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맛있는 음악, 어쿠스틱 뽕짝소울 밴드 ‘만쥬한봉지’_“관객은 창작의 순간보다 항상 앞서 존재하죠”
저희 뉴스룸에선 앞으로 인디밴드, 독립영화 감독, 동네 책방이나 작은 출판사 경영자 등을 찾아뵙고 나눈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각 분야에서 질주 중인 ‘인디(Indie)’들과 나눈, 속 깊은 이야기를 통해 단순한 빠르기인 속력(speed)보다는 방향이 포함된 속도(velocity)에 대해 다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인터뷰 첫 번째 초대 손님은 밴드 ‘만쥬한봉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나만 알고 싶지만 나 혼자만 알기엔 미안한’ 뮤지션입니다. 일상이라는 바다(海)로부터 길어 올린 싱싱한 활어(活魚) 같은 음악을 하는 밴드-만쥬한봉지의 음악에는 파도처럼 일렁이는 ‘뽕짝소울’과 촘촘한 그물이 건져낸 활어(活語)로 가득한 노랫말이 살아 숨쉽니다. 지금 만나보시죠.
1. 봄: 쌩목콘서트 – 여름: 사운드베리 페스타 – 가을: 테라스 야외공연
만쥬한봉지의 보컬 만쥬는 올 4월, 북촌 한옥마을에서 가진 ‘쌩목콘서트’에서 이펙터 등 일체의 전자장비 없이 청중들과 30㎝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함께 호흡했던 경험을 잊지 못한다. 어쿠스틱 소규모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관일체(歌觀一體, 가수와 관객이 하나가 되는)의 순간이었다. 밴드 리더인 최용수는 지난 여름 63빌딩에서 열린 ‘사운드베리 페스타’를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기억했다. 당시 만쥬한봉지는 행사 오프닝을 장식했다. 어두컴컴한 공연장을 뚫고 ‘껄껄’하는 호탕한 웃음이 퍼졌고 잠시 후 연주가 시작됐다. 어두운 곳에서도 생생하게 빛나는 독보적인 보컬과 조화로운 연주가 함께 한 공연이었다. 일단 어떤 존재가 좋아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무엇이든 상관없이 좋아져 버린다. 그렇다. 그때였다. 우리는 대책 없이 이 밴드를 사랑하게 됐고 노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치의 기쁨과 설렘을 느끼게 됐다. 9월에는 홍대 쫄깃센터에서 야외 테라스 콘서트가 있었다. 자연의 소리와 인공의 향기(옆 건물 1층에서 올라오는 숯불구이 냄새)가 함께 했다. 가을 노을이 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공연 내내 모두 크게 환호했다. ‘그래, 이 밤 잊을 수 없는 멋진 순간을 우린 함께 했어’라는 의미의 박수였다. 사실 음악을 포함해 모든 감상에 있어 오해와 오독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만큼은 우린 서로 교감했고 나만의 음악을 가졌으니 그 자체로 귀하다. 공연장에서 우리의 귀는 평소와 다르게 열린다고 한다. 음원이나 CD를 통해 방에서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도 있지만 굳이 우리가 공연장을 찾는 이유다.
2. 겨울: 심야 인터뷰
지난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합정역 근처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먼저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에 이어 바로 ‘호구조사’부터 들어갔다.
만쥬한봉지는 최용수(기타), 한준희(건반), 만쥬(보컬)로 구성된 혼성 트리오다. 혼성그룹의 전성기였던 90년대를 거쳐 현재도 다수의 팀이 활동하는 혼성 3인조 계보의 전승자이자 ‘어쿠스틱 뽕짝소울’ 종파의 창시자이다. 2012년 결성 이래 2013년 3월 첫 싱글 ‘밤고양이’ 를 시작으로 첫 번째 EP(미니앨범) ‘돈으로 주세요(2013년 11월)’와 총 12곡이 수록된 정규 1집 ‘밤마실(2015년 2월)’ 등 30여 곡을 발표했으며 현재 5곡이 수록될 예정인 미니 앨범을 맹렬 준비 중이다. (기대하시라, 근하신년 1월에 개봉박두!)
