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공부가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은 ‘생명’ 현상과 ‘무생물’ 현상으로 나뉜다. 이중 생명 현상은 (이제껏 밝혀진 사실대로라면) ‘지구’라는 행성의 출현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 이전의 자연은 생명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물리적 세계다. 결국 생명 현상의 역사는 단세포 생명이 탄생한 40억 년 전부터 인간이 출현하기까지의 과정으로 설명된다.
예술·철학 같은 문화도 따지고 보면 자연과학의 일부?!
‘자연과학을 공부한다’는 건 자연의 구성 요소와 유형을 이해해 과학적 세계관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일컫는다. 이때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이 생성하는 정신 작용 일체도 자연과학의 대상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은 ‘미(美)적 감각의 추구’로, 철학은 ‘생각 자체를 사고하는 뇌 정보 처리 과정’으로 각각 정의될 수 있다. 인간 문화 전체가 뇌 과학과 생물학의 대상이자 자연과학의 일부로 편입될 수 있는 셈이다. 인간(이 일으키는) 현상이 자연에서도 특이 사례로 꼽히는 건 ‘자연에 대한 시선이 곧 인간에 대한 시선’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구조화돼 있으며, 이때 구조는 사물과 사건의 유형으로 각각 표현된다. 또한 자연 구조는 심층 구조와 표층 구조로 구분된다. 전자는 동일률(同一律)[1]이 무한히 반복되는 원자 유형을, 후자는 국소적으로 변화하는 분자 유형을 각각 뜻한다.
지구 심층 구조인 맨틀(mantle)[2]은 산소·실리콘 원자 결합 유형이 끝없이 반복되는 모양이다. 반면, 지구 표층 구조인 토양은 물·공기·유기물 분자의 국소적 다양체(多樣體)[3]다. 맨틀층은 어느 지역이든 주변 환경이 동일하므로 같은 형태가 무한히 반복되지만 표층에 자리 잡은 토양은 물이나 바람, 각종 생물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는 만큼 ‘변화와 차이’를 본질적 특성으로 지니게 된다.
자연의 심층 구조는 한 가지 기본 유형의 무한 반복이어서 명료한 반면, 표층 구조는 국부적 유형이 변화무쌍하게 달라진다. 결국 자연과학 공부는 무한히 변화하는 표층 구조에서 공통 유형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다만 자연의 표층 구조는 무한히 변화해 공통 유형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자연과학적 세계관 훈련은 단순한 자연의 심층 구조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연과학, 출발점은 ‘무한 반복’ 자연 심층 구조 이해
자연 심층 구조의 특징은 대칭성·모듈(module)성순서성으로 요약된다. 반면, 자연 표층 구조에선 이 세 가지가 깨어진 것처럼 보인다. 자연과학 공부의 지름길은 외관상 복잡하게 변화하는 유형에서 자연의 대칭과 모듈, 순서를 찾아내는 (대칭화·모듈화·순서화) 훈련에 있다. 단, 이때 숨겨진 심층 구조를 찾는 능력은 단순 학습으로 계발되지 않는다. 고강도 집중 훈련을 통한 뇌 신경 회로 형성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사물과 사건에서 심층 구조를 발견하려면 특별한 정보와 결정적 정보를 구분해야 한다.식물 잎은 그 모양이 전부 다르지만 (잎을 구성하는 심층 구조인) 잎 세포에선 핵과 미토콘드리아, 엽록체를 모두 찾아낼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를 다시 심층 구조로 파헤칠 수도 있다. 그 결과로 발견되는 시트르산[4] 회로와 전자전달 시스템에 의한 호흡, ATP[5] 생성 과정은 지구상 생명체 대부분에서 공통인 심층 구조다.
인간 뇌의 정신 작용이 구조화된 세계상을 지각하는 과정에서 일정 유형(pattern)이 발견된다. 인간 현상이란 바로 이 세계의 내면화를 통한 지각과 생각의 출현, 곧 ‘구조화된 세계에서 인간 뇌 신경세포가 다시 구조화되는’ 과정이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자연 표층 구조는 박쥐와 고래만큼이나 특이하고 서로 간 차이도 크다. 이처럼 강한 차별성은 역시 강한 신경 자극을 생성, 인간이 특별한 정보를 곧장 기억하게 한다. 이때 그 바탕의 심층 구조는 ‘차별성’보다 ‘공통점’이 본질인 세계여서 뇌를 자극하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 구조서 ‘대칭·모듈·순서’ 찾기
‘차이에 민감하고 공통점에 둔한’ 인간 신경계의 특성 탓일까, 인간이 자연 유형을 제대로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자연 현상을 보다 잘 기억하는 지름길은 자연 구조에서 대칭과 모듈, 순서를 발견하는 훈련이다.
우선 대칭부터. 대칭을 발견하는 뇌 작용은 사물·사건의 △형태와 맥락을 비교하고 △변화를 예측하며 △(미뤄 짐작하는) 추론을 통해 다양한 대상에서 공통 유형을 추출하는 게 골자다. 다음으로 모듈. 포도당 분자가 결합해 다당류를 형성하고 아미노산이 결합해 단백질을, 핵산이 결합해 DNA를 각각 구성하는 과정이 바로 모듈식 결합이다. 자연 구성 요소가 대칭적 구성 단위인 모듈을 형성하면 이후엔 모듈 사이에 교환 가능성이 생긴다. 모듈은 단위성이며, 단위성은 교환 가능성을 보장한다.
