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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전직 임원 4부작 릴레이 인터뷰 ‘힘내라, 삼성전자!’_② 김준경 전(前) 삼성전자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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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실적 3배 신장시킨 가전 유통 분야의 ‘전설’ 위기 없는 삶이란 없어… “‘삼성전자 DNA’ 믿습니다”

“1978년 삼성전자 입사. 해외본부, 특히 동남아·중동아프리카 등 소위 ‘힘든 지역’ 전략 유통 전문가. 인도 2년, 싱가포르 4년, 모로코 4년, 이란 3년. 국내 영업에서도 ‘문제 부서’ 전략 유통 전문가. 한국 전체에서 영업 실적 꼴찌였던 조직에 들어가 1년 만에 3배 가까이 매출을 신장시킨 유통 분야의 ‘전설’.” 삼성 경력 30년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 들었다면 어떤 모습이 상상되는가. 십중팔구 우락부락한 인상이나 강한 주장, 무서운 돌파력 같은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을까? 지난달 1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 투자 전문 기업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 사무실에서 만난 김준경 전 삼성전자 상무(61,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 감사)의 첫인상은 이런 선입견과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밝고 따뜻한, 어딘가 재밌어 보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위기는 항상 있었어요. 사실 위기 없는 삶이란 없죠. 지금이 위기라고 하지만 해외 시장 개척하던 초창기에 비하면 편한 소리예요. 솔직히 전 위기의식을 느낄 때 더 일이 잘됩니다. 위기를 즐기는 편이라고 할까요? ‘잘 안 풀리는 곳’으로 소문 나 모두들 가길 꺼려하면 그런 곳으로 더 가고 싶어지더라고요.”   ‘만년 2위 시장’ 이란서 최고에 도전하다 그의 경력 중 가장 강력한 ‘미션 임파서블’은 ‘이란에서 매출 1억 달러 돌파하기’였다. 삼성전자는 2000년까지만 해도 이란에서 경쟁사에 밀려 만년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현지에 가보니 한마디로 ‘불신(不信)’이 넘쳐 있었다. 이란 내 한국주재원이 현지인을 무시하고 못 믿으니 당연히 현지인들도 본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대했다. “우선 누굴 두고 누굴 내보낼지부터 정리해야 했습니다. 판단하려니 정보가 필요했고, 그러려면 무엇보다 현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했죠.” 김 전 상무는 일단 현지 직원을 일일이 만나 그들의 얘길 충분히 들었다. 그런 다음, 불만에 가득 찬 사람은 내보내고 그 자리를 새로운 얼굴로 채웠다.

02▲ ‘영업의 성패는 인사(人事)에 달려 있다’는 게 김준경 전 상무의 지론이다. 실제로 그는 이란 근무 당시 유능한 인재 선발에 각별히 정성을 쏟았다. 채용된 인력이 자사 제품에 애정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데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란 테헤란엔 샤리프기술대학(Sharif University of Technology)이란 명문대가 있어요. (이란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리안족이 원래 명석한 두뇌로 유명하거든요. 샤리프기술대 캠퍼스를 직접 찾아가 ‘학생들 좀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직원을 뽑고 기존 인력을 정리하기 시작했죠.”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면 ‘(듣는)귀’뿐 아니라 ‘(보는)눈’도 중요하다. “지금도 기억나는 현지인이 한 명 있어요. 영업점에서 비서로 근무했던 친구였죠. 말수도 적고 행동도 굼떠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좀 모자라는 사람’ 취급했는데 제 눈엔 그리 보이지 않았어요. 눈빛이 똘망똘망한 게 이해가 빠른 것 같더라고요. 몇 번 일을 시켜봤더니 예상대로 차근차근 잘해내더군요.” 김 전 상무는 그에게 마케팅 업무를 맡겼다. “사람 하나 바꿨을 뿐인데 회사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요. 그 친구가 누구든 조용히 대하면서도 차근차근 설득해나가며 실적을 올려가는 거예요. 알고 보니 팔레비왕조 때부터 이어져 온 명문가 출신이어서 네트워크도 훌륭했죠. ‘숨은 진주’를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눈과 귀, 낯선 이에게도 활짝 열어라 ‘눈과 귀는 익숙한 이를 위해서만 쓰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게 김 전 상무의 지론이다. “후진국 지법인 주재원일수록 전임자 얘길 그대로 믿고 지레 업무의 선(線)을 그어버립니다. 보통 그런 곳일수록 한국인끼리 몰려다니죠. 단적인 예로 제가 근무할 당시 이란 주재 한국 직원들 사이에서 ‘이란에선 되도록 현금만 써야 한다’는 얘기가 돌았어요. 당연히 다들 현금을 쌓아놓고 지냈죠.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입니까. 좀 알아보니 현지인들끼리는 수표도 쓰더라고요. 이후 직원들에게 ‘수표 말곤 거래하지 말라’고 했죠. 그랬더니 아무런 문제 없이 수표 거래가 가능해졌어요.”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종종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 하지만 김 전 상무는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자신의 고정 관념을 깨고 ‘현장’의 모습과 소리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헤란 중심가에 ‘조무리’란 이름의 전자상가가 있어요. 한 번은 그곳을 돌며 시장조사를 하는데 상인 대다수가 삼성 제품을 잘 모르는 거예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상점 주인과 판매 담당자 교육은 원칙적으로 본사 담당인데 정작 본사 임직원이 영어를 못했던 거죠.”