기타, 카혼, 멜로디언, 벨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최용수는 팀의 최연장자이자 리더를 맡고 있으며 (팀 내 독보적인 능력인) 운전도 담당 중이다. 지금은 프로듀싱과 작곡까지 하는 음악 영재처럼 보이지만 사실 소년 시절엔 과학올림피아드 금상 수상에 빛나는 과학 영재였다. 중학교 때 메탈리카에 빠져 밴드 음악을 접한 후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나 서울재즈아카데미 작곡과에서 음악 공부를 한 후 프로 뮤지션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고 건반과 코러스를 담당하는 한준희는 어린 시절 게임을 좋아하던 조용한 소년이었다. 학창시절 내내 음악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며 방황도 많이 했지만 최용수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계기로 밴드 음악에 전격 투신했다. 일본 영화음악 감독 칸노 요코를 좋아한다. 내성적이지만 수잔 케인의 ‘콰이어트’(알에이치코리아)란 책에 나오듯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잠재돼 있어 언젠가 보석처럼 환하게 빛을 발할 것이라 기대된다. 밴드의 ‘얼굴마담’인 만쥬는 보컬 외에도 탬버린, 셰이커, 카주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한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 후 글로벌 기업의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다 30대 1 이상의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만쥬한봉지에 합류했다. 공중파 라디오에서 홍대 맛집에 대해 토크를 했고 현재 만쥬한봉지 멤버들과 함께 진행 중인 마포FM 라디오 프로그램 (‘잡다한봉지’) 코너 중 ‘포만감수성’을 애정하는 ‘홍대식신’이기도 하다. 공연 도중 조명 속에서 도끼빗으로 가지런히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정리하는 모습에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는 세간의 평이 있으니 공연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길.
3. 팬들은 나의 힘
만쥬한봉지는 오프라인 공연 외에도 평소 소셜미디어나 온라인상에서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한다. 현재 페이스북 팬수는 현재 6000명에 육박(www.facebook.com/manjupocket, 얼른 페북 가셔서 팬 신청하시라)하는데 단순한 팬이라기보다는 다들 절친 혹은 가족처럼 가깝게 지낸다. 공연 사진 올리기는 기본, 정성이 가득 담긴 후기 등 따뜻한 격려는 밴드 멤버들에게 큰 힘이 된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에서 함께 사진 촬영을 하기도 한다.
종종 팬들로부터 받은 사연은 곡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잘생긴 카페 매니저를 남몰래 사모하던 여자 팬의 사연으로부터 탄생한 ‘테이크아웃’은 발표 당시 인디차트 1위에 올랐다. ‘열차가 그대에게’ 역시 지하철 객차 내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여성을 본 팬의 경험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당시 목격담에 따르면 그(녀)의 눈동자는 눈물로 그렁그렁했고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칸막이 객실’(문학동네)에서 ‘웃는 듯 우는 듯한 묘한 표정’으로 등장하는 젊은 여인처럼 가슴으로 울고 있었다 한다. ‘각자 저마다의 칸막이 객실 안에서 바깥으로 스쳐가는 삶의 풍경들을 바라보는(위 같은 책 작품해설 중 인용)’ 무심한 세계에서 그녀를 위로하는 것은 고개를 떨군 채 ‘달리고 또 달리는’ 열차이다. 정규 1집에 수록된 ‘술도 한잔’은 만쥬한봉지가 지향하는 ‘어쿠스틱 뽕짝소울’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밀(고)당(기는) 연애담처럼 달달한 스토리 속에 중독성 있는 ‘좋아 좋아’라는 후렴구가 녹아들어 간 이 노래는 ‘괜찮다면 술도 한잔’이라며 끝나는 듯하더니 ‘뽁’ 이라는 의태어로 마무리된다. 개그맨 김준현의 유행어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 관객에게 상상할 여지를 남기는 엔딩이다. 마침표가 딱 찍히는 것보다 더 큰 느낌표로 다가온다.
만쥬한봉지 멤버들은 “곡을 만들 때 우리 노래를 들어줄 분들을 먼저 생각하면서 창작을 한다. 오프라인 공연이나 소셜 상에서 늘 팬들과 소통하며 받은 느낌을 음반 작업이나 연습 때부터 담아내려고 한다. 팬들로부터 사연을 받는 것도 그런 작업의 일환이다. 하지만 일단 곡이 완성되고 음원이나 공연을 통해 전달되고 나면 그 이후 해석은 청중들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가사와 멜로디와 연주와 보컬을 딱 얼마만큼 어긋나게 이어붙여야 그 틈새로 삶의 내면이 보이는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평소 그러한 엇갈림의 간극들을 관찰하고 지켜봐 왔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4. 이번엔 시로스카이! 다음 언젠가는 장미여관(육중완), 오아시스(노엘 갤러거), 에이핑크(정은지)?
