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6부작 특별 기획 ‘IT로 문화 읽기’_⑥크라우드 펀딩<연재 끝>_인터넷 경제 민주주의의 뿌리, 크라우드 펀딩

201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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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_banner_content_1 [스페셜 리포트] 6부작 특별 기획 ‘IT로 문화 읽기’_⑥크라우드 펀딩<연재 끝>_인터넷 경제 민주주의의 뿌리, 크라우드 펀딩

 

#1. 배려가 낳은 시계, ‘브래들리 타임피스’

“지금 몇 시야?” 한 친구가 무심코 던진 질문이 김형수씨의 마음 깊은 곳을 자극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김씨의 친구는 시각장애인용 시계를 갖고 있었는데도 시간을 물어본 것이다. 지나치게 큰 소리로 시간를 알려주는 시각장애인용 특수 시계. 시끄러운 소리로 주변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친구의 마음을 김형수씨는 이내 알아차렸다.

‘시각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그리고 모든 이의 사랑을 받을 만큼 디자인이 잘 된 시계가 필요하겠구나!’ 그는 시각장애인들의 의견을 모아 그들이 편리하게 쓸 수 있으면서도 일반 시계와 모양이 별로 다르지 않는 시계 디자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브래들리 타임피스의 구조(사진 출처: 이원코리아/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브래들리 타임피스의 구조(사진 출처: 이원코리아/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브래들리 타임피스(Bradley Timepiece)’다. 시각장애란 한계를 극복하는 도전 정신을 담은 제품으로 이름에서부터 시각장애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브랜드명에 포함된 ‘브래들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폭발로 인해 시력을 잃어버린 후 지난 2012년 개최된 제14회 런던 장애인올림픽에서 수영선수로 출전, 금메달을 획득한 미국 해군 중위 출신 브래들리 스나이더(Bradley Snyder)의 이름을 딴 것이다. 보통 ‘시계’를 의미하는 영단어 ‘워치(watch)'는 ‘본다’는 뜻에서 파생한 것으로, 비(非)시각장애인 중심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 시계에 ‘워치’ 대신 ‘타임피스’란 명칭이 붙은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진 출처: 이원코리아/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세련된 디자인의 시계를 만들 순 있었지만, 당시 유학(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중이었던 김씨에겐 자신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만한 자금이 없었다. 2013년 그는 미국의 대표적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사이트인 ‘킥스타터(www.kickstarter.com)’에 시제품 사진과 자신의 뜻을 올렸다. 브래들리 타임피스는 약 4000명의 온라인 후원자에게서 총액 60만 달러 상당의 후원금을 기부 받았다. 현재 이 제품은 온라인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위 사례는 이원코리아·킥스타터 홈페이지에서 관련 내용을 발췌, 재구성한 것임)

 

#2. 난임 부부의 고통 어루만지는 ‘착한 한의사’

“결혼한 부부에게 아기 소식을 묻는 건 월급을 묻는 것만큼이나 조심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한국 여성 1명이 일생 동안 낳는 자녀의 수는 1.2명. OECD 국가 최저 수준이다. 또 한국 부부 8쌍 중 1쌍이 난임(難姙)이다. 인구학 전문가들은 “오는 2018년이면 우리나라에도 (인구가 가파르게 하강하는) 인구 절벽이 올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출산율 저하와 난임율 증가는 이제 우리 모두의 고민이 됐다.

자신의 저서 ‘임신을 위한 힐링’(가제) 무료 배부를 선언한 한의사 이재성씨(사진 출처: 이재성씨 페이스북/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저서 ‘임신을 위한 힐링’(가제) 무료 배부를 선언한 한의사 이재성씨(사진 출처: 이재성씨 페이스북/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한의사 이재성씨는 ‘임신을 위한 힐링’(가제)이란 표제 아래 카카오가 제공하는 블로그 플랫폼 ‘브런치’에 원고를 올리고 있다. 

“난임 여성의 상처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어디서도 제대로 위로 받지 못합니다. 진료실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그분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기엔 제한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원고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이재성씨는 임상 경험을 통해 축적한 본인만의 통찰이 담긴 원고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수월하게 이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다음 스토리펀딩’에 자신의 뜻을 올렸다.

