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오픈소스 시대, 인재상이 달라진다
세상을 바꾸는 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수십 년 전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깊은 산골에 들어섰다. 몇 개의 마을이 험한 산 중턱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대개 나무를 베어 숯을 구우며 살고 있었다. 사흘을 걸어도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그 황무지에서 양 치는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저녁을 먹은 후 도토리를 한 주머니 가져와 꼼꼼히 골라낸 후 물에 담가뒀다 이튿날 양 치러 갈 때 갖고 나가 땅을 파고 정성스레 심는 일을 반복했다. 그는 “지난 3년간 정성을 다해 하루 100개가량의 도토리를 심었다”고 말했다.
그 마을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 이듬해 전쟁이 났다. 전쟁터에서 5년을 보낸 후 한참이 지나 그 마을을 다시 찾았다. 황무지는 조금도 변한 게 없었지만 노인의 집 인근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도 꿋꿋이 나무를 심은 덕에 그곳엔 울창한 숲이 형성돼 있었던 것. 길이 11㎞, 폭 3㎞가 넘는 숲엔 떡갈나무와 너도밤나무, 자작나무 등이 어깨 높이만큼이나 자라 있었다. 그 옆으론 시원한 시냇물이 졸졸 흘렀다.
이후 매년 그 노인을 찾아갔다. 나무가 자라며 산토끼와 멧돼지 같은 짐승이 점점 늘었다. 그 주변으로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은 채소밭을 가꾸고 목장도 만들었다. 아기가 태어났고 마을엔 웃음꽃이 피었다. 한 사람의 양치기 노인이 황무지를 낙원으로 바꾼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진 분명 고통과 절망의 시간도 있었을 터. 하지만 그는 숲 가꾸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로써 인간의 힘이 어째서 위대한지 온몸으로 웅변했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꿈나무, 한자리에 모인다면?
지난 8월 말, 삼성전자가 주최하는 ‘주니어 소프트웨어 창작대회’(이하 ‘주소창’) 참가 신청이 마감됐다. ‘가족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주제로 올해 처음 마련된 이번 행사에선 전국 초·중·고교생이 제안한 1000여 건의 예선 출품작 가운데 60개 작품이 1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 진출 팀과 지도교사 등 190여 명은 지난달 19일부터 이틀간 경기 용인시 소재 삼성전자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부트캠프에 참가했다. 삼성전자 임직원 40명이 멘토로 참여해 개발·서비스·기획·UX(User eXperience, 사용자체험) 등 소프트웨어 관련 세부 분야별로 참가 학생들과 함께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자리였다. 이 과정을 거쳐 다듬어진 소프트웨어는 오는 22일까지 본선에 제출될 예정. 최종 수상작은 다음 달 13일 발표된다.
주소창이 소프트웨어 꿈나무를 육성하기 위한 행사라면 보다 높은 연령대인 대학생의 소프트웨어 기획∙개발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도 있다. 역시 올해 첫선을 보이는 ‘삼성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진대회’가 그것. 두 차례(10/24, 11/14)에 걸친 온라인 예선과 내년 1월 14일 열리는 오프라인 본선으로 치러지는 대회 수상자에겐 △4000만 원 상당의 상금 △삼성전자 주최 해외 컨퍼런스 참관 △삼성전자 지원 시 우대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사실 삼성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진대회는 ‘실력 있는 소수’를 선발하기 위한 행사라기보다 되도록 많은 학생이 프로그래밍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행사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코드그라운드(www.codeground.org)'란 대회 공식 웹사이트 명칭이 말해주듯 ‘누구나 코드로 맘껏 놀 수 있는 장(場)’을 제공하자는 게 대회 개최 취지다. 참가 인원과 전공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것도 그 때문.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속, 자유롭게 소통하도록 함으로써 예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양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학생 이상 연령대의 (예비)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위한 자리론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되는 ‘삼성 오픈소스 컨퍼런스(Samsung Open Source CONference)’(이하 ‘소스콘’)가 있다. 소스콘은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픈소스(소프트웨어 제작 과정을 알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설계 지도’에 해당하는 소스 코드를 무료로 공개, 배포하는 것) 지식을 공유하고 오픈소스 개발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나누는 자리다. 올해 행사는 오는 27일부터 이틀에 걸쳐 서울 콘래드호텔(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삼성, 전 연령대 아우르는 S/W 인재 양성 나섰다
최근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이는 의외로 많지 않다. 최종덕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센터 부센터장(부사장)에 따르면 소프트웨어는 “컴퓨터가 알아서 작동하도록 명령을 내려주는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컴퓨터 장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계산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알아서 처리해줍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컴퓨터가 그런 작업을 스스로 해내도록 지시하는 프로그램이 내장돼 있어야 하죠. 그게 바로 소프트웨어입니다.”
