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넘게 60여 명이 매달렸다… 빌딩, ‘진짜 IoT’를 입었다
매끈한 디자인의 대형 텀블러(tumbler)를 연상시키는 글래스타워(glass tower). 지난해 5월 완공된 이후 폴란드를 대표하는 마천루 중 하나로 주목 받는 ‘스파이어빌딩(Warsaw Spire)’<아래 사진>이다. 높이 220미터, 사무실 전용 46개 층으로 구성된 본관 양 옆에 두 개의 별관 건물이 나란히 붙은 이 건물은 금세 ‘바르샤바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그런데 이 건물 전면 위쪽 유리판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할 로고가 파란색으로 설치돼 있다. SAMSUNG(삼성). 삼성전자 폴란드연구소가 입주해있는 덕분이다.
‘바르샤바 랜드마크’ 스파이어빌딩의 비밀은?
글래스타워는 견고하면서도 아름다워 ‘현대 건축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하지만 에너지 운용 측면에선 설계자나 시공자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을 안긴다. 여름엔 온실효과로 더워진 실내를 충분히 냉각시켜야 하고, 겨울엔 외부 냉기를 효율적으로 차단해야 하기 때문. 기존 운영 방식대로라면 글래스타워 관리자는 건물 내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발품을 팔아야 한다. 퇴근 시각 이후엔 신경 쓸 게 더 많아진다. 실내 곳곳을 일일이 점검하며 에어컨이 쓸데없이 켜있진 않은지, 구석구석 온도는 적정한지 살펴 에너지 낭비를 줄여야 한다. 불필요한 조명을 끄는 것도 필수다.
하지만 스파이어빌딩 내 삼성전자 폴란드연구소는 그런 문제에서 자유롭다. 건축주인 벨기에 부동산 개발사 겔람코(Ghelamco)와의 협력을 거쳐 해당 층에 스마트 빌딩 통합 관리 솔루션, 일명 ‘b.IoT’를 파일럿 형태로 운영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냉난방부터. 이곳에서의 냉난방은 자동으로 제어된다. 실내는 물론이고 옥상에도 센서가 달려있어 실내·외 온도를 감지, 그에 따라 냉난방 장치가 가동된다. 그뿐 아니다. 입주사 임직원이 출근하기 전 건물의 예열(겨울)·예냉(여름)에 필요한 시간을 자동으로 계산, 냉난방 장치를 운전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한층 절감된다.
센서는 사람 존재도 인식한다. 방이 비어있으면 에어컨과 조명이 저절로 꺼지는 것. 일반적으로 건물 가동에 쓰이는 에너지 중 70%가 공조[1]와 조명 부문에서 소비되는 만큼, 이런 방식의 에너지 절감은 건물 전체 관리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 구동에 필요한 정보 일체의 교환은 무선 네트워킹 기능을 갖춘 컨트롤룸(control room)에서 이뤄진다. 단, 이 공간에선 사람이 24시간 긴장된 상태로 대기하며 일일이 정보를 분석하거나 지시 내릴 필요가 없다. 대다수 기능의 운전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스파이어빌딩은 유려한 외관과 입주자의 쾌적함을 모두 유지하면서도 에너지 비용을 상당 부분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취재진에게 b.IoT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공동건씨. b.IoT를 채택한 빌딩 관리자는 사진에서처럼 건물 각 층의 상황을 모니터로 편리하게 점검할 수 있다
IoT 기반 에너지 알고리즘, 3년 전부터 연구
스파이어빌딩은 설계 당시부터 삼성전자가 건축주와의 협의를 거쳐 자사 기술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기반 건물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사례다. 삼성전자가 그간 개발, 구현해온 ‘IoT 빌딩’ 운영 솔루션이 처음으로 집약돼 선보이는 사례이기도 하다.