화폐는 100원과 1000원, 1만 원 등의 단위로 구성되며 교환 가능성을 지닌다. 화폐가 교환되는 과정에선 자연스레 ‘시장경제’란 힘을 동반한 사회 현상이 발생한다. 입자와 입자 사이 소립자가 교환되는 과정에서 우주의 네 가지 힘이 출현하듯 기본 요소 사이 교환 과정은 단위성을 기반으로 한다. 이때 단위성이 바로 모듈성이며, 건축이든 자동차든 인간이 만드는 물건은 어느 것이나 그 바탕에 모듈성이 자리 잡고 있다.
한편, 순서성은 생명 현상의 본질이다. 척추동물의 몸 구성 요소도 대칭과 모듈, 순서다. 인간의 척추는 동전이 쌓여 완성된 구조다. 동전 같은 형태가 대칭성과 모듈성을 확보하고 ‘척수 뼈’란 동전이 머리에서 꼬리 방향으로 순서 있게 배열된다.
대칭과 모듈로 구성된 동물, 순서로 인해 생명에 제약
자연의 심층 구조는 대칭과 모듈로 구성되지만 표층 구조에서 대칭과 모듈은 숨겨진 채 국소적으로 존재한다. 생명 현상의 심층 구조는 대칭·모듈·순서가 분자 구조에 새겨지는 반면, 표층 구조는 대칭·모듈·순서가 매 순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시간 흐름에 따라 상호 작용한다. 요컨대 자연과학 공부는 대칭화·모듈화·순서화 과정을 거쳐 끊임없이 달라지는 유형 가운데 불변의 공통 유형을 찾아내는 훈련이다.
소립자 세계에서 시간 순서는 대칭적이어서 현재에서 과거로의 시·공간 이동이 가능하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시간 흐름의 설정을 거꾸로 적용할 수도 있다. 반면, 핵산과 단백질 간 상호 작용의 결과로 출현한 생명 현상에서 시간의 화살은 (과거에서 미래로의) 일방적 방향만 허용된다.
생명의 방향은 DNA 분자를 구성하는 핵산(nucleic acid)에 의해 정해진다. 핵산은 리보스당과 염기, 인산으로 구성되며 당과 인산 결합의 방향이 핵산 연결 순서를 결정한다. 리보스당은 탄소 다섯 개가 고리 형태로 결합한 5탄당이다. DNA를 살펴보면 △1번 탄소에 아데닌·구아닌·티민[6] 염기 △2번 탄소에 수소 △3번 탄소에 OH기 △4번 탄소에 CH2가 각각 결합한다. CH2의 탄소가 5번 탄소이며 여기에 인산기가 결합한다.
핵 속 산성 물질인 핵산의 구성 분자는 뉴클레오타이드(nucleotide)이며, 뉴클레오타이드는 서로 결합해 DNA와 RNA의 고분자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아데닌 3인산 △구아닌 3인산 △티민 3인산 △시토신[7] 3인산 등 인산기가 3개인 분자들이 DNA 중합 효소의 작용으로 초당 수십 개씩 결합, 폴리뉴클레오타이드[8]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순간, 인산기 사이 결합을 절단해 아데닌 1인산 형태로 결합한다. 아데노신 3인산에서 인산기 두 개를 절단, 아데노신(adenosine) 1인산이 되는 과정에서 방출된 결합 에너지를 활용해 DNA 중합 효소가 지속적으로 작동, DNA 복제가 가능해진다.
DNA 복제 결과, 새로 생성된 DNA가 말단에서 조금씩 짧아지는 현상으로 인해 동물 체세포는 무한히 복제될 수 없다. 동물 체세포가 생식 세포와 달리 영원히 생존할 수 없는 이유다. 결국 (자연 심층 구조의 3대 특징인) 대칭·모듈·순서 중 다세포 동물의 생명을 제한하는 건 ‘순서’다. 이렇게 볼 때 생명은 시간적 순서인 ‘변화’와 공간적 순서인 ‘방향’을 갖는, 자연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생명 보다 잘 이해하려면 효율적 뇌 훈련 필수
자연과학을 잘 공부하려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표층 구조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심층 구조를 밝혀내는 훈련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 작업의 성패는 자연 심층 구조를 각인시키는 뇌 훈련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진행하느냐에 달려있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1] 논리학 상의 근본 요구를 나타내는 원리. ‘모든 대상은 그 자체와 같다’로 요약된다
[2] 지구 내부 핵과 지각 사이에 있는 부분. 지구 부피의 83%, 질량의 68%를 각각 차지한다
[3] 점∙선∙면∙구 등 기하학적 도형의 집합을 하나의 공간으로 봤을 때 해당 공간의 총칭
[4] citric acid. 약한 유기산의 일종. 지방∙단백질∙탄수화물의 생리적 산화반응에 관여하는 화학물이다
[5] Adenosine TriphosPhate. 아데노신에 인산기가 3개 달린 유기화합물. 모든 생물의 세포 내에 존재하며 에너지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6] adenine∙guanine∙thymine. 핵산을 구성하는 퓨린 염기들
[7] cytosine. 핵산을 구성하는 피리미딘 염기 중 하나
[8] polynucleotide. 뉴클레오타이드가 여러 개 중합해 생성된 고분자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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