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경쟁 없인 경쟁력도 없다
김진국 배재대 중소기업컨설팅학과 교수
거실에 앉아서도 세계 각국의 주요 스포츠를 모두 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나같은 축구 마니아에겐 엄청난 축복이다. 내 경우 특히 박력 넘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즐겨 본다.
‘승승장구’ EPL vs. ‘지지부진’ 본인방
독일 분데스리가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비교했을 때 EPL엔 유독 외국인 선수가 많다. 지역(잉글랜드) 리그인데도 20개 팀이나 활동 중인 점, 심지어 세계 프로축구 리그에서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물론 최근엔 분데스리가에 다소 밀리는 감이 없지 않지만)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비결이 뭘까?’ 10여 년 전 박지성 선수가 처음 EPL에 진출했을 당시 주말마다 그의 경기를 관람하며 생각했다. 의문은 2년쯤 후에야 비로소 풀렸다.
EPL의 성공 요인을 짚기 전 먼저 살펴볼 분야가 있다. 바로 일본 기단, 다시 말해 바둑계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국내 젊은 바둑 지망생이 대거 일본 유학길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일본 바둑계가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바둑계 풍경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점차 힘을 잃어갔고 그 빈자리를 한국이 채웠다. 2000년대 들어선 한국과 중국이 경쟁 관계를 이어갔고, 최근 그 주도권은 막강한 인구를 앞세운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때 바둑계를 주름잡았던 일본의 몰락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기성·명인·본인방은 ‘일본 3대 기전’으로 꼽힌다. 그중 3위인 본인방은 우승 상금이 여느 세계 기전의 곱절에 이를 정도여서 순위는 낮지만 가히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하지만 본인방은 출전 자격을 ‘일본 기원 소속 기사’로 한정 짓고 있다. 그 결과, 본인방은 최고의 기력을 유지하기는커녕 일본 기단이 힘을 잃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제 다시 EPL 얘기다. EPL은 영국 홈네이션스(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중 하나인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지역 리그다. 잉글랜드 지역 인구는 5000만 명이 채 안 되지만 ‘축구 종가’답게 독일보다 더 많은 팀을 보유하고 있다. EPL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 배경엔 ‘적극적 시장 개방’이 있다. 실제로 EPL은 1개 팀당 뛸 수 있는 외국인 선수 숫자에 제한을 두지 않고 세계 최고 선수들이 몰려들 수 있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시대착오적인 ‘순혈주의’ 사고로 본인방을 지키려다 결국 변방으로 전락해버린 일본 기단과는 대조적이다.
“거지 같은 경쟁 이겨내야 거지꼴 면한다”
EPL과 본인방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개방하지 않고 ‘그들만의 리그’를 고집하는 조직은 서서히 힘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 반면, 안팎으로 ‘새로운 피’를 끊임없이 수혈하는 조직은 그 세(勢)를 계속 유지,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물론 개방은 필연적으로 경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경쟁력은 바로 그 경쟁을 통해 자란다. 지속가능한 발전 역시 그 과정에서 이뤄질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경쟁 상황을 꺼린다. 하지만 다가오는 경쟁을 무조건 피하려 한다면 결국 경쟁자에게 늘 눌려 사는 처지에 머무르게 된다. 역사가, 시장이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반면, 경쟁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고생을 이겨낸다면 어느덧 한층 배가된 자신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경쟁은 거지 같지만 경쟁하지 않으면 거지처럼 살게 된다.” 예전에 한 선배에게 들은 후 크게 공감해 시장경제의 특징을 강의하며 종종 쓰는 말이다. 국내 시장에도 경쟁 상황을 저해하는 규제가 많다. 중소기업적합업종제, 대형마트 의무휴일제와 영업시간 제한, 휴대전화 보조금 제한, 도서정가제 등이 대표적 예다. 이 같은 규제는 소비자의 후생을 상당 부분 감소시킬 뿐 아니라 종국엔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급격히 약화시킨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생겨난 인기 영합주의적 규제는 해당 중소 상인을 보호하지도, 해당 산업을 되살리지도 못한 채 크고 작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스마트폰이 처음 한국에 도입된 건 지난 2009년 11월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 휴대전화 생산 업체들은 일명 ‘피처폰’ 분야에서 당대 1위 업체였던 노키아를 물리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그러다 쓰나미처럼 밀려온 아이폰에 압도돼 무력하게 굴복해야 했다. 하지만 5년여가 흐른 지금, 우리나라 기업은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과 TV를 생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각종 가전제품을 하나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oT) 기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올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 2015’의 양대 화두는 사물인터넷, 그리고 스마트카였다. 새삼 이 같은 시장 변화를 부지런히 따라잡고 선도해온 국내 전자전기업계와 자동차업계, 그리고 전기차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화학업계의 노고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의지가 곧 경쟁력
오늘날 시장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언론에서 “중국의 추격이 무섭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따라올 줄은 몰랐다”고 고백하는 한국 기업 중역의 인터뷰를 접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그러면서도 내심 ‘믿는 구석’이 있다. 치열한 경쟁의 파고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힘이 우리 내부에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경쟁이 두려웠다면 1960년대 이후 50여 년간 우리가 이뤄낸 고속 성장은 실현 불가능했을 것이다. 100여 개 개발도상국이 한국을 ‘벤치마킹’하려는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어쩌면 그들이 우리에게 배우고 싶은 건 단순한 경제 성장이 아니라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의지인지도 모른다.
개발도상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진행할 때 종종 이렇게 말한다. “식민 생활 거치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며 ‘세계에서 가장 못 살았던 나라’였던 한국도 해냈습니다. 여러분 나라에서 못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 내 얘길 듣고 크게 동감하던 학생들의 눈망울을 아직 기억한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도전정신을 봤던 것이다. 도저히 해낼 것 같지 않았던 나라가 해낸 일을 본받고 싶은 것이다.
현대사회에선 기업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다. 기업은 물론, 개인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데 힘써야 한다. 경쟁은 결코 승자독식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의 경쟁력을 함양시키는 메커니즘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혹은 본인이 몸담고 있는 조직을 위해 혁신하는 마음으로 도전을 거듭한다면 누구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 있다.
경쟁 없는 시장의 최종 피해자는 ‘소비자’
정치권도 ‘경쟁이 경쟁력을 키운다’는 명제에 걸맞게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경쟁은 낙오자를 양산하며 개방은 모두를 죽게 만든다’는 패러다임으로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해선 안 된다. 기업 관련 법안을 상정하거나 처리할 때도 국내 기업이 치열한 내부 경쟁을 거쳐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개방을 통한 경쟁이 가로막혔을 때 결국 손해를 보는 건 소비자다. 따라서 정치권은 결집된 이익 집단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여 경쟁 환경을 저해하는 규제 생성에 앞장설 게 아니라 ‘미래의 유권자’인 소비자를 인식, 그들의 실질적 요구를 찾아 충족시켜주는 법 제정에 힘써야 한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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