▲스파이어빌딩에 적용 중인 b.IoT 구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영상
스파이어빌딩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스마트 빌딩엔 다양한 첨단 기술이 녹아있다. 공조와 조명, 센서와 (무선)네트워크, 여기에 IoT와 AI까지…. 관련 기술 전반을 아우르는 역량과 규모를 갖추지 못한 기업은 엄두조차 내기 힘든 영역이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이 분야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b.IoT는 그 출사표인 셈이다. 실제로 이 브랜드 하나를 선보이기 위해 뭉친 조직만 △생활가전사업부 △네트워크사업부 △DMC(Digital Media & Communications)연구소 △해외 연구소(폴란드, 인도 방갈로르) △한국총괄 △기획팀 △디자인경영센터 등 여럿이다.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뉴스룸이 태스크포스(TF)팀 형태로 동고동락해온 임직원과 마주한 건 b.IoT 탄생 이면의 얘길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서였다.
사실 삼성전자 뉴스룸에서도 그간 IoT 관련 기사를 제법 소개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명 ‘홈 IoT’에 집중됐던 게 사실이다. 홈 IoT가 독립된 소공간인 가정에서 보안과 사용자 편의, 외부와의 연결성에 초점을 맞춰 이뤄진단 사실을 감안하면 빌딩 IoT는 규모나 성격 면에서 홈 IoT를 압도한다.
빌딩 IoT에서 핵심은 공조와 조명, 전력 부문의 에너지 절감과 안전성 점검이다. 각 요소를 끊김 없이 연결, 제어하는 기술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삼성전자 DMC연구소 역시 일찌감치 이 부문의 가치에 주목, 3년 전부터 IoT 기반 에너지 알고리즘을 개발해왔다. △빌딩 실내·외 공간에 설치된 센서에서 입력되는 정보(온도와 에너지 사용, 사람 존재 유무 등)가 서버 형태의 플랫폼에 모이고 △AI를 거친 데이터 분석 과정을 거친 후 △그 결과로 형성된 지침이 층별 제어기로 다시 전달되는 식이다.
예전 같았으면 관리자가 일일이 뛰어다니고 이상 여부를 몸으로 감지한 후 컨트롤 패드를 작동시키거나 무전을 하며 스위치를 끄고 켜야 했다. 사용자가 관리에 무심하면 에너지 낭비가 엄청나게, 그리고 수시로 일어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날 인터뷰 현장엔 소속이 서로 다른 삼성전자 임직원 아홉 명이 자리를 함께해 b.IoT 프로젝트의 융합적 성격을 짐작하게 했다. 사진은 그중 여섯 명의 인터뷰 당시 모습을 편집한 것.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주병길·남유진·이종민·강대희·송관우·이주열씨
신호 간섭 현상 잡고 CCTV 화질도 대폭 개선
무선 네트워킹과 AI 기술을 토대로 운영되는 b.IoT는 에너지·비용 절감과 효율화 측면에서 기존 관리 시스템을 능가하는 도약이다. 센서만 설치하면 건물 어느 곳에서나 필요한 정보를 수집, 복잡한 변수 전부를 정확히 처리한 후 가장 효율적 관리 지침을 (역시 건물 어디에나) 실시간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킹 절차가 무선으로 진행되는 만큼 폐쇄회로TV(CCTV) 등 건물 관리에 필요한 기기를 추가로 설치할 때에도 골치 아픈 배선 문제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물론 고려해야 할 사항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무선 네트워킹 환경에선 채널이 많아질수록 오가는 신호의 종류도 다양해져 서로 간섭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자칫 원활한 데이터 소통이 방해 받을 수 있는 환경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와이파이(Wi-Fi)를 기반으로 하되, 지그비(Zigbee)[2]와 BLE[3] 등 다양한 신호를 하나의 통로, 즉 IoT AP[4]로 공유하는 동시에 효율적으로 통신할 수 있게 했다. b.IoT 구현을 가능케 한 핵심 기술 기반 중 하나다.
홈 IoT의 최대 이슈 중 하나였던 보안 기능도 b.IoT에선 한층 진일보했다. 원래 빌딩 IoT에서 보안은 홈 IoT에 비해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편이다. 자체 통제 시스템에 의해 건물 출입 문제만 잘 관리되면 내부에서의 침입 우려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기 때문. 하지만 b.IoT는 오늘날 빌딩 보안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 CCTV 화면 화질 문제를 삼성전자의 기술력으로 대폭 개선, 기대를 모은다.
기존 CCTV 장비로 화질을 높이려면 데이터 용량이 커져 전송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화질 수준을 무조건 끌어올리지 못했고 그 결과, 문제가 발생해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됐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고화질 데이터를 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자체 기술을 b.IoT에 탑재, 어느 상황에서도 또렷한 화면과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했다.