만쥬한봉지는 이제까지 밴드황정민, 잔나비 보컬 최정훈, 음란소년, 엑시트 보컬퍼커션 이슬기 등 여러 뮤지션들과 콜래보레이션 작업을 많이 해왔다. 최근 만쥬는 재즈힙합 여성 프로듀서 시로스카이의 신규 앨범 ‘La Lecture(라 렉튀르)’ 타이틀곡 ‘Tie-Dye(타이 다이)’에 보컬과 작사자로 참여했다. 평소 만쥬의 보컬은 노래 속에 감정을 담아내는 격정적인 메소드 연기 같은 타입이다. 한 곡 안에서도 감정이 몇 번이나 다른 방향으로 일렁거리는지 쉼 없이 몰려드는 해변의 파도를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번 곡에서는 담담한 톤으로 ‘뽕끼’를 완전히 배제한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했다. 해당 곡의 가사도 쓴 만쥬는 “곡을 듣는 순간 각운을 더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홀치기 염색을 뜻하는 ‘타이 다이’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한다. ‘지덕체를 겸비한 아티스트’인 시로스카이는 12월달 일본 재즈힙합 아티스트 켄이치로 니시하라 내한공연에서 게스트로 나올 예정인데 여기에 만쥬도 ‘타이 다이’ 보컬로서 무대에 등장할 계획이다.
보컬 만쥬는 장미여관 육중완의 팬이기도 하다. 그의 보헤미안적인 소울을 좋아한다. 오늘 인터뷰가 진행 중인 카페 지하 연습실에서 가끔 마주치기도 한다는데 언제 좋은 기회(듀엣곡)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본다. 올해 초 에이핑크 정은지는 공식 팬카페에 만쥬한봉지의 노래 ‘배웅’을 추천곡으로 올렸다. 가상의 ‘남친’에 대한 보컬 만쥬의 상상(혹은 망상)으로부터 시작된 이 곡을 듀엣으로 함께 부른다면 음색이 썩 잘 어울릴 듯하다. 리더 최용수는 올해 7월 안산M밸리록페스티벌에 왔던 오아시스 전 리더 노엘 갤러거의 공연을 못 본 것을 아직까지 아쉬워하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협주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5. 사람들 사이의 소통 그리고 멜랑꼴리에 관하여
만쥬한봉지의 노래에는 가사에 유독 ‘스마트폰’과 관련된 단어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배웅’(머리맡엔 핸드폰 두고 포근한 그대 목소리 기다려요), ‘사생활이 궁금해’(뒤집힌 핸드폰 누구와 무슨 이야길 하는지 궁금해), ‘랄라랄라’(휴대폰 친구 목록 들여다보지만) 등은 직접 언급된 경우이고 ‘술도 한잔’(문자를 쓰다 말다 열댓 번 고쳐’)이나 ‘먼저 잘게’(문자를 남기고 이렇게 난 용케 몰래 나온 거야)등 간접적으로 등장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1집 앨범 수록곡 중 절반 가까운 곡이 관련이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만쥬한봉지 멤버들은 “결국 우리 노래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인데 현대 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스마트폰”이라며 “가사를 쓸 때 그 상황에 처한 사람이 공감할 만한 장면 묘사를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등장시킨 것은 결국 현실을 반영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언급했다.
