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④ 원조 ‘공부의 신’ 조승연
업무 처리는 디지털로, 취미 생활은 아날로그로
8개의 디지털 기기 ‘똑 부러지게’ 활용하는 비결
▲조승연씨는 50만 독자를 거느린 베스트셀러 ‘공부기술’(랜덤하우스코리아)의 저자이자 일명 ‘그물망 공부법’ 창시자다. 그에게 디지털이란 일을 최대한 빨리,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 비서 겸 액셀러레이터다
스마트폰이 2개, PC는 3개?
7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 천재’이면서 원조 ‘공부의 신’이란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조승연(33)씨에게 디지털 기기는 최고의 학습 도우미다. 미국·프랑스·이탈리아 등 전 세계 유명 도서관과 서점 등에서 다운로드한 책 수천 권이 보관된 자신만의 서고(書庫)이기도 하다.
그에겐 무려 8개의 디지털 기기가 있다. 스마트폰 2개, PC 3개, 태블릿 PC, 킨들(미국 대형 서점 ‘아마존’ 전용 단말기), 스마트 TV(이상 각 1개) 등이다. 각 기기의 용도는 뚜렷이 구분된다. 스마트폰의 경우, 하나는 업무용이고 다른 하나는 친구와 가족 등 업무 외적 인물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세 대의 PC는 각각 △미디어 소비용 △영화나 음악 등을 감상하는 아카이브용 △파일 저장과 공유를 위한 클라우드용으로 구분된다. 킨들은 아마존에서 내려 받은 자료를 읽을 때, 태블릿 PC는 아마존에 없는 책을 다운로드해 읽을 때 주로 쓴다.
조씨는 ‘공부기술’ ‘그물망 공부법’(21세기북스) 등의 책을 통해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한 공부법을 설파해 온 주인공이다. 미국 뉴욕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후 줄리어드음대와 프랑스 에꼴 드 루브르 등에서 수학한 그는 융·복합 인재의 전형이다. ‘비즈니스의 탄생’(더난출판사)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전 2권, 세미콜론) 등 이제껏 펴낸 책 열여섯 권의 면면에선 자연스레 그의 통섭적 면모가 드러난다. 최근 그가 개발한, 어원의 유래로 영어를 학습하는 소프트웨어 ‘오리진 보카’는 영국·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외국어 책 독서 시간 5배 단축
조승연씨에겐 ‘세계문화전문가’란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삼성투모로우와의 인터뷰 약속이 있던 날도 그는 1주 후로 다가온 EBS TV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모로코 편’ 촬영 준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매서운 한파를 뚫고 카페에 도착한 조씨의 손엔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그가 태블릿 PC로 읽고 있던 책 제목은 ‘사하라’. 모로코 왕국을 비롯, 아프리카 대륙 전반의 역사를 주제로 한 책 45권을 원문으로 내려 받았다. “북아프리카 해적 전성시대 부분을 읽고 있어요. 디지털 기기 덕을 톡톡히 보고 있죠.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모로코 도시 페즈(Fez)의 중세 역사를 공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현지 도서관에 열람을 신청, 한참을 기다려 받은 후 아랍어로 된 책을 사전 뒤적여가며 읽어야 했으니까요. 요즘요? 아마존에 접속, 역대 고고학자들이 페즈에 관해 쓴 책을 얼마든지 내려 받아 읽을 수 있어요. 불어·독어·영어·이탈리아어 등 사용 언어의 제약도 전혀 없고요.”
디지털 기기는 ‘기능’과 ‘속도’ 두 가지 측면에서 조씨에게 기적 같은 효용을 선물했다. 중세 역사를 연구하는 그에겐 더더욱 그렇다. 중세사와 디지털, 얼핏 동떨어진 분야처럼 보이지만 사실 디지털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으로 중세 역사를 접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 자신도 “13세기 라틴어로 쓰여 독일 수도원에 보관 중인 글을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방법은 단연 디지털”이라고 말한다.
디지털은 희귀 분야 전문가와의 소통 도우미이기도 하다. “12세기 말리(Mali)제국을 공부하는 학자는 드뭅니다. 예전엔 그런 분들과 소통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직접 가거나 전화를 걸어야 했죠. 지금은 관련 책을 클라우드에 올려놓은 후 각자 편한 시간에 의견을 나누면 돼요.”
그에게 디지털의 발전은 익숙지 않은 외국어로 쓰인 책의 독서 시간을 5배 이상 단축시켜줬다. “위키피디아 등 온라인 백과사전이 생긴 이후 독서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고, 전자책에 내장된 사전 덕에 (독서 시간이) 다시 그 절반으로 줄었다”는 게 그의 설명. “예전엔 불어로 된 르 클레지오 책 한 권 읽는 데 6개월쯤 걸렸어요. 단어사전과 숙어사전, 백과사전을 쌓아두고 하나하나 뒤져가며 읽었거든요. 요즘 전자책엔 사전이 내장돼 있어 읽다가 모르는 부분을 클릭하면 곧바로 뜻이 나오죠. 1년 정도 배운 외국어 실력으로 외국어로된 책 한 권 읽는 데 4주 이상 안 걸립니다.”
