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메모리 산업 30년사 빛낸 삼성 반도체 신화의 순간들

2015/01/14 by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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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삼성전자는 SSD 850 PRO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세계 최초로 개발한 32단 수직 적층의 3차원(3D) V낸드 플래시를 탑재, 최강의 솔루션을 구현했다. 3D V낸드는 삼성전자가 2013년부터 현재까지 업계에서 유일하게 양산하고 있는 차세대 낸드플래시다. 메모리 공정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10나노급 2D 플라나(Planar) 낸드플래시보다 생산성이 훨씬 높을 뿐 아니라 속도는 2배 더 빠르고 내구성은 10배 이상 강하며 소비전력은 이전 제품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업계는 물론, 언론에서도 이를 두고 “30년 메모리 산업 역사를 빛낼 최대 기술 혁신”이라며 찬사를 보냈지만 정작 일반 소비자는 ‘3D V낸드’니, ‘2D 플라나(Planar)낸드’니 하는 용어들이 뭘 의미하는지 알기 쉽지 않다. 삼성투모로우는 이 같은 반도체 기술 개발이 현대 전자산업과 소비자 생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그 배경을 분석, 정리했다.

지난해 7월 “메모리 역사를 바꾼 혁신 제품”이란 극찬 속에 첫선을 보인 삼성전자 SSD 850 PRO▲지난해 7월 “메모리 역사를 바꾼 혁신 제품”이란 극찬 속에 첫선을 보인 삼성전자 SSD 850 PRO

02▲“소비자용 SSD 시장을 V낸드 기반 SSD로 전환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는 삼성전자 SSD 850 EVO. 지난해 12월 전 세계 53개국에 글로벌 론칭했다

 

데이터 무한이동 시대 “저장 공간 잡아라”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해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온라인 자료 공유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 1월, 전자제품 판매 전문지 이마케터(eMarketer)는 그 해 말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 수를 17억여 명으로 추산했다. 이는 세계 인구의 25%에 육박하는 수치로 2009년 글로벌 스마트폰 사용자 수의 4배 규모다.

삼성 노트북, 갤럭시 탭S, 갤럭시 노트4, NX 미니가 놓여있는 사진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공유되는 데이터의 양 또한 급증하고 있다. 대표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의 경우 매일 업로드되는 사진만 2500억 장이다. 트위터에 올라오는 새로운 트윗은 분당 10만 건, 유튜브에 등록되는 동영상 클립은 분당 30시간 분량에 이른다.

이처럼 세계를 가로지르는 데이터 이동량은 폭발적 비율로 성장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2015년 1월 현재 매월 이동하는 정보량은 약 4엑사바이트(ExaByte, EB, 1EB는 10의18승). 인류 역사를 통틀어 지금껏 사용된 단어의 총량이 약 5EB라고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다. 오는 2016년이면 글로벌 데이터 이동량은 10EB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데이터의 폭발적 증가’를 표현하는 이미지입니다

이렇게 많은 양의 정보 가운데 자신에게 필요한 걸 취사선택하려면 소비자는 자신의 단말기에 특정 데이터를 저장해둘 필요가 있다. 또한 해당 데이터를 이용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도 설치해야 한다.

소비자용 단말기 중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는 스마트폰과 점차 태블릿화(化)돼가는 PC 등 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의 크기는 날로 축소되는 추세다. 점점 작아지는 단말기 안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련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일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일만큼이나 골치 아픈 과제다. 반도체 메모리 산업이 최우선적 과제도 삼는 일도 바로 이 부분이다. 그 결과, 메모리칩은 ‘크기는 작아지고 용량은 커지는’ 쪽으로 점차 발전해 왔다.

하지만 아무리 연구·개발에 힘쓴다 해도 물리적 구조상 데이터를 저장하는 셀 크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에 부닥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저앉아버린다. 하지만 그 중 일부는 초인간적 힘을 발휘해 그 벽을 뛰어넘는다. 삼성전자의 V낸드 기술은, 반도체 산업에서 바로 그 ‘일부’에 해당한다.

 

발상의 전환, ‘수직 구조’로 혁신하다

낸드플래시 메모리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시작한 건 15년 전이었다. 이후 관련 기술 경쟁은 ‘누가 더 미세한 공정으로 제품을 생산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조금이라도 더 미세한 공정기술을 보유해야 집적도가 높고 전력 소모량이 적으며 성능도 뛰어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경쟁은 10나노급 공정에 진입하며 한계를 드러냈다. 선 폭이 가늘어지며 셀 간 간섭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저장된 데이터가 갑자기 변경되거나 저장 속도가 느려지며 발열 현상이 나타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세 공정 실현에 투자되는 금액에 비해 생산량 증대 효과는 갈수록 둔화되기 시작했다.