1집 앨범에 실린 ‘불면증-지운다-랄라랄라’는 공연장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멜랑꼴리함으로 인해 분위기가 침체될 우려가 있어 현장에서는 잘 듣기 힘든 곡들이다. 동시에 앨범 구매자들이 가장 많이 반복해서 듣는 노래로도 알려져 있다. 처음 들었을 때 갑자기 뭔가 묵직한 것이 들어오거나 빨려들 듯이 좋아서 계속 듣게 되는 노래가 있는 반면, 이게 뭘까? 하는 낯선 느낌에 계속 듣게 되는 노래가 있다. 분명히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 것 같고 그것에 외연을 둘러 가사로 쓰고 곡을 붙인 듯한데, 라며 계속 생각하게 된다. 가수가 이 노래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라고 계속 생각하면서 말이다. ‘명개’라는 우리말이 있다. ‘흙탕물이 지나간 자리에 앉은 검고 고운 흙’을 일컫는 말로 명개가 내려앉듯이 아픈 기억과 쓰라린 고통도 시간이 흘러간 후 되돌아보면 잔잔한 애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일부가 된다. “해결되지 않을 고민과 오랫동안 동거하면 다치는 이는, 결국 고민에게 몸을 내어준 자신뿐이다”라는 말처럼 아픔과 고통의 경험 또한 그대로 만쥬한봉지의 음악에 반영이 됐다.
‘글쓰기는 중간에서 나온다. 삶이 너무 안락하면 글을 쓸 이유가 없고, 너무 고단하면 여력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음악에 대해서도 이처럼 ‘골디락스(goldilocks)’ 상태라는 것이 존재할까? 보컬 만쥬는 “노래를 부를 때 너무 기분이 좋거나 행복하면 오히려 몰입이 안 된다”고 했다. 여담이지만, 모 대학 축제에서 龍(의 탈을 쓴 공연자)가 주스를 흡입하는 모습에 빵 터져버린 보컬 만쥬가 공연 도중 웃음을 참지 못하는 동영상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 보시기를 권유한다.
6. 만쥬한봉지가 생각하는 뮤지션의 길
만쥬한봉지의 곡을 듣다 보면 표현하려는 감정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밴드 멤버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최근 트렌드와 향후 방향성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현재 음악이 BGM처럼 되어버린 경향은 왈가왈부할 것도 없이 그냥 사실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목소리 높여 봐야 소용없고 다만 슬픈 일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뮤지션들은 이러한 환경에 적응을 해야만 한다. 음반으로 들었을 때 좋은 음악과 공연에서 라이브로 들었을 때 좋은 노래는 겹칠 수도 있지만 굳이 하자면 구분은 가능하고 만쥬한봉지는 두 방향 모두를 지향하고자 한다(일종의 투트랙 전략). ‘사생활이 궁금해’처럼 그냥 일상에서 BGM처럼 가볍게 들을 수 있는 노래와 ‘술도 한잔’이나 ‘밤고양이’와 같이 공연장에서 청중이 몰입할 수 있는 곡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목표이다. 만쥬한봉지의 곡 중 ‘먼저 잘게, 돈으로 주세요, 어른과 아이 사이’ 등은 소재가 먼저 확보되거나 가사가 먼저 쓰여진 후 곡이 붙여진 경우이고 ‘자다가도, 사생활이 궁금해, 지운다’ 등은 멜로디 라인이 먼저 떠오른 후 뒤에 가사를 붙인 케이스다.”
또, 직업인으로서의 뮤지션이 되기 위해선 누가 뭐래도 자신의 길을 굳건히 걸어가는 ‘근성’과 ‘의지’가 필수라는 말도 덧붙였다. “인생은 고단한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비관적이라서 오히려 불필요한 고민을 하지 않고 살아온 듯 하다”(최용수) “처음부터 대박을 노리다가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면 낙담하여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남과 비교하기보다는 여러 음악을 들으면서 감각을 키워두는 것이 필요하다”(한준희) “사실 첫 번째 미니앨범에 담겨있는 노래 ‘착한아이 콤플렉스’는 나의 이야기였다. 자신에 대한 의사결정 조차도 나의 행복보다는 타인의 의사에 의해 결정되고 항상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음악이라는 진정 내가 하고 싶었던 길을 찾은 지금은 과거의 나로부터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한다”(만쥬)
“뮤지션이라고 하면 흔히 프리랜서(freelancer)라고 생각하나 결코 ‘free’하지만은 않다. 조직에 귀속되면 규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듯이 뮤지션이 되려면 스스로 만든 규율에 따라 자기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뮤지션으로 살아남기 위한 현실을 막연히 상상하는 것보다 휠씬 더 힘들다.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음악에 대한 확신이 생겼을 때 이 길을 선택할 것을 추천한다”라고 만쥬한봉지 멤버들은 덧붙였다.
