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입자 분석,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37세 청년 과학자의 당찬 실험
“젊은 과학자로서, 실패에 대한 부담 없이 오직 아이디어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미래에 필요한 연구를 주도하는 경험, 제게 미래육성사업은 바로 그런 기회입니다. 이제 막 시작점에 섰지만 한번 해보려고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세상을 바꾸는 건, 이를테면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1] 같은 사람이다.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미지의 바다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도전자 말이다. 과학계로 그 범위를 좁히면 박정원(37)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같은 이가 단연 그런 부류에 포함될 터다. 박 교수는 요즘 다차원 실시간 액체 현미경을 이용한 재료 분석에 한창이다. 세계 최초로 진행되는 이 연구가 성공을 거두면 다양한 재료의 완벽한 물성(物性) 파악이 가능해진다. 그로 인한 인류 삶의 변화는 가히 혁신이라 할 만하다. 지난달 23일, 눈앞의 난제를 하나씩 풀며 누구도 가지 않은 영역을 개척 중인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연구자 견해 존중하는 ‘보텀업’ 진행 방식 흥미로워”
대한민국의 과학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 중이다. 그 뒤엔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 업적을 쌓고 있는, 튼실한 학자군(群)이 존재한다. 그런데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사업(이하 ‘미래기술육성사업’)은 내로라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문턱이 높기로 유명하다. 자율적 연구가 보장되는 만큼 전에 없던 혁신적 아이디어여야 채택되기 때문. 뒤집어 말하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업계 최고 전문가에게 인정 받는 창구이기도 하다.
박정원 교수에게도 미래기술육성사업 지원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미래기술육성사업이란 게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미국에서 포스닥[2] 절차를 밟던 2015년. “대개 이런 사업은 연구해야 할 주제가 위에서 정해져 내려오는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진행되거든요. 그에 반해 미래기술육성사업은 연구자의 견해를 존중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이어서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그간 진행해온 연구 주제가 학계에서 식상해지기 전 (미래기술육성사업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죠.”
미래기술육성사업은 크게 두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아이디어 중심 제안서(A4 복사용지 2매 분량)로 1차 서류 심사를 거친다. 심사는 연구자의 성명과 소속을 모두 가린 채 ‘블라인드(blind)’ 방식으로 치러지는 게 특징. 2차 평가는 연구 주제 발표와 그에 이어지는 토론으로 구성된다. 발표자와 심사위원 예닐곱 명이 함께하는 토론 현장에선 연구 계획의 적정성과 연구진의 역량이 다각도로 검토된다.
두 차례의 까다로운 관문을 모두 경험한 박정원 교수는 “2차 평가, 그중에서도 심사위원과의 토론 과정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토론) 시간이 넉넉해 제가 제안하려는 내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거든요. 시종 날카로운 질문과 답변이 오갔기 때문에 긴장도 많이 했지만 제 아이디어가 어떤 부분에서 의의를 지니는지, 향후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해 심사위원들과 소통할 수 있어 뜻깊었습니다.”
연료전지부터 생명공학까지… “적용 가능성 무궁무진”
나노[3] 단위 입자는 매 순간 바뀌고 형태도 달라진다. 그 성질과 구조를 완벽히 파악할 수만 있다면 활용법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박정원 교수의 질문도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마침내 액상투과전자현미경을 활용, 입자를 3D 형태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학계에서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영역을 개척한 쾌거였다. 관련 연구 성과는 2015년 세계적 권위의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Science)’에도 소개됐다.
박 교수는 올 하반기 미래기술육성사업에 도전하며 기존 연구의 분석 방법을 확장했다. “나노 입자의 3차원 구조를 고분해능[4]으로 규명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 그 결과를 토대로 나노 입자 각각에 대한 다차원 재료 분석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가능하게 할 계획이다. 이 연구가 성공을 거두면 물성과 구조를 따로따로 준비해야 했던 기존 측정 절차가 획기적으로 단축된다. 그는 “단일 나노 재료에 대한 다차원 분석을 동시에 진행하는 건 완전히 새로운 시도”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가 더욱 기대를 모으는 건 풍부한 응용 가능성 때문이다. 연료전지 자동차가 한 예다. 오늘날 연료전지 자동차에 쓰이는 촉매는 합성을 거쳐 만들어진다. 즉 각각의 촉매가 어떤 구조를 지녔을 때 활성화되는지 분석할 수 있다면 최대 성능을 이끌어내는 일이 가능해진다. 생명공학 분야에의 적용 분야도 무궁무진하다. 이를테면 단백질 구조 분석의 경우, 3차원 방식으로 분자 하나하나의 구조를 파악한 후 그 결과를 물성과 연계하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미래기술육성사업, ‘길게 보는’ 연구 풍토 마중물 되길”
박정원 교수는 올 하반기 미래기술육성사업에 과제가 선정된 학자 중에서도 젊은 축에 속한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는 어떨까? “우리나라 과학이나 공학의 수준은 꽤 높은 편이에요. 해외 석학들과 교류하는 자리에서도 ‘한국 과학계에서 나오는 결과물은 믿음이 간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죠. 그런 만큼 좀 더 많은 연구자가 자신감 있게, 다양한 시도를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희망하는 풍토가 자리 잡으려면 선결돼야 할 과제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길게 보고 도전하는’ 관점의 변화다. 단기적 결과물을 도출하는 데 급급하다 보면 자칫 본래 아이디어가 지닌 파급력을 잃을 위험이 있기 때문. 초반 도전정신의 빛이 바래면서 안전하지만 매력 없는 방향으로 연구가 축소, 변형되는 경우도 더러 생긴다. 박 교수에 따르면 바로 그런 의미에서 미래기술육성사업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상적 연구 풍토를 구축해가는 산학협동 사례가 늘면 지금의 긍정적 분위기를 이어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미래기술육성사업이 그 단초를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미래기술육성사업의 자체 운영 기준에 따라 박정원 교수의 연구는 최장 5년간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게 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과제는 오랫동안 갈고 닦아온 아이디어를 잘 키워 싹을 틔우는 일. “얼마 전 올 하반기 (미래기술육성사업) 과제 선정자 대상 설명회에 다녀왔어요. 여러 분야 전문가에게 제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논의하는 기회가 많더라고요. 여러모로 기대가 큽니다.” 그는 “연구를 진행하며 종종 ‘내 생각이 맞나?’ 의문을 품곤 했는데 이번 과제 선정을 계기로 ‘이 방향으로 가도 되겠구나!’ 확신하게 됐다”며 “앞으로 내 과제를 (기존 연구 분야인) 재료 유전학 분야에 한정 짓지 않고 좀 더 새로운 학문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로 키워가고 싶다”고 말했다.
[1]‘포식자에 대한 두려움을 딛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펭귄’을 일컫는 용어(펭귄은 일단 한 마리가 바다에 뛰어들면 다른 무리도 잇따라 입수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2]Postdoctor.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해외 연구소 등에서 일정 기간 경험을 쌓는 것
[3]nano. 국제 단위계에서 10억 분의 1을 나타내는 분수
[4]高分解能. 인접한 그림을 구분해내는 능력이 높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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