03▲ 이란 테헤란 시내에 내걸린 삼성전자 광고판

김 전 상무는 그길로 샤리프기술대 출신 인재를 직접 채용, 본사 임직원 대상 영어 제품 교육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교육 이수자에겐 각자 배운 대로 현지 영업점 직원을 가르치도록 했다. 원하는 영업점마다 삼성전자 광고판을 유상지원해주는 전략도 병행했다. 매출 실적은 이내 빠른 속도로 늘었다. 실제로 미국 브랜드가 ‘부동의 1위’를 고수해 온 이란 냉장고 시장은 김 전 상무 부임 후 1년도 안 돼 삼성전자가 평정했다. “하루는 일본 경쟁업체 지점장이 절 찾아 왔어요. 원래 자기 회사 청소기가 이란 매출 1위였는데 삼성전자가 어떻게 그 자리를 차지했느냐고 묻더군요. 사실 특별한 전략이랄 건 없어요. 제품 교육 제대로 해주고 필요한 광고 지원 아끼지 않고…. 그러다 보니 9500만 달러 시장이 1년 만에 1억5600만 달러 규모로 커졌습니다. 지금 이란 내 삼성전자 매출은 수십 억 달러에 이르죠. 조무리 상가 전체가 마치 ‘삼성전자 상가’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니까요.”

04▲ 본사의 지원 덕에 이란 내 삼성전자 영업점들은 적극적으로 광고 간판을 세울 수 있었다. 일찌감치 시각적 광고 효과의 중요성을 간파한 김 전 상무의 노력이 이룬 성과였다

