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임직원 지혜 모았다, 아이디어 날개 달았다_1주년 맞은 삼성전자 집단지성 시스템 ‘모자이크’
4만 달러에 해당하는 빨간 풍선 묶음을 찾기 위해 미국 전역을 샅샅이 뒤지는 미션, 한 팀이 9시간 만에 해냈다. 15년간 풀 수 없었던 효소의 구조를 밝히는 문제, 시민 과학자들이 게임을 통해 합동으로 연구한 끝에 3주일 후 해답을 내놓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백과사전을 펴내는 일, 수백만 명이 10년간 매달려 끝냈다. 컴퓨터로 연결된 사람들이 이런 목표를 몇 시간, 며칠, 몇 년 안에 달성할 수 있다면 내년엔, 혹은 10년 후엔 어떤 일까지 가능해질까?
위 글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집단지성센터가 집필 중인 ‘집단지성 핸드북(The MIT Collective Intelligence Handbook)’<가제>의 첫머리다. 제아무리 머리 좋고 능력이 뛰어나도 혼자였다면 결코 쉽게 완수할 수 없었을 과제를 컴퓨터, 특히 인터넷으로 연결된 집단은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쌓아가는 지성의 세계, 즉 ‘집단지성’은 요즘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장 널리 회자되는 ‘핫(hot) 키워드’ 중 하나다.
집단지성, 세계적 화두로 떠오르다
집단지성은 말 그대로 한 개인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집합적으로 갖고 있다고 간주되는 지적 능력과 활동, 그리고 성과물을 통칭하는 용어다. 사실 집단지성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토머스 말론(Thomas Malone) MIT 슬로언스쿨 교수나 조너선 지트레인(Jonathan Zittrain)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등 이 분야 전문가들이 강조하듯 인간의 지성은 원래 집단적으로 구축된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쓰는 언어, 먹는 음식, 회사 업무 등 모든 게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들의 지성이 보태지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사람들이 점점 더 쉽게 소통할 수 있게 되면서 집단지성의 구축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특정 과제를 치밀하게 설계(design), 조정해 집단지성을 구축하는 사례도 늘었다. 크고 작은 국제회의나 워크숍 등이 ‘설계된 집단지성’의 대표적 예다.
하지만 오늘날 집단지성은 국제 모임을 조직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적은 비용과 큰 규모로 한층 알찬 콘텐츠를 생산해내기에 이르렀다. 컴퓨터와 인터넷 덕분이다. 현대사회에선 기후 변화 대응 방안과 같은 거시적 담론에서부터 장애인용 손목시계 마케팅 전략 등의 소규모 과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집단지성의 대상이 된다. 누군가가 특정 과제에 의미를 부여해 온라인상에 ‘오픈 플랫폼’을 만들어두면 뉴욕 사무실의 회사원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아파트의 주부, 베이징대 도서관의 학생, 홍익대 앞 카페의 프리랜서 작가가 동시에 이를 토론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해당 과제는 놀라운 속도로 해결된다.
▲집단지성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IT기술 발달에 힘입어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인터넷을 통한 지적 교류의 확산은 집단지성의 쓰임새를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 과거 대부분의 인류사에서 집단지성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시·공간의 차이를 두고 의도치 않게 각자의 지혜를 차근차근 쌓아 올린 형태였다. 그러던 사람들은 근대 이후가 되면서 의도적으로 한데 모여 특정 어젠다를 놓고 머리를 맞대며 해결책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한 장소에 모여야 했다. 진행에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 낭비도 엄청났다.
시·공간 제약 뛰어넘은 브레인스토밍
집단지성 구축 과정에서 ‘참여자 간 물리적 만남’은 필요조건이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이들끼리 구체적 과제를 두고 토론해가며 확실한 성과를 내기만 하면 결과물 도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참가자 수의 제한도 없다.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적게는 몇 명부터 많게는 거의 무한대까지 규모를 늘려도 된다. 물리적 거리 제약에서도 자유로워 하나의 주제가 정해지면 전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아무런 어려움 없이 브레인 스토밍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집단지성을 가리켜 ‘글로벌 브레인(Global Brain)’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터넷 기반 집단지성은 이미 현대인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당장 구글과 위키피디아만 해도 그렇다. 누구든 참여해 새로운 모듈을 제안할 수 있는 ‘리눅스(Linux)’ 오픈소스 운영 시스템, 엔지니어링·컴퓨터공학·생명과학·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개발 과제에 대한 솔루션을 공모해 채택 시 상금을 지급하는 ‘이노센티브(InnoCentive)’도 집단지성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MIT 집단지성센터가 운영 중인 ‘기후공동실험실(Climate CoLab)’ 역시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주목할 만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임직원의 지혜를 ‘모자이크’하다
삼성전자는 집단지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 기업 중 하나다. 사내 시스템 ‘모자이크(MOSAIC)’를 통해서다. ‘아이디어(idea)에 사람(people)을 더한다’는 기본 콘셉트에서 출발한 모자이크는 지난해 3월 베타 오픈 형태로 첫선을 보인 이후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왔다. 실제로 지난달까지 모자이크의 페이지뷰(page view)는 2871만여 건. 참여자 수는 6만4000명에 이른다. 크고 작은 제안과 게시글 수는 15만 건을 넘어섰다.
