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저쪽 길’로 한 발짝만 내딛기
홍정은 맨즈헬스 코리아 에디터
보채듯 날이 추워졌습니다. 올해는 어서 빨리 보내고 새해 맞을 준비를 하라네요. 늘 찾아오는 연말이지만 올해는 어깨가 좀 무겁습니다. 뭔가 스스로 더 많이 바뀌어야만 할 것 같아서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먹어보지 않은 음식, 들어보지 않은 음악은 평생 입과 귀에 담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서른 이후의 삶’에서 새로운 건 되도록 피하게 된다는 의미일 겁니다. 새로운 걸 피하면 그 짜릿함과 즐거움은 어디서 얻는단 말입니까?
이제 겨우 인생의 3분의 1을 달렸을 뿐인데 남은 시간이 모두 지루하고 무미건조하면 어쩌나,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안 해본 것 중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 하나를 얼마 전에 마쳤습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계획 캠핑’을 떠난 겁니다.
모른다, 는 것의 두려움
조심스레 고백하자면 캠핑은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행위였습니다. 어느덧 캠핑이 트렌드의 ‘끝물’ 자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지금껏 말입니다. 그냥 싫었습니다. 아니, 싫어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열심히 찾았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잠자리는 편안해야 한다, 그 비싼 장비들에 눈 돌리기 시작하면 평생 빚쟁이가 될 거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전 캠핑을 ‘싫어한’ 게 아니라 ‘몰랐던’ 거였습니다. ‘텐트에서 자면 불편할 거야’ ‘싸고 못생긴 캠핑 장비만 갖곤 제대로 즐길 수 없을 거야’ 같은 생각들이 앞서며 지레 움직이지 않기로 정해버린 겁니다. 대신 편안한 잠자리와 (다른 취미를 즐길) 금전적 여유를 택했습니다. 결국 새로운 걸 향해 한 발 내딛는 덴 실패했습니다. 새로운 도전으로 인해 바뀔 뭔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겨우 놀고 즐기는 일일 뿐인데 말이죠.
모른다, 는 것의 즐거움
결국 제가 캠핑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캠핑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랐던 데 있습니다. 캠핑이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 캠핑 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모르니 굳이 비용을 지불해가며 불편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다 계획도 없이 급하게 캠핑을 떠나게 됐습니다. 일 때문이었습니다. 계획해놓은 일정이 갑자기 취소되면서 두 시간 만에 새로 계획을 세워야 했습니다. 책임져야 할 스태프가 있었고 그중 아무도 캠핑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한된 시간과 예산 때문에 ‘최소한의 장비’만 전문 대여점에서 빌려 떠났습니다. 최근 유행했던 ‘미니멀 캠핑(minimal camping)’과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취재하면서 알게 된 정보만 견줘봐도 제대로 된 캠핑을 해내기엔 턱없는 장비들이었습니다. 겨울인데 봄∙가을용 침낭을, 멋지고 성능 좋은 텐트 대신 소풍용 텐트를 챙겼습니다. 심지어 랜턴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평소 같았으면 계획대로 일정이 진행되지 않아 매우 불안해야 정상인데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설레는 겁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에서 일을 끝내야 하는데 즐겁다니요.
누구에게나 한 발짝은 있다
그날의 캠핑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텐트 설치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주운 화롯대에 빌린 번개탄으로 불을 붙이느라 한참을 낑낑댔습니다. 한겨울용 점퍼를 입고도 덜덜 떠느라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의 말소리 말곤 바람에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뿐이던 그 공간, 밤하늘을 뒤덮은 잣나무 줄기들, 춥고 힘들고 정신 없었던 시간까지 모두 짜릿하리만큼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떠난 그 하룻밤 야영이 제게 얼마나 많은 걸 남겨줬는지요!
두려움을 야기하는 요인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무지(無知)’입니다. 모르는 일엔 본능적으로 한발 물러서도록 인류가 진화한 탓이겠죠. 하지만 바로 그 무지에서 비롯된 두려움에 한 발 내딛는 순간, 세상은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겨우 캠핑처럼 별것 아닌 일도 그런데 이 세상엔 짜릿하고 멋진 일이 얼마나 많이 남아있을까요? 이보다 더 큰 두려움 앞에서 침 한 번 꿀꺽 삼킨 후 한 발 들어올린다면 남은 삶은 얼마나 더 멋질 수 있을까요?
이건 비단 제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여러분의 남은 한 해와 다가올 2016년, 아니 남은 삶도 전부 바로 그 ‘한 발짝’ 덕분에 즐거울 수 있습니다. 분명해요.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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