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디자인, 창업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은경 ‘월간 디자인’ 편집장
창업가정신, 디자인과 닮았네
앙트레프레너십(entrepreneurship). ‘창업가 정신’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단어는 한마디로 훌륭한 기업가나 창업가에게서 발견되는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창업가 정신을 “새로운 결합의 수행”이라 했고, 창업 기업가에 대한 교육과 연구로 유명한 제프리 티몬스(Jeffrey Timmons)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가치 있는 것을 이뤄내는 인간적이고 창조적인 행동”이라고 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들이 정의하는 창업가 정신은 디자인의 정의와도 닮아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디자이너들은 단지 외형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가장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란 말이 기업가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방법론처럼 각광받고 있는데, 이제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창업가에게도 필요한 시대가 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에어비앤비와 부가부의 성공 비결은?
세계 최대 숙박 공유 서비스 웹사이트 ‘에어비앤비(Airbnb)’. 호텔 중심의 숙박 업계 생태계를 뒤흔든 것으로 평가받는 에어비앤비의 기업 가치는 100억 달러 이상으로 현재 하얏트호텔 체인의 기업 가치보다 높게 평가된다. 하지만 에어비앤비의 공동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Brian Chesky)와 조 게비아(Joe Gebbia), 그리고 네이선 블레차르지크(Nathan Blecharczyk)가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집에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란 점, 그리고 이들이 전문 경영인도 사업가도 아닌 디자이너 출신이란 점 때문이었다. 네이선은 하버드대 출신 엔지니어였지만 브라이언과 조는 당시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을 막 졸업한 풋내기였다.
하지만 에어비앤비가 성공한 건 역설적으로 바로 이 두 가지 약점 때문이었다. 에어비앤비에선 모든 주요 결정을 디자인적 사고로 이끌어가는데, 이들은 숙박 고객 한 사람을 위한 완벽한 시스템을 ‘끝에서 끝까지의 서비스 디자인(end-to-end service design system’)’이라고 부른다. 비행기 표 예약을 시작으로 여행을 떠나 낯선 숙소에 머물다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모든 과정을 염두에 두고 모든 단계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다른 어떤 기업보다 디자인 중심적인’ 회사라고 주장하는 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이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에 능숙한 디자이너 출신인 덕분에 쉽게 나올 수 있는 발상이었다.
유모차 시장을 디자인으로 개척한 유모차 브랜드 ‘부가부(Bugaboo)’는 자사 제품을 ‘유모차’가 아니라 ‘스트롤러(stroller)’라고 부른다. 맥스 바렌부르흐(Max Barenbrug) 부가부 창업자 겸 최고디자인책임자(CDO)는 “기존 유모차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만들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다양한 기능과 디자인을 가진 유모차가 흔해졌지만, 바렌부르흐가 디자인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유모차는 그저 아이를 나르는 데 필요한 수단,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유모차 자체가 아니라 ‘이동성’에 있었다.
사용자를 아이가 아니라 부모로 설정한 것 역시 획기적이었다. 유모차 때문에 멋지게 차려입을 수 없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도 없다면 과연 좋은 라이프스타일 제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팔뚝에 문신이 있는 히피 부모가 몰아도, 양복 입은 아빠가 몰아도 근사하게 어울리는 유모차. 그래서 부가부를 선택하는 젊은 부모는 남다르다. 유모차를 ‘아이 나르는 수단’으로 생각했다면 나올 수 없는 발상이었다. 부가부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듈 방식인데, 당시만 해도 시트나 햇빛 가리개가 분리되는 유모차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높낮이뿐 아니라 방향도 조절할 수 있는 핸들, 뛰어난 주행성은 기본이다. 기술도 뛰어나지만 부가부가 유모차를 혁신하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건 사용자를 제일 먼저 고려하는 디자인의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디자인 경쟁’에 뛰어들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성공적 스타트업 창업자로 디자이너가 참여하는 경우가 흔하다. 스퀘어(Square), 핀터레스트(Pinterest), 플리커(Flickr)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제아무리 아이디어가 훌륭해도 사용자 경험이 좋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 창업 단계부터 디자이너가 합류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디자이너가 창업자라고 해서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벤처 창업은 확실히 디자인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창조적인 콘텐츠에 투자하는’ 공유 경제 전문 벤처 캐피털 펀드인 컬래버레이티브 펀드 대표인 크레이크 사피로(Craig Shapiro)는 월간 ‘디자인’과의 인터뷰에서 “인스타그램이나 플리커, 왓츠앱과 라인의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최근의 스타트업들은 UX와 UI, 브랜드 아이덴티티 등 디자인과 관련된 뉘앙스를 두고 경쟁하기 시작했다”며 디자인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는 지금, 투자를 기획할 때 이런 측면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또한 벤처 생태계에서 디자인의 역할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90년대 사람들에겐 디자인이란 ‘있으면 좋은 것’이었다. 고객과의 관계에 없어선 안 될 필수 요소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창조적 행위와 관련된 비전이나 방향이 없다면 회사의 성공 가능성은 낮다. 말 그대로 스타트업 회사의 핵심 덕목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기술 혁신으로 승부수를 띄웠던 1990년대 말 벤처기업에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개발자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가치 창조가 성장 동력이 된 21세기엔 디자이너가 창업 성공의 핵심 인력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창업을 하기 위해 스스로 디자이너가 될 필요는 없다. 비전을 이해하는 좋은 디자이너와 만나면 된다. 자동차 분야에서 최초로 개방형 혁신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한 회사인 로컬 모터스(Local Motors)처럼 사내에 디자인팀이 없지만, 집단 지성의 힘으로 40만 명과 함께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방법도 있다. 트렌드의 중요성을 명쾌하게 정리한 피터 드러커식(式)으로 말해보면 이렇다. “디자인을 잘 한다고 100% 성공을 보장할 순 없다. 하지만 디자인을 모르면 100% 실패는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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