▲도입 1년 만에 임직원의 폭발적 호응을 이끌어낸 삼성전자 집단지성 시스템 ‘모자이크’ 로고<위>. 아래는 지난 1년간 모자이크가 달성한 각종 기록들이다
모자이크의 메인 카테고리는 △개방형 토론 서비스 ‘스파크(Spark)’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아이디어 마켓(Idea Market)’ △누구나 묻고 답할 수 있는 ‘퀘스천즈(Questions)’ △온라인 협업 공간 ‘커뮤니티(Community)’ △온라인 네트워크를 오프라인 모임으로 연계하는 ‘스퀘어(Square)’ △분야별 임직원 전문가 검색 기능을 갖춘 ‘휴먼 라이브러리(Human Library)’ 등 총 6개로 구성된다. 여기에 지난달엔 신규 서비스 ‘모자이크 스토어(MOSAIC Store)’도 가세했다. 모자이크 스토어는 프로젝트 결과물뿐 아니라, 자발적 연구 성과까지 다른 임직원에게 공개해 평가, 검증 받을 수 있도록 한 공간이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모자이크의 적용 범위를 20만여 명의 해외 임직원에게로까지 확대했다. ‘모자이크 글로벌 버전’으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에 따라 올 초 영문판이 문을 열었다. 이달부턴 번역 서비스가 연계되고 글로벌 설문 서비스도 새롭게 제공된다. 성과는 벌써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이미 해외 연구소와 관계사를 중심으로 공모전 등이 진행됐으며, 이와 연관해 크고 작은 해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모자이크 참여자는 온라인 공간에서뿐 아니라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사진은 모자이크 활동의 일환으로 마련된 임직원 개발자 세미나 현장 모습
사실 모자이크의 성공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집단지성 구축엔 두 가지 기본 요소가 전제돼야 한다. 하나는 효율적 온라인 네트워킹을 가능케 하는 컴퓨터 환경과 온라인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수의 지성인이다. 삼성전자는 이 두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여기에 회사 측의 전폭적 지원도 한몫했다. 삼성전자는 면밀한 검토와 준비 과정을 거쳐 모자이크를 도입했으며, 운영 단계에선 대내외적 홍보와 교육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수 참여자에게 주어지는 (비)금전적 포상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해왔다.
임직원의 반응도 뜨겁다. 지난해 모자이크 우수 활동자로 선정된 김상헌 책임(무선사업부 프레임워크개발그룹)은 “모자이크의 여러 기능을 사용해 즉각적이고 창조적인 제품 개선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그가 특히 애용한 기능은 스파크. “업무와 관련해 궁금한 사항을 스파크 토론 주제로 올려 임직원의 피드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를 검토해 실제 개발 회의에 반영하기도 하죠. 모자이크는 삼성전자 임직원이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든든한 밑거름입니다.”
모자이크 운영은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사내 문화 조성에 기여하며 삼성전자 임직원에게 회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효과도 낳고 있다. 백민 대리(시스템LSI사업부 기획팀)은 “모자이크를 활용하며 우리 회사가 상당히 열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상사나 임원 등 윗분들도 신입사원 못지않게 낡은 걸 바꾸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회사의 미래에 대한 확신도 들었고요.”
▲“모자이크를 자기계발 수단이나 업무 개선 도구로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삼성전자 임직원들. 김상헌 책임(왼쪽 사진), 백민 대리
모자이크 참여 임직원의 호응은 이내 대외적 주목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지난 1년간 주요 매체에 언급된 모자이크 관련 보도는 100건 이상이다. 삼성전자 관계사는 물론, 다른 기업에서 유사한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잘난 개인’보다 ‘엇비슷한 여럿’이 낫다
토머스 말론 교수는 몇 년 전 사회·문화 웹진 ‘에지(the Edge)’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집단지성을 더욱 효율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주요 요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집단지성 참여 구성원(이하 ‘구성원’)의 지능이 집단지성 자체의 지능과 아주 무관한 건 아니지만 관련성이 생각보다 강하진 않았다. 연구 도중 나는 ‘집단지성의 지능을 높이려면 구성원의 지능보다 중요한 요인이 세 가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구성원의 평균적 사회 감수성(average social perceptiveness)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사진, 특히 눈의 표정을 보여준 후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알아맞히게 하는 것이다. 그런 문제의 정답을 잘 맞힌 사람이 많이 포함된 집단일수록 높은 성과를 냈다.
둘째, 균등한 대화 기회다. 구성원 모두에게 대화 기회가 고르게 주어질수록 해당 집단의 지능이 높았다. 누군가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한 개인이 판을 주도하는 곳의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셋째, 구성원 가운데 여성 비중이다. 놀랍게도 집단지성은 해당 집단에 포함된 여성 수와 아주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여성이 많이 속해 있는 집단일수록 성과가 우수했으며, 집단 내 여성 수와 집단지능은 정비례했다. 이 같은 결과는 여성의 사회적 감수성이 남성에 비해 높다는 상식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랜 경험과 연구에서 우러난 말론 교수의 조언은 성공적 집단지성 운영에 필요한 가치를 새삼 통찰하게 한다. 동시에 삼성전자 모자이크가 도입 1년 만에 안팎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하나의 ‘신드롬’이 돼가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놀라운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는 집단지성의 끝은 어딜까. 모자이크가 ‘전사적 집단지성 플랫폼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하며 그 해답을 제시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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