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눈으로 감상하는 3D 디스플레이 기술 구현, 머지않았습니다” 삼성전자 최고 ‘광학 설계 전문가’ 이홍석 마스터

2016/02/03
공유 레이어 열기/닫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스페셜 리포트 신년 특별 기획 삼성전자 신임 마스터를 만나다. 삼성전자 최고 광학 설계 전문가 이홍석 마스터. 스페셜 리포트는 풍부한 취재 노하우와 기사 작성 능력을 겸비한 뉴스룸 전문 작가 필진이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 콘텐츠입니다. 최신 업계 동향과 IT 트렌드 분석, 각계 전문가 인터뷰 등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주 1회 삼성전자 뉴스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홀로그램 스토리지'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홍석 마스터는 지난 2012년부터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 연구에 집중해오고 있다▲'홀로그램 스토리지'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홍석 마스터는 지난 2012년부터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 연구에 집중해오고 있다

동화 '피터팬'의 원작이기도 한 스코틀랜드 작가 J.M.배리(James Matthew Barrie, 1860~1937)의 1911년작 소설 '피터와 웬디(Peter and Wendy)'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사악한 선장 '후크'는 '피터팬'이 아이들과 사는 네버랜드의 한 동굴을 발견한 후 피터팬이 마실 감기약에 독(毒)을 탄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요정 '팅커벨'은 피터팬의 약 복용을 말리지만 피터팬이 믿지 않으려 하자, 자신이 그 약을 대신 마시고 죽어간다. 그제야 모든 정황을 이해한 피터팬은 팅커벨을 살리기 위해 큰 소리로 기도하며 온 세상 아이들에게 호소한다. "요정이 있다는 걸 믿으신다면 박수를 쳐주세요!" 그러자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는 점점 커진다. 마침내 팅커벨은 환한 빛을 내며 다시 살아난다.

 

팅커벨, 100여 년 만에 '헬레나'로 부활하다

피터팬과 팅커벨의 사연에 전 세계 어린이가 열광한 지 100여 년이 흐른 지난해 11월 초, 삼성전자 나노시티 기흥캠퍼스에서 삼성기술전이 개최됐다. 삼성그룹 관계사의 미래 신기술이 한데 모인 이 행사장에선 '2015년형 팅커벨'을 연상케 하는 요정이 등장,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 요정을 보려면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다. 장치의 생김새는 이랬다. 어깨 높이 정도의 대형 블랙박스 앞에 의자가 하나 고정돼 있다. 박스 윗면 뒤쪽으론 인조 잔디가 깔려 있다. 의자에 앉아 전방을 주시하면 잔디 한쪽에서 별안간 예쁜 요정이 튀어나온다.

'헬레나'란 이름의 이 요정은 잔디 정원 위를 빙그르르 돌다 갑자기 의자에 앉은 사람 쪽으로 쓱 날아온다. 3D 안경을 착용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맨눈으로 관찰하는 행위만으로 요정을 '손에 잡힐 듯'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삼성기술전에서 공개된 헬레나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의 작품이다. 이들은 '(요정처럼) 실재하지 않는 존재까지 실감 나게 재현해내는' 기술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그 구현에 승부수를 띄웠다. 흔히 홀로그램(hologram), 혹은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holographic display)로 불리는 기술이다.

올 초 삼성전자 뉴스룸이 이홍석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디바이스랩 마스터와의 인터뷰를 추진한 건 이 신기한 기술의 개발 과정이 궁금해서였다. 이홍석 마스터는 '헬레나' 팀을 이끄는 리더. 차세대 3D 디스플레이 개발로 삼성전자의 미래형 디스플레이 기술 기반을 마련, 지난해 말 삼성전자 신임 마스터가 된 주인공이기도 하다.

 

빛, 세기∙위상 둘 다 완벽 제어하는 게 '관건'

이홍석 마스터는 취재진에게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의 개념을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별도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해오는 등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임했다▲이홍석 마스터는 취재진에게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의 개념을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별도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해오는 등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도 3D 디스플레이의 일종입니다. 실재하지 않는 대상을 입체감 있게 보여준다는 점은 기존 3D 디스플레이와 동일하죠. 다만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나 3D 안경 같은 장치 없이도 동일한 광경을 자연스레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단순히 도드라져 보이는 느낌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모습까지 달라진다는 것 등은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의 고유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홍석 마스터에 따르면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형상을 마치 눈앞에 있는 사물인 것처럼 볼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다. 적용 원리는 소리의 경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이해된다.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건 그 사물이 지니는 시각 정보가 눈으로 들어와 뇌에서 인지되기 때문이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특정 사물이 내는 소리의 정보가 귀로 들어와 뇌에서 인지될 때 비로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빛이나 소리의 정보를 저장해뒀다가 특정 장치를 통해 재생할 수 있다면 빛이나 소리를 내는 실물이 그 자리에 없어도 충분히 보고 들을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배경 지식이 없는 이에게 헬레나의 날갯짓은 그저 신기한 요술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20세기 초 축음기(蓄音機, 원통형∙원판형 레코드에 기록해둔 음향을 재생하는 장치)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몹쓸 마법에 걸려) 아주 작아진 사람들이 기계 속에 직접 들어가 음악을 연주하는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축음기를 향했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어느덧 홀로그램 쪽으로 옮겨진 셈이다.

