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인류애 전하며 맺은 한국과의 인연, 이젠 제가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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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인도법인엔 1500여 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사연을 지닌 임직원도 많은데요. 이중 몇몇은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삼성전자 뉴스룸엔 한 인도법인 임직원의 할아버지와 한국에 얽힌 ‘특별한 사연’ 하나가 도착했는데요. 어떤 얘기인지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안녕하세요. 삼성전자 인도법인에서 모바일 기기 B2B 영업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비크람 스리드하란(Vikram Sridharan)입니다. 지난 2013년 입사해 벌써 4년간 삼성전자, 그리고 한국과 함께하고 있는데요. 저희 가족 중엔 저 말고도 한국과 인연이 각별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습니다. 바로 제 할아버지 고팔라스와미(Gopalaswamy)씨입니다. 할아버지는 지난 1950년 6·25전쟁 당시 한국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사연이냐고요?

 

22만여 명 환자 돌본 인도의 '붉은 천사'

비크람씨의 할아버지 고팔라스와미씨 사진▲비크람씨의 할아버지 고팔라스와미씨는 6·25전쟁 당시 인도 포로감시임무부대(CFI) 여단 소속으로 한국을 찾았습니다

6·25전쟁 당시 중립국이었던 인도는 한국에 전투부대를 파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요청으로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등과 함께 한국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하게 되는데요.

6·25전쟁 당시 한국에 파병됐던 CFI 여단 소속 인도 군인들의 모습입니다▲6·25전쟁 당시 한국에 파병됐던 CFI 여단 소속 인도 군인들의 모습

이때 파견된 게 인도 60공정 야전병원 부대, 그리고 전쟁 포로 송환용 포로감시임무부대(이하 'CFI') 여단입니다. 이들은 1950년 11월 처음 한국 땅을 밟았죠. 인도 60공정 야전병원 부대는 1954년 철수할 때까지 연간 627명의 인력이 투입돼 군인∙민간인을 포함, 입원 환자 2만 명과 외래 환자 22만여 명을 돌봤습니다. 진행한 수술 횟수만 해도 2234회에 이르는데요. 60공정 야전병원 부대원들이 쓴 붉은색 베레모 때문에 당시 그들은 ‘붉은 천사’로 불렸습니다.

이들은 '양동이 여단(Bucket Brigade)'란 별칭도 갖고 있었는데요. 이와 관련, 재밌는 일화가 있습니다. 파병 도중 부대원들은 대동강 철교가 끊어지기 전 황급히 철수하게 됐는데요. 워낙 급히 이동하다보니 열차의 뜨거워진 엔진을 식혀야 했죠. 부대원들은 급한 대로 양동이로 대동강 물을 퍼 나르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무사히 대동강 철교를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양동이 여단이란 별명이 붙여진 계기였습니다.

6·25전쟁 당시 인도군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국내에서 발행됐던 기념우표입니다.▲6·25전쟁 당시 인도군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국내에서 발행됐던 기념우표

방한복 차림의 고팔라스와미씨 사진입니다.▲방한복 차림의 고팔라스와미(사진 맨 오른쪽)씨

제 할아버지 역시 CFI 여단 소속으로 바다를 건너 한국에 왔습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늘 제가 잠들기 전, 머리맡에서 6·25 전쟁 때 겼었던 일을 들려주시곤 했죠. 혹한의 날씨 속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얘긴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계속된 전쟁으로 고난과 역경을 겪었지만 끝내 이를 이겨내고 성장한 한국의 저력과 강인함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어요.

 

“한국은 슬픈 역사 이겨낸, 강인한 나라”

파주시 판문점에 위치한 일명 ‘돌아올 수 없는 다리(Bridge of No Return)’의 과거와 현재모습입니다.▲파주시 판문점에 위치한 일명 ‘돌아올 수 없는 다리(Bridge of No Return)’의 과거와 현재. 위 사진 속 수송 차량에 올라 탄 고팔라스와미씨와 인도군의 표정이 비장합니다

60공정 야전병원 부대는 파병기간 동안 미국 187 공수연대전투단의 ‘토마호크 작전’을 지원했습니다. 토마호크 작전은 철수하는 적군의 퇴로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진행됐는데요. 60공정 야전병원 부대는 이 작전에서의 공로를 인정 받아 인도군 내에선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의 전시 무공 훈장인 마하 비르 샤크라 훈장 2개, 세 번째로 높은 무공 훈장인 비르 샤크라 훈장 6개를 포함해 다수의 표창을 받았습니다. 수훈 보고서에도 25차례나 이름을 올렸죠.

군사분계선 철조망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당시의 고팔라스와미씨 사진입니다.▲군사분계선 철조망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당시의 고팔라스와미씨

제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던 한국은 "슬프고 힘든 역사를 지녔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 강인한 국가"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한국과 인도 모두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는데요. 저 역시 할아버지가 지켰던 나라인 한국, 그리고 한국 기업인 삼성전자에서 근무하게 돼 뿌듯합니다. 제 할아버지 역시 본인이 남긴 과거의 유산을 손자가 전 세계에 함께 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신다면 기뻐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함께한 한국과 인도 간 인연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by 비크람 스리드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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