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사롭지 않은’ 폭염이 두려운, 진짜 이유

2018/08/23 by 전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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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예사롭지 않은’ 폭염이 두려운, 진짜 이유 / 세상을 잇(IT)는 이야기 / "IT 산업의 현주소를 읽다!" 급변하는 IT분야에선 매일같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이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IT 트렌드와 업계 흐름을 읽고 가치 있는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한 이유죠.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날카로운 통찰로 풀어낼 IT산업의 현주소와 미래, 삼성전자 뉴스룸의 기획 연재. '세상을 잇(IT)는 이야기'를 통해 만나보세요

이번 가을은 더없이 반가울 것이다. 올여름 서울 수은주가 39.6℃까지 올라갔다. 평균 체온보다 3℃ 높은 수치다. 111년 만의 최고 기록이라고 한다. 2주간 계속된 열대야에 나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조금만 참으면 가을’이라며 마음을 다독이지만 한편에선 “이제 시작”이란 얘기도 들린다. “올여름 더위는 1회성이 아니라 지구온난화 현상 때문에 발생한 것인 만큼 앞으로도 자주 나타날 것이다.’’ 100년 이상 관측된 기상 자료를 토대로 최근 논문을 발표한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의 말이다.

재앙은 늘 “조금씩, 그러다 갑자기” 닥친다

세계는 산업혁명 이후 1℃ 이상 더워진 상태다. 하지만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2℃ 아래로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는 파리 기후협약의 달성 가능성은 5%에 불과하다

한반도만의 일도 아니다. 북반구 곳곳이 이상고온으로 끓고 있다. 지난 1일<현지 시각>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 주말판에 장문의 기후변화 리포트[1]가 떠서 한참 읽어봤다. 요지는 이렇다.

세계는 산업혁명 이후 평균 1℃ 이상 더워진 상태다. 그 수치가 2℃를 넘어가면 세계 열대 산호초 괴멸, 수 미터에 이르는 해수면 상승, 페르시아만 침잠 등 여러 가지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나마 국제사회는 2015년 간신히 파리 기후협약에 합의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2℃ 아래로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미 진행된 온난화 수준과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으로 미뤄보면 달성 가능성은 20분의 1 정도다. 게다가 구속력도, 강제력도 없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이 3℃에 이르면 북극에 숲이 생기고 빙하가 녹으면서 해안 도시 대부분이 잠길 수 있다. 4℃ 상승하면 문제는 더 커진다. 유럽은 상시적으로 가뭄에 시달리고 중국∙인도∙방글라데시 영토 중 상당 부분은 사막화될 것이다. 태평양 폴리네시아 섬들은 줄줄이 침수되고 미국 남서부의 대부분은 거주 불능 지역으로 변할 전망이다.

지구를 덥게 하는 사람의 모습

기사엔 “지금 같은 고온 사태는 이미 예견됐던 것이며, 피할 수도 있었다”는 회한이 담겨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10년간 기후변화를 이미 예측한 일부 과학자와 운동가의 노력으로 국제사회가 개선 작업에 착수할 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가 얽힌 산업계 로비와 각국 정부의 국가이기주의 때문에 모든 노력은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그 주말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커버스토리에서 같은 주제를 다뤘다. 제목은 ‘사선에서(In the Line of Fire)’, 부제는 “세계는 기후변화와의 전쟁에서 지고 있다”였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UN 산하 기구 IPCC는 2007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지구온난화 현상의 원인은 인간이란 사실을 명확히 밝혀냈다”는 게 당시 노벨위원회가 밝힌 선정 이유였다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국제연합(UN)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2]이란 기구가 있다. 2007년 앨 고어(Al Gore) 전(前) 미국 부통령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당시 선정 이유는 이랬다. “인간이 야기한 기후변화에 대한 지적 연구를 상당히 증진했을 뿐 아니라 상호 협력 필요성이 있는 사안과 관련,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노벨위원회는 “1980년대 지구온난화 현상은 그저 흥미 있는 가설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이후 IPCC의 활동 등에 힘입어 보다 확실한 증거를 얻었다”며 “이로써 최근 수 년간 계속돼온 지구온난화 현상의 원인이 인간(의 활동)이란 사실은 더욱 명확해졌다”고 밝혔다.

2006년 고어는 지구온난화 현상을 다룬 다큐멘터리(같은 해 책으로도 출간됐다) ‘불편한 진실’에 출연하며 부통령 시절 당시보다 뜨거운 조명을 받았다. 목전의 열대야는 어쩌면 당시 다큐멘터리 속 ‘불편’이 실현된 형태인지도 모른다. (헤밍웨이[3]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4]엔 이런 대화가 등장한다. “왜 파산한 거지?” “두 가지였어. 조금씩 그러다 갑자기.” 재앙은 늘 그런 식으로 닥친다.)