05▲ 2003년 이란에선 삼성전자 후원으로 전국 규모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를 계기로 이란 내 삼성전자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당시 김 전 상무(맨 오른쪽)는 이 행사의 후원을 성사시키기 위해 삼성전자 본사를 포함, 올림픽위원회와 현지 기관장까지 직접 설득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힘들수록 ‘정공법’이 최선의 선택 2004년, 이란에서 귀국한 김 전 상무에게 떨어진 첫 번째 업무는 ‘국내영업 전략유통 파트 총지휘’였다. 그가 맡은 조직은 ‘신(新)유통팀’이란 명칭만 그럴듯했지 실적은 국내 시장 중 최하였다. 당시 직원들은 이 부서를 정식 이름 대신 ‘신고통팀’이란 별명으로 부르며 기피했다. 신유통팀 부임 이후 김 전 상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사 상태 점검’이었다. 팀원들의 장단점을 파악한 그는 곧 전국 지점과 본사 스태프를 전부 불러 모아 일명 ‘1대 100’ 대담을 시작했다. 각자 지닌 불만과 마음속에 둔 개선 방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였다. 무수한 얘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문제의 ‘진짜 원인’도 드러났다. “적지 않은 영업점이 초기 매출 실적을 올리기 위해 카드깡이나 선(先)매출 등의 ‘반칙’을 저지릅니다. 수지를 맞추지 못할 경우 그 부분은 고스란히 부정 매출로 잡히죠. 피해가 점점 커지면 결국 영업 자체가 불가능해지고요.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제품 유통 과정에서 거듭되는 ‘거짓말’이었어요. 자기 책임을 피하고 눈앞에 닥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크고 작은 거짓말이 거래 업체와 영업점 내에 만연해 있었던 거죠.” 그는 과감하게 ‘정공법’을 택했다. “장사를 하려면 머리를 많이 써야 해요.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지죠. 하지만 정도(正道)를 걸으면 적어도 틀린 말은 안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힘들어도 일의 진행에 막힘이 없어져요.” 실제로 그는 부정 매출 건수가 적발될 때마다 ‘엄중 징계’에 부쳤다. 반면, 직원들이 현장 문제를 자진해 ‘조기 신고’ 하면 즉각 포상했다. 실적이 조금이라도 오른 영업점엔 후한 수당과 칭찬을 건넸다. 매년 2회(여름·겨울) 전국 유통업체 지점장과 그 가족을 격려하기 위해 2박3일 캠프도 열었다. 그 결과, 1년 만에 4000억 원 규모이던 연(年) 매출이 1조 원으로 뛰었다.   “못 믿겠으면 쓰지 말고 쓴 후엔 믿어라” “일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신뢰’입니다. 현장의 소릴 들을 때도 이 점을 유념해야 해요. 세 곳에서 똑같은 말을 하면 그 얘긴 맞는다고 봐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일도 진전되지 않아요. 물론 ‘어느 지점에서 믿어야 하느냐’는 어디까지나 경험에 기반한 감(感)이죠. 고 이병철 삼성전자 회장님은 ‘믿지 않으면 쓰지 말고 일단 쓰게 되면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상대방이 날 믿게 하려면 처음부터 솔직해져야 합니다. 일단 시작한 거짓말은 어디선가 들통 나게 돼 있어요. 그 단계를 넘어서면 신뢰를 잃는 건 시간 문제예요.”

06▲ 김 전 상무는 지난 30년간 삼성전자인으로 지내며 “아무리 힘들어도 거짓말은 금물”이란 소신을 꼿꼿하게 지켰다

그가 신뢰 이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또 하나는 ‘연결감’이다. “함께 일하는 이들과 뭔지 모르게 하나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제가 식사 시간을 중시하는 것도 그런 소신 때문이에요. 해외 근무 시절, ‘한국인이라면 입에도 못 댈 것’이라며 다들 만류했던 현지 음식도 맛있게 먹었어요. ‘이렇게 많은 현지인이 매일 먹고 사는 음식인데 못 먹을 게 뭐 있어?’라고 생각했거든요. 매사 그런 자세로 임하면 소통은 저절로 이뤄집니다. 물론 좀 더 효과적인 소통을 원한다면 교육 등의 전략이 더해져야죠. 저 역시 그런 방식으로 ‘세계 속 삼성전자’의 위상을 조금씩 높여갔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 위기론’에 대한 생각을 묻자 김 전 상무는 명쾌한 대답을 내놓았다. “삼성전자엔 ‘삼성전자만의 DNA’가 있습니다. 위기 앞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오히려 강해지는 게 이 DNA의 특징이죠.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겠지만 전자업계의 변화는 특히 극심합니다. 크고 작은 변화가 있을 때마다 흔들렸다면 삼성전자는 진작 실패한 기업이 됐을 거예요.” 김 전 상무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만들고 몸으로 부딪혀 왔다. 그 결과는 재임 중 그가 보여준 실적과 성과가 증명한다. 짧지 않은 인터뷰 시간 동안 시종일관 유쾌함을 유지하며 자신의 얘길 들려주는 그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삼성인은 DNA가 다른 걸까?’

07▲ 그는 “위기 앞에서 오히려 더 강해지는 ‘삼성전자 DNA’의 저력을 믿는다”며 후배들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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