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새벽바다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1. 양을 쫓는 모험
최근 개봉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 ‘보이후드(Boyhood)’에서 저녁에 막 잠이 들려던 주인공 소년 ‘메이슨’(엘라 콜트레인 분)이 아빠(에단 호크 분)에게 이 세상에 마법(magic)이란 게 있는지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빠는 아들의 질문에 고래(whale) 얘길 들려주는데요. 이 글은 거기서부터 시작해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88 서울 올림픽이 있었던 이듬해 가을, 전 서울역 뒤편에 있던 모 입시학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당시 ‘학력고사’란 명칭으로 매년 12월 중순 치러졌던 입시가 불과 두세 달 남은 시점이었습니다. 그해 가을도 오래전 지나간 다른 가을들 속으로 사라지고 있던 그날, 전 학원 자율학습을 마치고 나오다가 예정에도 없이 역사(驛舍)로 들어섰습니다. 그러곤 행선지만 정한 후 편도 티켓을 끊었습니다. “부산 가는 티켓 한 장 주세요.”
열차 탑승 전까지 시간이 남아 역 근처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플라스틱 통에 꽂힌 알루미늄 수저들은, 초록색 글자가 악보처럼 쓰여진 하얀색 종이를 들고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라고 합창하는 듯했습니다. 식당 내부는 한산했고 전 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낡은 문을 닫으려 끌어당기자 교향악단이 공연을 시작하기 전 조율하면서 내는 ‘삐익삐익’ 소리가 났습니다. 빼꼼히 열린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식탁 위 유리잔의 물은 잠시 흔들리다 이내 잠잠해졌습니다. ‘유리잔 속 물이 아무리 격렬하게 움직인다 해도 바깥쪽에 부는 바람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겠지’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급하게 식사를 마치고 부산행 야간열차에 올랐습니다.
#2. 해변의 카프카
밤새 달린 열차는 동트기 전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 어둠 속 내리는 비 사이로 희뿌연 안개가 역사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도로로 나와 택시를 잡았습니다. 행선지를 묻는 기사에게 “오륙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 달라”고 말했습니다.
비 오는 날인데 이상하게 거리에 새가 많았습니다. “새들이 많네요, 바람도 불고 비도 오는데.” 무심코 중얼거린 혼잣말에 기사가 대수롭잖게 대꾸했습니다. “새는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고들 하죠.”
도시는 거대한 수족관 같았지만 대기 속 호흡은 오히려 건조하게 느껴졌습니다. 택시 전면 유리창에 내리는 빗줄기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개의 와이퍼는 좌우로 열심히 빗물을 쓸어 내렸지만 폭우에 치즈케이크처럼 생긴 공간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광은 프라이팬에 올린 듯 이내 녹아내렸습니다.
거리의 맨홀은 어릴 때 청소년 드라마에서 봤던, 마신을 넣고 봉인한 호리병 뚜껑처럼 들썩거렸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기예보를 잘 챙겨보지 않아서일까요. 화창한 날씨를 믿고 출근했다 퇴근 무렵 비가 내리면 늘 우산이 없어 쩔쩔매곤 했습니다.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한 우산이 신발장에 가득하다 싶다가도 막상 쓸 만한 게 없으면 중얼거리게 됩니다. ‘그 많던 우산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날 역시 당연하게도 우산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다행히 거센 빗발이 누그러졌습니다. 어깨에 닿았던 빗물이 증발해가는 동안 제 안에 담겨 있던 무엇인가도 함께 휘발해가는 듯했습니다.
#3.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혹은 일각수의 꿈
바다를 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가는 길은 ‘외롭고(孤) 스산한(寒)’ 기운으로 으스스했습니다. 이른 새벽인 데다 비까지 와서인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뱀이라도 나올 듯한 날씨에 실없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내가 아담이라면 여기는 아담과 뱀만 있고 이브는 없는 에덴동산일까?’
심연 속에서 희미한 빛을 내는 물고기처럼 빗방울은 공중으로 흩뿌려졌고, 약해진 빗줄기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내렸습니다. 바다는 조금도 비에 젖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코발트 블루 빛깔로 칠해진 사막 같았습니다. 출렁이는 파도는 모래폭풍처럼 휘몰아쳤습니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섬이 상처 입은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저 멀리 수평선 근처에 커다란 생명체 하나가 수면 속에서 유영하는 듯한 그림자처럼 떠올랐습니다. 바다 위로 뾰족하고 기다란 펜촉 같은 것도 보였습니다. 마음속에 낚싯바늘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것 같은 물음표가 걸렸습니다. “뭐지?”
비는 어느새 그쳤습니다. 건너편에서 ‘신의 활’이 떠올랐습니다. 구름 사이로 나오기 시작한 햇살은 파도를 타고 바다로 내려앉는 일각수(유니콘) 같았습니다. 건너편 숲 속의 ‘나무랄 데 없는’ 나무들 사이로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가만히 불어왔습니다.