미래 좌우할 과학, 과학에 무관심한 사람들

사실 이 모든 소동의 저변엔 과학이 있다.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된 산업화가 과학혁명, 정확히 말하면 과학기술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기술 문제는 더없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선 다음 칼럼에서 따로 쓰겠다.) 기후변화를 감지하고 위험을 예측한 것 역시 과학자들이었다. 앞으로의 기후변화 해법 또한 과학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학에서 출발해 과학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게 현대 인류의 운명이다.

올여름 이상고온을 둘러싼 소동의 저변엔 과학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의 의미와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 사회에선 특히 그렇다

그런데도 오늘날 과학의 의미와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여전히 이공 계통 영역 혹은 과학자의 전담 분야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공론장에서 오가는 식자(識者)들의 논쟁도 과학적 태도와는 거리가 있다. 신문 기사나 칼럼에도 통계 수치나 최신 연구가 근거로 제시되는 경우는 드물다. 역사나 문헌 속 일화와 교훈, 주변 경험에서 나온 인상 비평이나 직관적 의견이 넘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과를 든 뉴턴, 둥근 지구본을 든 갈릴레오, 아인슈타인 등 유명하고 확실한 과학자들의 모습과 플라톤, 소크라테스 등 그리스 철학자들의 모습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일반 시민의 이미지

하지만 과학이야말로 오늘날 인류가 놓인 상황과 앞날까지 좌우할 주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일반 시민의 과학적 이해와 사고의 필요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과학’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코페르니쿠스[5]나 갈릴레이[6], 뉴턴[7]을 떠올린다. 하나같이 지동설이나 만유인력 같은 근대 과학 이론을 정립한 주역들이다. 학창 시절 과학 수업의 영향이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에 대한 이해는 훨씬 깊고 또 넓어졌다. 혹자는 그 기원을 고대 철학이나 지식의 출현에서 찾기도 한다. 카를로 로벨리[8]는 플라톤[9]의 ‘파이돈’[10]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11]를 거명한다.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지구는 구형이며 사람들은 그 속의 커다란 골짜기에서 산다”고 자기 생각을 말한다. 그러곤 덧붙인다. “나는 확신하지 않는다.” 로벨리는 이 같은 ‘무지(無知)의 자각’을 과학적 사고의 핵심으로 지목했다.

과학? 과학자 전유물 아닌 ‘인류 공동 기획’

왼편의 과학자와 오른쪽의 일반인이 함께 과학이라는 퍼즐을 맞추는 모습 퍼즐안의 텍스트는 ‘SCIENCE’

과학적 사고는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한 자각과 깊이 관련돼있다. 인간적 결점을 겸허하게 자인하고 성실히 극복하려는 최선의 노력이 곧 과학이란 얘기다. 과학은 진리의 총합이 아니라 계속되는 질문과 잠정적 답변의 반복이다. 칼 포퍼[12]는 ‘경험과 대조해 오류를 제거해가는 과정’을 과학 활동으로 봤다. 과학적 진리란 ‘최선의 설명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것’이지만 그 역시 진화한다. 사실이란 환경 속에서 설명력으로 살아남는 게 진리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미더운 건 확답을 제시해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의지할 수 있는 최선이어서다. 그렇게 자신할 수 있는 건 과학이야말로 어떤 의문이나 비판에도 열려있고 수정 가능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잘못을 시인하는 정직성, 그리고 확신에 도전하는 용기 같은 덕목이 필요하다.

과학적 해결이 ‘과학자에게 결정을 맡긴다’와 동의어일 순 없다. 과학자는 보다 현명한 결정을 돕는 사람일 뿐, 궁극적 결정은 공동체의 몫이다. 과학이 민주주의와 직결될 수 있는 이유다

과학은 과학자들만의 일도 아니다. 그보다 인류의 공동 기획에 가깝다. 과학적 해결이 ‘과학자에게 결정을 맡긴다’와 동의어일 순 없다. 과학자는 그저 ‘좀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사람이다.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고 그 결과는 뭔지 알려주는 게 그들의 역할이다. 물론 그것만 해도 큰 도움이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지만 과학자는 특정 선택이 지니는 가치를 환산, 설명함으로써 선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물론 궁극적 결정은 공동체의 몫이다. 이렇게 볼 때 과학은 민주주의와도 직결된다.

