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중동의 한류 열풍 ‘대장금 시청률 90%’의 신화

2015/01/23 by 이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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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21세기 비즈니스는 문화를 먹고 산다. 고객이 어떤 제품이나 브랜드에 끌리게 하려면 고객의 마음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케팅 전략을 세울 틈도 주지 않고 그저 좋아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객이 있다면 즐거운 비명을 지를 만하다. 중동이 바로 그런 시장이다.

중동 지역에 갈 때마다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최고의 대접을 받을 때가 많다. 한류 열풍 덕분이다. 그들은 선뜻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을 좋아한다. 케이팝(K-Pop)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식·태권도·축구·게임·한국어 사랑은 기본이다. 한국인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대학생도 적지 않다. 나라마다 ‘코리아 카페(Korea Cafe)’는 적게는 수만 명, 많게는 수십만 명의 회원을 거느리며 중동 문화지도를 새롭게 그리고 있다.

 

‘대장금 신드롬’ 이면의 문화적 배경

이집트의 ‘겨울연가’ 열풍도 대단했지만 2007년 이란에서 방영된 ‘대장금’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정확도 부문에서 다소 오차는 있겠지만 6개월 평균 시청률이 90%에 이르렀을 정도라고 한다. 실제로 대장금이 방영되던 날 밤, 내가 목격했던 테헤란 시내 풍경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거의 모든 식당과 카페, 그리고 번화가 가전제품 전시관 앞은 온통 대장금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 같았다. 거리를 지나는 자동차도 거의 없었다. 대장금 주연 배우 이영애씨가 한양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난 한양대 교수란 이유만으로 최고의 특별 대접을 받았다. 식당에선 밥값조차 받지 않으려 했다. 유적지 입장료도 물론 무료였다.

한국 궁중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일렬로 서 있습니다.

‘대장금 신드롬’엔 일종의 문화적 배경이 숨어 있다. 궁궐 내에서 온갖 모함과 중상모략에 시달리면서도 최고 상궁 자리에 오르는 대장금의 드라마틱한 휴먼 스토리는 근대 서구 열강의 침략과 식민 지배로 수많은 침탈을 당해 온 중동 지역 이슬람인의 고통과 꽤 많이 닮아 있다. 중동인들은 대장금이 던지는 희망과 성공의 메시지에도 위안을 얻는다. 그들이 대장금을 보며 “이건 내 얘기야(This is my story)!”라고 외치는 건 그 때문이다.

더욱이 대장금 같은 한국 사극은 전형적 권선징악 구도를 지닌다. 다시 말해 주인공이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 승리하는 줄거리가 비교적 단순하게 전개된다. 여기에 소위 ‘19금(禁) 노출’이 거의 없는 화면, 언뜻 히잡과 비슷해 보이는 극 중 궁녀 의상도 이슬람 특유의 종교적 미풍양속에 마침맞아 문화적 친근감을 안긴다. 고화질(HD) 영상으로 구현되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 사계절이 뚜렷한 가운데 어디서나 계곡 물이 흐르고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가 만발한 경치도 중동인을 매료시킨다. ‘알라가 코란에서 약속하신 파라다이스나 유토피아가 바로 저런 곳 아닐까?’ 그들은 생각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아랍학자가 일찍이 고대 신라를 ‘동방의 유토피아’로 묘사하며 극찬하기도 했다.

 

시장서도 ‘메이드 인 코리아’ 인기

이 같은 한류 열풍은 곧바로 시장으로 투영된다. 실제로 중동 국가에선 휴대전화와 가전, 자동차 할 것 없이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제품이 단연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독한 한국 사랑이다. 중동 국가들은 한국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자원, 즉 석유·천연가스 등의 90% 이상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준다. 또한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건설·플랜트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의 70% 이상은 중동 지역에서 나온다. 그러면서 상품도 한국산만 골라 사준다. 월드컵 같은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한국과 유럽 팀이 맞붙으면 중동인들은 으레 한국 팀을 응원한다.