7. 깊어가는 겨울: 올해 마지막 단독공연
인디밴드 만쥬한봉지의 단독 공연이 지난달 29일 일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상수역 근처 에반스라운지에서 열렸다. 특히, 이번 공연은 내년 1월 발매 예정인 미니 앨범에 담길 신곡들을 처음 선보이는 쇼케이스로서의 의미도 있었다. 겨울의 들머리였던 그날 밤, 사실상 올해 마지막 ‘만쥬한봉지’ 공연을 보기 위해 일요일 저녁 도착한 공연장은 옆구리가 터져버린 10㎏ 쌀포대에서 쌀알들이 쏟아져 나오듯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어둠이 공연장 내부를 채우자 속이 꽉 찬 만쥬한봉지의 노래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일요일 밤을 만들어줬다. 만봉 패밀리인 베이스 오대호(‘패완얼’)와 드럼 이운주(‘귀염둥’)도 함께 한가운데 특별 게스트로 정재헌 성우(‘꿀성대’)도 함께 해 커버곡인 엑소(EXO)의 ‘으르렁’을 만쥬와 듀엣으로 선사했다. 공연 도중 남녀 관객 2명도 무대로 올라와 ‘술도 한잔’를 함께 불렀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너의 옆이 아니라면 뒤에라도 곁에 있고 싶다’는 애절함을 담은 신곡 ‘뒷자리’와 함께 미니 앨범 타이틀곡(제목 미정)을 처음으로 선보인 순간이었다. 타이틀곡 제목 후보로는 ‘연애초기 그 몽글함’, ‘너만의 주파수’, ‘우주 메시지’ 등이 경합 중인데 현장에서 관객 투표도 진행됐다. (이렇듯 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만쥬한봉지라니, 이 또한 멋지지 않은가!)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가는 눈비가 날리고 있었다. 내린다기보다는 누군가 하늘에서 물을 담은 스프레이로 방울방울 공중에 흩뿌리는 것 같았다. 짙은 어둠 속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았다. 공연은 끝났지만 여운은 그대로 남았다. 각각의 울림들이 합쳐서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냈다. ‘만쥬한봉지’의 매력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인터뷰 기사보다는 가까운 일정의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우선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올해는 단공(단독공연)은 더 이상 없다고 한다. 다만 이달에 라디오 공개방송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아쉬운 대로 그들의 음악을 접하기에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자세한 일정은 그들의 페이스북 공식 계정을 통해 공개된다. 1월 미니 앨범을 기다리며,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MP3를 다운로드하거나 올해 초 나온 정규 1집 CD를 구매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최근 읽은 소설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문학동네)에 나왔던 ‘프롱혼’ 이야기가 생각난다. 북미 사막 지대에 사는 가지뿔영양인 프롱혼은 시속 100㎞에 가까운 속력으로 달리는데 정작 그 지역에서 그의 천적인 재규어는 이미 멸종된 지 오래라고 한다. 그러니까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사막을 100㎞ 속력으로 질주 중인 프롱혼은 태어나서 한 번도 재규어를 본 적이 없지만 자신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아주 오래 전에 봤던 천적에 대한 기억이 만들어 낸 유령에게 쫓기고 있는 중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매일매일 숨가쁘게 빠른 속력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프롱혼의 질주’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과거로부터의 관습에 의해 관성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이미 만쥬한봉지 멤버들은 단순한 빠르기보다는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가 더 중요함을 알고 있다. 오늘도 계속해서 달리며 ‘장밋빛 현재’를 위해 성장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레이어가 풍성한 자신들의 개성에 다채로운 메이크업을 하고 이제 런웨이에 섰다. 만봉의 음악을 들으며 워터글로브 속 눈 내리는 마을을 상상해 본다. 그들은 워터글로브 속 자신만의 갇힌 세상에 안주하지 않는다. 워터글로브가 깨지면 세상의 소리도 함께 흘러 들어가 섞일 것이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호흡하며, 세상 밖으로(~ 심지어 조만간 선보일 미니 앨범 타이틀 곡에서는 지구 밖으로까지!) 내달리는, 어쿠스틱 뽕짝소울 밴드 만쥬한봉지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추신. 기사에 소개된 만쥬한봉지의 노래는 스마트폰에서 밀크 앱을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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