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추격’ 본격화한 인공지능, 최대 걸림돌은?
알파고와 인간 최고수(세계 랭킹 1위) 커제 9단과의 대결은 (대다수의 예상처럼) 알파고의 ‘싱거운 승리’로 끝났다. 지난해 3월 있었던 ‘알파고 대(對) 이세돌 9단’ 간 대결 제목이 ‘챌린지(challenge·도전)’였던 반면, 이번 대국의 주제는 ‘바둑의 미래 서밋(summit·정상회담)’이었다. 인간과 인공지능 간 대결 자체보다 둘의 공존 방안을 모색해보려는 취지가 강했단 뜻이다. 자연히 이번 대결에선 ‘알파고-커제’ 대국만큼이나 일명 ‘페어 바둑(fair~, 프로 기사가 알파고와 팀을 이뤄 또 다른 프로 기사와 알파고로 구성된 팀을 상대하는 방식)’에 시선이 집중됐다.
‘알파고-커제’ 대국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 페어 바둑
이 대국에서 렌샤오 8단 팀은 중반까지 구리 9단 팀에 비해 호흡이 잘 안 맞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종반 들어 승부수가 통하며 역전에 성공했다. 1대 1 대국에선 좀처럼 역전을 허용하지 않던 알파고가 페어 바둑에서 파트너와의 공조 정도에 따라 역전을 허용한 점이 흥미로웠고, 프로 기사들이 종종 알파고의 수를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대결을 지켜보는 내내 ‘앞으로 인간과 인공지능이 팀을 이뤄 출전하는 대회가 늘어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번갈아 가며 착수하는 페어 바둑 외에 인간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대국하는 대회도 생겨날 것이다. 그 단계에 이르면 인간은 인공지능에 정밀한 수 읽기를 맡긴 채 ‘큰 틀에서의 전략’을 짜는 데 집중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바둑은 전혀 새로운 경지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이 같은 현상이 비단 바둑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인간과 컴퓨터 간 협력(multiplicity)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머신 러닝 기술과 대중의 지혜 간 결합은 이미 오래전 현대인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인터넷 검색 엔진 알고리즘이나 스팸 필터가 다수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하루가 다르게 개선되고 있는 것,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사용자에게 유용한 뉴스피드(news feed)가 조직되고 인터넷 서점에서 ‘고객님이 좋아하실 만한 책’이 추천 목록에 떠오르는 것 모두 그 덕분이다.
실제로 오늘날 인공지능 연구는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HCI)에 걸림돌이 되는 음성 인식이나 자연어 처리에 집중하고 있다. 적어도 한동안은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인공지능이 나오기 어려운 만큼, 미래 사회에선 역(逆)으로 인공지능을 보다 잘 헤아리고 적응하는 인간이 각광 받을 것이다.
인간 바둑, 인공지능 바둑보다 탄탄한 팬층 확보하려면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적응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다시 바둑의 예로 돌아가보자. 어떤 장르든 ‘프로(페셔널)’는 팬을 위해 존재한다. 지금껏 대다수의 프로 기사는 “당신이 팬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고 서비스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으레 “좋은 기보를 남기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관중 하나 없는 한국기원 대국실에 둘이 틀어박혀 바둑을 둔 후 (그 대국이 궁금했을 팬들을 위해) 기보를 남겼다.
문제는 어느덧 인공지능 간 기보 수준이 인간 최고수 간 기보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단 사실이다(최근 공개된 알파고 간 기보 50건은 지나치게 난해해 아마추어 바둑 팬은커녕 정상급 프로 기사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인공지능은 실수가 없을 뿐 아니라 창의적이기까지 하다. 자연히 기보의 질적 측면으로만 따지면 인간 프로 기사는 인공지능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기보 자체가 목적이던 시대는 지난 것이다. 따라서 지금 활동 중인 프로 기사라면 기보를 매개로 팬에게 다가갈 방법부터 모색해야 한다.
