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굴다리도 이들 손 거치면 유쾌한 벽화로 ‘샤샤샥’
길을 걷다 보면 종종 어둠컴컴한 굴다리나 인적 드문 벽과 마주하게 된다. 페인트칠은 드문드문 벗겨지고 지저분한 낙서까지 가득한 공간은 보는 이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한다. 하지만 기분 나쁜 ‘흙길’을 유쾌한 ‘꽃길’로 바꾸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희망채색’. 벽화 봉사를 주제로 결성된 삼성전자 사내 동호회 명칭이다. 회원들은 틈 날 때마다 붓 한 자루 달랑 쥔 채 어둡고 삭막한 장소만 골라 다니며 따뜻한 숨결을 정성껏 불어넣는다. 지난달 17일, 여지 없이 이뤄진 이들의 ‘9월 봉사’ 현장에 동행했다.
가족 통행자 많은 굴다리, 하늘과 초원으로 꾸며볼까?
삼성전자 뉴스룸과 희망채색의 첫만남은 17일 이른 아침 경기도 모처의 한 주차장에서 성사됐다. 회원들은 버스 짐칸에 물감과 붓 등 각종 ‘준비물’을 옮겨 싣느라 부산했다. 오늘의 봉사 장소는 오산시민회관(경기 오산시 오산천로) 굴다리. 유동 인구가 적지 않지만 분위기가 다소 어둡고 음침해 오가는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회원들은 즉시 회의에 돌입했다. 벽화 주제를 정하기 위한 자리였다. 열띤 토론 끝에 ‘낙점’된 테마는 하늘과 초원. 가족 단위 시민이 많이 지나다니는 장소의 특성을 살려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방향으로 작업의 초점이 맞춰졌다.
한 달 평균 두세 차례 ‘출동’… 7년간 150여 곳서 활약
희망채색을 처음 만든 건 김도영(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메모리제조센터) 회장이다. “우연히 인천 열우길 벽화마을 벽화 채색 작업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어요. 벽화 그리기 작업을 접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죠. 소외 지역 환경이 벽화 하나로 새롭게 탈바꿈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후 사내 미술 동호회원 몇몇과 의기투합, ‘여러 곳에 좋은 벽화를 그려보자!’고 다짐하며 희망채색을 만들었어요. 그게 벌써 7년 전이네요.”
김 회장에 따르면 희망채색의 ‘1순위 출동 장소’는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이다. 소외 지역에 위치한 사회 공익·보호 시설과 우범 지대 등이 대표적. 모든 작업은 온전히 회원들의 재능 기부 형태로 이뤄진다. 다들 직장에 다니는 만큼 봉사는 대부분 주말 시간을 활용, 한 달에 두세 차례 진행된다. 지금까지 그린 벽화는 150여 점. △행궁동 벽화마을(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궁평유원지(경기 화성시 서신면 수문개길) △잠실야구장(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삼성서울병원 소아암병동(서울 강남구 일원로) 등 소재지도, 성격도 다양하다.
낡은 칠 벗긴 후 스케치, 채색까지 ‘팀플’로 일사천리!
벽화 봉사에도 몇 가지 순서가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벽화 그릴 장소에 남아있는 페인트를 전부 제거하는 것. 앞치마와 마스크로 무장한 회원들은 이미 몇 번 해본 솜씨인 듯 납작한 판을 든 채 천장과 벽면에 보기 싫게 붙어있던 페인트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페인트 제거 작업이 끝난 후 비로소 스케치 작업이 시작됐다. 삭막한 벽이 나무와 구름, 수풀로 채워지자 어둠침침했던 굴다리 내부가 조금씩 밝아졌다.
스케치까지 마무리된 후 이날 작업의 ‘하이라이트’인 채색 작업이 이어졌다. 각자의 위치에서 부지런히 색을 채워 넣는 회원들을 바라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미적 감각이 없어도, 벽화 봉사가 처음인 완전 초보도 괜찮을까? 실패할 수도 있는데 작업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을까?’
취재진의 호기심을 해결해준 건 ‘초보 회원’ 이승하(삼성전자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 글로벌운영팀)씨였다.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어요. 물론 작업하다 보면 조금씩 잘못하는 부분이 생기죠. 그럴 땐 실수한 회원보다 실력이 나은 회원이 어느 틈엔가 나타나 금세 보완해줍니다. 그래서 현장 분위기는 보시다시피 무척 편안해요.”
가족 봉사자 “좋은 일 하고 추억 쌓고… 일석이조죠”
희망채색 봉사가 남다른 비결은 또 있다. 심심찮게 봉사에 동참하는 회원 가족 덕분이다. 평소 바빠 함께할 시간이 부족했던 가족끼리 주말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단 점에서 회원과 가족 모두 만족도가 꽤 높다.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힘들지만 온 가족이 즐겁게 봉사할 수 있어 보람 있어요.”(손다연·14) “스케치 선 그리는 건 좀 어려웠는데 색칠하는 건 너무 재밌어요. 집에서 혼자 놀다 가족과 함께 나오니 즐거워요.”(손예담·10)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꿈이라는 정은서(14)양은 “그림을 섬세하게 그리는 작업이 아직 좀 어렵지만 진로에 도움 되는 일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벽화에 희망 담아 사회 곳곳 ‘깨진 유리창’ 수리합니다
심리학 용어 중 ‘깨진 유리창 법칙’이란 게 있다. 유리창 깨진 건물을 방치하면 행인들이 그 건물을 주인 없는 공간으로 여겨 쓰레기를 버리거나 돌을 던지는 등 더 망가뜨린다. 반면, 텅 빈 건물이라도 열심히 가꾸고 관리하면 누구도 그 건물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결국 깨진 유리창 법칙은 ‘주변 환경의 작은 변화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거리 곳곳의 방치된 공간을 찾아 ‘벽화’란 이름의 이야기를 입히는 희망채색 회원들. 어쩌면 그들은 깨진 유리창을 하나씩 고쳐나가 사회에 ‘작지만 소중한 변화’를 자아내는 주인공이 아닐까? “벽화를 완성하고 나면 어둑했던 공간이 반짝반짝 빛나요. 보세요, 처음엔 컴컴해 보였는데 지금은 제법 환해졌죠?” 김대윤 회원의 말처럼 채색 작업이 끝난 굴다리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내리쬐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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