중동의 한 건설 현장에 석양이 지는 모습입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1970·1980년대에 연인원 100만이 넘는 한국인 근로자들이 중동 지역에서 흘린 땀방울을 신화처럼 기억한다. 그들에게 한국인은 ‘성실과 근면의 화신’이다.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열사의 땅에서 ‘24시간 3교대 근무’란 악조건을 버텨내며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땀 흘리던 그들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 결과, 보란 듯이 이뤄낸 한국의 기적을 마치 자신들의 일인 양 좋아한다.

오늘날 중동인들은 한국 기업이 닦아놓은 사막의 고속도로 위를 현대·기아차로 달리고, 삼성물산이 건설한 세계 최고 빌딩에서 근무한다. 퇴근해선 역시 한국산 아파트에서 한국산 에어컨을 틀고 한국산 TV 앞에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한국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는다. 대장금에 등장하는 한국 궁중 전통 음식에 관심을 갖는가 하면 김치를 즐겨 찾아 김치냉장고 판매 급증을 이끌기도 한다.

급기야 자신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한국을 방문하곤 깜짝 놀란다. 한때 가난해 외화를 벌러 왔던 한국인들이 이제 자신들보다 훨씬 앞서 있는 현실 앞에서 질투 대신 축복을 보낸다. 자신들을 지배했던 서구 열강의 발전 모델은 따라가기 싫어하면서도 고유의 전통과 가치를 유지하며 첨단 기술 개발과 경제 발전에 성공한 한국의 발전 모델은 기꺼이 닮고 싶어 한다.

 

이슬람, ‘협력적 동반자’로 껴안아야

그렇다면 중동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는 어떨까. 아랍과 이슬람, 아랍과 이란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채 ‘이슬람=테러리스트’ 담론에 휩싸여 우리의 협력 파트너인 절대 다수 이슬람 주류 공동체를 적대시하는 구조적 모순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중동·아랍인들은 한국이 좋다며 ‘코리아’ 브랜드를 찾고 한국말과 문화를 배우려 하는데 우린 왜 그들을 친구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아랍 여성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이제 서구 중심적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우리의 눈으로 중동인을 바라보고 그들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이슬람은 종교적 차원에서만 접하면 다소 불편한 이념 체계처럼 느껴진다. 일신교 자체가 기본적으로 선(善)과 악(惡)의 대결 구도이므로 다른 종교와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존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이 같은 점을 감안했을 때 이슬람 문제는 종교적으로 풀기보다는 (같고 다름의 문제인) 문화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지구촌의 미래를 함께 짊어지고 갈, 생각이나 가치는 나와 좀 다르지만 더없이 따뜻한 이웃으로 바라보자는 얘기다. 지금처럼 이슬람 세계를 접할 때마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면 중동 시장이 언제까지 우릴 기다려주고 사랑해줄지 장담하기 어렵다. 57개국 15억 인구로 구성된 이슬람 세계를 ‘윈윈(win-win)하는 협력적 동반자’로 끌어안지 않으면 결코 진정한 글로벌화 전략을 구사했다고 하기 어렵다.

이슬람 문화가 잘 보존된 중동의 한 구시가지의 모습입니다.

이슬람 문화엔 중동인의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 유럽 르네상스를 가능케 한 학문적 원동력이 된 것도 이슬람 문화다. 따라서 중동인을 좀 더 잘 알려면 우선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가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중동을 ‘테러와 전쟁으로 얼룩진 곳’이 아니라 ‘인류의 오랜 문명과 깊은 영성이 발아되고 뿌리 내린 본향’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전후 복구 사업, 그리고 미국과 이란의 화해 이후 전 세계에 엄청난 ‘중동 붐’이 불어 닥칠 예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정부와 기업은 이 같은 인식에서 중동(국가)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중동의 한류 열풍은 모래바람보다 훨씬 강한 힘으로 우릴 향해 손짓하고 있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이희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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