3차원 V낸드 기술은 이 같은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비결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V낸드의 ‘V’는 ‘수직’을 의미하는 영단어 ‘vertical’의 머리글자다. 삼성전자는 셀을 옆으로 붙이던 집적 구조를 바꿔 아래위로 쌓기 시작했다. 2014년 세계 최초로 양산을 시작한 24단 3D V낸드는 이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V낸드 기술의 등장으로 낸드 플래시 기술 경쟁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바뀌었다. 2D 플라나 낸드가 여러 사람이 좁고 불편한 방에서 살아야 하는 단독주택이라면 3D V낸드는 보다 많은 사람이 안락하게 살 수 있도록 동일한 대지 면적에 지어 올린 고층 아파트라고 할 수 있다.

V낸드 기술(오른쪽)은 좌우로 이어지던 셀 집적 구조(왼쪽)를 상하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탄생했다▲V낸드 기술(오른쪽)은 좌우로 이어지던 셀 집적 구조(왼쪽)를 상하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탄생했다

3차원 V낸드 플래시 공정의 핵심은 수직 적층 과정에서 수십 억 개 규모의 채널 홀 에칭(etching, 반도체 표면의 부분을 산 따위를 써서 부식시켜 소거하는 방법)을 성공시키는 기술에 달려 있다▲3차원 V낸드 플래시 공정의 핵심은 수직 적층 과정에서 수십억 개 규모의 채널 홀 에칭(etching, 반도체 표면의 부분을 산 따위를 써서 부식시켜 소거하는 방법)을 성공시키는 기술에 달려 있다

V낸드 기술 덕분에 소비자는 더 작고 얇은 스마트기기를 갖고도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저장, 전송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기업 역시 적은 비용으로 원활한 데이터 관리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누가 뭐라고 해도 반도체, 해야겠습니다!”

세계적으로 플래시 메모리(반도체)가 처음 상용화되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초였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반도체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도 이 즈음이었다.

1983년 2월 이른 아침,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 그 전날 많은 생각으로 잠을 설친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날이 밝자마자 수화기를 잡았다. 상대는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이었다. -‘반도체, 신화를 쓰다’(한국반도체산업협회) 중

지금 생각하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드는 게 그렇게 오래 고민할 일일까?’ 싶지만 당시 삼성의 반도체 산업 진출은 그야말로 운명을 걸고 온 힘을 기울여 겨루는 마지막 한판 승부였다. 국내외 경제 상황에 워낙 변수가 많아 기업 입장에선 혁신적 방향 설정을 고민해야 하면서도 무작정 투자만 할 순 없는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는 반도체 기술 상용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돼 선진국 시장을 중심으로 전자시계·트랜지스터 등 소형 전자제품 보급이 급속도로 확대되던 때였다. 우리 정부 역시 반도체 산업의 향후 시장성을 내다보고 기업 진출을 대대적으로 장려했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도 한 발 걸쳐둔 상태였지만 전폭적으로 뛰어들기엔 성공 가능성이 너무 낮아 실패할 경우 기업 운명이 바뀔 수도 있을 만큼 위험 요인이 큰 상태였다.

무엇보다 세계 반도체 기술의 양대 산맥이었던 미국과 일본의 ‘기술 문단속’이 더없이 철저했다. ‘반도체는 대단한 물건’이란 소문만 무성할 뿐 제품을 구입하는 것조차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자체 기술 개발은 엄두조차 못 낼 상황. 관련 연구 결과나 업종도 전무하다시피 해 국산 반도체 생산은 흡사 ‘동네 대장간에서 최신형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였다.

설령 기술을 갖췄다 해도 반도체 생산은 일개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설비 투자를 필요로 한다. 당시는 두 차례의 석유 파동으로 세계 경기가 바닥을 치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를 자사의 주력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결단은 훗날 사람들이 ‘2·8 도쿄 선언’이라고 부를 정도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사실 이 결단 뒤엔 이건희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이 부회장은 몸소 전 세계를 누비며 반도체 석학들을 만났고 그들에게서 입수한 자료를 분석, 사업 윤곽을 잡았다. 그리고 불과 30년 만에 삼성전자는 전 세계 반도체 최강자 위치에 올랐다.

 

1983년, 64K D램 자체 개발에 성공하다

1983년 4월,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의 첫 번째 아이템으로 D램을 선정했다. 자체적으로 첨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미국에 현지법인을 세웠고 해당 분야 연구개발에 종사 중이던 글로벌 인재 영입에도 활발하게 나섰다.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한국인 연구자들이 현지의 훌륭한 연구·생활 조건을 버리고 오로지 “애국하겠다”는 일념으로 속속 귀국했다.

