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꽤 거대한 블루오션, 사이니지 시장
사이니지(signage).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단어는 사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퍽 가까운 영역에 위치하고 있다. 사이니지의 어원엔 영단어 ‘사인(sign)’이 있다. 국내에서 사인은 ‘서명(署名)’이란 뜻으로 가장 많이 쓰이지만 ‘표지(판)’ 역시 사인의 의미 중 하나다. 사이니지는 여기서 출발, ‘(표지판처럼) 누군가에게 특정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시각적 구조물’을 통칭하는 용어를 일컫는다. 이를테면 △교통신호등 △간판 △도로표지판 △식당 메뉴판 △(건물에 부착된) 대형 스크린 등이 모두 사이니지에 해당한다.
미래형 커뮤니케이션의 ‘잇 아이템’
오늘날 사이니지라고 하면 거의 틀림없이 ‘디지털 사이니지’를 가리킨다. 실제로 요즘 도심을 걷다보면 고층 빌딩 전면에 부착된 전광판이 자주 눈에 띈다. 빠른 속도로 바뀌는, 잘 디자인된 화면 속 이미지와 글씨는 걷거나 차를 타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기에 충분히 감각적이다. 이 장치가 바로 디지털 사이니지의 대표 아이템 ‘DOOH(Digital Out Of Home, 야외용 디지털 디스플레이)’다. 만약 당신이 여기에 매료됐다면 디지털 사이니지의 신세계에 본격적으로 첫발을 내디딘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 사이니지는 올 4월 13일 서울 마포 소재 MBC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특별 방송’에서도 활용됐다. 사진은 스마트 사이니지(95형, 모델명 ‘ME95C’) 제품
미래형 커뮤니케이션의 ‘잇(it) 아이템’으로 세계 시장에서 급부상 중인 사이니지, 그 쓰임새와 잠재력은 어느 정도일까? 이제부터 언급할 가상 사례 중에선 당신이 이미 체험한 것도, 아직 접하지 못한 것도 있을 테다. 그리고 각각의 비율은 당신이 글을 읽는 시점에 따라 수시로 바뀔 공산이 크다. 디지털 사이니지 기술이 가공할 속도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 장치로 시동을 건 후 승용차에 올랐다. 내부 전면 대시보드 빼곡히 각종 이미지가 떠올랐다. 웨어러블 기기로 미리 설정해둔 경로를 따라 각 지역에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 새롭게 생겨나 내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보기 쉽게 정리된 것이다. 대시보드 자체가 어엿한 사이니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시간 여유만 있다면 ‘반(半)자율운행’ 모드로 설정해놓고 이것저것 탐색해볼 텐데 아쉽게도 오늘은 일정이 촉박하다. 하는 수 없이 ‘진행’ 모드로 바꾼 후 운행을 시작했다.
첫 번째 행선지는 친구 A의 집. 대시보드가 “도착 5분 전”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화면을 터치하자, A 소유 웨어러블 기기에 도착 예정 시각이 자동으로 전송됐다. 때 맞춰 아파트 입구에 나와 있던 A를 태우고 올림픽대로를 달려 얼마 전 새로 생긴 쇼핑몰을 찾았다. 쇼핑몰 건물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해당 쇼핑몰의 엠블럼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그 안에서 해볼 수 있는 체험 시연 이미지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배경과 베젤 둘 다 투명한 재질을 채택, 정보가 담긴 이미지만 보일 수 있게 만든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활용 사이니지’다.