최 부사장은 “컴퓨터 기술에서 하드웨어가 ‘육체’라면 소프트웨어는 ‘정신’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IT 제품이 현대인의 일상에 침투하면서 소프트웨어의 활용도는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생활에 밀착되는 외연이 넓어질수록 그 중요성도 점점 더 커질 겁니다. 그래서 더더욱 역량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양성하는 일이 필요하죠.” 그는 “주소창은 초∙중∙고교생 대상, 삼성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진대회는 대학생 대상, 소스콘은 일반인 대상으로 그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며 “3개 행사를 통해 전 연령대를 고루 아우르며 한국인의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을 제고,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문화 전반을 활성화하려는 게 삼성전자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흔히 교육을 가리켜 ‘100년의 큰 계획(百年之大計)’이라고들 한다.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 인재 개발 작업은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국내에서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초반 PC가 보급되면서부텁니다. 이후 대학들이 앞다퉈 전산학과를 개설하며 소프트웨어 설계∙개발 역량을 키우는 데 앞장섰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IMF 사태 이후 관련 기반이 많이 약화된 상태입니다. 그러는 동안 선진국에선 소프트웨어 부문에 우수 인재가 몰리며 소프트웨어 산업이 국가의 주요 발전 동력으로 성장했어요. 삼성전자는 이 점에 주목,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 생태계 조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최종덕 부사장은 “다행히 이제까진 여러 부문에서의 협력이 잘 이뤄져 순항 중”이라며 “앞으로도 소프트웨어 저변 확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가 국내외에서 펼치고 있는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 노력은 지난 8월 5일자 스페셜리포트(‘IT 시대의 만국 공용어’, 코드에 주목하라!)를 통해 한 차례 다뤄졌다. 최 부사장에 따르면 삼성전자 외에도 우수한 소프트웨어 인재를 확보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 구도는 이미 치열한 상태다. “내로라하는 IT 기업 상당수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진작시키기 위해 활발하게 합종연횡(合從連橫) 중입니다. 한편으론 치열한 경쟁을, 다른 한편으론 활발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죠. 오픈소스가 그 대표적 형태입니다. ‘내 기술’을 공개하는 대신 ‘남의 기술’도 내놓게 해 공유하는 거죠.”
‘성당’에서 ‘시장’으로… 오픈소스는 시대적 대세
최종덕 부사장은 “인터넷 시대의 키워드는 단연 ‘공유’”라고 강조했다. “과거엔 정보가 특정 개인이나 기업에 집중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죠. 기업이 시장에 제품을 내놓고 솔루션을 제공하려면 특정 아이디어를 원하는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개발 인력 확보는 필수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기술을 경쟁자와 나누지 않는다’는 폐쇄적 사고론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려워요. 생각이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사람(혹은 기업)끼리 손을 잡으면 그 효과는 배가됩니다. 물론 공개 여부는 개별 기업의 전략에 따라 의사 결정 해야 할 부분이지만요.”
삼성투모로우는 지난 5월 13일자 스페셜 리포트(‘소프트웨어, 세상을 바꾸다’ 3편)를 통해 ‘정보 공유 시대’의 개막을 한 차례 정리한 적이 있다. 최 부사장에 따르면 ‘오픈소스 시대’를 맞아 삼성전자가 펼치고 있는 노력엔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더 건강하게 키우려는 겁니다. 삼성전자가 공개한 대표적 오픈소스 플랫폼 ‘타이젠(Tizen)’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다른 기업도 타이젠 개발에 동참해 함께 개발해나간다면 타이젠 생태계는 한층 풍성해질 겁니다.”
그가 꼽는 두 번째 배경은 ‘시너지 창출’이다. “하나의 제품에 적용되는 기술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리고 기업마다 잘하는 분야가 서로 다르죠. 예전엔 한 개인이 지닌 기술만으로도 얼마든지 제품을 만들어 팔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어요. 이젠 타인의 역량을 끌어올릴수록 자신의 기술 수준도 높아집니다. 그게 바로 진정한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에요.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오픈소스 기반 산업 구축에 나서고 있습니다. 오픈소스 시대는 태동기를 지나 성장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죠. 여전히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오픈소스에 소극적인 편인데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차세대 IT 생태계 활성화 위해 ‘나무’ 심어온 사람들
숲이 우거지면 공기가 맑아지고 물이 풍부해지며 인근 토양도 비옥해진다. 그 결과, 숲 인근엔 자연히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IT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건강하고 풍부하게 구축되면 관련 업계와 개인은 ‘윈윈(win-win)’ 할 수 있고, 그 결과물을 공유하는 인류 전체가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글 앞 부분에 잠깐 언급한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 속 노인이 ‘세상에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뜻으로 땀 흘려 숲을 일구고 마을을 바꿨듯 ‘IT 세상의 흐름을 읽고 한국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 싶다’는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 노력은 조금씩 그 성과를 내보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진행 중인 3개 행사에 거는 기대가 큰 건 그 때문이다.
“우리가 늘 접하는 일상에 소프트웨어 관련 요소가 얼마나 많은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레 접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학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소창과 삼성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진대회는 예비 소프트웨어 꿈나무가 역량 있는 개발자로 성장할 수 있는 근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소스콘은 성인 프로그래머들이 소프트웨어에 대한 시각을 한층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테고요. 삼성전자가 정성껏 준비한 이들 행사를 통해 보다 많은 국민이 소프트웨어에 관심 갖고 관련 역량을 키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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