“만세!” 어느 날, 흰 가운 차림의 한 사나이가 실험실을 뛰쳐나오며 환호했다. 이후 실험실에 틀어박혀 몇 날 며칠을 보낸 게 분명한, 꾀죄죄한 행색의 사람들이 서로 얼싸안고 뛰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전신인 삼성반도체통신 이상준 박사팀이었다. 이 박사팀은 미국 마이크론사에서 넘겨받은 칩을 토대로 6개월간 밤낮 없이 씨름한 끝에 64K D램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반도체 이론의 기초부터 익혀가며 고생한 결과였다.

1983년 12월 12일 64K D램 개발 생산 경축 행사 당시 모습. 오른쪽 사진은 그 해 11월 64K D램 시생산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개발진이 모여 촬영한 것이다▲1983년 12월 12일 64K D램 개발 생산 경축 행사 당시 모습. 오른쪽 사진은 그 해 11월 64K D램 시생산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개발진이 모여 촬영한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가 경악했다. 동일 기술을 개발하는 데 일본은 꼬박 6년이 걸렸기 때문. 삼성전자는 단 6개월 만에, 그것도 미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안정적 수준으로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1992년, D램 세계시장 정상에 오르다

1992년은 삼성전자가 세계 D램 시장을 정복한 기념비적 해였다. 후발국의 설움을 딛고 무수한 난관을 극복, 마침내 첨단 반도체 기술로 세계 1위에 오른 것이다. 반도체 산업 진출을 선언한 지 불과 10년 만에, 그것도 ‘첨단 중 첨단’이란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건 신화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사건’이었다. 삼성전자는 이후 단 한 차례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는 ‘불패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 반도체는 1993년 메모리 전체, 1995년 S램, 2000년대 들어선 플래시 메모리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구동 칩 등 비메모리 분야에서 각각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일취월장하는 실력에 더해 운도 따랐다. 대표적인 게 1990년대 있었던 통상마찰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마이크론사가 국내 반도체 기업 3사를 상대로 제기한 반(反)덤핑 소송에서 삼성은 ‘80% 덤핑’이란 예비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5개월 후 최종 판정에선 ‘반덤핑 관세율 0.74%’의 성과를 받아들 수 있었다. 미국 반도체 산업이 일본이란 ‘막강 라이벌’을 만나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국을 키우는 게 오히려 일본 견제에 득이 될 수 있다’는 미국 측 판단이 작용한 결과였다.

 

1994년, 일본 제치고 ‘완전 기술 자립’

1994년 9월, 모 일간지에 특이한 전면 광고 하나가 실렸다. “한민족 세계 제패, 월드베스트 정신으로 해냈습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256M D램 개발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광고 한복판엔 구한말 당시 태극기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김광호 당시 삼성전자 사장은 “적어도 D램 기술에선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양국이 평등했던) 구한말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평등 이상’이었다. 삼성전자의 D램 개발은 당시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 업체들과의 기술 격차를 6개월 이상 벌린 획기적 사건이었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완전한 기술 자립을 이뤄 ‘좇는 자’에서 ‘이끄는 자’로 지위가 격상됐다.

세계 최초 256M D랩 개발 성공을 알리는 1994년 9월 모 일간지 전면광고▲세계 최초 256M D랩 개발 성공을 알리는 1994년 9월 모 일간지 전면광고

 

2004년, 그리고 오늘… 신화는 계속된다

2004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8Gb 낸드 메모리칩을 개발하고 이듬해 애플과 제조 계약을 맺었다. 2009년엔 30나노미터(nm)로 축소된 낸드 플래시 메모리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이 시도는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2010년엔 30나노미터급 D램과 20나노미터급 낸드 플래시를 역시 세계 최초로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2010년, 전자산업 전문지 IC인사이트(IC Insights)는 “2014년이면 삼성전자가 인텔을 제치고 세계 최대 반도체 칩 공급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제로 1999년부터 10년간 반도체 수익 부문에서 삼성전자와 인텔의 연간 성장률은 각각 13.5%, 3.4%였다.

그리고 2014년, 삼성전자는 메모리 기술 역사상 최대 기술 혁신이라 할 수 있는 V낸드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제 반도체, 그 중에서도 특히 메모리 분야 기술 개발과 생산에 관한 한 삼성전자의 위상은 ‘흔들림 없는 1인자’다. 삼성전자의 노력은 세계 각국의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친절하고 효율적인 상품으로 다가간다. 세상 모든 이가 타인과 손쉽게, 자유롭게 소통하며 행복하고 현명한 정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날까지 삼성의 노력과 신화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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