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점 2년 반 만에 ‘미쉐린 스타’… 강민구 셰프가 반팔 티셔츠만 고집하는 이유
특정 분야에 타고난 재능을 지닌 사람이 있다. 반면, 재능을 넘어서는 노력 끝에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과정보다 결과에, 어떤 이는 결과보다 가정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둔다. 본인의 식당을 연 지 불과 2년 반 만에 미쉐린 가이드(Michelin Guide) 서울 편에 선정되며 국내 외식 업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강민구 셰프는 둘 중 어느 쪽일까? 지난 16일, 궁금증을 안고 그가 운영하는 모던 한식 레스토랑 ‘밍글스(Mingles)’(서울 강남구 청담동)를 찾았다.
대학 내내 ‘주경야독’… 학과 친구 사이서 ‘유령’으로 통해
강민구 셰프는 어린 시절 안 배워본 게 없었다. 미술∙음악∙서예학원을 섭렵했고 농구와 축구도 배워 곧잘 해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진득하게 이어가지 못했다. ‘반복’을 워낙 싫어하는 성향 때문이었다. 애타게 꿈을 찾아 헤매던 그는 우연히 요리에 흥미를 느꼈고 10대 때 이미 ‘요리사’를 평생 진로로 결정했다.
대학(경기대 외식조리학과)에 진학한 후엔 밤낮 없이 요리에만 매달렸다. 낮엔 강의실에서 이론 공부에 열중했고 저녁이면 와인 바 겸 레스토랑에 취직해 실전 경험을 쌓았다. 수업 때 말곤 학교에 머무른 적이 거의 없어 학과 친구들은 그를 ‘유령’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셰프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강민구 셰프는 요리할 때 늘 검정색 반팔 티셔츠만 입는다. 긴 소매는 요리할 때 거추장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 당시 입고 있던 것과 똑같은 티셔츠만 스무 벌 갖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엔 곧장 미국 플로리다로 날아갔다. 한 호텔 연회 주방에서 인턴 자리를 얻은 그는 대학 생활 내내 착실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레스토랑에 곧장 투입됐다. 이 시기에도 그는 쉼 없이 정진했다. 휴일이면 주변 유명 레스토랑을 찾아 프렌치 요리에서부터 베이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유명 레스토랑 ‘노부’ 최연소 총괄 셰프 자리 박차고 귀국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미국 생활을 끝내고 스페인을 여행하던 중 그는 세계적 퓨전 일식 레스토랑 ‘노부’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노부가 일식으로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비결이 궁금했던 터라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노부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틈틈이 김치를 담그는 등 한식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노부에서 일하던 시절의 강민구 셰프. 노부는 일식 레스토랑이었지만 그는 틈 날 때마다 김치 등 한국 음식을 만들며 ‘한식 전문 셰프’의 꿈을 키워갔다
강민구 셰프는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노부 바하마지점 최연소 총괄 셰프 자리에 올랐다. “시기가 맞았고 운도 따랐다”며 겸손해하지만 그 뒤엔 20대 시절을 꼬박 요리에 바친 그의 열정과 노력, 뚝심이 있었다.
연봉도 높았고 남부럽잖은 생활이 이어졌지만 ‘내 요리’를 향한 그의 갈증은 좀체 풀리지 않았다. 결국 노부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 밍글스를 열었다. 당시 그로선 꽤 대담한 모험이었다. “아직 실력이 부족한데 노부에만 묶여 있으니 정작 제 요리를 할 시간이 없었어요. 안정된 생활에 안주하면 요리사로서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다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발효식품∙제철채소 제대로 활용하는 한식, 상당히 선진적”
사실 강민구 셰프는 한식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그 때문에 그가 밍글스를 연 초기엔 “(밍글스에서 내는 음식은) 정통 한식이 아니다”란 혹평도 존재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고 한식 연구를 계속했다. 그리고 ‘익숙한 듯 새로운’ 한식을 선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한식의 특징은 살리되, 스타일이 전혀 새로워 전에 없던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란 밍글스의 평가는 그 결과로 탄생할 수 있었다.
▲밍글스는 한식 레스토랑답게 인테리어에서도 한국의 전통미가 자연스레 스며있다
밍글스를 대표하는 디저트 중 ‘장트리오’<아래 사진>란 게 있다. 개업 초기 강민구 셰프가 직접 고안해 선보인 이 메뉴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된장과 간장, 고추장을 가미해 완성된다. 밍글스의 특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음식인 셈이다.
▲밍글스의 시그니처(signature) 디저트 ‘장트리오’. △바닐라 아이스크림 △된장 크렘블레 △간장 피칸 △고추장 흑미 △위스키 폼 등을 조합해 만든다
한식에 대한 그의 소신은 확고하다. “한식 문화의 대(代)를 잇는 데 일조하고 해외 시장에서도 한국 요리사로서 인정 받을 수 있도록 경쟁력을 쌓겠다”는 것. 수많은 요리를 접한 그에게 한식이 유독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뭘까? “한식엔 간장∙된장 등 콩을 활용한 발효 식품이 많이 쓰이죠. 제철채소로 담그는 김치가 보편적 음식이고요. 한식에서 채소를 즐기는 방식이 상당히 앞선 문화로 다가왔습니다.”
▲밍글스의 대표 메뉴 ‘반상’(왼쪽 사진)과 ‘사찰식 라비올리’. 반상은 무시래기밥에 재철 재료로 만든 반찬이 딸려 나온다. 사찰식 라비올리는 절 음식 발우공양(鉢盂供養)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메뉴
‘클럽 드 셰프 레시피’ 개발에도 참여… “주부 고민 담았죠”
강민구 셰프는 ‘클럽 드 셰프 코리아’의 멤버 자격으로 클럽 드 셰프 레시피 개발 작업에도 참여했다. “주부의 고민을 담으려 노력했어요.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고 싶은 맘은 셰프든 주부든 다르지 않을 테니까요. 가정에서 편리하게 만들 수 있으면서 맛도 좋은 요리를 완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강 셰프에 따르면 클럽 드 셰프 코리아 멤버는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평소 좋아했던 동료 셰프들이다. “직업 특성상 저희는 휴일이나 연말이 더 바빠요. 일반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죠. 그런 의미에서 클럽 드 셰프 코리아 멤버들의 존재는 제게 무척 소중합니다. 요즘도 일 끝나면 함께 ‘뒤풀이’를 즐기곤 해요.”
틈만 나면 요리 공부에 나서는 습관은 ‘프로 셰프’가 된 지금도 여전하다. 어김없이 쉬는 날이면 가족과 전국 각지 맛집을 돌아다니며 요리의 영감을 얻는다. 특히 눈 여겨보는 주제는 ‘계절마다 바뀌는 제철 재료 중심 산해진미’. 그는 “사찰음식이나 한국 전통 음식을 익히며 밍글스에 새롭게 낼 메뉴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귀띔했다.
강민구 셰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밥’이다. “쌀이 들어간 음식이 좋아서”란다. 이뤄놓은 성과에 비해 참 소박한 그가 선보일 다음 메뉴는 또 얼마나 ‘예측 불가능’할까? 오로지 요리에 대한 에너지와 열정만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라선 그의 앞날을 지켜보는 일은, 비단 미식가가 아니어도 즐겁고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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