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전직 임원 4부작 릴레이 인터뷰 ‘힘내라, 삼성전자!’_③ 김남윤 전(前) 삼성전자 상무
딸과 아들, 사위까지… “우리는 삼성전자 반도체 가족!”
▲김남윤 전 삼성전자 상무는 23년간 반도체 외길을 걸었다. 퇴직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반도체 계통의 일을 계속하고 있는 자타공인 ‘영원한 반도체맨’이다
“가족 모임서도 종종 반도체 주제로 대화”
김남윤 전(前) 삼성전자 상무(63)는 전자사랑모임 반도체분과 위원장이다. 그가 삼성반도체를 떠난 건 지난 2004년. 퇴직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분과 위원장까지 맡아 열정을 쏟는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김 전 상무는 1979년 첫 직장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 분야에서만 23년간 일했고, 드물게 부천·기흥·온양 등 세 곳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을 모두 거쳤다. 그뿐 아니다. 딸(김현정 메모리사업부 대리)과 아들(김창래 기흥캠퍼스 선임), 사위(김춘권 시스템반도체사업부 책임)까지 모두 삼성전자 반도체에 근무하는 ‘반도체 가족’이다.
“가족모임에서도 반도체 관련 대화를 많이 합니다. 신기하게도 담당 분야는 다 다릅니다. 사위는 설계, 딸은 마케팅, 막내인 아들은 공정개발 분야에 각각 종사하고 있어요. 제가 생산과 품질관리 쪽에서 일했으니 우리 가족만으로도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인력은 웬만큼 갖춘 셈이죠. 지인들에게 ‘자금만 충분하면 반도체 가족기업을 차려도 될 정도’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합니다.”(웃음)
퇴직 후 “여생은 재능 기부 하며 살 것” 다짐
김남윤 전 상무는 현재 단양솔텍(대표 전주성) 부회장이다. 단양솔텍은 솔더링(soldering, 열을 가해 금속을 접착시키는 기술) 재료를 만드는 회사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과거 솔더링 재료는 납이었지만 최근엔 환경 문제로 납을 사용하지 않는 무연 솔더링이 대세다. 단양솔텍은 무연 솔더링 재료인 ‘크림솔더’ 전(全) 공정을 국산화하는 데 국내 최초로 성공했다. 단양솔텍이 만든 크림솔더는 삼성전자 등 국내 업체는 물론, 해외로도 수출된다. 솔더링은 반도체 제조 과정에도 빠질 수 없는 기술인 만큼 반도체 전문가로서 그의 역량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빛나고 있는 셈이다. 김 전 상무는 3년 전 단양솔텍에 합류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삼성전자를 나오며 ‘앞으로는 내 재능을 후배에게 기부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에서 배운 품질관리 기술로 국가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었죠. 우리나라의 반도체 제조 기술은 세계 최고입니다. 문제는 주변 산업 기반이 너무 약하다는 점이에요.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여전히 주요 설비, 특히 소재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실정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기술은 있지만 품질 관리 능력 등이 취약해 대기업 진입에 고전(苦戰)하는 강소기업이 많더군요. 그런 회사들을 연결시켜주고 기술 컨설팅도 해주고 싶었습니다. 한때 잠깐 소재 관련 회사를 차려서 운영했는데 전 오너 스타일은 아니더라고요. 결국 다른 분께 회사를 넘기고 엔지니어로 돌아왔죠.”
▲그가 부회장을 맡고 있는 단양솔텍은 납 없이 금속을 접합시키는 무연 솔더링 재료 ‘크림솔더’를 국내 최초로 국산화한 기업이다
‘국산 반도체 신화’ 온몸으로 겪은 1.5세대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지난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첫발을 뗐다.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건 9년 후인 1983년이었다. 관련 기술도, 기반 시설도, 해당 분야 인재도 없는 작은 나라 기업의 도전에 미국·일본 등 반도체 선진국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이듬해인 1984년 삼성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을 개발, 글로벌 시장을 긴장시켰다. 급기야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며 반도체 분야 최강자로 우뚝 섰다. 현재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분야 세계 1위, 시장 점유율은 인텔에 이어 세계 2위에 각각 올라 있다.
