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3부작 특집 인터뷰 ‘삼성전자 여성과학인을 만나다’_①장세영 무선사업부 선행요소기술그룹 상무

2015/03/11 by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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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시작하며

한국은 여러 면에서 여성 인권이 신장됐지만 여전히 여성이 대규모 조직의 임원으로 올라서긴 힘든 사회다. 국내 대기업의 임원급 연차에서 여성을 찾아보기 힘든 건 물론, 육아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는 ‘워킹맘’은 더더욱 드문 실정이다. 지난해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직원 대비 임원 비율을 조사한 결과, 여성의 임원 승진 확률은 1만 명당 6명 꼴(0.06%)로 남성(1.13%)의 20분의 1 수준이었다. 이 같은 경향은 전통적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 인력 비중 자체가 낮은 과학 연구·개발 분야에서 더욱 짙어진다.

삼성전자는 “국내 대기업 가운데 여성 인력에 대한 평가가 비교적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투모로우는 이 점에 착안해 삼성전자 내 여성 인력, 그중에서도 연구개발 분야 임원을 만나 그들이 현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노하우를 들어보기로 했다.

 

“성공적 사회생활 비결? 서로의 입장 차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봄기운이 날로 더해가는 지난 4일 오후, 삼성전자 본사가 위치한 삼성디지털시티(경기 수원시 영통구 매탄3동)를 찾았다. IM(모바일·커뮤니케이션) 무선사업부 선행요소기술그룹장을 맡고 있는 장세영(40) 상무를 만나기 위해서다. 직함이 말해주듯 장세영 상무는 삼성전자 사업 부문 중 하나인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관련 제품의 선행 요소 기술을 책임지고 있다. 때마침 삼성투모로우와의 인터뷰 전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갤럭시 S6 론칭 행사가 호평 속에 끝났다. 그는 “이제 숨 돌릴 틈이 좀 생겼다”며 웃었다. 인터뷰 내내 밝은 미소를 유지하던 얼굴은 몇 개월간 이어졌을 격무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 같지 않았다.

장세영 상무가 웃으며 인터뷰하고 있습니다.▲수원 삼성디지털시티에서 만난 장세영 상무. 갤럭시 S6 론칭 행사 이후 “이제 좀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삼성전자의 ‘유리천장’을 깨다

2013년 12월, 당시 부장이던 그가 상무로 임명됐을 때 모 일간지는 “삼성의 유리천장을 깬 인물”이란 표현을 썼다. 전년도에 만 38세 나이로 임원에 오른 조인하 상무(현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미주PM그룹 상무)에 이어 두 번째로 탄생한 ‘30대 여성 임원’이었다.

‘개발 전문가’인 장세영 상무의 전문 분야는 ‘슬림앤드파워(slim&power)’다. 지난 2008년 무선사업부로 부서를 옮긴 이후 갤럭시 S·노트 시리즈 플래그십 모델들의 충전 시간과 배터리 사용 시간, 발열 등 주로 하이엔드 제품군의 파워 패키지 관련 업무를 담당해왔다.

“무선사업부에 온 이후 줄곧 ‘기기의 슬림화(slim化)’에 집중했어요. 스마트폰 부품 중 제일 덩치가 큰 게 배터리인 만큼 이걸 어떻게 줄일까, 하는 게 최대 고민이죠. 문제는 배터리 크기와 사용 시간이 비례하는 점, 그리고 배터리를 작고 가볍게 만드는 일에만 치우치면 제품이 쉽게 뜨거워지는 점이었습니다. 고속 충전을 가능케 하면서 배터리 사용 시간은 늘리고, 그러면서도 발열 현상은 최대한 줄이는 게 관건이었죠.”