주차장 입구에서 역시 웨어러블 기기로 관심 매장을 검색한 후 데이터를 전송했다. 잠시 후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장치가 작동, 운전 중인 내 시선에 맞춰 투명 배경 사이니지를 띄웠다. 방문하고자 하는 매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용도다. 차를 세운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해당 매장이 있는 층에서 문이 열렸다. 평소 좋아하는 ‘비즈니스 캐주얼’ 브랜드가 모여 있는, 개방형 쇼핑 공간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내 키 정도 되는 모델의 전신 이미지를 보여주는 사이니지. IoT 원리로 구동되는 이 사이니지는 내가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빅데이터로 내 과거 쇼핑 이력을 참조해 내가 좋아할 만한 최신 유행 아이템을 다양한 조합으로 연출, 차례차례 보여줬다. 오는 주말, 여자친구를 만나 산책할 때 입을 만한 옷을 찾고 있었던 터라 가벼운 천연 재질의 페도라와 데님 셔츠, 치노 팬츠가 어우러진 이미지가 등장했을 때 화면을 정지시켰다. 페도라를 터치하자 가격과 브랜드, 디자인이 서로 다른 제품이 차례로 표시됐다. 그중 소재가 톡톡하고 색감이 깊어 가을 느낌이 물씬 나는 제품을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았다. 라이트 블루(light blue) 계열 셔츠는 그 자체로 흠 잡을 데 없어 바로 ‘찜’ 했다. 다만 통이 과하게 넓어 보이는 팬츠는 아무리 유행이라 해도 좀 부담스럽다.
고민하다 ‘쇼핑 도우미’를 찾았다. 사이니지 한쪽의 ‘콜(call)’ 버튼을 터치하자 금세 친절한 미소를 띤 여성 도우미가 나타났다. 휴대용 사이니지를 손에 든 채 나타난 그는 내가 고른 아이템을 바로 착용할 수 있게 돕는 한편, 사이니지 보드 위에서 나머지 의상과 액세서리에 어울릴 만한 팬츠도 검색해줬다.
▲지난해 IFA에서 공개된 사이니지 활용 미래형 쇼핑 솔루션. 사용자의 관심사를 자동으로 인식, 그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광고가 상영된다. 삼성 페이 등을 활용한 결제 기능도 추가할 수 있다
A가 염두에 뒀던 캠핑 장비까지 구매한 후 푸드코트를 찾았다. 처음 와본 쇼핑몰이었고 규모도 컸지만 푸드코트 찾느라 헤매진 않았다. 웨어러블 기기로 먹고 싶은 음식 몇 가지를 전송했더니 지나는 길목마다 설치된 사이니지들이 해당 메뉴를 맛볼 수 있는 장소로 가는 길을 보여줬기 때문. 개방형으로 설계된 푸드코트 입구에도 대형 사이니지가 위치, 판매 중인 음식 이미지를 차례로 보여줬다. ‘매콤한 토마토 요리에 마늘빵이나 찍어 먹을까?’ 사이니지에서 ‘T’ 자를 터치, 토마토 요리를 선택했다. 그와 동시에 사이니지엔 푸드코드에서 판매되고 있는 토마토 요리가 차례로 떠올랐다. 종류가 너무 많은 것 같아 바로 옆 카테고리에서 ‘핫(hot)’과 ‘시푸드(sea food)’ 버튼을 함께 눌러 범위를 좁혔다.
‘지중해풍(風) 매콤 토마토 해물 수프’를 고른 후 ‘사이드디시(side dish)’ 메뉴에서 ‘마늘빵과 치즈를 곁들인 로메인 샐러드’를 골라 사이니지 오른쪽 귀퉁이에 있는 바구니 모양 아이콘에 넣었다. 화면엔 결제해야 할 총액이 나타났다. 내 웨어러블 기기를 터치, 삼성 페이로 결제하자 사이니지와 웨어러블 기기에 주문 번호가 떴다. A와 나는 편한 자릴 잡고 앉아 푸드코트 중앙 위쪽에 늘어선 사이니지 중 우리의 주문 번호가 나타나길 기다리기 시작했다.
