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기업 운영의 뇌관’ 밀레니얼 세대 공략법
세계 인구 셋 중 하나… 그 속성은 수수께끼?
2018년 1월 현재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는 약 25억 명.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다. 이전 어느 세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규모가 크다. 밀레니얼 세대의 사전적 정의는 ‘1980년대에서 2000년대에 걸쳐 태어난 인구집단’이다. 올해를 기준으로 하면 18세에서 38세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가장 어린 연령을 어림잡아도 성년으로서 왕성한 경제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머릿수가 많다’는 것. 이 사실 하나로도 각국 기업이 밀레니얼 세대에 신경 쓸 이유는 충분하다. 실제로 밀레니얼 세대의 연간 지출액은 2010년대 초반 이미 2조4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산업계에선 이들의 구매력이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거라고 전망한다. 소득과 소비 둘 다 전성기를 향해가는 ‘젊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특히 디지털 아이템을 중심으로 부모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간접적 구매력 측면에서 따지면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결국 향후 기업의 미래는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케팅 전략의 성패 여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이들의 소비 유형을 포함한 활동의 특성이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달라 딱히 이렇다 할 마케팅 전략을 세우기 어렵다는 데 있다. 어느 인구 집단이든 출생 시부터 시대적 상황에 따라 성장 환경이 달라지므로 나름대로의 개성을 갖는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이전 세대와의 공통점을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향후 행동 방향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한 예로 기업 전략 컨설팅 전문 회사인 바클리와 보스턴컨설팅그룹, 서비스매니지먼트그룹이 2013년 공동으로 연구해 펴낸 보고서의 제목은 ‘미국의 밀레니얼들: 수수께끼 세대의 암호 풀기’였다(물론 이런 전문가 집단의 연령대는 대체로 밀레니얼 세대보다 높다).
(‘수수께끼’란 별칭에 걸맞게)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과 그게 향후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집중돼왔다. 밀레니얼 세대 중 상대적 고연령자의 소비 유형이 어느 정도 가시화되기 시작한 요즘은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다양한 공간에서 보다 많은, 그리고 세부적인 마케팅 전략에 대한 조언이 쏟아지고 있다. 골드만삭스 글로벌이 발행한 ‘밀레니얼 인포그래픽’이 대표적 예다.
이해 ‘첫걸음’은 이전 세대와의 연결고리 찾기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총론에 관한 한 모든 글로벌 기업이 이미 동의했거나 동의해가는 중이다. 문제는 ‘각론’에 접어들 때 발생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온라인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며 △밀레니얼 세대가 매력을 느껴 참여하게 되고 △정성스러운 소비자 관리를 통한 마케팅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 하는 논의에까지 이르면 비교적 분명해 보였던 담론들도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곤 하는 것이다.
우선 밀레니얼 세대라는 인구 집단의 특성 자체에 대해서도 보는 입장에 따라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 앞서 예로 든 ‘미국의 밀레니얼들…’(국내에선 ‘밀레니얼 세대에게 팔아라’란 제목의 단행본으로 번역, 출간됐다)의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를 다시 여섯 개의 소그룹으로 세분화한 후 각 그룹이 저마다 다른 특성을 지닌다고 규정했다.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보고서 역시 “성장 시기와 각국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구미 선진국과 일본∙중국, 동남아∙중남미 국가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밀레니얼 세대가 조금씩 다른 특성을 띤다”고 분석했다. 그렇잖아도 사례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접근해야 할 밀레니얼 세대 소비자를 이렇게 쪼개놓고 과연 ‘전략’이라고 부를 만한 원칙을 세울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전 세대의 눈에 밀레니얼 세대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심리와 행동 유형을 갖고 있단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어떻게 해야 밀레니얼 세대가 매력을 느끼고 신뢰감을 갖는지’ 상정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반면, 웬만한 규모의 기업에서 최종 결정권을 지닌 이는 이들보다 20년 이상 나이가 많다. 이런 사람들이 세대 차를 뛰어넘어 밀레니얼 세대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들에게 딱 들어맞는 결정을 내릴 거란 기대는 대개의 경우 무리다.