김남윤 전 상무는 말하자면 ‘삼성전자 반도체 1.5세대’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지 5년 후 입사해 눈부신 성공 드라마를 온몸으로 겪었다. 그의 아들딸 또한 그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실제로 김 전 상무의 딸 현정씨는 입사지원서에 이렇게 썼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가서 본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은 아담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커져서 놀랐습니다.”
“삼성반도체? 혁대 만드는 회사인가요?”
요즘은 반도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김 전 상무가 삼성전자에 갓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반도체에 대한 국민들의 인지도는 ‘제로(0)’에 가까웠다. 이와 관련, 그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줬다.
“1980년대 초반 직장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의 일입니다. 몇몇 주변 회사 직원들이 한 곳에 모였죠. 점심 식사는 ‘양은도시락’이 대부분이던 시절이었는데 점심 시간에 우리 회사 밥차가 훈련장에 도착했어요. 타사 직원이 부러워하면서 ‘어느 회사에서 왔느냐’고 묻더군요. ‘삼성반도체에서 왔다’고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혁대 만드는 회사인가요?’(웃음) 당시 혁대를 다른 말로 ‘반도(band)’라고도 불렀거든요. 나름 산업 지식에 훤했을 30대 회사원에게도 생소할 정도로 반도체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시절이었던 거죠.”
김 전 상무에 따르면 반도체에 대한 인식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기는 1984년이다. 물론 그 계기는 삼성전자의 64K D램 개발 성공이었다. 이후 반도체는 초등생에게도 친숙한 용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64K D램 개발에 착수하면서 팀 전체가 64㎞ 야간행군에 나섰습니다. 무박 2일간 걷고 또 걸으며 ‘반드시 개발하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졌죠. 다들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퇴근하며 ‘잠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게 예사였어요. 새벽별 보면서 가는 날도 많았고요.” 당시 얘길 들려주며 잠시 회상에 잠긴 그는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은데 그땐 일이 재밌어서 힘든 줄도 몰랐다”며 웃었다.
▲김남윤 전 상무는 삼성전자 반도체 성공의 비결을 일명 ‘ABC 이론’으로 설명한다. ABC엔 ‘적극성(Aggressive)’과 ‘기본(Basic)’, ‘상호협력(Cooperation)’을 강조하는 그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삼성 반도체와 명량대첩은 닮은꼴?!
김 전 상무는 삼성전자 반도체의 성공 요인을 일명 ‘ABC 이론’으로 설명했다. △매사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임하고(Aggressive) △기본에 충실하며(Basic) △독불장군식으로 행동하지 않고 상호협력을 견지해 온 덕분, 이란 해석이다.
품질관리 고전(古典)에서 인용했을 법한 이 이론은 사실 그가 만든 말이다. 20여 년간 삼성전자 반도체 분야에 몸담으면서 체득한 ‘알짜 철학’인 셈이다. 그에 따르면 ABC 이론은 시대와 종류를 막론하고 어느 조직에서나 통용된다. 이를테면 올여름 최고 흥행 영화 ‘명량’의 소재였던 명량대첩에도 ABC 이론은 딱 들어맞는다.
“(명량대첩) 당시 조선은 열두 척의 배로 100여 척 배를 보유한 일본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객관적으론 누가 봐도 우리의 열세였죠. 하지만 꼭 이기고야 말겠다는 진취성(aggressive)과 ‘자연 조건(울돌목) 활용’이란 기본에 충실했던 전략(basic), 해군을 포함한 온 국민의 합심(cooperation)이 더해지며 기적에 가까운 승리를 거뒀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 애국심도 빼놓을 수 없어요. 병사 한 명 한 명이 ‘내가 지면 조선도 망한다’는 일념으로 싸웠거든요.”
김 전 상무는 “삼성 반도체의 성공 뒤엔 ‘반도체 1세대’ 김광호 전 부회장(현 전자사랑모임 회장)과 이윤우 전 부회장(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처럼 훌륭한 장수, 그리고 남다른 주인의식으로 이들의 리더십을 존중하며 따랐던 직원들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일개 직원에 불과했지만 모두가 자기 일에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다’ ‘내가 하는 일이 곧 국가를 위한 일’이란 사명감으로 이글거렸죠.”