▲조승연씨는 자신의 디지털 기기를 ‘움직이는 집’에 비유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책이 가득하고 사진첩과 일기장까지 보관된 공간”이란 이유에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균형이 중요해
미국(11년)과 프랑스(5년)에서 거주한 기간을 제외하고도 외국 체류 기회가 잦은 조씨는 디지털 기기를 ‘움직이는 집’에 비유한다. 그에게 집을 집답게 하는 요건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문화적 환경’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이 작고 까만 스크린에 제 음악 컬렉션과 개인 책장이 다 담겨 있어요. 클래식 음악 3700곡, 음악 CD 400매, 책 300권 정도가 들어 있죠. 사진첩과 일기도 있고요. 어디든 이것만 있으면 그곳이 집처럼 느껴져요. 10년 전만 해도 외국에 있다가 한국에 몇 달간 다녀갈 때 클래식 CD 150매를 들고 다녔어요. 그래야 집처럼 느껴졌거든요.”(웃음)
디지털 기기를 ‘집’에 비유할 정도로 기기 활용도가 높지만 그에게 디지털 의존도가 절대적인 건 아니다. 그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용도를 분명히 구분할 줄 알고, 실제로 그에 맞는 삶을 똑똑하게 꾸려나간다. 디지털은 업무 효율의 극대화를 꾀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일상에선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식이다. 단적인 예로 책을 읽을 때도 평소엔 킨들을, 휴가지에선 종이책을 애용한다. 말하자면 감성적 측면에선 아날로그가 끌리지만 효율성 측면에선 디지털을 택한다는 것이다.
아날로그의 매력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종이책이 좋긴 하죠. 특유의 촉감, 오래된 냄새, 가죽 표지가 내는 소리 등은 읽는 기쁨을 안겨줍니다. 전자책이 나오기 전, 프랑스 소설을 추천 받기 위해 미국에서 프랑스 갈리마르(Gallimard)출판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여직원과 두 시간 넘게 통화한 적이 있어요. 추천한 책을 우편으로 보내면서 그 직원이 감사의 손편지를 써준 기억이 납니다. 오프라인 서점엔 그런 감성이 있어요.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고서(古書)의 먼지를 털고 책장을 넘기다 새로운 걸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베스트셀러와 신간 위주로 검색되는 인터넷 서점에서 ‘나만의 새로운 발견’을 기대하긴 아무래도 어렵죠.”
디지털이 영상? 디지털은 글!
“디지털 콘텐츠는 없다. 딜리버리(이동수단)만 있을 뿐!” “디지털이 영상을 강화한다고? 디지털은 글일 수도 있다” 조승연씨는 인터뷰 내내 디지털의 통념에 반기를 들었다.
우선 앞의 명제부터. “디지털은 콘텐츠를 담고 또 실어 나르는 도구일 뿐”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활자를 담는 ‘그릇’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진 건 없다는 얘기다. 조씨는 ‘디지털이 글보다 영상과 훨씬 더 가깝다’는 선입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저만 해도 디지털 기기의 기능 중 카메라는 거의 사용하지 않아요. 문학적 성향이 강해 글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뭐든 글로 봐야 마음이 편안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디지털의 영상 요소에 주목하지만 전 아니에요. 제가 디지털 기기로 보는 건 영상이 아니라 글이고 책이죠. 결국 디지털 기기로 뭘 보든 그건 사용자 개인의 선택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은 IT 강국’이란 명제에도 조씨는 의문을 제기한다. “P2P(개인 대 개인) 소통은 어느 나라보다 활발하고 빠르지만 개인과 기업 간 소통은 그렇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 “미국 기업 중엔 트위터로 고객과 실시간 상담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가 꽤 있어요. 환불이나 배송 관련 문의를 페이스북으로 진행하는 곳도 많죠. 그런 공간에서 고객들은 마치 동네 가게에 들른 양 자기 사정을 주저리주저리 털어놓곤 합니다. 그런가 하면 유럽에선 디지털이 사회 인프라 구축에 종종 활용됩니다. 병원과 약국이 연계돼 있어 병원을 찾은 환자가 약국에 갈 땐 병원에서 사용한 카드를 내밀기만 해도 연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죠. 병원 처방전이 이미 카드에 반영돼 있으니까요. 반면, 우리나라 기업은 여전히 SNS를 통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디지털 대중화의 ‘그림자’