‘밀레니얼 세대 맞춤형 마케팅’을 권유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온라인 매체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게 온라인 매체를 잘 활용하는 길일까? 실제로 지금 이 시각에도 무수한 기기와 플랫폼이 쓰이고 변모한다. 새로운 형식도 끊임없이 생겨났다 사라진다. 이들 중 과연 어떤 걸 어떻게 활용해야 기업 활동에 유리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밀레니얼 소비자의 행태를 표면적으로만 보고 반응하면 이 같은 난관과 의문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게 마련이다. 그들이 정말 새 시대의 주역이라면 좀 더 깊이 이해해 이전 세대와의 연결 고리를 찾는 작업이 급선무다. 그래야 적재적소에 필요한 마케팅 전략을 세워 실행할 수 있다. 그러려면 밀레니얼 세대를 그저 수수께끼로 치부하는 대신 그들도 합리적 인간일 거란 가정 아래 이전 세대에서부터 줄곧 통용돼온 나름의 합리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인간 심리와 행태, 그 심연의 원칙을 찾아야 한다.
‘19세기 기업’ 코카콜라, 21세기에도 건재한 이유
밀레니얼 세대와 이전 세대의 연결고리 찾기, 그 첫째 작업은 경제 활동 유형에서 시작해볼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경제활동의 본질은 ‘경제는 가치의 생산과 교환’이란 명제일 것이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자신에게 가치 있는 걸 건네는 이에게 자신이 지닌 가치의 일부를 나눠주는’ 존재다. 이때 어떤 게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지, 그걸 교환하려면 어떤 방식을 적용해야 하는지 등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하지만 ‘가치를 생산한 후 나누는 게 경제활동’이란 대전제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밀레니얼 세대에게 가치 있는 것이란 대체 뭘까?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골드만삭스 리포트를 포함한 최근의 조사 연구는 하나같이 그 답으로 ‘웰니스(wellness)’를 꼽는다. 온라인 사전 딕셔너리닷컴에 따르면 웰니스는 ‘(특히 진지한 노력의 결과로 달성한)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상태’를 일컫는다. 이전 세대 사람들이 병에 걸리지 않으면 건강한 걸로 간주해왔던 것과 달리 밀레니얼 세대는 웰니스를 달성, 유지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인다. 음식은 유기농 식품으로 매끼 챙겨 먹고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골라 꾸준히 실천한다. 잘 맞는 사람들과 적절히 교류하고 음악‧춤‧게임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적극 활용, 면역력을 높이는 일에도 공을 들인다.
원하는 성능을 빠짐없이 갖췄으면서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기기를 찾아 엄청난 시간을 들여 인터넷 쇼핑을 하고 또래 집단의 평가에 귀 기울이면서도, 한편으론 값비싼 코스 요리를 즐기거나 요가 교실을 등록하고 좋아하는 뮤지션의 콘서트를 관람하는 데 드는 돈을 아끼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는 일견 모순투성이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웰니스를 삶의 핵심 가치로 간주, 그와 연관된 상품과 서비스에 주저 없이 투자한단 사실을 감안하면 그들 역시 합리적 경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셈이다. 자연히 이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대로 공략하는 게 곧 성공하는 기업 모델이 되리란 예측이 가능하다.
