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①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모바일 기기를 중심으로 촉발된 디지털 혁명은 단순히 인류에 편리함을 안겨다 주는 것을 넘어 존재론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일하는 방식, 노는 방식, 소통 방식 등 삶의 구석구석을 대대적으로 변화시키는 디지털 혁명. 그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다. 누군가에게 디지털은 편리하고 즐거운 신세계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분명 난해하고 낯선 ‘타인의 영역’이다.
한국의 명사(名士)들은 이 '디지털 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을까. 삼성투모로우는 2014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서로 다른 연령대의 명사 5인이 풀어내는 '나와 디지털' 이야기를 12월 한 달간 연재한다.
1996년 홈페이지 만든 ‘디지털 고수’ "'나가수'는 살아있는 모바일 혁명 그 자체"
▲ 공병호 박사는 모바일 기기 사용에 능하다. "늘 배우는 과정에 있다"는 그는 젊은이들에게서 정보를 많이 얻는다. '드롭박스' '에버노트' '구글 캘린더' 등의 애플리케이션을 즐겨 쓴다
4년 전 예언한 ‘모바일 혁명’ 적중
공병호 박사(55·공병호경영연구소장)는 ‘디지털 고수’다. 미국 유학 시절이던 1984년, 미국 애플사(社)가 시범적으로 보급한 매킨토시를 접하면서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87년엔 IBM을 썼고 1990년부터 PC를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한국 대중이 하나 둘 이메일 계정을 만들 즈음인 1996년, 그는 한발 앞서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덕분에 군더더기 없는 도메인(www.gong.co.kr)을 차지할 수 있었다. "역사는 BT(Before Twitter)와 AT(After Twitter)로 나뉜다"는 믿음을 가진 그는 ‘스마트폰, 트위터, 그리고 중요한 IT활용법'이란 주제로 4050 세대 대상 강연도 종종 열었다.
2010년 8월엔 '모바일 혁명’(21세기북스)이란 책을 냈다.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모바일 혁명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짚는 동시에 모바일 혁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체적 실천법까지 알려주는 책이다. 공 박사는 책에서 스마트폰을 ‘알라딘의 요술램프’에 비유했다. 램프를 문지르면 거인 요정 ‘지니’가 나타나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는 요술램프.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전 세계 수백만 명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니 요술램프란 표현이 묘하게 들어맞는다. 그는 특히 모바일 혁명이 몰고 올 세상의 변화에 대해 언급했는데, 4년여가 지난 지금 그가 책에서 예언한 미래는 거의 적중했다.
“변화, 통제할 수 없으면 적응해야”
△정보와 유통, 인간관계와 소통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네트워크(플랫폼) 기업의 손을 들어준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바꾼다 △쉽게 뜨고 지는 현상에 힘을 더한다 △디지털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공병호 박사가 책에서 언급한 모바일 혁명의 다섯 가지 ‘메가 트렌드’다. 삼성투모로우가 공병호 박사를 만난 날, 그는 이제 막 노스페이스문화센터(서울 강북구 수유동 소재)에서 강연을 마친 참이었다.
대상은 암벽 등반 선수들, 주제는 ‘탁월함을 향한 도전’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좀전에 만난 청중들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전 요즘도 배우는 과정에 있습니다. 틈날 때마다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죠. 특히 오늘 강의 장소처럼 새로운 곳에 오면 관찰을 많이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어떤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쓰는지, 그 앱의 장점은 뭔지 등등에 대해서요. 모바일 혁명은 통제할 수 없는 시류입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면 적응하는 수밖에요. 삶에서 변화와 혁신은 불가피합니다. 전 늘 새로운 걸 갈급하고 호기심을 느껴요. 감탄을 잘 하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뭔가 배우면 즐겁죠. 그걸 만든 이에 대한 경외심도 갖게 되고요.”
실제로 공 박사의 스마트폰엔 실용적 앱이 가득하다. 그가 촬영한 사진은 곧바로 ‘드롭박스’ 앱에 담기고 그가 남긴 메모는 ‘에버노트’ 앱을 통해 데스크톱이나 태블릿PC와 동기화된다. ‘구글 캘린더’를 통해 일정을 조율하는 건 기본. 얼마 전 가족과 떠난 이탈리아 여행길에선 ‘구글 맵’의 도움으로 르네상스 유적지를 구석구석 누볐다. 현지 맛집을 탐색할 땐 ‘트립 어드바이저’ 앱 덕을 톡톡히 봤다.
변화, 한탄만 하기엔 시간이 아깝다
공병호 박사는 한때 ‘중독’이라 해도 될 정도로 트위터에 빠져 있었다. 눈 뜨면 트위터 앱을 켰고 트위터를 들여다보다 잠이 들었다. 심할 땐 트위터를 ‘기상 도우미’로 활용하기도 했다. 트위터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은 지금도 여전히 하루 네댓 편의 글을 트위터에 올린다. 그의 팔로워는 2014년 12월 현재 약 4만5000명이다. 공 박사의 계획 중 하나는 ‘하우스 스튜디오’를 차려 1인 방송국을 운영하는 것이다. 혼자서 카메라감독과 앵커를 도맡는 시스템이다.
