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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 고요하게 스며든다, 캄(calm)테크놀로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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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5월부터 장장 6개월간 영국 수도 런던은, 아마도 평화적 시기로선 역사상 가장 들뜬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소동의 진원지는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공원 하이드파크(Hyde Park)였다. 가로 138m, 세로 564m에 높이 20m가 넘는 초대형 유리 건물이 들어선 것. 훗날 ‘수정궁(Crystal Palace)’이란 애칭이 붙은 이 건물에선 당시 ‘만국산업작품대박람회’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수집된 보물과 예술 작품을 비롯, 철강·기계·섬유 등 당대 첨단을 달리던 영국의 분야별 산업 제품이 줄지어 진열됐다<아래 그림 참조>.

클수록, 시끄러울수록 각광 받았던 산업혁명 초기 기술

엑스포의 본질이 그렇지만 만국산업작품대박람회는 특히 여러모로 ‘보여주기 위한’ 행사였다. 19세기 전반기.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사회적 소요에 시달렸던 영국 사회가 비로소 안정을 되찾은 시점에서 야심 차게 기획된 이벤트이기도 했다. ‘기술이야말로 세계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끄는 열쇠’라 믿고 분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리인 동시에, 산업화 측면에서 18세기까지 프랑스에 밀려왔던 영국이 “이젠 우리가 세계 최고”라 선언하는 기회였다.

18세기 수정궁 모습

수정궁 내부에선 특히 ‘잘 보이는’ 품목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모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인도산(産) 다이아몬드, 유럽에 건너온 것 중 가장 큰 중국산(産) 도자기와 함께 영국의 산업 기술력을 보여주는 품목들은 하나같이 컸고, 보는 이의 의식 중심에 확실히 들어오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목화 솜이 면직물로 변신하기까지의 공정, 철광석에서 강철을 만들어내는 절차가 제각기 재현됐고 △투표 용지 세는 기계 △봉투 제작하는 기계 △곡물 수확하는 기계 등 용도가 분명한 기계 제품도 인기를 끌었다. 클수록,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를 낼수록 관람객의 이목이 집중됐다.

19세기엔 비단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이런 산업 엑스포가 성행했다. 여기서 전시된 품목들은 압도적 기술을 바탕으로 소비자를 유혹, 소비자가 스스로 자신의 일상에 해당 제품을 들여놓게 했다. 19세기 말 출간된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의 단편 소설 ‘광고의 희생자’ 등 다수의 문학 작품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얼리 어댑터(early adopter)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기발한 연기 배출 장치가 달렸고 거실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벽난로, 크기가 욕실의 절반에 육박하는 자동 수세식 변기,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자동 창문 개폐 장치…. 산업 사회를 여는 기술(technology)이란 이처럼 사용자의 인지 영역을 확실히 지배하는, 그래서 더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21세기 기술, ‘요란한 과시’ 대신 ‘고요한 조화’ 택하다

카메라 비교▲18세기 후반 등장했던 카메라 어둠 상자(왼쪽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와 삼성전자가 최근 출시한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8’

만국산업작품대박람회가 개최된 지도 160여 년이 흘렀다. 오늘날 사람들이 선호하는 테크놀로지는 어떤 형태일까? ‘첨단 기술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은 심리는 여전할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얼리 어댑터’는 두 세기 전 그들보다 훨씬 세련된 방식으로 그 과시를 드러낸다. 난방 시설은 더 이상 사용자의 주의를 끌지 않고, 변기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 구현된다. 다른 건 몰라도 존재감의 정도는 19세기보다 ‘덜 과시적’이 됐다.

웨어러블 기기 분야도 마찬가지다. 크기는 점점 작아졌고, 디자인 역시 다른 아이템과 녹아 들며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발전돼갔다. 모르긴 해도 19세기 인류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이런 광경을 접한다면, 아니 현대인 중에서도 그런 아이템에 관한 지식이 깊지 않은 사람이라면 실로 엄청난 정보 처리 장치가 사용자의 (손)목에 걸려있단 사실을 인지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 같은 변화에 유독 주목한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정보기술 연구 기업 제록스파크(Xerox PARC) 소속 연구원이었던 마크 와이저(Mark Weiser)와 존 실리 브라운(John Seely Brown)이 그 주인공. 둘의 정의는 이랬다. “19세기 기술이 인간의 인식 중심부에 호소하는 형태였다면 21세기 기술은 사람들의 인식 주변부와 관련돼 있다.” 조용한 기술, 소위 캄 테크놀로지(calm technology, 이하 ‘캄테크’) 개념이 태동하는 순간이었다.

캄테크 1세대 모델, 휘파람 주전자와 대형 건물 유리창

캄테크는 (산업 시대 초기에 그랬듯)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존재감 뚜렷한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사용자의 인식 주변부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기술을 일컫는다. 분명 일상에 녹아 들어 존재하지만 시끄럽지(noisy) 않고 고요한(calm) 게 특징. 그러면서도 사용자가 필요로 할 땐 언제든 인식 중심부로 들어와 사용자와 소통하며 필요한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해준다.

휘파람 주전자

마크 와이저와 존 실리 브라운이 제시한 캄테크의 대표적 예는 일명 ‘휘파람 주전자’다. 차(茶) 한 잔 생각이 나 주전자에 물을 약간 넣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불을 켰다가 그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딴 일을 하는 바람에 주전자를 태워본 경험, 누구나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심하면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는, 아찔한 경험이다. 휘파람 주전자는 이런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이다. 대부분의 사용자는 주전자에 물을 붓고 뚜껑과 꼭지를 닫은 후 불 위에 올려놓으면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 주변부로 제쳐둔다. 하지만 휘파람 주전자는 물이 끓는 순간, 요란한 휘파람 소리를 내며 ‘주전자로 물을 데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용자의 인식 중심부로 확 끌고 들어온다. 이 과정은 주전자와 사용자 간 원활한 의사 소통을 돕는다.

