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게임, 현대인의 문화가 되다
궁금하다, 이 ‘잘나가는’ 산업의 정체
30년 전쯤 일이다. 뉴스에 소개될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끌며 현대 산업의 중심에 혜성처럼 등장한 분야가 있다. 1980년대 말, 이 산업은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상륙했다. 처음엔 영세한 규모로 출발했지만 이내 대기업까지 뛰어들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1990년대 말 외환 위기가 한국을 강타했을 때 대부분의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 부문만큼은 오히려 더 호황을 누렸다. 내수 기반도 탄탄했지만 수출 부문에서도 일약 ‘효자 업종’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이 ‘IT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며 이 산업은 또 한 단계 도약했다. 지난 2013년 이 산업의 국내 시장 규모는 9조7196억 원이었다. 수출 규모는 약 3조 원. 전체 수출액의 2%가량을 차지했다.
이 산업은 일단 공해 발생량이 적다. 지나치게 많은 원자재나 에너지를 쓰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 머릿속에서 나온 창의적 콘텐츠가 주요 기반을 이룬다. 대표적 21세기형 산업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산업이나 경제 부문에 별 관심 없던 사람도 구미가 당길 법하다. 정작 뚜껑을 열고 정체를 밝힌다면 그 반응은 어떻게 바뀔까? 이 산업을 가리켜 사람들은 ‘게임’이라 부른다.
게임 트렌드, 그 ‘파란만장 40년사(史)’
게임에 문외한인 사람도 게임의 문제점을 꼽으라면 으레 ‘폭력성’을 떠올린다. 그만큼 폭력성은 게임의 고질적 문제인 동시에 대표적 특성으로 언급되곤 한다. 그런데 정말 모든 게임이 폭력적일까?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은 일본 닌텐도사(Nintendo社)의 ‘마리오’ 시리즈로 알려져 있다. 귀엽고 앙증맞은 캐릭터 ‘마리오’가 공주를 구하기 위해 콩콩 뛰어다니며 활약하는 이 게임은, 파괴적 요소가 아주 없진 않지만 “폭력적”이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다. 어느덧 고전이 돼버린 ‘팩맨’ ‘퀴즈퀴즈’ ‘카트라이더’ ‘마비노기’ ‘위(Wii)’ 등의 게임은 폭력 수준이 지극히 낮거나 아예 없다. 하지만 이런 게임이 등장할 때마다 게이머(gamer)의 저변은 비약적으로 확대돼왔다.
게임은 혼자 시간을 때우는 일명 ‘패스타임(pastime)’ 유형에서부터 여럿이 치밀하게 전략을 세워 움직이는 롤플레잉게임(RPG)처럼 다수의 협업을 요구하는 것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온라인 게임 사용자의 참여 폭이 넓어지면서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게임) 같은 게임은 (각박하고 고립된) 현실세계보다 더 실감 나는 가상세계를 제공하기도 한다.
IT 기술 발달과 함께 게임 기술도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 게임 속 기술 구동에 점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으며, 그 결과 게임 속 환경은 날로 현실을 닮아가는 추세다. 이 같은 변화는 ‘시각적 게임 환경이 현실에 가까울수록 몰입도는 그에 비례해 높아질 것’이란 예측을 전제로 한다.
물론 최근 게임 업계에 불고 있는 ‘복고(retro)’ 열풍은 특정 게임의 매력을 결정짓는 요소가 단순히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주관적 행복감’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때 주관적 행복감 역시 몰입도와 연계된다. 사실 몰입도에 영향을 끼치는 최대 요소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다. 초창기 테트리스 등 몇몇을 제외하면 제아무리 단순한 게임이라 해도 어느 정도 ‘설정’을 갖추게 마련이다. 게이머들은 이 설정에 열광하며 게임에 빠져들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며 게임 자체의 시각적 완성도는 점차 높아져갔다. 덩달아 스토리라인도 풍성해졌다. 일부 진화된 게임 장르는 사용자의 작동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스토리 전개를 선보이기도 했다. 사용자가 게임 속 스토리텔링 요소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 몰입도를 높여가는 RPG가 대표적이다.
