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환자가 제일 의지하는 ‘링거 폴대’, 좀 똑똑하게 만들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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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24시간 내내 붐비는 병원 풍경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자. 간호사는 모든 환자의 현황을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환자는 자신에게 투여되는 수액 종류와 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어떨까? 간호사 입장에선 환자 관리가 한결 수월해질 테고 환자는 본인의 치료 진행 상황을 그때그때 점검하며 심적 안정을 찾게 될 것이다.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이로울 이 솔루션이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실물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일명 ‘링거 폴대’로 불리는 이동형 수액 거치대에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원리를 적용한 삼성전자 크리에이티브랩(C랩) 과제 ‘토킹폴(Talking Pole)’이 상용화를 목표로 부지런히 뛰고 있기 때문. ‘간호사와 환자 간 효율적 커뮤니케이션 도구 개발’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토킹폴 팀원들을 지난달 15일 삼성디지털시티(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에서 만났다.

토킹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한데 뭉친 삼성전자 임직원들. (왼쪽부터) 백재현·윤건호 팀원, 이완형 CL(Creative Leader) 문성훈·성진하 팀원 ▲토킹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한데 뭉친 삼성전자 임직원들. (왼쪽부터) 백재현·윤건호 팀원, 이완형 CL(Creative Leader) 문성훈·성진하 팀원

 

환자의 심리적 부담 경감에 초점… 재활 운동 독려 역할도

이동형 수액 거치대에 센서와 디스플레이가 부착된 토킹폴은 생각보다 단순한 발명품이다. 윗부분에 모자처럼 씌워진 센서는 무게 측정 기능을 갖춰 수액의 종류와 시간당 투여량을 분석하는 데 쓰인다. 그 결과는 환자 눈높이 위치에 탑재된 디스플레이를 통해 환자 본인과 간호사에게 전달된다. 예전처럼 간호사가 일일이 병실을 돌며 환자 상황을 파악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다. 

토킹폴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이완형CL

토킹폴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건 이완형<위 사진> CL(Creative Leader). 그는 지난해 한 해커톤 행사에서 만난 의사와 대화를 나누던 중 무릎을 탁 쳤다. “삼성서울병원에 근무하시는 분이었는데 어느 날 입원을 하게 됐대요. 본인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이 병원이었지만 막상 그곳에 머물고 보니 심리적으로 무척 불안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그 분이 유일하게 의지했던 물건이 이동형 수액 거치대였단 얘길 들었죠.” 이후 이 CL은 ‘환자의 심리적 불안을 덜어줄 ‘최첨단 폴대’를 개발하겠다’고 다짐했다. 토킹폴 팀이 결성된 배경이다.

이완형 CL을 포함한 팀원들의 바람처럼 토킹폴은 치료를 앞둔 환자의 심리적 불안을 최소화하는 기능을 다양하게 담고 있다. 사실 입원 환자들이 가장 염려하는 부분 중 하나가 수액이 제대로 투여되고 있는지 여부다. 토킹폴은 수액이 줄어드는 양을 시간 단위로 파악, 적정 수액 투여·잔여량을 환자에게 가르쳐준다. 환자가 수액 투여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어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일일이 간호사를 부를 필요가 없다.

토킹폴은 일정확인과 수액정보, 환자의 운동기록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토킹폴은 환자의 빠른 회복을 돕는 역할도 한다. 회복기에 접어든 입원 환자에게 걷기처럼 간단한 운동은 필수다. 이 때문에 의사들은 회진할 때마다 자신의 담당 환자에게 “오늘은 꼭 운동하라”고 권한다. 하지만 정작 환자의 실제 운동 유무를 확인할 길은 없다. 팀원들은 ‘입원 환자는 걸을 때 항상 이동형 수액 거치대를 끌고 다닌다’는 점에 착안, 토킹폴에 ‘환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한 후 일별 운동량과 이동 거리를 측정·저장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문성훈 팀원은 토킹폴이 하루 운동량을 자동으로 설정해 환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구가 아무리 훌륭해도 실제 운동 유무는 사용자의 의지에 달려있다. 이 때문에 팀원들은 토킹폴이 ‘(환자가 운동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자극제’ 역할까지 하도록 설계했다. 문성훈 팀원은 “같은 질병에 걸린 환자들의 평균 운동량을 토대로 1일 운동 목표량을 설정, 사용자에게 제시한다”며 “자신의 목표 운동량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으니 재활 운동에 보다 효율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병원 근무 환경 개선에도 일조… “간호사들이 더 좋아해요”