장세영 상무가 배터리일체형 스마트폰 갤럭시 S6를 들고 있습니다.▲갤럭시 모델 최초로 일체형 배터리를 탑재한 갤럭시 S6

 

개발자의 핵심 덕목은 ‘유연성’

배터리 영역에서의 성과는 고스란히 그의 ‘고속 승진’ 배경으로 작용했다. 상무 임용 당시 그는 평균 승진 연한보다 2년 빨리 임원이 됐다. 2013년 인사 승진자 중에선 유일한 30대이기도 했다. 당시 삼성그룹은 파격 인사의 배경에 대해 “갤럭시 S4, 갤럭시 노트3 배터리 수명 향상 설계를 주도해 제품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고속 충전은 삼성전자가 2년 전부터 원천기술로 확보하고 있었어요. 갤럭시 노트4부터 실제 제품에 적용됐죠. 갤럭시 S6에선 그 완성도가 한층 높아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착탈식 배터리는 한동안 삼성 스마트폰의 강점으로 꼽혔죠. 하지만 디자인적 관점에서 보면 한계가 뚜렷했어요. 아무래도 배터리를 착탈식으로 만들려면 기기 내 일정 공간이 필요하니까요.”

삼성전자는 갤럭시 S6에서부터 내장형 배터리 방식을 채택했다. 이전 기기 모델에 대한 소비자 피드백을 꼼꼼히 분석, 디자인 개선을 위해 ‘과감한 선택’을 감행한 것이다. 일체형 배터리는 ‘뉴 갤럭시(new Galaxy)’에서 소비자가 가장 민감하게 그 변화를 감지한 부분일 터.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장세영 상무의 어깨가 한층 더 무거워졌을 법도 하다.

“개발 부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덕목은 유연성(flexibility)인 것 같아요. 부품 개발 단계에서 ‘이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예측해 정한 콘셉트도 일정 시간이 흐르면 트렌드 변화 등에 따라 수정이 불가피해지는 경우가 태반이거든요. 그럴 땐 출시를 단 몇 개월 앞두고도 방향을 완전히 틀어야 하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설계 작업을 할 때도 약간의 여백을 두는 등 일종의 ‘노하우’가 생깁니다. (스마트폰처럼) 소비자의 삶과 밀착된 제품은 유행에 민감한 만큼 특히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어요.”

연구실에서 팀원들과 집중하고 있는 장세영 상무의 모습입니다.

6명의 팀원과 장세영 상무의 모습입니다.▲인터뷰 직후 장세영 상무는 본인이 이끌고 있는 선행요소기술그룹원들과의 사진 촬영을 희망했다<아래 사진>. 그는 “우리 그룹엔 분야별로 수준급 실력을 갖춘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며 “후배들의 전문 지식에 귀 기울이며 내가 배우는 게 훨씬 더 많다”고 팀원들에게 고마워했다. 위 사진은 실험실에서 팀원들과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장 상무의 모습

 

여자라서 느낀 한계는 ‘체력’이 유일

장세영 상무는 경기과학고와 카이스트(전자재료공학 학·석·박사)를 거쳐 지난 2002년 당시 삼성전자 메카트로닉스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남들은 ‘남자가 더 많은 환경에서 일하기 힘들지 않느냐’고들 하는데 정작 난 학창 시절 내내 그런 환경에서 지내온 덕분인지 별다른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다”며 웃었다.

“사실 하드웨어 개발 분야에서 여성 인력 비중은 크지 않아요. 위로 갈수록 더 그렇죠. 우리 회사만 해도 무선사업부 개발 분야에서 하드웨어를 담당하는 여성 임원은 제가 유일하니까요. 하지만 직장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겪은 어려움은 거의 없었어요. 오히려 여자 많은 곳에 가면 적응이 잘 안 돼요.(웃음) 반상회도 딱 한 번 가봤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한 번은 아이 학교 엄마들 모임에 갔다가 ‘일이 있어 먼저 일어나겠다’고 했더니 ‘학교 선생님이냐’ ‘발레 강사냐’ 별별 질문이 쏟아지더군요. 발레라니…. 뭘 보고 그리 추측했는지 좀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하긴, ‘대기업 소속 과학자’란 게 쉬이 떠올릴 수 있는 여성 직업은 아닐 테니까요.”

장 상무가 실감하는 ‘여자라서 느끼는 업무적 한계’는 체력 부문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요즘도 운동은 거르지 않으려 꾸준히 노력한다. “날밤 새우며 일할 정도의 ‘강철 체력’은 아니에요. 일하다 쓰러지면 안 되니 적어도 주 2회는 필라테스나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건강을 관리하려 노력합니다.”