#4.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그날, 수면 부족과 허기로 지친 심신이 파도 속에서 본 건 무엇이었을까요. 문득 언젠가 백과사전 도감에서 봤던, ‘바다로 간 일각수’란 별칭으로 더 유명한 일각(외뿔)고래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극해 근처도 아닌 부산 연안에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돌고래 여러 마리가 떼 지어 다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비에 쓸려 온 목재 더미 같은 게 파도와 바람에 희롱 당하고 있는 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제겐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새벽 노을이 하늘로 번지고 수평선이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수평선 위로 방금 수면 밑에서 태어난 듯 말간 해가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 과거 어디론가 사라졌던 우산들이 모두 한꺼번에 제 머릿속에서 활짝 펴지며 제 몸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듯했습니다. 전 그날 그 바다에, 파도에, 바람에, 태양에 그리고 고래에 위로받았습니다.
그날 제가 본 것의 이름은 ‘꿈’이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좋은 일만 펼쳐질 것’이란 의미에서의 꿈이 아니라 그간 제가 견뎌 온 올 한 해의 시간이 헛된 건 아니란 의미’에서 꿈 말이죠.
꿈은 너무 무거우면 어깨를 누르는 법이지만 그날의 꿈은 제게 날개를 달아줬습니다. 문득 집이 그리워졌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가수 김혜림의 노래 ‘DDD’처럼… 근처 공중전화를 찾아 내려왔습니다.
제프 니컬스 감독의 영화 ‘머드(Mud)’에서 열네 살 소년 ‘넥본’(제이콥 로플랜드 분)의 삼촌 ‘갈렌’ 역으로 출연하는 마이클 섀년은 주인공 소년 ‘엘리스’(타이 쉐리던 분)에게 이런 충고를 건넵니다.
“강엔 많은 것들이 떠내려온단다. 그중에서 떠나 보내야 할 것과 건져내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하는 법이지.” 전 그날 바다에서 무엇인가를 떠나 보냈고, 또 다른 무엇인가를 건져냈습니다.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길, 좌석을 구할 수 없어 입석 열차로 올라오는 내내 몸은 흔들거렸지만 마음은 한층 단단해졌습니다. 전 그렇게 본래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5.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올여름 가족과 함께 다시 오륙도 전망대를 찾았습니다. 진입로였던 곳엔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섰고, 도로는 지난해 설치된 스카이워크를 체험하려는 관광객이 몰고 온 차들로 빼곡했습니다. 해수면에서 30여 미터 높이의 절벽 위에 수평으로 세워진 투명 유리는 바다 쪽으로 10미터 가량 뻗은 U자 형태로 만들어져 발 아래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였습니다.
그때 일행 중 한 명이 외쳤습니다. “저기, 돌고래다!” 눈앞에선 과연 돌고래 수십 마리가 파도를 타며 공중제비를 도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그건 비에 떠내려온 여러 장의 스티로폼 조각이었습니다.
25년 전, 제가 봤던 일각고래 역시 아마 그런 환영이었을 겁니다. 극해 지역의 차가운 바다에 사는 일각고래가 그날 그 시각에 부산 바다에 나타났을 리 만무하니까요. 하지만 제 기억 속에서 잊혔던 고래는 고맙게도 여전히 제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 어두운 곳에서 홀로 25년간 헤엄쳤을 고래를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좋은 경험이란 뭘까요? 누군가는 “그것이 끝나는 순간부터 삶 속에서 계속되는 기억”이라고 말합니다. “젊은 시절, 훗날 언제든 찾아가 쉴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기쁨을 모아둬야만 이후 펼쳐질 기나긴 어른으로서의 시간을 견딜 수 있다”는 얘기도 있죠.
전 앞으로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날이 많이 남아 있기에 현재의 기억을 소중한 추억으로 갤럭시 노트에 영원히 간직합니다.
“통조림 안 생선처럼 저장해둔 기억을 불러오려면 오프너를 돌리듯 육상 트랙을 도는 선수처럼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아야 한다”고들 하죠. 하지만 갤럭시 노트가 있다면 여러분에겐 불러오고 싶은 추억이 담긴 호리병을 언제든 단숨에 열 수 있는 마술의 오프너가, 마법의 주문이 있는 셈입니다.
인생은 우리 앞에 수많은 괄호를 열어놓습니다. 우린 평생 그걸 채우며 살아가죠. 고승의 설법집엔 ‘담설전정(擔雪塡井)’이란 말이 나옵니다. “우물에 흙을 부으면 우물이 없어지나 눈을 부으면 우물은 그대로 있다”라는 뜻이죠.
올겨울엔 우물에 흰 눈을 가득 부으려 합니다. 반드시 정답이나 해답이 아니어도 그렇게 꾸준히 채워가다 보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우물을 가지게 될 수 있을 테니까요.
토요일 오후면 배드민턴을 칩니다. 하늘 높이 쳐올린 셔틀콕이 하늘 위로 올랐다가 내려오질 않습니다. 원형 기둥으로 높이 세워진 구조물 위 어디엔가 안착한 모양입니다. 그 셔틀콕은 건물이 이곳에 서 있을 때까지 거기 그대로 있을 겁니다. 제 마음속 일각고래처럼, 아니 제 손안의 갤럭시 노트처럼 말이죠.
※이 글은 삼성전자 커뮤니케이터 S가 본인의 체험을 녹여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본문 속 소제목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제목을 인용한 것입니다
삼성전자 뉴스룸의 직접 제작한 기사와 이미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뉴스룸이 제공받은 일부 기사와 이미지는 사용에 제한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콘텐츠 이용에 대한 안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