그는 “레일 위에 카메라를 다섯 대 정도 설치해 이 버튼 저 버튼 눌러가며 진행하면 가능할 것 같다”며 웃었다. 50대 중반 나이에도 20대 얼리어답터 못잖은 감각을 자랑하는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조언을 남겼다. “중·장년일수록 시대 변화를 한탄하지 말고 악착같이 따라가세요. (중략) 그저 ‘젊은이들은 대단해’라고 중얼거리면서 열심히 익히고 실천하면 됩니다.” 그의 둘째 아들 현수씨는 얼마 전 아버지를 향해 이런 찬사를 보냈다. “저도 (디지털 혁명을) 따라잡기 벅찬데 지식의 최전방에서 거뜬히 생존하시는 아버지를 보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공병호 박사는 모바일 기기를 '가치 창조의 도구’로 활용해보라고 권한다. "자신의 힘으로 도구를 관리하지 못하면 어느 순간, 기술이 자신을 관리하게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디지털 혁명은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고 있다. '데이터나 물리적 수량을 (0과 1의) 이진법으로 나타내는 방식'을 뜻하는 디지털은 당초 정의가 무색해질 정도로 일상 용어가 돼버렸다. 더욱이 모바일 기기에 적용된 이후엔 산업·경제·정치·문화·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 속도는 실로 엄청나서 이 같은 변화가 인간의 삶을 궁극적으로 어떻게 바꿔놓을지 고찰할 틈조차 없었던 게 사실이다.
도구, 관리할 것이냐 관리 당할 것이냐
공병호 박사는 “모바일 시대엔 ‘빛’과 ‘그림자’가 있다”고 경고한다. 모바일 기기가 편리함과 속도, 이동성 면에선 월등하지만 진지한 자기 성찰 없이 그저 소비하다보면 자칫 사용자가 지배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굉장히 걱정스럽습니다. 무의미한 앱이나 인터넷 검색, 웹툰 따위에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는 것 같아요. 모바일 시대, 빛 쪽에 설지 그림자 쪽에 설지 결정하는 요인은 모바일 기술을 사용하는 방법과 자세입니다.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택이고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책임이거든요. 모바일 기기의 용도를 결정할 때도 마치 사업 구상을 하듯 포트폴리오를 짤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업무 효율도, 삶의 질도 높일 수 있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 모바일 기기를 계획성 있게 사용하지 못하면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겁니다.”
이 같은 그의 소신은 책 ‘모바일 혁명’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해당 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 “모바일 혁명은 보통 사람들을 '즐거움의 바다' 혹은 '즐거움의 늪'으로 인도할 것이다. 한마디로 '펀'이 넘친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즐거움에 자신을 노출시키게 되면 결국 소비하는 주체로 살다가 인생을 마치게 된다. 나는 여러분들이 모바일 혁명에서 거두어야 할 성과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치 창조'라는 면에 두었으면 좋겠다. 스마트폰과 같은 대표적인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서 자신의 가치 창조 역량을 강화하고 가치라는 성과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데 적극적이 되길 바란다."
전통적 ‘프리미엄’, 머지않아 붕괴될 것
공병호 박사에겐 세상만사가 관찰 대상이자 연구 주제다. 지하철 승객들을 눈여겨보거나 인기 TV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지금은 종영된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MBC, 이하 ‘나가수’)야말로 ‘생생한 모바일 혁명 현장’이다. 나가수에선 기존 명성도, 데뷔 연도도, 현재 인기도 아무 소용 없다. 평가 대상은 오로지 ‘진짜 실력’이다. ‘유리 감옥’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개개인의 일상과 실체가 까발려지는 시대, 고만고만한 마케팅으로 무장한 개인이나 조직은 오래가지 못하는 세상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나가수를 보며 소름이 끼치더군요. 예전엔 적당한 가창력을 지닌 이도 운 좋으면 얼마든지 가수로 데뷔해 인기를 끌었죠.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예요. 나이·지위·재력·역사 같은 전통적 프리미엄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겁니다. 적당한 포장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진짜 최고의 인재가 아니라면, 진짜 어른이 아니라면, 진짜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못하면 언젠가 반드시 실체가 드러나게 돼 있죠."
'인정'과 '존중'. 공 박사가 꼽는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보다 더 뛰어난 부분을 존중해야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모바일 시대엔 무엇보다 솔직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솔직해지지 않으면 세상이 솔직해지게 만들 테니까요. 세상 변화와 그로 인한 파급 효과를 직시하고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 “훌륭한 역사도 때론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낮은 자세로 임하소서” 삼성전자를 향한, 공병호 박사의 애정 어린 조언이다
삼성, 제품에 ‘꿈’ 담는 노력 기울이길
인터뷰 말미, 공병호 박사에게 ‘삼성전자를 위한 발전적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즉답 대신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근간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김영사) 얘기부터 꺼냈다. “책을 읽는 내내 삼성이 떠올랐습니다. ‘삼성이 과연 구글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더군요. 명령과 지시로 채워지는 조직문화에서 파격적 제품, 꿈을 담은 제품이 나오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단계에서 필요한 건 말하자면 ‘문화 혁명’인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이 문제는 비단 삼성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강 하류에 엄청난 퇴적물이 쌓여 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퇴적물을 없애려면 제도를 바꿔야겠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젊은이들이 그들 특유의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환경 조성입니다.”
최근 실적 부진으로 고전 중인 삼성전자에 대해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뛰어난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기술은 누구나 모방할 수 있죠.” 그는 “소비자의 마음을 훔치는 매력적 제품, 상상을 뛰어넘는 혁신적 제품으로 시장을 사로잡는 것만이 삼성전자가 살 길”이라며 “그러려면 무엇보다 ‘탐험가의 태도’와 ‘겸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이미 세계적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 성공 신화엔 찬사를 보내지만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됩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역사도 때론 족쇄가 될 수 있죠. 과거의 성공은 잊고 출발선에 섰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합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탐험가 정신이 필요합니다. 도전과 패기, 열정과 용기 같은 것들 말이죠. 무엇보다 겸손해지세요. 삼성전자 전 임직원께 ‘낮은 자세로 임하소서’란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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