TV, ‘최첨단 게임 플랫폼’으로 변신하다
시각(visual) 역시 게임의 몰입도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다. 세계적 아트 디렉터 와이어스 존슨(Wyeth Johnson)은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디오게임: 더 무비(Video Games: The Movie)’(2014)에서 이렇게 말했다. “초기 게임 산업은 사용자가 어떻게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활용, 소통하는지에만 주목했다. 반면, 최근엔 상대적으로 최첨단 그래픽(high-end graphic) 등의 중요성이 커졌다. 그만큼 시각적 요소가 게임 스토리텔링과 작동 방식에 점점 더 많이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사용자 손놀림을 따라 화면에 정확하게 투사되는 변화야말로 게임 몰입도를 향상시키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최근 출시되는 게임의 상당수는 실사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그래픽 화면을 구현한다. 게임기(혹은 키보드) 조작에 따른 게임 속 캐릭터의 동작도 정교해졌다. 사용자의 마음과 화면 움직임이 하나가 되고, 그 결과가 다시 사용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구조는 오늘날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게임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지면서 사용자가 게임을 즐기는 매체의 화면 크기 역시 다양하게 변해왔다. 처음엔 대부분이 ‘게임 전용 기기’여서 화면이 큰 편이었지만 이내 가정에서, 혹은 휴대용으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작은 화면이 등장했다. 인터넷 게임이 개발되며 다시 큰 화면이 선호됐지만 모바일 게임의 발달과 함께 휴대전화 모니터 크기만 한 화면에서 손가락 작동으로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최근엔 TV가 커뮤니케이션·저장·정보처리 등 과거 PC가 해왔던 일을 빠른 속도로 통합하면서 대형 스크린용 게임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대형 스크린을 갖춘 스마트TV는 지금까지의 게임 플랫폼 트렌드의 최첨단에 서 있다. 최초의 게임기는 기기 한 개당 하나의 게임만 담고 있는 ‘전용 게임기’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컴퓨터 게임이 가능해지면서 컴퓨터 내 저장 공간에 여러 개의 게임을 담을 수 있게 됐다. 온라인 게임이 개발되면서부턴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깐 후 그걸 기반으로 서버에 접속해 게임을 즐기는 형태의 구현이 가능해졌다. 스마트TV는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된, 거의 무한한 종류의 게임을 TV라는 대형 스크린에서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위험한 오락’과 ‘창의의 원천’, 그 어디쯤
“비디오 게임이 해롭다고요? 로큰롤이 처음 나왔을 때도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죠.” 일본 게임 디자이너 미야모토 시게루(宮本茂)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닌텐도 소속으로 마리오·위 등 ‘베스트셀러’ 시리즈를 연이어 선보인 그의 설명은 어쩌면 당연하다. 기원전 2500년 고대 그리스 시대에 쓰인 글귀 중 “요즘 연극은 젊은이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쓰레기일 뿐이다”란 문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새로운 문화적 시도’는 그 내용과 형식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비디오 게임의 유해성 논란은 그 역사가 상당히 오래다. 비디오 게임이 산업 전면에 등장한 이후 40여 년간 ‘비디오 게임 무용(無用)론’은 줄기차게 제기돼왔다. 폭력성을 강화시킨다,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사행성을 조장한다, 사회성 발달을 저하시킨다….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각종 논리적·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내놓은 연구 결과다.
‘비디오 게임이 인간의 심신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인한 임상 연구 결과도 상당수 보고돼 있다. 지난 2002년 모리 아키오(森昭雄) 일본 니혼대(Nihon University) 교수는 “일상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뇌 구조가 일반인과 달라져 정상적 정신 활동이 어려워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일명 ‘게임뇌’란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무수한 갑론을박에도 게임 산업은 놀라운 속도로 몸집을 키워왔다. 게임기와 PC, 모바일 기기 등 ‘하드웨어’가 진화하며 그 안에서 구현되는 ‘소프트웨어’ 역시 다양해졌다. 이제 게임에 ‘커뮤니티’나 ‘스포츠’ 같은 단어가 어울려 사용되는 게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얼마 전부턴 ‘게이머의 세력화(empowerment)’ ‘게임의 정치’ 같은 얘기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관련 인구 역시 처음엔 청소년과 남성에 집중됐지만 점차 여성과 어린이, 장·노년층으로까지 확산됐다.
게임 인구의 저변이 넓어지며 최근엔 게임의 ‘순기능’에 주목하는 목소리도 뚜렷해지는 추세다. 어린이용 게임 전문 PR 웹사이트 ‘똑똑한 아이 키우기(Raising Smart Kids)’ 같은 공간에선 게임의 긍정적 영향을 보여주는 연구 성과가 수시로 소개된다. ‘게임을 많이 하는 아이는 규칙에 따르고 협동할 줄 안다’ ‘게임은 사용자의 공간·지각 능력 발달과 문제 해결 능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게임 능력과 멀티태스킹(multi-tasking) 능력은 정비례 관계다’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상황을 재빨리 인식할 줄 알며 대처 능력도 탁월하다’ 따위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곳에 소개된 보고 중엔 ‘게임을 하면 면역 기능이 향상된다’는 내용도 있다.
‘게임학(學)’ 등 이 분야를 다룬 본격적 학문도 생겨났다. 게임학자들은 보다 심도 있는 게임 분석을 시도,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의 명저 ‘유희적 인간(Homo Ludens)’(1938)과 관련시켜 “게임은 인간의 본질적 부분”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옛날 이야기에 열광하던 인간의 오랜 유전자를 들어 게임의 의미를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다. “어떤 시대에나 스토리텔링 형식은 있었고 비디오 게임은 우리 문화의 큰 부분입니다. (중략) 사람들은 영화나 연극을 즐기듯 비디오 게임에 열광하는 겁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 역을 맡아 명연기를 펼쳤던 영국 유명 영화배우 앤디 서키스(Andy Sekris)의 말이다.
게임은 이미 ‘대세’… 올바른 활용 방안 고민해야
게임 기능에 대한 논란은 퀴즈처럼 ‘정답’이 있진 않다. 진실은 이 모든 말들을 조합한 지도의 어느 지점에 있으며, 시점에 따라 그 진실의 자리도 움직일 수 있다. 진실이 뭐든 비디오게임이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떼어내기 어려운 문화로 자리 잡은 건 분명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우리나라 게임 이용자의 전반적 현황을 분석, 발표한 ‘2015 게임 이용자 실태 조사’와 ‘일반 국민의 게임 이용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이후 1회 이상 게임을 즐긴 국민 비율은 74.5%에 이르렀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이 정도로 우리 삶 깊숙이 들어온 게임을 무조건 반대하거나 억압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이미 ‘21세기형 문화’로 확고히 자리 잡은 만큼 이제 남은 일은 지금부터라도 모든 이가 게임에 관심을 갖는 것, 그리고 모두를 위해 보다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논의의 수준을 가다듬는 것일 테다.
삼성전자 뉴스룸의 직접 제작한 기사와 이미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뉴스룸이 제공받은 일부 기사와 이미지는 사용에 제한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콘텐츠 이용에 대한 안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