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기업, 이젠 CDO(Chief Data Officer)가 필요하다

2015/06/12 by 문송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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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


 

국내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에서 불량 부품이 사용됐다는 보도는 섬뜩했다. “모조품 사용 원전이 두 군데나 된다”는 소식을 자세히 살펴보니 해당 부품은 아직 전산화되지 않은 업무와 관련돼 있었다. 업무와 부품 간 관계에 대한 시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컴퓨터 전문가는 업무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부품을 데이터로 각각 인식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긴 힘들겠지만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같은 게 프로그램의 대표적 유형이라고 보면 된다.

 

프로그램은 짧고 데이터는 길다

컴퓨터 프로그램 데이터 나열 이미지

프로그램은 데이터를 사용하는 주체이고 데이터는 프로그램에 의해 철저히 이용 당하는 존재다. 네트워크 상에선 이동하는 물건이 많으므로 시스템 전반의 성능 극대화를 감안하면 ‘덩치 작은 존재가 민첩하게 이동하는’ 편이 유리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데이터는 큰 몸집 때문에 정해진 장소에 무게 잡고 있는 반면, 프로그램은 심부름꾼처럼 이리저리 분주하게 장소를 옮겨 다니며 크고 작은 작업을 수행한다. 그래서 흔히 데이터와 프로그램 간 관계를 묘사할 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에 빗대) ‘프로그램은 짧고 데이터는 길다’고 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가장 긴 게 5000만 줄(行) 정도다. 보통 운영체계(OS)가 그렇다. 이에 비해 데이터는 대기업을 기준으로 했을 때 길면 10의 15제곱 줄, 즉 수천 조 줄에 이를 정도로 그 규모가 방대하다. 기업은 이 같은 데이터를 먹고 사는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데이터 관련 업무하는 두 명의 관리자 모습

기업은 업무 단위로 돌아가며, 업무는 영업 행위들의 집합이다. 선·후행 순서에 입각해 구성된 행위들의 집단이 기업 단위 업무를 형성하며, 이런 행위가 건드리는 ‘무엇’이 바로 데이터다. 업무 행위가 바로 프로그램 역할을 하며, 일단 전산화되면 모든 업무 행위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업무와 데이터 간 관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돼야 하며,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해놓은 형태가 ‘업무(직무)기술서’ 혹은 ‘업무 매뉴얼(job description)’이다.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당할 때마다 그 원인으로 ‘매뉴얼 부재(不在)’가 꼽히곤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업무 매뉴얼을 갖춘 기업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늬만 매뉴얼일 뿐,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형편없는 작품을 매뉴얼이라고 제작해놓았다가 막상 일이 터진 후에야 한탄하는 행태가 매번 반복된다.

프로그램은 어디까지나 데이터를 처리하는 ‘조연’에 불과하다. 데이터가 프로그램을 처리하는 경우란 애당초 있을 수도 없다. 프로그램은 데이터를 생성해 어딘가에 저장하고, 저장된 걸 필요 시 검색하거나 수정·갱신하는 역할을 맡을 뿐이다. 따라서 기업 데이터가 아직 전산화되지 않았다는 얘긴 처음부터 데이터가 컴퓨터에 들어간 적이 없고, 따라서 데이터 조작 프로그램조차 만들어진 일이 없다는 뜻이 된다. 원전에선 데이터 심층 분석을 통해 매출 확대를 꾀하는 식의 일반 기업 관심사에 별다른 관심이 없을 테니 전산화 속도가 다소 늦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비전산화의 그늘에선 부정과 부재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데이터에 대한 주인의식 부족이다. 이때 주인의식은 조직 내 특정인을 가리키지 않는다. 조직 구성원 모두가 데이터에 대해 주인의식을 공유하는 걸 의미한다.

 

‘데이터 설계 아웃소싱’은 안 될 일

여기저기서 ‘빅데이터(big data)’를 얘기한다. 혹자는 ‘데이터 범람 시대’라고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데이터란 모두 이미 전산화된 데이터를 지칭한다. 전산화됐다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일명 ‘신(新)정보시스템’ 혹은 ‘차세대 정보시스템’ 구축 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중대 사건이 몇 년 전 미국 공군에서 발생했다. 아웃소싱(outsourcing) 시류에 편승, 데이터 모델링 같은 중대한 초반 과업을 외주 업체에 무분별하게 맡겨버린 게 화근이었다. 이 사고로 6년간 줄기차게 추진해온 공군 내 신정보시스템은 ‘밑 빠진 독’이 돼버렸다. 1조 원이나 되는 거액이 제대로 쓰이지도 못한 채 하수구에 처박혀졌다.

데이터 보안을 상징하는 자물쇠 이미지

이 사고는 ‘데이터 설계는 어떤 경우에도 아웃소싱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데이터 설계가 성공리에 종료되면 그 후속 작업으로 설계도에 따라 시공하는 일, 다시 말해 프로그램을 구현하는 일은 100% 아웃소싱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데이터 설계 부분까지 아웃소싱한 실책이 불러온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컸다. 이 대목에선 우리 기업들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국내 역시 외주 관행이 만연해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웃소싱은 단순 업무, 이를테면 전화 응대처럼 난이도가 낮은 업무를 외부 업체에 위탁할 때나 사용하는 말이다. 중차대한 기업 업무를 외주로 맡기는 데 사용하는 말은 원래부터 아니었다. 데이터 설계나 기업 보안, 고객 정보 보호 같은 업무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업무 영역까지 아웃소싱하게 될 경우,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꼴을 벗기 어렵다. 한 나라로 치면 국방 같은 중대사를 다른 나라에 맡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 글을 읽는 이 중 일부는 “이미 관행처럼 굳어진 아웃소싱 행태를 이제 와서 어떻게 고치나”라며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관행처럼 굳어진 전통이라 해도 기업의 생사를 판가름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면 단번에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업이 ‘데이터를 먹고 사는 생명체’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런 용기는 필수적이다. ‘지금은 데이터 시대’란 진리를 가볍게 여기는 일이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 이렇게 간단찮은 일을 과연 누가 해낼 수 있을까? 데이터의 역할이 날로 중요해지는 지금이야말로 기업이 최고 데이터 관리자(Chief Data Officer)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문송천

KAIST 경영학과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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