하루가 다르게 사용 환경이 바뀌는 디지털 혁명의 속도를 좇다 보면 진지한 자기 성찰에 필요한 여유를 갖기 힘든 게 사실이다. 철학·역사·예술 등 인문학의 주요 분야를 두루 섭렵해 온 조승연씨는 삶의 본질과 가치에 유독 관심이 많다. 그런 그의 눈에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빨리 확산돼” 우려할 부분이 적지 않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자신만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이건 그냥 기계일 뿐이에요. 자기 정체성의 절반씩이나 여기에 투영해선 안 됩니다. 디지털 기기는 휴대하지 않아도 될 때 진정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지배 당하고 말아요. 누구에게나 ‘나만의 나’와 ‘세상이 보는 나’가 있는데, 디지털 기기 속 자신은 철저하게 후자입니다. 남에게 보여주고 평가 받는 ‘사회적 나’죠. 헤르만 헤세는 ‘반드시 타인과 함께해야 하는 사람은 자기 안의 공백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사회적 나를 덮어놓고 나만의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늘려야 삶의 균형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 철학과 주관이 확고하지 않은 사람일 경우, 디지털 환경에 많이 노출될수록 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SNS에서 ‘우울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어디 가서 뭘 먹었다’ 따위의 자랑이 대부분이죠. 그걸 보다 보면 어느 순간, 타인의 ‘최고 순간’과 자기 인생을 단순 비교 하게 됩니다. 300명이 1년에 한 번 제주도 간 얘길 SNS에 올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자기만 제주도에 안 가는 것 같죠. 상대적 박탈감이에요. 그런 느낌에 자주 휩싸이다 보면 소비적 삶을 좇을 수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이후’ 세상, 큰 변화 없다
여기저기서 ‘디지털 혁명이 삶의 패러다임을 대대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란 예측을 내놓는다. 하지만 조승연씨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 근거로 그는 ‘역사의 패턴’을 들었다. “필기 재료가 파피루스에서 양피지로 바뀔 당시 사람들은 천지가 개벽할 줄 알았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양피지에서 인쇄기로 바뀔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인쇄기에서 디지털 기기로 활자가 이동하는 오늘날의 양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역사엔 일정한 패턴이 있어요. 인쇄기가 발명됐을 때 포르노 팸플릿 판매가 급증했듯 인터넷이 처음 열렸을 때 음란물이 급속히 퍼졌죠. 요즘엔 댓글이 여론을 형성하지만 과거엔 낙서 한 줄이 혁명의 불을 댕기기도 했어요.”
물론 그가 디지털로 인한 변화 일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가장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국가 간 경계 소멸’이다. 그에 따르면 정보의 공유와 교환이 중요해지는 디지털 시대엔 크고 작은 커뮤니티를 분류하는 기준이 ‘국적’이기보다는 ‘언어’ 혹은 ‘관심사’로 바뀔 전망이다. “특히 영어·불어 등 특정 언어 사용자 간 커뮤니티가 강화될 것 같습니다. 언어를 모르면 해당 언어로 구성된 웹사이트에 참여할 수 없으니까요. 또한 관심사별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 ‘특정 국가에서 최고’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져요. 그 자리를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대신하게 되죠. 예를 들어 ‘물 전문가’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전문 지식을 전파하는 식으로요.”
▲조승연씨의 디지털 기기는 대부분 애플 제품이다. 그는 “기기 성능 등 하드웨어 면에선 삼성전자 제품이 더 훌륭하지만 내게 필요한 양질의 콘텐츠는 아이폰에 더 많다”고 말했다
삼성, ‘기기’보다 ‘콘텐츠’에 집중하라
조승연씨가 쓰고 있는 디지털 기기는 대부분 애플 제품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S2를 써본 적이 있지만 다시 아이폰으로 갈아탔다. “나 역시 한국인이고 호환 문제도 있어 삼성 제품을 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 가장 큰 이유는 ‘(기기에 탑재되는) 콘텐츠 품질’이다.
“삼성전자의 기기는 맘에 들어요. 배터리 수명과 성능을 포함, 애플보다 잘 만든 것 같아요. 하지만 제게 스마트폰은 단순한 기기 그 이상이거든요. 기기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기는 내용물이죠. 삼성 기기는 오픈 플랫폼이어서 정보량이 많지만 정작 양질의 콘텐츠는 부족해요. 내로라하는 해외 박물관이나 도서관 데이터베이스, 각국 대학 강의 자료 같은 걸 찾아보려면 한계가 있죠.”
조씨의 외국인 친구들도 그와 스마트 기기 선택 기준이 비슷하다. 콘텐츠의 ‘양’에 집착하는 친구는 삼성 제품을, ‘질’을 추구하는 친구는 애플 제품을 각각 선호하는 게 일반적이다. “윗세대 분들 중엔 기업 이미지를 보고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 세대는 다른 것 같아요. 결정적 구매 요인은 뭐니 뭐니 해도 ‘내게 필요한 기능이 몇 개 있나’죠. 삼성이 소프트웨어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더 크게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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