"종종 매스컴에서 '홀로그램 효과'로 소개되며 나오는 장면 중 상당수는 진짜 홀로그램 기술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게 '플로팅(floating) 이미지'로 불리는 일명 '페퍼의 유령(Pepper's Ghost)' 기법이죠. 관련 기술을 정식으로 선보인 19세기 극 연출가 존 헨리 페퍼의 이름을 딴 건데, 무대 공연에서 자주 이용됩니다. 국내에서도 소녀시대나 싸이 공연에서 선보인 적이 있어요. 가수가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무대 위쪽 허공에 떠오른 형상으로 보이는 식이죠.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거울로 반사시켜 마치 공중에 떠오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이어서 '공간에 떠 있는(floating) 2D 이미지'라고 정의하는 게 정확합니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선 간단한 원리가 적용된 홀로그래픽 구현 장치를 여럿 만날 수 있다▲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선 간단한 원리가 적용된 홀로그래픽 구현 장치를 여럿 만날 수 있다

사실 이미지를 2D로 보여주는 기술은 비교적 쉽다. 휴대전화나 노트북, TV 등이 이미지를 구현해내는 원리와 같이 2D 이미지는 빛의 세기만 조절하면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빛의 원리를 응용, 원하는 형상을 특정 공간에 3D 형태로 재생해 보여주는 데 이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홍석 마스터에 따르면 빛의 세기는 인간의 시각으로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빛엔 '세기' 외에 '위상'도 존재한다. 이 두 성질을 조정, 간섭시키면 원하는 공간적 위치에 빛을 만들거나 없앨 수 있다. 다시 말해 특정 사물이 존재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빛의 세기와 위상을 전부 제어(control)할 수 있어야 한다. 홀로그램 기술의 성패 역시 '빛의 세기와 위상을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는가?'란 문제 해결 방식에 달려 있다.

"사물을 입체적으로 인지하려면 네 가지 생리적 정보가 필요합니다. 첫째, 양안시차(兩眼視差)입니다. 두 눈으로 보이는 게 조금씩 달라진다는 뜻이죠. 둘째, 양쪽 눈이 어떤 각도로 모이는지 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셋째, 물체와의 거리를 감안한 초점 조절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지해야 할 정보는 운동시차입니다. 보는 이가 이동할 때, 이를테면 달리는 기차 안에서 가까이 있는 건 빨리 움직이고 멀리 있는 건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차이를 일컫죠."

극장이나 TV에서 어렵잖게 접할 수 있는 '안경형 3D 디스플레이'는 위 네 가지 정보 중 양안시차를 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정보 중 일부만 제공하는 셈이다. 하지만 네 가지 정보가 다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의 뇌는 혼란을 느낀다.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의 초점 위치와 머릿속에서 인지하는 초점 위치가 서로 다른 상황에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이 경우, 눈의 초점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눈이 쉬 피로해지고 사람에 따라선 어지럽거나 메스꺼운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움직이는 모습을 재현하려 해도 마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극복해 제대로 된 홀로그램을 만들려면 빛의 위상과 세기를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이홍석 마스터가 이끄는 팀원들은 사무실과 실험실을 부지런히 오가며 연구를 진행한다. ▲이홍석 마스터가 이끄는 팀원들은 사무실과 실험실을 부지런히 오가며 연구를 진행한다. 

"지난해 삼성기술전에서 선보였던 (헬레나) 홀로그램은 꽃밭에서 요정이 튀어나와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이도록 구성됐는데요. 이때 꽃밭은 실물, 요정은 홀로그램입니다. 홀로그램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원하는 공간에 실제 물체가 있는 것처럼 상(像)이 맺히게 하는 일명 '시스루(see-through)' 방식을 채택했죠.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3D'란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3D 디스플레이가 가장 발전된, 궁극의 형태라고 할 수 있거든요."

홀로그램 기술이 실용화되려면 관련 기기들의 성능 향상은 필수다. 디스플레이 패널은 해상도와 구동 속도를 높이는 쪽으로 개발돼야 하고, 카메라의 시점 추적 기능도 강화될 필요가 있다. 정확한 홀로그램 효과 구현을 위해 프로세서나 메모리칩의 성능도 향상돼야 한다. 여기에 홀로그램의 장점을 활용한 응용 서비스 시장까지 형성되면 금상첨화다. 삼성전자의 모든 기술이 집대성돼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홍석 마스터는 대학에서 광(光)공학의 일종인 '홀로그램 스토리지'를 전공했다. CD나 DVD에 소리나 2D 이미지 정보를 기록하듯 홀로그램으로 구현시킬 광저장장치를 연구, 개발하는 분야다. 박사 과정을 마친 후 "하루 빨리 홀로그램 기술을 상용화하겠다"는 꿈을 안고 삼성전자에 입사해 현재에 이르렀다. 

"회사가 제게 마스터 자리를 준 건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지금처럼 성실하게 연구를 계속해나간다면 머지않아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팀 이끄는 '기술원의 멀린'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팀 이끄는 '기술원의 멀린' 이홍석 마스터의 모습입니다.

홀로그램은 '온전하다'는 의미의 접두어 'holo-'에 '기록'이란 의미의 '그램(gram)'이 붙여져 형성된 단어다. 직역하면 '빛을 온전하게 담아내는 일' 정도가 될까? 하지만 빛은 소리와 달라서 (제어가 비교적 쉬운) 파동으로 바꾸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다양한 접근 방식이 필요한 이유다.

홀로그램 상용화는 대다수가 "불가능한 일"이라며 지레 포기해버리는 과제다.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만큼 매력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현실적 난관 앞에서 주저앉는 대신 차분하고 끈기 있게 핵심을 파고드는 한편,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팀원들을 이끄는 이홍석 마스터. 그의 모습에서 문득 '아서왕의 참모'로 잘 알려진 현자(賢者) '멀린(Merlin)'이 떠올랐다. 홀로그램 기술 특유의 환상적 효과가 낳은 오라(aura)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삼성전자 뉴스룸의 직접 제작한 기사와 이미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뉴스룸이 제공받은 일부 기사와 이미지는 사용에 제한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콘텐츠 이용에 대한 안내 바로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