계절을 하나로 모은 듯했다. 밤부터 새벽녘까진 패딩 점퍼가 필요할 만큼의 초겨울 추위가 몰려왔지만 오전 날씨는 선선한 봄 같았고 정오 무렵이 되자 한여름처럼 햇볕이 피부를 뜨겁게 달궜다. 가벼운 윈드브레이커[2]에 정수리 부분이 뚫린 선바이저[3]만 챙겨간 덕(?)에 밤엔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로, 한낮엔 머리 전체가 지끈거리는 더위로 각각 고생해야 했다.

하지만 몸이 힘든 건 마음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온전히 촬영에 몰두할 수 있는 날은 단 이틀. 그 안에 준비해 간 그림을 전부 뽑아내야 한다, 는 부담은 일정 내내 우리 팀을 따라 다녔다.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르는 날씨도 큰 장벽이었다. 이번 영상에서 가장 욕심을 부린 건 일출 광경 촬영이었다. ‘광활한 초원 저편에서 붉게 솟아 오르는 태양을 카메라에 담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일행은 그 한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세 시간도 채 못 자고 일어나 일출 시각 한참 전부터 여기저기 카메라를 설치한 후 대기했다. 몸은 고됐지만 근사한 장면만 잡아낼 수 있다면야! 하지만 첫날 촬영은 잘못된 위치 선정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다.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던 둘째 날 새벽, 신중을 기해 카메라 위치를 다시 잡았다. 저 멀리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가슴 졸이며 렌즈를 바라보는데 아뿔싸! 해가 떠오를 지점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일출 장면 촬영은 고사하고 운 나쁘면 비바람에 촬영 장비까지 손상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프로님, 어쩌죠? 촬영 계속 진행해요, 철수해요?” 오락가락하는 빗줄기에도 선뜻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장비 걱정이 없진 않았지만 ‘좋은 그림’을 확보하고 싶은 맘이 더 컸다. 결국 일행이 갖고 있던 우산과 수건을 총동원해 카메라를 보호한 채 촬영을 강행했다. 그렇게 탄생한 장면은?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몽즐크 동 트는 모습

▲믕즐크 일대의 광활한 초원 너머로 동이 터오는 모습. 이 장면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 일행이 들인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양고기에 ‘카자흐어 이름’ 선물까지… “감사합니다”

옐다르와 우리 일행을 애태웠던 말들은 한나절쯤 후 무사히 ‘원대복귀’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말은 일종의 귀소 본능을 갖고 있어 이번 경우처럼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도 제 발로 원래 있던 곳을 찾아오곤 한단다.) 그런데 이번엔 양(羊)이 문제였다. 밤새 방목해둔 옐다르의 양이 축사로 돌아오지 않자, 옐다르는 다시 안절부절못했다. “양들이 홀로 떠돌다 멀리 사라져버리기 전에 우리로 안전하게 되돌려놔야 해요!” 그의 생계가 걸린 일, 속은 타 들어갔지만 이번에도 촬영을 강제할 순 없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야속하게 자꾸만 흘러갔다.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론은 하나, 촬영보다 양 찾는 게 우선이었다. 양들은 우리를 떠난 이튿날 아침이 될 때까지 눈에 띄지 않았다. 티는 못 냈지만 서서히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양을 찾는 틈틈이 쓸 만한 영상을 찍으며 때가 되길 기다렸다.

“프로님, 양 찾았대요! 옐다르가 양 찾아서 돌아오고 있대요!”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한 팀원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하릴없이 흘러간 시간을 만회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영상 구성에 필요한 장면을 지체 없이, 효율적으로 담아내야 한다!

믕즐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르타

▲믕즐크 일대에서 흔히 발견되는 전통 거주지 ‘유르타’를 바깥에서 본 모습

카자흐스탄 전통요리

▲믕즐크 주민들은 먼 나라에서 찾아온 손님들을 따뜻하게 환대했다. 그들이 마련해준 ‘잔치 음식’은 카자흐스탄 전통 방식으로 조리한 양고기 요리였다

솔직히 이번 촬영은 그간 경험한 오지 촬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꽤 수월하게 진행된 편이었다. 피해가기 어려운 의사소통 문제도 현지인이 포함된 라이브스톡 팀 덕분에 깔끔하게 해결됐고, 촬영지에서 만난 현지인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협조적이었다. 인심도 후해 우리 일행이 도착한 이튿날 저녁엔 식사 대접까지 받았다. ‘메인 요리’는 카자흐스탄 전통 방식으로 조리된 양고기였다.

음식보다 더 우릴 감동시켰던 건 그들이 건넨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카자흐스탄어로 된 이름이 그것. 특유의 친화력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낸 카메라 감독은 ‘구안시(기쁨)’란 이름을, 촬영 현장을 진두에서 지휘한 난 ‘쇼칸(창의력 뛰어난 사람)’이란 이름을 각각 선물 받았다. 구사하는 언어는 다르지만 서로를 챙기고 보듬는 마음만으로 충분히 따뜻했던 시간이었다. 기술 소외 지역을 찾아 기술로 더 나은 내일을 선물하고자 하는 삼성전자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현장이기도 했다.

Looking for Lost Livestock은 삼성전자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1] 카자흐스탄어로 ‘산신령’이란 뜻이다
[2] windbreaker. 어깨나 등을 덥게 하기 위해 입는 스포츠용 점퍼
[3] sun visor. 앞챙만 갖고 만든 헤드기어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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