“전 이 책의 인세를 취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후원금으로 책을 만들어 난임 여성들에게 무료로 증정하겠습니다. 후원금 일부와 이 책의 인세는 사단법인 한국난임가족연합회에 전달, 저소득층 난임 진료비 지원에 쓰겠습니다.”

그런 뜻을 올린 지 1주일 만에 목표액의 30%에 해당하는 300여만 원이 모금됐다. 후원자에게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순수 기부금이란 사실을 떠올리면 놀라운 성과다. IT 기술 발달이 가능하게 한 크라우드 펀딩의 힘이다.

(※위 사례는 다음 스토리펀딩 홈페이지에서 관련 내용을 발췌, 재구성한 것임)

 

십시일반(十匙一飯)의 21세기 버전 ‘크라우드 펀딩’

크라우드 펀딩은 ‘군중(crowd)’과 ‘모금(funding)’이 합쳐진 신조어다. 이 단어를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은 지난 2006년 비디오 블로그 프로젝트를 시도했던 마이클 설리반(Michael Sullivan)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2009년 설립된 킥스타터의 성공은 이 용어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의미 있는 큰일을 위해 다수의 자원을 모으는 건 사실 인간이 사회집단을 이루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있었던 일이다. 어쩌면 크라우드 펀딩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바로 ‘에밀레종 설화’다. 실제로 삼국사기엔 종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해 집에 있는 값진 물품을 내놓는 사람들의 행렬이 절 마당에 줄을 잇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IMF 사태 직후 ‘금 모으기’ 운동도 크라우드 펀딩에 해당된다. 영국에서 19세기 후반 시작된 구세군 자선냄비는 크라우드 펀딩의 고전적 사례이며, 미국에선 자유의 여신상을 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이어 금품을 헌납했다.

'크라우드 펀딩'의 고전적 사례로 들 수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초창기 모금 풍경(사진 출처: 미국의회도서관/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의 고전적 사례로 들 수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초창기 모금 풍경(사진 출처: 미국의회도서관/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크라우드 펀딩은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이뤄진다. 이 경우 3개 유형의 주체가 중심이 된다. △아이디어를 제안해 자금을 모금하려는 프로젝트 발주자 △이를 지지하는 개인이나 집단 △이들을 연결시켜 그 아이디어나 프로젝트가 실현되게 해주는 중개 조직(플랫폼)이다. 예를 들어 당신(지지자)이 이재성 한의사(프로젝트 발주자)의 뜻을 후원하고 싶다면 다음 스토리펀딩(플랫폼)에 마련된 절차를 따라 기부하면 된다.

오늘날 크라우드 펀딩이 후원하는 프로젝트의 성격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예술가들의 활동 지원은 단골 메뉴 중 하나다. 1997년 영국 록 그룹 매릴리언(Marillion)은 미국 순회공연을 위해 인터넷으로 6만 달러를 모금,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의 선구적 사례를 만들었다. 역시 초기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중 하나인 ‘저스트기빙(JustGiving)’은 불우이웃을 돕는 자선 사이트다. 2000년대 들어 ‘키바(KIVA, 2005년 설립)’ 등 전 세계 낙후 지역을 위한 개발 프로젝트에 돈을 빌려주는 투자 사이트 같은 것도 생기기 시작했다.

최근의 경향은 이 모두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08년 론칭된 ‘인디고고(IndieGoGo)’, 2009년 ‘킥스타터’, 2010년 ‘마이크로벤처’, 그리고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관련 서비스를 시작한 ‘다음 뉴스펀딩’(현 ‘다음 스토리펀딩’) 등은 모두 다양한 분야를 통합해 모금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출범했다. 예를 들어 킥스타터는 예술·만화·공예·춤·디자인·패션·필름&비디오·게임·저널리즘·음악 등 15개 범주를 갖고 있다. 그 중 ‘기술’ 부분의 한 사례가 지난달 11일자 스페셜 리포트에 소개된 ‘스마트싱즈(SmartThings)’다. 실제로 벤 에드워즈(Ben Edwards) 등 스마트싱즈 공동 설립자들은 지난 2012년 8월 킥스타터에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올린 후 한 달 만에 200만 달러를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2013년 세계적으로 100만 건 이상의 캠페인이 크라우드 펀딩 모금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총액은 51억 달러(6조205억 원 정도) 규모에 이르렀다. 올해 예상 모금액은 1조 달러(약 1200조 원)에 이른다.