어떤 분야에서든 ‘인터랙션’ 가능해
디지털 사이니지가 위 시나리오에서처럼 비단 쇼핑몰에서만 빛을 발하는 건 아니다. 일상 속에서, 그리고 전문적 작업이 수행되는 공간에서 사이니지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이를테면 케이팝(K-pop) 공연장 곳곳에 설치된 크고 작은 사이니지는 무대 정면이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앉은 관객에게도 공연 팀의 세세한 움직임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증강 현실을 적용할 경우, 멤버별 인적 사항과 특징을 알려주는 인포그래픽을 곁들여 볼 수도 있다.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공간에 상호작용적 요소가 더해지는 셈이다.
스포츠 경기장 역시 디지털 사이니지의 존재감이 돋보일 수 있는 공간이다. 스포츠 경기장은 객석에 따라 경기장 전체가 잘 안 보이는 사각(死角)지대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눈이 빠른 사람이라도 중요한 장면을 놓치기 쉽다. 이럴 때 사이니지를 적절히 활용하면 모든 경기 장면을 순간순간, 그리고 구석구석 즐길 수 있다. 각 선수의 성명과 특기사항, 경기 흐름에 대한 해석 등 추가 정보 제공도 가능해 경기를 한층 깊이 있게 감상하기에도 좋다.
▲아웃도어용 소형 사이니지는 방수·방진 기능을 지원, 어떤 환경에서도 보다 생생한 경기 관람을 돕는다
협력 작업이 필요한 시각적 프로젝트에서도 사이니지는 단단히 한몫한다.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디자인 작업을 거쳐 목업(mock-up)을 제작, 최종 제품을 완성하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여럿이 머릴 맞대고 합의안을 도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금껏 이런 회의는 빔프로젝터나 오버헤드프로젝터(OHP) 사용이 가능한 공간에서만 진행할 수 있었다. 실내가 너무 어두워도, 너무 밝아도 자료 공유가 쉽지 않았다. 쌍방향 소통이 불가능한 점도 문제였다.
하지만 태블릿 PC와 연동된 LED 사이니지와 함께라면 어디서나 아무 제약 없이 시각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설사 야외라 해도 밝기 조절 기능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열람이 가능하다). 회의 진행 시 중앙 통제용 대형 사이니지와 개별 참석자용 모바일 사이니지를 연동시키면 모든 참석자가 원안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덧붙여 모두와 공유할 수 있다. ‘일방통행식(one-way)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전자 칠판(모델명 ‘DM65E-BC’) 시연 장면. 손가락으로 글씨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손바닥이 지우개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어 편리하다. 다수의 의견을 조율하기도 편리해 ‘인터랙션’ 측면에서 특히 강점이 있는 제품이다
이 같은 디지털 사이니지의 장점은 어떤 조직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특히 브레인스토밍 작업 시 그 효율성은 극대화된다. 집단지성의 효율적 구현에 사이니지가 기여할 수 있는 몫이 작지 않단 얘기다. 교육 분야에서도 시청각 미디어의 효율성은 이미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디지털 사이니지는 시청각 미디어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갖춘 장치다. 일단 화면 자체가 선명하고 눈에 부담을 덜 준다. 시청 위치에 따른 화면 차도 크지 않다. 뭐니 뭐니 해도 ‘인터랙션(interaction)’이 가능하다.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넘어서서 학생들에게 창의적 적극성을 유도하는 게 21세기 교육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만큼 사이니지가 교육 현장에서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기차역(위 사진)과 공항에서 활용 가능한 사이니지를 가상으로 구현한 모습
지금껏 대중이 가장 흔히 접할 수 있었던 사이니지 중 하나는 도로표지판이었다. 디지털 사이니지의 활용도가 가장 큰 분야 중 하나가 ‘교통’이기도 하다. 실제로 기차∙전철역과 고속버스 터미널, 공항 등에서 시시각각 출발하고 도착하는 운송편의 정보를 정확하고 알기 쉽게 보여주는 전광판은 모두 사이니지다. 비행기나 KTX 열차 좌석에 앉았을 때 시선이 닿는 곳에 위치한 스크린 역시 사이니지다. 이 밖에 △호텔 경영 △헬스케어 △미술(박물)관 △관광(유적)지 △보안 시설 등에서도 사이니지의 쓰임새는 활발하다. 그리고 그 적용 분야는 계속 늘고 있다.
