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자에게 기회의 장(場) 될까?
지난해 4월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시가 총액(4329억 달러)이 ‘유통 소매업의 전통적 강자’ 월마트(2276억 달러)를 넘어섰다. 월마트뿐 아니라 까르푸(Carrefour)∙테스코(Tesco)∙이케아(IKEA)∙타깃(Target)∙크로거(Kroger)∙메이시스(Macy’s)∙코치(Coach)∙갭(Gap)∙노드스트롬(Nordstrom)∙티파니앤드코(Tiffany & Co.) 등을 모두 합한 것보다 큰 금액이다. 애플이 보유한 현금(246억 달러)은 덴마크 국내총생산(GDP)에 육박하고 전 세계 75억 인구 중 12억 명이 하루 50분 이상 페이스북 애플리케이션 패밀리(페이스북·페이스북메신저·인스타그램) 안에서 놀며 구글엔 하루 평균 35억 개의 질문(구글 영향력의 원천!)이 쏟아진다. 아마존∙애플∙페이스북∙구글 등 4대 거대 기업은 각자 분야를 싹쓸이하고도 여전히 굶주린 듯 서로의 접경 지대에서 으르렁대고 있다.
가상현실 플랫폼 시장은 ‘빅4’ 체제로 재편 중!
구글과 애플은 검색엔진과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온라인 광고 등 분야를 막론하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아마존은 영화·음악 산업에서 애플과 선두를 다투는 한편, 제품 검색 분야에선 구글을 두 배가량 앞지르고 있다.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서비스 등 미래 성장 동력 분야에서도 시리(Siri)·알렉사(Alexa)·듀플렉스(Duplex) 등을 앞세워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물론 가상현실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이 주제와 관련해선 지난 칼럼 “글로벌 IT 공룡’들의 가상현실 사업 전략 ”에서 자세히 다뤘다).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페이스북 CEO가 2014년 “가상현실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것”이라며 오큘러스리프트(Oculus Rift)를 20억 달러(약 2조1640억 원)에 인수하자 곧이어 수억 달러의 벤처캐피털 자금이 가상현실 업계에 쏟아졌다. 심지어 HTC는 잘나가는 스마트폰 사업을 매각하면서까지 가상현실 시장에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현실은 애초의 장밋빛 전망과 달리 HMD(Head Mounted Display,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 등의 판매 부진으로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가상현실 플랫폼 또한 ‘빅4(Big 4)’ 체제로 재편되고 있단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혼돈 속에서 가상현실 콘텐츠 프로바이더(VR Content Provider[1], 이하 ‘VRCP’)는 어떤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할까?
게임∙전자상거래 ‘흐림’, 여행∙헬스케어 ‘맑음’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경우, 지금은 가상현실 분야에서 비교적 잘나가지만 장기적으론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과거 PC게임 강자들이 강력한 브랜드파워와 스토리텔링, 그리고 막대한 자금력으로 모바일 게임의 권좌를 되찾았듯 가상현실 기반 게임 쪽 양상도 비슷하게 전개될 전망이다(무지몽매한 맹수들은 시장이 무르익길 기다리는 중이다).
전자상거래(e-commerce) 시장도 여의치 않다. 몇몇 대형 유통 매장과 브랜드가 가상현실 스토어를 홍보용으로 만들었지만, 유통 제품(특히 의류)의 특성상 유행에 민감하고 아이템이 많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경제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훈련, 특히 국방·기계·설비 분야에선 가상현실 훈련 콘텐츠 수요가 많으나 시장 특성상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 극복이 관건이다. 과학·역사교육에 가상현실 콘텐츠가 상당히 효과적이란 점에선 이견이 없지만 역시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상태다.
헬스케어 시장은 스크린 골프나 스크린 야구 사례에 비춰 기존 스포츠센터를 거점으로 붐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역시 영세업자들의 투자 여력이 관건이다. 의료 분야는 신기술에 대한 보수성으로 인해 아직 태동기라 할 수 있다. 다만 정신건강과 재활학과를 중심으로 인공지능과 함께 진단·상담 등 전문의 보조영역에서 시장이 형성 중이며, 개인 맞춤형 심리관리·치료 시장으로의 진입이 적극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혁명, 기존 데이터 ‘조합’만으로도 탄생 가능
지동설을 처음 주창한 천문학자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1543년 5월 24일, 필생의 역작 ‘천구의 회전에 관해(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가 출간되던 날 70세로 숨을 거뒀다. 당시 ‘지구를 중심으로 행성이 움직인다’는 천문학의 기본 개념은 기원전 200년경 프톨레마이오스[2]가 주장한 천동설이 정교하게 발전된 형태였다. 태양과 달을 포함한 몇 개의 행성 항로, 그리고 한 해의 특정한 날과 날짜를 정확하게 일치시키진 못했지만 아주 훌륭한 하늘그림이 완성돼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천문학자라면 ‘상식’이었을 세 가지 요소를 결합했다.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BC 310?~230)가 처음 주장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아이디어, 프롤레마이오스의 천동설 개념 아래 1000년 이상 천문학자들이 수집해온 천체 관찰 데이터, 그리고 당시 눈부시게 발전했던 삼각함수가 각각 그것이다. 다시 말해 코페르니쿠스는 아리스타르코스의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해 프롤레마이오스의 데이터에 정교한 삼각함수를 적용했을 뿐이었다. 독창적인 것 하나 없이 그저 ‘조합’만으로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향후 관건은 ‘기술 차별성’ 아닌 창의성과 UX
요컨대 “가상현실 콘텐츠 제공자도 코페르니쿠스의 전략을 차용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선 △기존 O2O(Online to Offline) 사례 △우버(Uber)와 에어비앤비(Airbnb)의 공유 서비스, △배달의민족 같은 배달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등 온∙오프라인을 연결 지어 성공한 사례를 깊이 살펴봐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지갑은 심장이 뜨거운 사람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또 하나, 가상현실은 더 이상 ‘테크놀로지’가 아니며 기술적 차별성도 확보하기 어렵단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그보다 미디어 제작자로서 독창성을 지녀야 하고 이야기와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의 차별성을 무기로 내세워야 한다.
끝으로, 다른 분야와의 융합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 가령 기업용 드론의 가상훈련 시뮬레이터는 새로운 시장 창출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또 인공지능과의 결합으로 가상(virtual) 심리상담사를 창조할 수도 있다. 남과 다른 시선을 강조했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 남긴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멀리 봤다면 그건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1] 인터넷 상에서 다양한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나 업체
[2] Ptolemaeus(85?~165?).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 겸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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