 

#대안적 자금 조달 방식, 크라우드 펀딩

크라우드 펀딩은 ‘마이크로 파이낸싱(micro-financing)’이라고도 불린다. 숫자로 치면 많지만 1인당 내는 후원금의 액수는 소액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크라우드 펀딩을 가리켜 ‘대안적 파이낸싱(alternative financing)’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종전까진 어떤 일에 비용을 대는 이는 돈이 많은 특정 개인이거나 집단이었으며, 한 번에 상당한 액수의 돈을 대야 하는 경우가 많아 자금 조달 경로가 종종 제한적이었다. 이에 비해 크라우드 펀딩은 누군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소액의 돈을 받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취지가 다수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라면 비교적 수월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크라우드펀딩을 도식화한 이미지 입니다.

모금 방식이 180도 달라지면서 자금이 쓰이는 곳이나 그 결과의 성격도 달라지게 됐다. 종전까지의 자금 조달 방식으로 수행되는 사업은 자금 제공자의 의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금 제공자가 소수이고 분명하며 자금의 액수가 크기 때문이다. 반면, 크라우드 펀딩의 경우 자금 제공자가 워낙 많을 뿐 아니라 각 제공자가 제공하는 자금의 액수가 미미하기 때문에 일단 기획된 사업의 내용엔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대신 모금할 때 사업의 성격과 내용을 분명히 공지해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자금을 내게 돼있다.

결과적으로 크라우드 펀딩의 자금 모금 방식뿐 아니라 자금 사용 과정도 더욱 민주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띠지 않을 수 없다. 최대한 많은 대중의 의견이 반영되는 방식으로, 대부분 투명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인터넷 민주주의’란 용어가 흔히 쓰이지만, 어쩌면 크라우드 펀딩이야말로 인터넷 경제 민주주의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셈이다.

 

# IT, 크라우드 펀딩의 새 물결을 일으키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거나 사업을 기획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다수에게서 소액의 돈을 걷어 일한다는 게 갑을관계의 부담을 줄이는 바람직한 모금 방식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렇게 하는 게 너무도 번거롭다는 점이다. 일일이 사람을 만나 자신의 기획을 설명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어 주머니를 열게 만든다는 건 여간 공이 드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한 번에 얻는 돈이 아주 적은 액수라면, 자칫 목표를 이루기도 전 모금하다가 에너지가 소진될지도 모른다.

Crowd Funding.

인터넷 세상이 돼 하나의 웹 사이트를 통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존재하는 여러 사람에게 공지하는 일이 쉬워지면서 크라우드 펀딩은 더없이 매력적인 대안이 됐다. PC나 모바일 기기 자판을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돈의 왕래가 간단하고 안전하게 해결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크라우드 펀딩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졌다.

살균제로 소독하지 않아도 되는 가습기, 무거운 장비를 내내 들고 있지 않아도 장시간 고정해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고속촬영 보조기, 온라인을 통한 데이터 입력으로 자신의 피부에 맞는 영양분과 수분을 제공해주는 미용팩 마스크…. 크라우드 펀딩의 적용 영역은 기술 부문으로만 봐도 무궁무진하다. 그뿐 아니다. 오래된 동네 도서관을 살리려는 주부들의 노력, 정신적 질환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댄스 프로그램 등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따뜻한 손길을 보내고자 하는 크리슈머<크리슈머의 정의와 특성 등은 지난 9일자 스페셜 리포트 참조>들의 꿈이 피어나도록 돕는 따뜻한 손길과 이를 잇는 IT의 잠재력은 미래 세상을 또 어떻게 바꿔놓을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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