‘220억 달러 시장’ 거머쥘 승자는?
글로벌 인터넷 시장 조사 기관 ‘모도어 인텔리전스’의 추산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전 세계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 규모는 149억 달러(약 16조 7000억 원) 수준이다. 연간 성장률은 8% 선. 이 추세대로라면 오는 2020년엔 219억 달러(24조 5000억 원)를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이 ‘거대 블루오션’을 견인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지난 2009년 이후 7년 연속 사이니지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 점유율은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의 경우 28.1%로 압도적 선두 자리를 지켰다. 첨단 사이니지 기술을 활용한 ‘히트 상품’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LCD 기반 투명 디스플레이 △세계 최대 규모 e-LED 사이니지 △초슬림 베젤(1.7㎜) 비디오월(모델명 ‘UH55F-E’) △UHD 사이니지 △DOOH 활용 세이프티 트럭(관련 기사는 여기 참조) 등이 대표적 예다.
▲올 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ISE 삼성 부스 입구에 설치, 관람객을 맞았던 미러 디스플레이
삼성전자의 이 같은 활약은 디지털 사이니지 기술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글로벌 전시와 평가 자리에서 단연 주목 받고 있다. 올 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럽 최대 상업용 디스플레이 전시회 ‘ISE(Integrated Systems Europe) 2016’에서 삼성전자는 ‘AV뉴스(AVNews)’가 주는 ‘올해의 AV 디스플레이 혁신상(AV Display Innovation of the Year)’을 수상했다. 지난 6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상업용 디스플레이 전시회 ‘인포콤(InfoComm) 2016’에선 삼성전자 스마트 사이니지 아웃도어 ‘OHD’ 시리즈가 인포콤 공식 미디어 파트너사 ‘커머셜 인티그레이터’ 선정 ‘최고의 상업용 디스플레이 제품’에 꼽히기도 했다. ‘디지털 사이니지 매거진’이나 ‘렌탈앤드스테이징 시스템’ 등 사이니지 전문 매체가 UH55F-E를 ‘최고의 비디오월’로 선정하는가 하면, 미국 디지털 AV 전문 미디어 ‘레이브’는 삼성전자를 ‘가장 호감 가는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로 2년 연속 선정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삼성전자는 이달 초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16’에서 ‘모션 센서 터치 사이니지 솔루션’<아래 영상 참조>을 선보였다. 3D 센서를 사이니지와 결합, 사용자 동작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신개념 기술이다.
“디지털 사이니지, 인류 삶 바꿀 것”
사이니지는 ‘도장을 찍어 자기 소유물임을 알리는 행동’을 일컫는 라틴어 ‘시그나레(signare)’에서 출발한 단어다. 인류 문화는 날로 편리하고 정교하게 발달해왔으며, 사이니지 역시 그에 맞춰 진화를 거듭했다. 그 결과, 여러 개의 단어 조합이 말해야 할 내용은 점차 (간판과 표지판, 게시판 등) 간단한 이미지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그 이미지는 한층 역동적이면서도 심미적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메시지는 보다 정확해졌고 메시지 발신자와 수신자 간 상호관계성(interaction)은 보다 강화됐다.
사이니지는 명실상부한 ‘차세대 커뮤니케이션의 대표 주자’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 모든 측면에서 첨단 ICT 기술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아이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이니지 관련 기술∙제품 개발 레이스에 전 세계 유수 두뇌와 기업이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이렇게 치열한 시장에서 업계 선두주자답게 열정적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어떤 기업보다 사이니지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디지털 사이니지가 아날로그 광고판을 대체, 향후 인류 삶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란 송준호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엔터프라이즈마케팅그룹 과장의 설명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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