슬하에 아들 딸 각 1명을 둔 장세영 상무 부부의 가족사진입니다. 왼쪽엔 딸을 안고 있는 장세영 상무가, 오른쪽엔 아들을 안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보입니다.▲ 장세영 상무는 대학 선배였던 남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뒀다. 그는 “야근 후 집에 가서 곤히 잠든 아이들 얼굴을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고 말했다

 

“엄마처럼 ‘워킹맘’ 되겠다”는 딸

그에겐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딸과 여섯 살 아들이 있다. 그 역시 과거 몇 차례 ‘회사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해야 하나’ 고민했던 적이 있다. 다행히 지금은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도우미 아주머니 등의 도움 덕에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종일 일에 몰두하다 밤에 퇴근하면 지쳐 쓰러질 지경이죠. 그러다가도 애들 자는 모습을 보면 힘들었던 기억이 다 잊히고 행복해집니다. 피로도 씻겨나가는 것 같고요.”

큰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이후 그에겐 ‘워킹맘으로서의 생존 전략’이 몇 개 추가됐다. “다른 학부형과의 교류가 필요한데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매번 모임에 못 나가는 대신 주말 같은 때 시간을 내어 아이 반 친구 엄마 몇몇을 만나곤 합니다. 대개 학교 일을 훤히 꿰고 있어 중요한 정보를 줄 수 있는 분들이죠. 얼마 전 나간 모임에선 ‘아이 학교의 1일 교사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팁도 얻었답니다.”

화제가 가족, 특히 자녀 쪽으로 넘어가자 장 상무의 표정에선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과 대견함이 절로 묻어나왔다. “딸아이는 벌써 제 일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 같아요.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제 이름을 입력해보고 자랑스러워하곤 하죠.(웃음) 자기도 크면 꼭 직업을 갖겠다고 말해요. 물론 아이도 낳아 키우고요. 딸이 엄마가 될 때쯤이면 제가 회사 그만두고 손주 봐줘야죠.”

장세영 상무는 기어S를 착용하고 갤럭시 S6들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장세영 상무는 후배에게 건네는 ‘성공의 비결’을 묻자 “아무리 힘들어도 버텨야 한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 의견 경청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내 개발 인력은 수천 명 규모다. 장세영 상무가 속해 있는 하드웨어 개발 부문 인력과 상품기획·마케팅·소프트웨어·UX(User eXperience, 사용자경험) 담당 인력이 함께 일하고 있다. 하나의 제품이 탄생하려면 여기에 크고 작은 협력 업체 인력까지 더해져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이들을 무리 없이 조율하는 것 역시 장 상무의 주요 임무 중 하나다. 이와 관련, 그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기획부터 설계,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개발, 마케팅 등 하나의 제품이 탄생하려면 수많은 공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구성원 간 협력은 필수죠. 결국 일이 잘되려면 인간관계부터 다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소통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최대 원인은 ‘입장 차이’예요. 각자 놓인 상황과 맥락이 다르다 보니 같은 얘길 주고받으면서도 이해 수준은 천차만별이죠. 실제로 협력사 분들과 회의할 때 그런 경험을 종종 접합니다. 대화가 잘 진행된 것 같은데 나중에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 보면 정반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곤 하거든요.”

업무 파트너와 ‘소통의 벽’에 가로막혔을 때 장 상무가 사용하는 방법은 ‘마인드 컨트롤’이다. “한 걸음 멈추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 사람 입장을 헤아리면 이전까지 안 보였던 부분이 보여요.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타협할 수 있는 지점도 찾아지고요. ‘동일한 문제를 대할 때도 각자의 입장이 서로 다른 만큼 생각 역시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일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은 사내 동료나 선후배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장 상무는 “후배들도 매사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 의견에 귀 기울이며 직장 생활을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힘들어도 버티세요!(웃음) 결국 그게 ‘성공적 사회생활’의 정답인 것 같아요. 길게 보고 큰 그림을 그린다면 보다 수월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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