세상에 대한 인류의 지식도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어느 한 천재의 의식적 산물’이라기보다 ‘공동체 의존적이면서 사회적인 협력물’이란 인식이 힘을 얻고 있다. 인지과학자인 스티븐 슬로먼(Steven Sloman)과 필립 페른백(Philip Fernbach)은 지난해 함께 펴낸 책 ‘지식의 착각’[13]에서 지식을 ‘인지 노동의 분배’로 설명한다. 인간의 뇌는 놀라운 기관이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그래서 개인은 자신의 뇌뿐 아니라 다른 데 저장된 지식에도 의존한다. 자신의 몸과 주변 환경, 타인, 집단도 모자라 이젠 ‘외장 두뇌’ 격인 컴퓨터와 클라우드 서버까지 사용한다. 인간의 마음은 외장 정보도 자신의 머릿속 정보와 연속선상에 있는 걸로 인식, 활용하도록 진화해왔다. 그래서일까, 현대인은 스마트폰을 잠시 놓고 오거나 네트워크 접속에 필요한 패스워드를 잊어버리면 두뇌 한쪽을 잃은 것마냥 당황한다. 지식의 연결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가짜 뉴스를 우물에 탄 독약 보듯 하는 건 전부 그런 이유에서다.

“인간은 섬이 아니므로 서로 도우며 살아야”

과학자, 회사원, 주부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협동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이미지

어떤 면에서 건강한 민주주의는 시민사회가 성실한 학습 공동체 같을 때라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한창 때 아테네에선 시민들의 학습과 토론이 이어졌고 로마 시대 도심엔 공공도서관이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을 성가시게 구는 ‘등에(gadfly)’를 자처한 것도 공동체의 무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체 없이 독배(毒杯)를 들었다.

미국 교육학자 앤 브라운(Ann Brown, 1943~1999)은 말한다. “인간은 누구도 섬이 아니며 모든 걸 다 아는 사람도 없다. 생존엔 공동 학습이 필요하다. 이런 상호 의존성은 공동 책임의 분위기와 상호 존중,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촉진한다.”

카를로 로벨리는 ‘모든 순간의 물리학’[14](2016)에서 세상과 지식, 공동체 간 관계를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의 현실은 우리가 함께 구축한 공통의 지식이 교차하는 풍요로운 연결망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이 모든 게 지금 우리가 설명하고 있는 자연 그 자체의 일부입니다. 우린 자연에서 통합된 부분이자,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자연의 표현 방식 중 한 가지로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이런 점이 우리에게 세상의 일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탈리아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문명의 끝을 보기도 전 스스로의 자멸을 의식하는 종(種)이 되지 않을까? 난 그게 정말 두렵다”

로벨리는 같은 책 후반에서 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내 생각에 우리 종(種)도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거북이처럼 자신과 유사한 종을 수천만∙수백만 년간, 즉 인류 역사의 수백 배에 이르는 시간 동안 존재하게 할 만한 능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린 수명이 짧은 종에 속합니다. 게다가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기까지 하죠. 우리가 변화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결과, 기후와 환경은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고 이는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지구엔 별일 아닌, 작은 에피소드일 수 있지만 인간은 아무 피해 없이 지나갈 수 없을 겁니다. 언론과 정치계는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요소를 무시합니다. 아마 지구상에서 개인의 죽음이 불가피하단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종은 우리 인간뿐일 겁니다. 조만간 우리가 만든 문명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 역시 진정으로 멸종에 이르는 모습을 의식적으로 깨달아야 하는 종이 될까 봐 두렵습니다.” 무더위 와중에도 오싹해지는 말 아닌가.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1] Losing Earth: The Decade We Almost Stopped Climate Change
[2]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세계기상기구(WMO)와 UN환경계획(UNEP)이 공동 설립했다
[3] Ernest Hemingway(1899~1961). 미국 작가
[4] 원제 ‘The Sun Also Rises’
[5] Nicolaus Copernicus(1473~1543). 폴란드 천문학자로 지동설을 제창했다
[6] Galileo Galilei(1564~1642). 이탈리아 물리학자∙천문학자. 지동설을 주장해 교황청에서 종교 재판을 받았다
[7] Sir Isaac Newton(1642~1727). 영국 물리학자∙천문학자. 만유인력의 원리를 확립했다
[8] Carlo Rovelli. ‘우주론의 대가’로 평가 받는 이탈리아 이론물리학자.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교 이론물리학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9] Plato.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국가’ 등의 저서를 남겼다
[10] Phaedo.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중 하나.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최후 날 상황을 친구 에케크라테에게 들려주는 내용으로 구성돼있다
[11] Socrate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제자였던 플라톤의 ‘대화편’에 주요 사상이 수록돼 전해진다
[12] Karl R. Popper(1902~1994). 영국 과학철학자로 런던대학 교수를 지냈다. 비판적 합리주의를 주장했다
[13] 원제 ‘The Knowledge Illusion: Why We Never Think Alone’
[14] 원제 ‘Sette bervi lezioni di fisica’. 이탈리아어로 ‘우리는 누구인가, 란 물음에 대한 물리학의 대답’이란 뜻이다

by 전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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