건물 유리창도 초기 캄테크 개념을 설명하는 사례 중 하나였다. 다수가 함께 일하는 대형 사무실에선 공간 구분 방식이 중요한 개념으로 작용한다. 모두가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도록 작은 방을 여럿 만들어주면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지겠지만 ‘타인과 단절됐다’는 느낌이 자아내는 무력감 때문에 사무 능률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반면, 탁 트인 공간에 책상과 낮은 칸막이만 줄줄이 설치하면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오가는 시선으로 자극 과잉 상태에 빠져 쉬 피로를 느끼기 십상이다. 사무실 환경의 모든 자극이 의식 중심부에서 포착, 개별 정보로 처리되는 것이다.

작은 사무실을 여러 개 만들어 복도로 연결하되, 사무 공간 내부와 복도 사이에 창문을 내주면 이 문제는 비교적 간단히 해결된다. 일하는 사람은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업무에 집중하다가 시선을 옮겨 신경을 쓰면 외부 동향을 어렵잖게 파악할 수 있다. 복도를 지나는 사람도 사무실 내부 사람이 업무에 열중하는지 여부를 금세 알 수 있다. 단체 행동이 필요할 때엔 창문을 두드리는 방식으로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책상에 앉아 업무 처리하기’를 의식 중심부에, ‘주변 자극에 반응하기’를 의식 주변부에 각각 배치해뒀다 중요한 변화가 감지되면 해당 자극을 다시 의식 중심부로 옮겨 포착되게 하는 것이다.

와이저와 브라운은 휘파람 주전자나 사무실 유리창 같은 (일견 사소해 보이는) 기술 유형을 캄테크로 명명한 후 “캄테크는 21세기 기술 환경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사람의 예측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기술적 요소를 누리고 살아가는 게 현대인의 속성인 만큼 개별 기술 요소가 사용자의 신경을 지나치게 압도하면 자칫 피로감에 짓눌리게 될 것”이란 우려가 담겨있다.

‘사려 깊은 도우미’ ‘지혜로운 집사’ 닮은 기술시대 온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17세기 프랑스 사상가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언명(言明)은 근대적 발상의 문을 열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생각, 즉 적극적 의식 과정을 통해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1994년 출간된 ‘데카르트의 오류(Descartes’ Error)’는 데카르트와 좀 다른 주장을 펼친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 뇌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뇌 자기공명 촬영 사진을 기반으로 “인간이 주변 환경에서 오는 정보를 전부 의식(생각)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인간이 무수한 직·간접 경험에서 오는 정보를 전부 처리해 지적으로 종합하려면 에너지와 시간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정보는 의식을 거치지 않은 채 주변부에서 처리된다”는 게 다마지오의 논리였다. 실제로 이 같은 소견은 뇌과학의 발달과 함께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추세다.

뇌 과학 이미지

인간은 무수하면서도 끊임없는 주변 자극을 ‘의식 중심에 둬 뚜렷이 인지하며 대응해야 할’ 것과 ‘일상적 환경 요인으로 적당히 무시하며 넘겨도 될’ 것을 무의식적으로 구분, 각기 다른 대응 전략을 구사한다. 예를 들어 가을이 돼 기온이 내려갔단 사실은 아침에 잠을 깨어 몸을 뒤척이는 순간, 의식 속에 들어온다. 하지만 적당히 두꺼운 옷을 찾아 걸치고 일상을 시작한 후 ‘기온이 평소보다 낮다’는 정보는 의식 바깥, 즉 주변부로 밀려난다. 그날 오후, 기온이 올라 땀이 나기 시작하면 온도(날씨) 상황은 다시 사용자의 의식 중심부로 들어온다. 이때 재킷을 벗는 행위 등이 그에 따른 대응책이 될 수 있다. 이후 기온 관련 정보는 다시 주변부로 배치된다.

기술도 다르지 않다. 개발 초기엔 사용자의 의식 중심부에 확실히 들어오는 형태를 띠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존재감은 점차 줄어든다. 이런 경향은 컴퓨터 기술 분야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194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에니악(ENIAC)은 컴퓨터 발달 역사상 최초로 웬만한 기능을 달성한 디지털 컴퓨터로 꼽힌다. 1만8000여 개 진공관으로 구성된 에니악이 차지한 면적은 약 170㎡였으며 한 번 작동시킬 때마다 엄청나게 큰 소리를 냈다. 하지만 2001년부터 3년간 유럽연합(EU)은 ‘사라지는 컴퓨터’란 슬로건을 내걸고 컴퓨터 기술 부문에서의 ‘캄테크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목적은 인간 친화적 환경 구현에 필요한 캄테크 선도 기술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시대가 열리면서 “컴퓨터 (관련) 기술은 스스로 점점 더 조용해져야 할 뿐 아니라 사용자까지 진정시켜줄 수 있는 속성을 지녀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needs)가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현대인 중 어느 누구도 스마트홈 안에서 요란한 소음을 내뿜으며 작동되는 PC, 눈에 띄는 기계 장치를 장착한 스마트록(smart lock) 따위를 원하지 않는다. 사려 깊은 가사 도우미나 지혜로운 집사처럼 평소엔 눈에 잘 띄지도, 거슬리는 소리를 내지도 않다가 필요한 순간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사용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기술을 선호한다. 캄테크의 최종 행선지가 ‘인간 친화적 환경 구현’을 향하고 있단 명제는 그런 의미에서 거부하기 힘든 ‘참(truth)’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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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자명 댓글:

    좋은내용입니다 calm tech 더불어 invisible computing,connected computing도 같은 맥락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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