유사 시 대리에게도 ‘공장장급 권한’ 주는 조직
‘인재제일’은 ‘사업보국’ ‘합리추구’와 더불어 삼성의 창업이념 중 하나다. 김남윤 전 상무는 인재제일의 연장선상에서 ‘(직원에 대한) 권한 이양’을 삼성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꼽는다. 일단 일을 맡긴 후엔 전적으로 믿고 권한을 부여하는 삼성식(式) 업무 방식이 오늘날 삼성 출신 인재의 경쟁력을 이끌어 냈다는 얘기다.
‘상사의 지시에 따른 무조건 복종’을 지양하고 ‘상사의 격려에 힘입은 자발적 성과 창출’을 장려하는 삼성전자 기업 문화는 그 자신도 대리 시절 직접 겪었다. “반도체는 섬세한 분야입니다. 수백 개 공정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중간에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아예 멈춰버리거든요. 당시 화학물질 하나가 공기와 접촉하면서 배관에 문제가 생겼어요. 제조라인 가동이 전면 중단됐죠. 지금은 국내에서 수리가 가능하지만 당시만 해도 불가능했습니다. 하필 공장장님은 해외 출장 중이었고요. 제가 총대를 멨습니다. 마침 국내에 와 있던 해외 직원에게 ‘당장 들고 가서 수리해 오라’고 했습니다. 수리까지 사흘이 걸렸죠. 규정이나 관례대로 했더라면 최소 보름 이상 현장 가동이 중단됐을 겁니다. 왕복 항공권과 현지 체류비 등 상당한 비용이 들었지만 사전 승낙을 받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공장장님이 오셔서 ‘나라도 그렇게 처리했을 것’이라며 잘했다고 하시더군요. 보고 체계가 경직된 조직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가 승진을 거듭하면서 중시한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되도록 부하 직원의 가치를 높이 사려 노력했습니다. 개개인의 개성과 습관을 눈여겨봤고 작은 말과 행동 하나에도 배려를 담으려 애썼죠. 일할 때는 물론이고 밥 먹을 때도 직원 한 명 한 명의 스타일을 존중했어요. 그때 함께 일했던 후배들은 요즘도 자주 만난답니다.”
“내게 삼성은 마음의 고향이자 긍지 그 자체”
요즘 그가 삼성을 대하는 시선은 복합적이다. 코흘리개 꼬마였던 자식이 점점 자라 장성한 청년이 되고, 누구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세계 최고 인재로 훌쩍 큰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 마음 같다고 할까. 주요 성장의 순간마다 함께 울고 웃은 그에게 삼성은 마음의 고향이자 긍지 그 자체다.
반면, 오랫동안 떠나 있어보니 안에선 잘 알아차리지 못했던 면도 보인다. 그는 ‘삼성전자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조언 한마디 해 달라’는 요청에 이렇게 대답했다. “주변 산업에 대한 관심을 좀 더 기울였으면 합니다. 반도체로 치면 소재나 설비 관련 분야가 여기에 해당하죠. 삼성전자에 주변 산업은 식물로 치면 뿌리와 같습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단단해지고 열매도 잘 영글죠. 열매 잘 맺는 것도 중요하지만 뿌리 다지는 데도 좀 더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후배들에겐 ‘사명감’과 ‘성실한 자세’를 주문했다. “반도체 산업에선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외발자전거 타기와 비슷해서 페달을 빨리 젓지 않으면 넘어지고 말죠. 삼성 반도체의 페달 역시 1984년 64K D램에서 출발, 30여 년간 쉼 없이 움직여 왔습니다. 제가 근무할 당시만 해도 모든 직원이 아침마다 한데 모여 ‘안 되면 되게 하라’ ‘정성을 다하라’ 같은 반도체 10계명을 다함께 복창했어요. 뻔한 말이지만 그 덕에 매일 의지를 다질 수 있었죠. 예나 지금이나 반도체는 국가 경제를 이끄는 중추인 만큼 사명감을 갖고 꾸준히 페달을 밟아주세요.”
전직 임원 4부작 릴레이 인터뷰 시리즈 콘텐츠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스페셜 리포트] 전직 임원 4부작 릴레이 인터뷰 ‘힘내라, 삼성전자’!_① 이지섭 전(前) 삼성전자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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