비디오 분석 기술(video analytics)의 진전이 불러온 변화도 작지 않다. 기존 CCTV에서 판독이 필요할 땐 사람이 모든 화면을 일일이 돌려가며 시청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자칫 한눈이라도 팔면 그 즉시 보안에 구멍이 뚫리는 구조다. 이제껏 CCTV가 ‘예방’보다 ‘(사후) 사태 파악’ 용도로 많이 쓰여온 것 역시 그 때문이다. 하지만 AI 기술을 갖춘 b.IoT는 다르다. 비디오 화면을 자동으로 분석하는가 하면, 특이한 움직임이 감지되면 경보까지 울려준다. 2017년 9월 현재 에스원과 협업, 비디오 분석 기술의 상용화 여부를 검증 중인 삼성전자는 향후 이 기술이 화질 개선 부문과 함께 빌딩 보안 솔루션 강화를 견인할 걸로 기대하고 있다.
10월 공식 론칭… “당분간 국내 시장에 집중”
사실 네트워크나 AI 등의 분야에서 삼성전자의 기술력은 새삼 언급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일정 궤도에 올라있다. 그런 면에서 b.IoT의 진짜 경쟁력은 ‘조직 간 융합’에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b.IoT 프로젝트’는 삼성전자 내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여러 조직이 TF 결성 단계에서부터 전방위적으로 협업, 완성시킨 결과물이다. 실제 솔루션 개발을 목표로 TF가 출범한 건 2015년 7월. 이후 2년여간 60여 명의 삼성전자 임직원이 땀 흘려가며 호흡을 맞춰왔다.
융합 프로젝트로서의 장점은 ‘론칭 이후’ 더 빛난다. 서비스는 물론, 영업 활동까지 일관성 있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원스톱 토탈 솔루션’인 셈이다. 실제로 b.IoT에 대한 관심은 국내외를 통틀어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해외에서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TF 팀원들은 “당분간 국내 사업 안정화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단 국내에서 튼실한 기반(infrastructure)을 구축한 후 시장 확장을 고민하겠다”는 복안이다. 2017년 9월 현재 스파이어빌딩에 이어 b.IoT 탑재가 예고된 건물은 △삼성전자영덕연수원(경북 영덕군 병곡면) △대구삼성창조캠퍼스(대구 북구 호암로) 등. 다음 달 18일엔 △삼성전자서초사옥(서울 서초구 서초대로)에서 b.IoT 공식 론칭 행사도 열린다.
아무리 멀리 있는 것도 볼 수 있는 망원경, 어느 곳이든 날아갈 수 있는 양탄자, 냄새만 맡아도 무슨 병이든 씻은 듯 낫게 하는 사과…. 각 물건을 지닌 3형제가 합심해 병에 걸린 이웃나라 공주를 구해내는 옛이야기가 있다. 만약 이들이 각자의 물건을 독립적으로 사용했다 해도 좋은 일을 꽤 많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 물건이 합쳐지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덕분에 그 성과는 상상 이상일 수 있었다. 각자의 기술력을 토대로 협업,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활짝 열어젖힌 b.IoT 탄생 과정이 문득 그 우화와 겹쳐 떠오른 게 그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1] 空調. 기계 장치나 자연적 방법을 통해 온도·습도 등 건물 내 공기 관련 제반 사항을 최적의 상태로 제어하는 일
[2] 250Kbps 이하의 저속 국제 표준인 IEEE 802.15.4 물리계층 기반의 무선 네트워킹 기술. 영단어 ‘지그재그(zigzag)’와 ‘벌(bee)’을 합성, 벌이 꽃을 쫓아 옮겨 다니듯 여기저기 움직이며 통신한단 의미를 담고 있다
[3] 저전력 블루투스 기술(Bluetooth Low Energy). 도달 반경이 10미터 내외인 2.4GHz 주파수 대역 기반 블루투스 기술을 일컫는다. 저전력∙저용량 데이터 송수신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4] 액세스 포인트(access point). 무선인터넷 사용자가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무선 인터넷 접속을 돕는 중계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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