밀레니얼 세대와 이전 세대의 두 번째 연결고리는 자아 실현 욕구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비록 사회적 환경에 따라 그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자아 실현 욕구가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사회는 ‘집단’ 중심으로 돌아갔다. 겉으론 개성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실제로 유의미한 일은 대부분 집단을 통해 표출됐다. 학교나 기업, 국가 같은 울타리가 존재해야 비로소 그 안에서 활동하는 인간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환경에서 개인이 자아를 실현하는 지름길은 △스스로 견고함을 갖춰 △되도록 큰 틀의 집단에 속하고 △거기에 잘 적응해 그 일부가 된 다음 △해당 집단에서 특정 지위를 갖는 아무개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설사 개인적으로 이름을 드높인 것처럼 보이는 사례가 있다 해도 그 이면엔 인맥이나 학맥, 소속 집단 같은 ‘배경’이 반드시 존재했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선 한 명의 개인이든 수십만 명이 속한 기업이든 사실상 동등한 공간에서 사회와 만날 수 있다. 더욱이 밀레니얼 세대는 그 공간의 ‘소속’을 따지기보다 그 공간에 담긴 ‘콘텐츠’를 판단, 참여 여부를 결정한다. 이런 세상에선 굳이 집단의 간판 뒤에 개인을 숨길 필요가 없다. 실제로 밀레니얼 세대 중 상당수가 온라인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의견과 바람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그 성취를 위해 활발하게 참여한다.
따라서 기업이 개인의 이 같은 자아 실현 욕구를 한낱 소수 의견이나 일시적 변덕쯤으로 치부해버린다면 얼마 못 가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수 있다. 인간으로서의 근본적 욕구를 무시 당한 개인이 온라인 네트워킹을 통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거꾸로 이런 욕구를 존중해 잘 살려가는 기업은 깜짝 놀랄 만큼 적은 비용으로 큰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세 번째 연결고리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란 속담으로 대표되는 협업(또는 분업)이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일 때보다 여럿이 뭔가를 할 때 훨씬 더 즐겁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다. 능력에 따라 적절한 분업이 이뤄진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협업과 분업이 일의 성과를 높인단 사실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다.
밀레니얼 세대는 또래 집단의 온라인 평가에 유독 민감하다.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을 소셜 미디어 등에 공개하고 확산시키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이런 행위가 수시로 이뤄지는 것 역시 그들이 ‘여럿이 함께하는’ 작업의 효과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이런 특성을 십분 활용하는 전략으로 밀레니얼 세대와의 소통을 밀레니얼 세대 출신 직원에게 맡기는 방법이 있다. 실제로 스타벅스나 코카콜라 등 오랜 역사를 지니고도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일찌감치 이런 전략을 도입, 구사하고 있다.
밀레니얼? “오늘날 생존 조건에 최적화된 전략가”
‘사회적 자본’이란 개념이 있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가장 위대한 지성’ 중 하나로 꼽히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가 인간사회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용어다. ‘돈‧인맥‧배경‧건강‧인성‧외모 등 인간이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동원하는 유∙무형 자산 일체’ 정도로 정의되는 사회적 자본에 대해 부르디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자신의 사회적 자본을 총동원, 가장 좋은 수행 성과를 내려 애쓰는 전략가다.”
이번엔 사회적 자본을 밀레니얼 세대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그들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 사회 전반이 엄청나게 빨리 변화하는 시기에 태어나 가족의 가치가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집중적 교육 투자를 받으며 자랐다. 또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문화의 정착기에 날로 심화되는 환경 오염을 체득하며 성장했다. 그리고 막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데뷔하려는 순간, 전(全)지구적 규모의 경제 불황과 맞닥뜨렸다.
만약 당신이 그런 경험을 기반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어떤 사회적 자본을 동원하겠는가? 디지털에 의존하고, 건강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기성 세대의 잔소리보다 또래 집단의 의견에 귀 기울이게 되지 않을까? 최대한 돈을 아껴 쓰면서도 사회 전체 분위기를 바꾸는 데엔 과감히 지갑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볼 때 밀레니얼 세대는 더 이상 수수께끼가 아니다. 그들은, 말하자면 21세기식(式) 생존 조건에 최적화된 전략가다. 따라서 그들이 택한 생존 조건의 본질을 통찰하고 보다 좋은 방향으로 바꿔가는 걸 경영 기조로 삼는 기업이라면 밀레니얼 세대와의 ‘행복한 동행’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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