간혹 TV에서 바둑 중계를 접한다. 대개 승패가 결정된 후 승자 인터뷰가 이어지는데, 그 내용은 천편일률적이다. “이번 판은 운이 좋아 승리했을 뿐이며, 다음 판도 상대가 나보다 강한 만큼 ‘한 수 배운다’는 자세로 겸허하게 임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게 요지다. 이런 식의 인터뷰가 언제까지 바둑 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앞으로의 바둑은 ‘대국자끼리의 복기’를 넘어서야 한다. 팬들을 상대로 자전 해설에 나서는 한편, 주요 승부처에선 ‘흑백 바꿔 두기’ 같은 시도도 감행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대국의 모든 순간, 어떻게 생각하고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파악하기 위해 대국자가 팬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 바둑은 제공할 수 없는’ 서비스로의 차별화가 시급하다. 그렇게 되면 설사 기술적 측면에서 수준이 다소 떨어진다 해도 바둑 팬은 인공지능 바둑 대신 인간 바둑 관전을 택할 것이다.
AI가 ‘사람처럼’ 되려면 에너지 효율 500억 배 향상돼야
구글은 “이번 대국을 끝으로 더 이상 바둑 인공지능은 연구하지 않겠다”며 “추후 목표는 알파고 기술을 활용, 한층 다양한 영역에 적용되는 ‘범용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고 보면 알파고는 바둑‘만’ 잘 둔다. 그것도 19줄 바둑판에서만 위력을 발휘한다.
만약 당장 내일 아침, 20줄 바둑판에서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다시 대결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세돌 9단이 압승을 거둘 게 분명하다. 알파고 신경망에서 바둑판 상황은 ‘한 줄의 숫자 행렬’로 입력되는데 바둑판이 한 줄 늘어나면 그 순서가 전부 헝클어지기 때문. 반면, 인간은 20줄 바둑판에서도 본 실력이 거의 그대로 나온다(물론 ‘바둑판이 평소보다 약간 넓은 것 같다’고 생각할 순 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영국 과학 전문 주간지 ‘네이처(Nature)’의 논문 결과에 따르면 알파고의 인공 신경망은 기껏해야 10만 개 정도의 뉴런을 흉내 낸 형태다. 하지만 인간은 대뇌피질에만 1000억 개의 뉴런을 갖고 있어 훨씬 큰 틀에서의 유형(pattern) 인식이 가능하다. 인간이 바둑을 둘 수 있는 건 물론, 퀴즈를 풀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 모두 그 덕분이다. 이 대목에서 혹자는 말할 수도 있다. ‘그럼 알파고를 100만 대 연결하면 인간처럼 온갖 일을 다 해낼 수 있겠네!’ 물론 가능하다.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단, 걸림돌이 하나 있다. ‘에너지’ 문제다. 이세돌 9단은 밥 한 끼(약 20W) 챙겨 먹고 1000억 개의 뉴런을 가동할 수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알파고는 고작 10만 개의 뉴런을 흉내 내는 데 1MW에 육박하는 전력을 썼다. 결국 알파고 100만 대를 20W 수준에서 돌리려면 에너지 효율이 지금보다 500억 배 향상돼야 한다. 이는 오늘날 반도체 기술 발전 추세만으론 도저히 달성되기 어려운 목표다. ‘날로 정교해지는 반도체 공정에 비례해 에너지 효율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은 이미 수 년 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기업들, ‘머신 러닝 최적화된 프로세서’ 선점 경쟁 치열
구글은 이번 대회 직후 일명 ‘텐서 처리 장치(Tensor Processing Unit, TPU)’ 홍보에 주력했다. 머신 러닝에선 소수점 아래로 길게 내려가는 계산이 굳이 필요하지 않는단 점에 착안, 이 공정을 줄여 계산 효율을 높인 게 TPU의 특징이다. TPU의 입지가 강화되면 현재 인공지능 관련 데이터 처리 장치로 많이 쓰이는 그래픽 처리 장치(Graphics Processing Units, GPU) 시장은 위협 받을 수 있다.
GPU 개발·제조사 엔비디아의 경우, 당장은 기존 GPU로도 장사가 너무 잘 돼 새로운 프로세서를 내놓지 않고 있지만 TPU가 출시되고 관련 시장이 커지면 즉시 TPU에 대응할 제품을 발표할 게 분명하다. 애플 같은 기업도 크고 작은 하드웨어(반도체) 회사를 수직 계열화하며 ‘머신 러닝에 최적화된 프로세서 보유’를 자체 경쟁력으로 갖추기 위해 채비하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뉴로모픽 컴퓨터(neuromorphic computer)[1]나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2]도 에너지 효율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해결책 중 하나로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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