토킹폴은 환자뿐 아니라 간호사에게도 꽤 유용한 기기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토킹폴이 삼성전자 사내 행사 중 하나인 ‘C랩 페어’에서 첫선을 보였을 당시, 실물을 접한 간호사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토킹폴 팀은 C랩 페어 기간 중 삼성서울병원 의료진과 함께 품평회를 진행했다.) 성진하 팀원은 “최초 타깃은 환자였는데 간호사들이 오히려 더 좋아하는 걸 보고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뿌듯하더라”고 말했다.

이후 팀원들은 현역 간호사들의 조언을 수렴해 토킹폴에 ‘병원 근무 환경 개선’의 순기능을 더했다. 윤건호 팀원은 “간호사들 얘길 들어보면 입원 환자의 상당수는 불안한 맘에 간호사를 계속 호출, ‘수액이 잘 들어가고 있느냐’ 같은 질문을 거푸 던지곤 한다더라”고 말했다. “그런 일에 시간을 보내느라 정작 실질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는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하더라고요. ‘토킹폴이 상용화되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겠다’며 좋아하던 모습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토킹폴에는 환자가 필요 시 간호사에게 응급 신호를 보낼 수 있는 ‘호출’ 기능이 포함돼 있다

토킹폴 기능 중 간호사들이 반색하는 건 또 있다. 환자가 필요 시 간호사에게 응급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일명 ‘호출’ 기능이 그것. △통증 △시트·환자복 교체 △음식 문의 △수액 문의 등 자신에게 해당하는 항목을 선택한 후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누르면 끝. 간호사는 환자의 요청 사항을 메시지로 전달 받고 그때그때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어 편리하다.

토킹폴은 여러 명의 환자 상태를 한눈에 관리할 수 있다

간호사 입장에서 토킹폴이 가장 좋은 건 여러 명의 환자 상태를 한눈에 관리할 수 있단 점이다.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의 수액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잘 투입되고 있는지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여러모로 실용적이다. 그뿐 아니다. 진료 일정이나 투약 정보 같은 진료 정보와 환자 개인별 주의사항, 병원 생활 안내 등 ‘환자 맞춤형 정보’도 토킹폴을 통해 전달할 수 있다. 제대로 정착되기만 하면 명실공히 ‘환자와 의료진 간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전국 병원 집결하는 KIMES 출품… “개선점 찾아 보강할 것”

토킹폴 팀은 오는 16일(목) 중요한 일정 하나를 앞두고 있다. 서울 코엑스(COEX)에서 나흘간의 일정으로 개최되는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KIMES) 2017’에 토킹폴을 출품하기로 한 것. 백재현 팀원은 “C랩 페어와 자체 필드 테스트(field test)를 거치며 호응을 얻긴 했지만 토킹폴엔 아직 보강할 부분이 많다”며 “전국 각지 병원이 모이는 KIMES 현장에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 토킹폴이 더 많은 이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섯 팀원들은 “환자와 의료진 간 소통 체계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일념 아래 매일 똘똘 뭉쳐 머릴 맞대고 있다

토킹폴은 IT 분야 종사자 다섯 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의료기기’다. 다들 익숙한 분야가 아니라서 매 순간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다. (이 부분은 삼성서울병원 의료진과의 적극적 협업을 통해 그때그때 보완해가고 있다.) 하지만 다섯 팀원들은 “환자와 의료진 간 소통 체계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일념 아래 매일 똘똘 뭉쳐 머릴 맞대고 있다.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는 토킹폴이 머지않아 환자와 의료진을 모두 웃게 하는 ‘병원 필수 기기’로 자리매김하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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